한식의 세계화란 말은 너무 거창합니다. 그저 눈으로 한 번, 그다음엔 혀로 또 한 번 즐거워지는 모던한 한식을 선보이는 식당 세 곳을 소개합니다.
노블따블
‘귀족의 테이블’이란 뜻을 지녔지만 사실 노블따블은 대리석으로 치장하거나 번쩍이는 식기로 가득한 사치스러운 공간은 아니다. 오히려 이태원 뒷길에 숨어 있는 이 2층짜리 식당은 마치 친구 집에 들어선 듯한 아늑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테이블로 도자 작가 무토 전성근이 빚은 은은한 빛깔의 개인 접시가 배달되고, 그 위로 차례차례 정갈하고도 아름다운 요리가 오를 때면 그제야 마치 귀족이 된 듯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한식 창작 요리를 선보이는 까닭에 종종 재료들 간의 낯선 만남이 눈에 띄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등심으로 감싼 가래떡 위에 새송이버섯과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등심떡말이도, 청국장을 베이스로 만든 소스에 적셔 먹는 문어 샐러드도 마치 원래부터 그러한 조합이었던 것처럼 맛과 맛이 부딪치지 않고 감칠맛 나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한식임에도 화이트 와인과 샴페인에 잘 어울린다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시지는 말 것. 식사 맨 마지막엔 오미자를 깊게 우려낸 슬러시에 각종 베리를 얹어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오미자 베리 화채를 무조건 맛봐야 하니까.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 중간에 있는 명동교자 골목으로 내려가 르 사이공 2, 3층.
이스트 빌리지
집에서 매일 먹는 한식을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건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미 갈아져 있는 고기가 아니라 직접 갈비를 들여와 네 명의 요리사가 꼬박 뼈와 살을 바르고 다져서 만든 떡갈비라면, 200번 넘게 칼질한 끝에 맛보게 된 고작 초코바만 한 크기의 한우 육포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지 않을까. 모던한 한식을 선보이는 이스트 빌리지는 그렇게 된장과 간장, 그리고 백김치까지 직접 담그는 수고를 기꺼이 택한 정성이 접시마다 느껴지는 곳이다. 당연히 다진 새우와 두부에 소금을 넣고 쪄낸 후 각각 잣, 파프리카, 고추로 만든 크림을 곁들이는 새우두부찜, 살짝 구운 채끝 등심과 채소를 들기름, 간장, 매실청을 이용한 드레싱과 함께 먹는 한우샐러드 모두 그 꾸밈새만큼이나 섬세한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재료 자체의 맛을 중시하는 까닭에 고춧가루나 고추장이 들어간 요리는 거의 없지만, 밥 위에 취나물이나 고사리와 같은 묵은 산나물을 올려 들기름으로 비벼 먹는 돌솥밥을 크게 한 술 떠 먹으면, 좋은 재료만으로도 얼마나 충실한 맛이 우러날 수 있는지를 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태원역에서 한강진역 방향으로 걷다가 제일기획 건물 전.
살롱 드 화수목
남산 소월길에 위치한 이탤리언 레스토랑 ‘스페이스 화수목’에 애정을 갖고 있던 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한 ‘살롱 드 화수목’은 이제야 제 이름에 딱 맞는 모습을 갖추게 된 듯하다. 맑은 조개탕, 불고기, 나물 찬, 젓갈 등이 칸마다 들어찬 한식 도시락은 물론 별다른 향신료 없이 올리브 오일과 바다 소금으로 간한 화이트 와인 소스 바지락찜이나 간장, 생강, 마늘로 맛을 낸 도미 스테이크처럼 신선한 재료를 짜지 않게 조리한 퓨전 한식이야말로 ‘벼, 물, 나무’라는 그 싱그러운 이름에 더없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그저 레스토랑으로 규정짓기엔 왠지 아쉽다. 바깥으로 나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의 풍경을, 안으로 들어오면 각각 디저트 바와 라운지 그리고 룸의 특성에 맞게 채워진 가구와 소품을 만나는 재미에 굳이 음식을 먹지 않고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지니 말이다. 특히 1층 구석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와 좋은 울림을 가진 스피커 그리고 수많은 의자가 놓인 아트 홀이 등장하는데, 곧 클래식 및 재즈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그러니 우리의 의무는 그저 마치 살롱에 입장한 것처럼 여유롭게 앉아 맛과 향, 풍경 그리고 음악을 즐기는 것뿐이다. 남산 소월길에서 남산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필립스 건물 옆.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김범경, 김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