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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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이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선, 창밖의 거리부터 유심히 살필 일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스태디움 재킷을 입는 90년대 태생의 스트리트 신이, 드높았던 패션의 권좌를 나눠 갖기 시작했으니까.

이번 시즌 랑방 컬렉션 후반부에 등장한 아름다운 드레스 시리즈를 보니, 알버 엘바즈가 요즘 가장 컨템퍼러리한 영감을 캐치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포츠. 공중에 뜬 패러슈트처럼 풍성하게 흩날 리는 볼륨의 스커트와 그 안전 장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한 듯한 스트랩, 그리고 스킨스쿠버를 하이 패션으로 둔갑시킨다면 저런 모양이지 않을까 싶은 스트레치 소재의 보디컨셔스 드레스까지. 아프리칸 사파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랙&본 역시 직접적인 모티프를 초안 삼아 다채로운 란제리 룩을 선보여 갈 채를 받았으며, 이자벨 마랑은 섹시한 럭비 소녀들을, 하이더 애커만은 동양의 무술복을 런웨이 위에 우아하게 환생시켰다. 거기다 셀린의 이번 시즌 광고 비주얼은 또 어떤가? 더 없이 동시대적이고 미니멀한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백과 함께 들고 있는 건 바로 오렌지색 스케이트보드와 늘씬한 서핑보드 아닌가. 그녀들이 그 옷을 입고 도대체 어떻게 보딩을 하겠다 는 건지 묻고 싶어지기도 전에, 우리는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쿨하고 자연스러운 액세서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놀란다. 핑거 스케이트 보더와 함께 에르메스 액세서리의 영상 광고를 제작한 에르메스 의 위트와 발상은 또 어떻고? 아카이브의 뿌리로 알 려진 스카프 컬렉션인 ‘까레’를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풋풋한 10대와 20대 소녀들에게 주고, 자유롭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스트리트’의 권한을 직접 발부했 다는 사실만으로 하이패션계는 한참을 들썩였다.

이 모든 것이 신선한 채로, 더없이 자연스럽게, 또 적 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이 그간 하이패션 디자이너들과 격의 없이 벌여온 협업들 덕 분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여온 것은 나이키다. 스포츠와 아트, 문화를 한 공간 안에 녹여낼 목적으로 홍대 와우산 길에 ‘와우산 107’ 매장 을 오픈하며,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여는 시도를 벌 였는데, 이번에는 패브릭의 보물 창고라 불릴 만큼 4만3천 가지의 프린트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의 리버티 아카이브와 손잡아 화제를 모았다. 나이키의 오리 지널 덩크스에 이 아름다운 프린트를 입힌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으며, 스니커즈계에 하이 프리미엄 리그를 탄생시킨 것. 리버티 런던에서 독점적으로 판매 되는 이 라인은 오는 5월 1일부터 국내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라고.

그런가 하면 이브 생 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와 스니 커즈 컬래버레이션을, 알렉산더 매퀸과 RTW 컬렉션 컬래버레이션을, 세르지오 로시와 럭셔리한 스니 커즈 하이힐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하이패션과 적극적으로 교류해온 푸마는 2년 전부터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이며 독보적인 스포츠웨어 라인을 구축해오고 있다. 푸마는 사실상 스포츠 브랜드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질 샌더, 크리스티 털링턴, 닐 바렛 등의 인물들을 크리에 이티브 팀으로 끌어들여 기능적이고도 패셔너블한 컬렉션을 성공리에 이끌어낸 바 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바이 오리지널스 역시 이 일환 으로 이해된다. 디자이너 제레미 스콧과 데이비드 베 컴, 카즈키를 영입하여 각 디자이너들 고유의 특색을 반영한 의상과 풋웨어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을 뒤집고, 아이코닉한 요소를 도입한 디자인이라는 점에 있어 팬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 이에 힘입어 아디다스 오리지 널스는 한국의 스트리트 신을 주름잡고 있는 그룹 2NE1과 손잡고, 공식적인 지지 관계에 들어갔다. 디자인은 물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크고 작은 이벤트에 협업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스포츠 브랜드가 이렇게 꾸준히 넓혀온 영역은 국내 스트리트 신의 붐에도 크게 일조했다. 나이키를 비롯 한 스포츠웨어와 아웃도어 브랜드를 바잉하여 판매 하던 스트리트 숍인 카시나(Kasina)는 이러한 현상 에 힘입어 리복과 운동화, 스타디움 재킷 등의 리미 티드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디자인하여 완판 기록을 세웠다. 우드우드나 헨릭 빕스코브, 소피 백 등과 같 은 스트리트 감성의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을 수입하는 압구정동의 애딕티드, 아폴리스, 인스탄톨로지, 아워 레가시, 핏보우 등 실력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 들의 브랜드를 수입하여 패션 서브 컬처의 지평을 열고 있는 므스크숍 역시 이 확장세와 큰 연관을 맺고 있는 것.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나 알렉산더 왕이 컬렉션에 신선한 전환점으로 종종 사용하곤 하는, 아메리칸 헤리티지나 아웃도어, 다운타운 스트리트 룩이 ‘핫’한 시너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 역시, 90년대에 틴에이저 시절을 겪은 그들의 출신지, 그리고 그들이 현재에 이르러 문화로 확장시킨 이 스포츠와 스트리트 신의 부흥 덕 분이다. 앤 드뮐미스터와 스투시, 꼼데가르송과 슈프 림이 동일한 시선에서 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관점이 이제 하이패션을 움직일 또 다른 축으로 성장 중인 것이다.

에디터
최서연
포토그래퍼
PHOTOS|JASON LLOYD-EVANS, COURTESY OF Adidas, courtesy of celine, COURTESY OF Nike, COURTESY OF Puma, Photo / KIM WESTON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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