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얇아서, 입이 너무 커서, 피부가 안 좋아서, 얼굴색이 어두워서, 나이 들어 보여서, 천박한 느낌이라서 안 어울린다고요? 그 어떤 핑계나 변명거리도 소용없어요. 잘 고른 레드 립스틱만큼 얼굴을 화사하고, 매력적으로 변신시켜주는 것도 없으니까.
여자라면 누구나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그러나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신만의 아킬레스건이 있지 않나. 가령 허리까지 생머리가 내려오는 청순가련 스타일이라거나 아찔한 스틸레토 힐과 펜슬 스커트를 매치한 섹시 룩 같은 것 말이다. 내게는 ‘레드 립’이 바로 그런 대상이다. 백설공주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시작된 하얗고 예쁜 ‘어른 여자’에 대한 판타지이자 로망. 레드 립에 대한 동경이 절정에달한 것은 클로에 세비니를 좋아하면서부터인데, 별다른 메이크업 없이 오로지 레드 립스틱 하나에만 의존해 레드 카펫을 밟은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도발적이며, 근사하고, 또 클래식해 보였다. 물론, 아예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테스트를 권하는 매장 직원의 말에 “괜찮다”고 답하고는 도망치듯 업어온 제품만도 대여섯 개. 하지만 구입하는 족족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빨간 립스틱이 안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흔한 실수죠. 확실한 방법은, 매장에서 직접 다양한 제품을 발라보고 구입하는 것이에요.” 에스티 로더 글로벌 프리미어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알렉스 조는 테스트만이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같은 레드 립스틱이라 하더라도 톤의 차이나 믹스되는 컬러, 질감에 따라 수십 가지 색이 나올 수 있어요. 게다가 동일한 컬러를 발라도 피부색과 모발 컬러, 눈동자 색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죠.” 때문에 오로지 제품의 색감만 보고, 혹은 모델이나 연예인이 바른 느낌과 비교해 나에게 어울릴지 안 어울리지를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우선 나의 피부(모발, 눈동자 포함) 톤 파악이 급선무. 단순히 ‘하얀 피부’ 혹은 ‘어두운 피부’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베이스(base) 톤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체로 노란 기를 바탕으로 하는 웜(warm) 톤은 피부나 머리카락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며, 파란 기를 바탕으로 하는 쿨(cool) 톤은 어딘지 모를 차갑고 이지적인 분위기가 나는 것이 특징.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양볼에 오렌지(웜 톤)와 핑크(쿨 톤) 블러셔를 각각 바르고 반쪽씩 얼굴을 가려가며 어느 쪽이 더 잘 어울리는지를 파악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 레드 립스틱을 고르는 데에도 적용하도록. 같은 레드라 할지라도 웜 톤인 사람은 옐로 계열이 혼합된 레드 브라운이나 다홍빛 레드, 오렌지 레드 등이, 쿨 톤인 사람은 블루나 무채색이 혼합된 마젠타, 버건디, 와인 등의 컬러가 잘 어울린다. 물론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상을 찾은 것만으로 누구나 레드 립을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레드 립스틱만큼 연출법에 따라 분위기가 극에서 극으로 치닿는 아이템도 드물죠. 의상이나 다른 메이크업과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겔랑 교육부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지현은 특히 블루나 그린 계열 아이섀도와의 매치를 주의하라고 덧붙였다. 여러 색상이 부딪치면서 자칫 가벼워 보일 위험이 있기 때문. 대부분 레드 립스틱을 선택할 때면 다른 메이크업 없이 피부 표현에만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반대로 색감이 거의 없는 화이트나 살색 펄 섀도를 넓게 펴 바르고, 아이라인을 샤프하게 그려 라인을 강조한 메이크업은 오히려 모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자, 이쯤이면 “테스트 한번 해보실래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응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나? 나에게 맞는 레드 립스틱을 찾는 일은 내 짝을 찾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니 부디 충분히 접해보고, 따져보고, 경험해보도록. 그럴수록 낮에는 화사하고 밤에는 화려하게 당신을 빛내줄 제 짝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김희진
- 포토그래퍼
- 김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