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good as it gets Vol.2 (이정재, 정우성, 하정우)

이채민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하와이에서 끊임없이 담소를 나누고, 편안하게 웃으며 <더블유> 카메라 앞에 선 이정재, 정우성, 하정우. 세 배우를 바라보고 있자니 헤세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세상에서 성실하고 훌륭한 우정만큼 멋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던, 그 말이.

하정우

마지막으로 <더블유>와 만났을 때도 하정우는 하와이 오아후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곧 <신과 함께> 2편의 프로모션과 전시회를 앞둔 상황을 생각하면, 요즘은 그에게 하와이의 바람결처럼 비교적 한가롭고 평안한 날들이다. <추격자>와 <비스티 보이즈>가 개봉한 10년 전, 그를 인터뷰하고 돌아온 기자들의 입에서 퍼지던 설레는 후일담을 기억한다. 그는 그때부터 배우의 덕목인 예민한 더듬이와 유머를 던지고 싶어 근질거리는, 농담을 닮은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시간이 흘러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도 ‘백작’ 하정우의 얄미운 귀여움을 좋아했다. 그가 진지함을 가장한 농담이나 혹은 그 반대의 말을 하면, 막을 수 없는 재채기가 튀어나오듯 웃음이 난다. 하정우는 그렇게 싱거운 말과 행동을 해도 얼마든지 용인되는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우주대정복을 하고 싶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희한한 인간이기도 하다.

세 남자가 한 회사 소속이 된 이후 쭉 궁금했다. 정우성과 이정재에게 하정우의 개그가 통하나?
잘 안 통한다. 아니, 물론 어느 정도 통하긴 한다. 내가 맞춤식 개그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히스토리가 쌓인 결과, 이제 내가 어떤 말을 하면 그들이 ‘이 타이밍에 개그가 나오겠지’하고 감을 잡는 것 같다.

개그가 잘 안 먹히는 상대를 만나면 김이 새나, 아니면 굴복시키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나?
이거 장기전으로 가겠구나 한다. 요즘엔 우성이 형이 개그에 의욕을 갖고 도전해서 전망이 밝다. 나로선 고무적인 현상이다.

당신의 위트와 여유가 많은 이들을 매료시킨다. <아가씨>의 김민희, <베를린>의 전지현도 프로모션 활동을 할 때 당신이 무슨 말만 시작하려고 하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집안 분위기가 어릴 적부터 재밌고, 서로 장난도 잘 쳤다. 학교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가 숨어 계시다가 깜짝 놀래키고. 돌아가신 큰아버지도 아주 웃기셨다. 심지어 우리 집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하루하루를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모이니 슬픔 속에서도 한편으로 즐거운 타이밍이 있었다. 다 같이 TV를 보고 있는데 누가 난데없이 두꺼비집을 내린다거나.

2017년부터 아티스트 컴퍼니로 둥지를 옮겼다. 정우성과 이정재가 함께 일하자고 할 때 어떤 제안을 하던가?
특별한 말을 했다기보다 1년 동안 틈날 때마다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그전 회사와 13년을 일했다. 두번째 회사에선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같이 손잡으면 장점이 훨씬 클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작품을 선택하거나 나와 관련한 비즈니스를 하는 건 내 몫이니까.

<신과 함께>가 8월에 2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언제 계절이 바뀌길 기다리나 했건만, 벌써 그 여름이 왔다.
1편이 자홍과 수홍 형제(차태현, 김동욱)와 어머니 이야기라면, 2편은 저승삼차사가 처음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1편에서 내가 맡은 강림은 좀 단면적이고 기능적이었다. 이번에는 강림에게도 드라마가 생기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인물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일 테고 감정의 온도 역시 높다.

1편을 보면 연기와 표현 면에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어도 그 외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 같더라.
촬영 후 CG로 많은 부분을 채울 때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면이 있어서 보이는 것과 달리 제약이 많았다. 연기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환경과 기타 요소들 때문에 쉽지 않았던 셈이다. 예를 들어 특수한 장면 효과를 얻기 위해서 카메라가 내 바로 앞까지 와 있는 경우, 카메라가 빙빙 돌기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내 시선이 흔들리는 식으로 좀 산만해졌다. 연기 면에선 이승과 저승에서 각각 미묘하게 다른 대사 톤을 잡는 게 어려웠고. 2편에선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사극 톤의 대사까지 해야 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데 아직 못 만난 감독이 있나?
마틴 스코세이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80대에도 배우 겸 감독 생활을 어쩌면 그리 잘 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하다. <신과 함께>가 아시아권에서 반응이 좋았다. 이번에는 홍콩과 대만에서도 프로모션을 한다. 후속작으로 찍은 <PMC>는 판문점 아래 벙커 회담장에서 벌어지는 비밀 작전을 다루는데, 기획부터 글로벌하다. 여전히 열려 있는 할리우드 활동은 매번 타이밍이 잘 안 맞았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간다면 내가 꿈꾼 모습이 10년에서 20년 후에는 이뤄지지 않을까?

연출자 하정우의 작품으로는 하정우식 코미디 세계를 보여준 <롤러코스터>와 <허삼관>이 있다. 두 번의 감독 경험을 통해 얻은 건 뭔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제일 관심 있고, 정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놔야 한다. 그 이야기를 선택하는 문제가 어렵다. 세 번째 작품은 개발 중인데, 소재를 내가 잘할 수 있는 스타일로 풀어가야겠지.

7월에는 표갤러리에서 전시도 한다. 하정우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10년 된 것 같은데, 그동안 전시를 꽤 했다.
<PMC>를 마치고 나서 6개월간 쉬며 작업을 많이 했다. 한 달간 작은 사이즈로 14점 정도 그렸다. 로마와 피렌체에서 여러 전시를 보면서 자극을 받아 또 많이 그리고. 최근에는 에곤 실레 작품이 너무 좋아지더라.

몇 년 전부터 하와이 여행 정보 커뮤니티에 ‘와이키키 코스트코에서 하정우를 봤어요!’ 같은 목격담이 올라오고 있다. 하와이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처음 가본 게 2012년 1월이다. 그전까지는 내가 여행을 즐긴다거나 제대로 쉬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이상하게 어디로 여행을 가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다른 기분을 느꼈다. 첫날 피곤해서 일찍 잠들고 일찍 눈을 떴다. 호텔 테라스에서 동이 트는 걸 보는데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거다. 열흘 동안 희한할 정도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딱 1년이 지나 <더 테러 라이브>를 끝내놓고서 혼자 한 달간 또 하와이에 있었다.

정우성

정우성은 이른 새벽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근사하게 차려입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며 한강이 내다보이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미스터 포터>의 한 챕터 같은 일상을 산다. 스타일이 좋고 품격과 위트를 고루 갖춘 남성들이 등장하는 그 책 말이다.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에서 이제는 굵직한 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이 되는 배우. 1997년 작품 <비트>를 함께한 김성수 감독은 정우성에 대해 “단단한 껍질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느낌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2016년 <아수라>의 한도경으로 돌아온 그는 엔진이 고장 난 기계처럼 폭주했다. 그 사이엔 정우성 스스로 자신을 가장 잘 파괴했다고 꼽은 2004년 영화 <똥개>와 생애 첫 악역으로 분한 2013년 영화 <감시자들>이 있었다. 2018년 세월호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에서 정우성은 내레이터가 되어 내용을 전달한다. 소신과 확신, 품위와 품격이란 단어가 언제부턴가 정우성 앞에 자연스럽게 붙기 시작했다. 감독들이 ‘존경’이란 찬사를 보내고, 대중이 ‘개념’이란 응원을 보태는 동시대 가장 모던하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 정우성. 열대 섬을 여행하며 ‘걷는 즐거움’을 되찾았다는 검게 그을린 그와 하얀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하와이에서 보낸 나흘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나?
단순한 패턴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사실 하정우 배우가 하와이를 워낙 좋아하고 잘 안다. 정재 씨와 나에게 하와이의 좋은 곳을 소개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 배우가 하와이에서 보내는 일상 그대로를 보내다 왔다. 우리 세 남자는 단순하다. 아침에 눈 뜨면 걷고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뭔가 먹고, 잠깐 쉬다가 또 걷고. 저녁엔 맥주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고. 사실 한국에서 길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티셔츠에 반바지만 걸쳐 입고 여기저기 많이 걸었다. 얼마 전 하 배우에게 피트니스 시계도 선물로 받았다.

오늘은 얼마나 걸었나?
(시계 버튼을 누르며) 1만4천 보 걸었다. 해외 출장을 갔다가 새벽 비행기로 귀국했는데 집에서 조금 쉬다가 러닝머신을 뛰었다. 매일 1시간 반 정도 그렇게 운동한다. 날씨가 좋으면 오늘처럼 회사로 출근할 때 한강변을 따라 쭉 걸어올 때도 있다.

여행을 떠날 때 캐리어에 꼭 챙기는 소지품이 있나?
속옷과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조리 정도? 가볍게 챙겨서 떠나도 막상 도착해서 가방을 풀어보면 쓸데없는 티셔츠 몇 장을 더 가져왔구나 하고 후회할 때가 있지 않나. 짐가방은 단출하게 싸는 편이다.

얼마 전 춘사영화제에서 영화 <강철비>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후보 중 한 명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수상 소감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더라. 양우석 감독님도 그랬고, 의성이 형, 정재 씨, 하정우 배우 모두 내가 이 영화로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줬다. 그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7월 개봉을 앞둔 영화 <인랑>은 남북 관계와 통일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 <강철비> 다음 작품으로 흥미로운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철비> 출연을 결정한 직후에 <인랑>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강철비>는 ‘북한 1호’의 생사가 위중한 상태에서 남북 간의 극적인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재미있는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서 진짜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인랑>은 통일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진 근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내 입장에서는 각기 다른 영화 간에 상상력의 시간대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인랑>이 개봉한 후에 근미래에 진짜로 통일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떻게 보면 영화가 현실보다 반 발 앞서서 ‘시대의 바람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4월에 뮤지션들이 평양을 방문해서 남북 합동 공연을 하고 왔는데, 만약 영화계에도 ‘평화의 봄’이 찾아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우리 영화인들도 평양국제영화제에 갈 수 있다면 좋겠지. 부산국제영화제서 북측 영화인을 초대하기도 하고. 일단 평양 땅을 밟기만 해도 신기할 것 같다.

7월 12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올해 정우성 배우의 특별전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총 열두 작품을 상영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할 말이 많은 영화는 무엇인가?
2001년 개봉한 <무사>. 그때 당시 중국 영화인들도 관심 갖지 않은 오지를 찾아다니며 찍은 영화라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드넓은 대륙에서 촬영하면서 지평선 너머로 석양이 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더라. 중국을 배경으로 찍고 싶은 멜로 영화가 한 편 있는데 시나리오를 어떻게 풀지 고민하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멜로 영화가 귀하지 않나.

정우성은 늘 자신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과정을 즐기는 배우인 것 같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비트>의 바스라질 것처럼 불안한 영혼을 가진 민을 연기한 사람이 <아수라>의 지독한 형사 한도경이 되어 유리컵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먹기까지, 15년이란 물리적 시간이 있었다. 이 영화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배우로서 몸의 텐션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아수라>를 찍을 때다. 그런데 그 작품을 하면서 그 텐션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완전히 녹다운됐다. 한도경이란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스트레스 덩어리 안에 갇힌 인물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색깔에 비유하면 무슨 색에 가까울까?
하얀 캔버스처럼 색이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내가 가진 색깔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정우성 하면 ‘청춘의 아이콘’ ‘잘생긴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말에 대한 반감으로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지 좀 더 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그래서 목소리의 톤을 영화마다 다르게 가져가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목소리의 톤과 크기는 내가 정한다기보다 시나리오가 나에게 주는 거다.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다른 배우는 누가 있나?
병헌이 형, 정재 씨, 하 배우. 배성우의 목소리도 아주 우렁차다.

아티스트 컴퍼니 소속 신인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에 들어가기 전 정우성 배우와 인터뷰하는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 ‘왜 배우가 되고 싶은지’를 물어본다고?
배우라는 직업은 분명 좋은 직업이다. 하지만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막연한 희망 고문을 스스로에게 하다 보면 허영의 직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은 아주 중요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배우로서 품위와 품격을 유지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업계에 대한 존중, 그것이 나에게 늘 책임을 다하도록 이끄는 힘이 되어주었다. 어린 나이에 맨땅에 헤딩하듯 사회에 뛰어든 나는 그 시절에 모든 게 막연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삶에 필요한 모든 걸 다 영화 현장에서 배웠다. 평생 배려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정우가 착용한 ‘마스터 컬렉션’ 시계는 오토매틱에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 파란색 스틸 핸즈가 특징이다. 이정재가 착용한 ‘콘퀘스트 레플리카’ 시계는 블랙 악어가죽 스트랩, 30m 방수, 슈퍼루미노바 기능을 장착했다. 모두 Longines 제품. 하정우가 입은 슈트, 톱은 Ermenegildo Zegna, 이정재가 입은 셔츠, 티셔츠, 팬츠는 모두 Hermes 제품.

하정우가 착용한 ‘마스터 컬렉션’ 시계는 오토매틱에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 파란색 스틸 핸즈가 특징이다. 이정재가 착용한 ‘콘퀘스트 레플리카’ 시계는 블랙 악어가죽 스트랩, 30m 방수, 슈퍼루미노바 기능을 장착했다. 모두 Longines 제품. 하정우가 입은 슈트, 톱은 Ermenegildo Zegna, 이정재가 입은 셔츠, 티셔츠, 팬츠는 모두 Hermes 제품.

이정재

<도둑들>과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언젠가 최대한 자제하며 이정재를 극찬한 적이 있다. ‘현실에서도 멋있지만 영화에서는 더 멋지다. 그는 정말 특별한 남자다.’ 감독은 심지어 이정재의 걸음걸이와 움직임까지 신기해했다.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들과 더불어 평생 멋짐에 관한 각종 수사를 들어봤을 이정재다. 그런 그가 <하녀>에서 보여줬듯 자신의 도시적인 세련미와 역할이 지닌 뻔뻔함을 중첩시켜 스크린에 나타날 때면 묘한 쾌감이 든다. 인터뷰 날 이정재는 데님 셔츠에 데님 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 차림으로 활짝 웃으니, ‘청청 패션’의 작용인지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서 소년성이 어른거렸다. 올여름 스크린에서는 <더블유> 단독 커버 속의 미소와 화보에서 풍기는 편안한 기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백상예술대상 조연상을 안긴 <관상>에서의 굵고 낮으며 긁는 듯한 목소리와 비슷한 톤으로, 하지만 수양대군이나 저승삼차사 그 모두를 발아래 둔 <신과 함께> 2편의 염라대왕이 뜰 테니까.

하와이에서는 세 남자가 어떤 시간을 보냈나?
아침부터 걷다가 적당한 식당이 보이면 밥을 먹고, 기운 내서 다시 걸었다. 저녁 먹고 나서 산책 겸 또 걷고. 한마디로 계속 걸었다(웃음). 처음 가봤는데, 오래된 거대한 식물들의 기운이 대단했다. 도시 개발도 계획성 있게 잘한 것 같고.

피부가 많이 타지는 않았다. 요즘엔 거울이나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아, 레이저 치료라도 해야 하나!(웃음)

개봉을 앞둔 <신과 함께> 2편에서는 염라대왕의 어떤 장면을 볼 수 있을까?
관객이 예상치 못했을 설정이 있는데 거기에 염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단 재밌을 거다. 우정 출연이지만, 1, 2편을 통틀어 놓고 보면 내용이 꽤 있는 편이다.

우정 출연으로 알고 현장에 갔는데 분장 시간만 한참 걸린 데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염라가 워낙 인상적이었으니 혹시 2편에서는 염라의 비중이 늘진 않을까?
촬영은 1, 2편을 한꺼번에 했지만, 이야기 구조의 짜임새가 있어서 어느 한 요소에 변화를 주면 그 여파로 어마어마한 대공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기존 팬들의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런 데 완성된 1편을 처음 봤을 때 우리 영화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겠구나 싶었다. CG 등 기술적인 부분의 매무새 역시 훌륭했고.

아직 개봉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작품으로 후배 박정민과 함께 출연하는 미스터리물 <사바하>, 최동훈 감독의 <도청>(가제)이 있다. 어떤 영화들인가?
아, <도청>의 경우 김우빈 씨 건강 문제 때문에 대기 중이다. 우리는 그가 수술 후 완치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사바하>는 촬영을 마쳤다. ‘사슴 동산’이라는 신흥종교 집단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는 사이비 종교 문제를 조사하는 ‘박목사’ 역할이다.

이정재와 목사라니! 신선하다. 당신이 근 10년간 영화에서 맡은 직업만 모아보면 첩보부대 대위, 수양대군, 범죄 조직의 임원급으로 위장한 경찰, 도둑, 재벌, 해군 대위, 형사… 독립운동군으로 위장한 매국노 역시 빼놓을 수 없다(웃음). 이정재가 피하는 배역이란 게 있나?
전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캐릭터도 달라 보이기 때문에 역할만 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뭐든 가능하지만, 내 팬들이 혐오할 만한 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예전에 인터뷰하던 기자가 ‘팬들의 기대를 자꾸 뒤집는다, 팬들이 당신에게 원하는 캐릭터가 있을 텐데 그런 모습 좀 보여주면 안 되나’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알았다’라고 답했다(웃음).

당신의 영화 중에서 <하녀>를 좋아한다. 특히 후반에 피아노를 치면서 장모에게 “당신 딸이 낳아야만 내 아이인 것 같습니까?”라는 대사를 할 때와 이어지는 박지영과의 대치 신이 좋다. 영화 내내 젠틀한 외피를 두르다가 드디어 차분하면서도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정체를 드러내니까.
그 주인집 남자는 대놓고 폭력적인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폭력을 가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인간이 너무 싫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 완성작이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을 때 여러 가지 요소가 나를 싫은 감정에서 되돌려놨다. 임상수 감독, 전도연과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존재가 일단 막강했다. 전도연이 끌고 가는 스토리 라인과 그녀의 감정이 잘 살아 있었고, 시나리오상에서도 이렇게 구조가 잘 짜여 있으면 전도연 씨가 멋지게 소화하겠다는 믿음이 갔다.

혹시 그거 아나? <신세계> 흥행에는 중복 관람한 마니아들의 힘도 컸다는 걸? 나도 그 영화를 극장에서 네 번 봤다. 범죄 조직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정청(황정민)과 자성의 멜로로 그 작품을 읽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이정재가 <신세계>에 관해 한마디 해주면 주목할 집단이 있다.
황정민, 최민식, 박성웅 배우 등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워낙 에너지가 뚜렷한 분들과 함께한 작품이다. 첫 리딩 자리에서 ‘아, 이 사이에서 과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싶더라.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어야겠다’(웃음). 외국에선 제레미 아이언스가 그런 걸 잘하는 듯하다. 나에겐 가만히 있는 걸 잘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는 배우들 간의 앙상블이 좋았고.

<신과 함께> 2편이 저승삼차사의 천년 전 과거를 조명하듯이, 만약 <신세계> 2편이 만들어진다면 정청과 자성이 처음 만나던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 프리퀄을 만들기엔 배우들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이 들어간다는 게 문제라 실현 가능성은 적겠지만.
시놉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감독님이 말해줘서 대강의 내용을 들 은 적이 있다. <대부> 2편처럼 프리퀄과 시퀄이 교차하는 구조였다. 내용을 듣고 재밌다, 들어가자 했는데 조금씩 뒤로 밀리다가 이제는….

더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7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패션 에디터
백지연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경은
피처 에디터
권은경(이정재, 하정우), 김아름(정우성)
포토그래퍼
홍장현
차량 협조
허츠 렌터카(Hertz)
스타일리스트
권혜미@intrend(이정재), 김혜정@intrend(정우성), 이현하(하정우)
헤어
김태현@미장원by태현(이정재), 임해경(정우성, 하정우)
메이크업
김하나@미장원by태현(이정재), 배경란(정우성), 이선미(하정우)
프로덕션
Inseason Productions, Tournet Haw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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