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운동, 알렉산더 테크닉 체험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유아인 운동, 알렉산더 테크닉 체험기

2020-06-23T22:42:13+00:002020.06.23|BEAUTY, 트렌드|

움직임을 통해 마음을 치료하고 생각을 바꾸는 소마틱스는 당신에게 100%의 현재를 선물한다.

모욕적 언사, 예기치 않은 배신, 슬픈 이별, 매일 겪게 되는 소소한 좌절과 불쾌함까지, 사람은 누구나 나쁜 경험을 한다. 이런 모든 상황을 마음에 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훨씬 살 만해지겠지만 컨트롤은 번번이 실패한다. 작년 말 나는 과도한 업무와 무례한 인간사 스트레스에 절여져 있었다. 지인은 명상을 권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운동하기보다 조용히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도 미움과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일을 떠올리고 전후 관계를 곱씹으며 화만 돋울 뿐. 잊으려 애쓰는 것이 되려 스트레스가 됐다. 이럴 바엔 몸을 괴롭혀 정신을 분산시키고 건강이라도 챙길 요량으로 예전에 함께 운동했던 퍼스널 트레이너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우리가 만나지 않은 몇 년 사이 소마틱스, 그중에서도 소마 요가에 푹 빠져 있었다. “결혼 이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이것으로 극복했어요.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평온하답니다. ” 소마 요가라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뉴욕 9·11 테러 사건 이후 살아남은 생존자와 사망자의 가족 그리고 목격자들을 위해 미국의 상담 전문가들이 모여 수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이 소마 요가였다고 했다. “마음을 잡으려면 몸을 동시에 움직여야 해요. 둘은 하나더라고요.

잘 느끼고 잘 고치는 착한 몸

소마(Soma)는 고대 그리스어로 ‘총체적인 생명체’라는 뜻이다. 소마틱스라는 용어를 정립한 토마스 한나의 말을 빌리자면 소마란 ‘몸의 정신적 육체적 기능을 포함하며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는 존재’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각하고 그때 느낀 것을 바탕으로 다른 움직임을 시도하다 보면 종국에는 이상적이고 효율적으로 몸을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몸의 변화는 정신적 치유로 이어진다.

인간이 뇌를 사용할 땐 운동, 생각, 감각, 느낌이 동시에 가동된다. 분노하면 주먹이 불끈 쥐어지거나 공포 상황에서 배에 힘이 들어가는 것, 기쁠 때 붕 뜬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모두 마음의 신호에 따라 근육 세포에 전기적 에너지가 다르게 들어가며 생기는 반응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몸이 뇌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반영한다면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피곤함’이란 모순이 아닐까? 휴식의 마음가짐으로 충분한 시간 누워 쉬었다면 몸은 회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깨어난 후에도 여전히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건 어째서인가? 소마틱 스는 이것의 원인을 ‘감각 운동 기억 상실’에서 찾는다. 제대로 이완하며 쉴 줄 모르는 근육, 그리고 제 몸이 이토록 무지한 고단함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뇌 때문에 쉬어도 쉰 게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다.

감각 상실의 히스토리는 이러하다. 근육이 수축되면 경직되고 그것이 지속되면 통증으로, 더 나아가 움직임이 제한되는 형태로 굳어진다. 요통을 예로 들어볼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허리에 힘을 주게 되고 그로 인한 통증이 느껴지면 그곳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이것이 반복되며 허리는 뻣뻣해지고 둔탁해져 통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보통 허리에 통증을 느낄 때까지 거듭된 긴장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마틱스에서는 어떤 근육이 수축되어 경직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곳을 풀어주는 동작을 반복하며 효율적인 움직임을 체화시킨다.

풀어야 할 소마의 알고리즘이 하나 더 있다. 바른 동작이 몸의 통증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것은 지당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마음의 치유에까지 연 결되는 걸까? 캐나다 신경과 의사 와일더 펜필드의 연구는 좋은 설명의 근거가 된다. 그는 ‘신체 표면이 뇌에 표상된다’는 것을 뇌의 지도로 펼쳐 보였 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지도의 면적은 몸의 여러 기관을 분주히 움직였을 때보다, 정확히 사용해야 할 근육만을 움직였을 때 더 거대했다. 이는 목적하는 움직임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몸의 많은 부분이 긴밀히 협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몸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어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뇌에서 차지하는 크기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몸의 움직임을 수정하는 것이 뇌, 곧 마음을 바꾸는 것과 같다는 건 의학적으로도 말이 된다.

글로 배운 것을 몸으로 확인하고 싶어져 소마틱스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알렉산더 테크닉과 휄든크라이스를 경험하기로 했다. 사실 각 교육법의 원리와 과정은 이 짧은 지면을 빌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철학적이라 오늘은 개인적인 ‘자각의 순간’을 위주로 후기를 전하겠다.

‘나의 머리가 어디에 있나?’ 알렉산더 테크닉

알렉산더 테크닉은 호주 출신 연극배우인 프레데릭 M 알렉산더가 자신의 발성을 고치기 위해 몸을 관찰하던 중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낸, 자세와 움직임 교육법이다. 극작가 버나드 쇼부터 노벨의학상 수상자 찰스 셰링턴, 배우 휴잭맨, 가수 마돈나 등이 궁극의 보디 트레이닝으로 꼽았으며, 현재 여러 예술 학교의 정식 커리큘럼에 들어있다. 전 세계에 분포한 러쉬 스파에서도 알렉산더 테크닉을 활용한다.

김경희 티처가 내게 처음 시킨 것은 의자에 ‘앉아보라’는 것이었다. 평소 하던 대로 앉기를 몇 차례 시전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교사는 내가 의자에 엉덩이를 대기 직전 동작을 멈췄다. 그러고는 물었다. “머리가 어디 있나요?” 모호한 질문의 속내를 모르겠어 슬쩍 거울을 곁눈질했다. 스쾃 자세로 멈춘 채 손은 허벅지 위를 짚고 있고, 앞으로 기울어진 상체에 비해 머리는 등 쪽으로 젖혀진 상태다. 목덜미에 뻐근함이 느껴졌다. “말을 모는 것과 같아요. 달리는 말의 머리는 앞으로 살짝 숙인 상태고, 오른쪽으로 당기면 우회전하며, 당겨 젖히면 멈추죠. 같은 척추동물인 우리 몸도 마찬가지랍니다. 머리가 뒤로 꺾여 있다는 것은 멈추라는 뜻인데, 이 상태에서 움직이려 애쓰니 힘이 들 수밖에요. 혹시 앉을 때마다 낮은 신음소리를 내는데 알고 있나요?”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나 앉고 설 때 ‘끙차’ 하는 내적 기합을 넣고 있었다. 앉으려고 애쓰고 있었던 거다.

교사가 내게 ‘머리의 위치’를 물은 까닭은 ‘프라이머리 컨트롤’이 알렉산더 테크닉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척추를 눌러 그 사이가 좁아지거나 앞으로 떨어진 머리 무게를 견인하느라 무리하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렇게 하면 목과 머리, 척추의 긴장이 풀리며 자유롭고 정확한 동작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디렉션’이 추가된다. ‘어깨가 옆으로 넓어진다’, ‘척추가 위로 길어진다’ 같은 생각 말이다.

목을 젖히지 않고 스무스하게 앉으려면 머리의 무게중심을 따라 무릎을 앞으로 많이 굽혀 지그재그로 쪼그리듯 앉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다.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짧아져 충분히 쪼그려 앉지 못하는 탓이다. 해결은 역시 생각과 연습! “아킬레스건이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져서 늘어난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동작을 반복합니다.” 몸의 방향성을 상상하고, 제대로 앉는 연습을 이틀 했을 뿐인데 목의 통증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것이 바로 ‘해로운 긴장을 피하는 방법’이구나 싶었다. 그간 경험했던 자세 교정과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 김경희 교사는 인위적으로 신체 부위를 교정하는 여타 방식과 달리 신경 조직을 통해 스스로 몸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동작들에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경험을 주지시켜 나쁜 습관을 버리도록 한 거다.

‘더 나은 움직임이 존재한다’, 휄든크라이스

휄든크라이스는 물리학자이자 유도유단자, 치유자였던 모셰 휄든크라이스가 창시한 ‘동작을 통한 자각 수업’이다. 몸과 중력과의 관계에 계속 변화를 주면서 움직임을 탐구한다는 기조로, 역시 시작은 ‘말’이다. 프랙티셔너라 불리는 교사가 ‘왼팔을 오른쪽으로 가져갑니다’라고 하면 원래 자신이 하던 대로 팔을 움직이면서 거기 통증이 있었는지, 더 좋은 움직임은 없는지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교사가 부분적으로 개입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몸을 사용하도록 이끈다.

나에게 휄든크라이스의 세계를 안내한 국은미 프랙티셔너는 타이거밤 냄새가 진동하는 연습실에서 평생을 보낸 현대무용가로, 휄든크라이스로 통증을 현저히 경감시킨 경험 후 교사가 됐다. 그녀는 나에게 ‘뒤를 돌아보라’라고 했다. 알렉산더 테크닉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돌아봐야 하는지 시범을 보이지 않고, 그저 ‘뒤에 누군가 오고 있으니 뒤돌아보라’고 말할 뿐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휙 돌려 뒤를 확인했다. 그렇게 하기를 두어 차례 반복한 후, 국은미 선생은 내게 왼쪽 어깨를 사용해 몸통 트는 동작을 시켰다. 몇 번의 반복 후 그녀가 다시 뒤돌아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목이 아니라 몸 전체를 돌리고 있었다. “우리의 움직임에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있어요.” 뒤를 돌아볼 땐 당연히 눈만 가면 되는 거라 생각해 얼굴만 돌렸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도 볼 수 있는 거였다. “아기들은 대부분 몸 전체를 돌려 뒤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처음에 터득한 감각이나 몸 각 기관의 연결성을 잊고 고정된 패턴으로만 몸을 사용하게 되는 거예요.” 쓰던 데만 계속 쓰며 몸은 굳어지고 경직되며 이것은 통증과 노화로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변화를 끌어내는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약 2500개의 동작으로 만든 것이 휄든크라이스다. 지인 중에 이 요법으로 오른쪽 어깨 관절 문제를 고친 사람이 있는데 클래스에서는 통증이 있는 오른팔 대신 왼팔 을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왼팔로 움직임을 배워 오른쪽 팔의 패턴까지 저절로 바꿀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듣고 있자니, 부분부분을 쌓아 올리듯 동작을 연습하는 휄든크라이스의 방법은 움직임이 뇌와 생각의 체계를 바꾸어 종국에는 아웃풋을 달리하는 식으로 작용함을 깨닫게 해줬다.

바른 마음을 위한 움직임

수업이 끝날 무렵 “바르지 않은 움직임으로 내 몸을 망쳐왔던 것 같아 후회가 된다”고 말하자, 국은미 프랙티셔너는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자신에게 친절하세요. 과오를 반성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 알아볼까’로 접근하고, ‘다른 방법도 있네’라며 달래듯 선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소마틱스는 치료가 아니라 교육이에요. 알아차리고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 자체를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세요.”

변화는 비교적 빨리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모든 소마틱스의 전제는 개인이다) 나는 뒤를 잘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인기척을 느껴도 내 앞에 그 사람이 와 서기 전까진 알은체하지 않는다. 어차피 만날 사람이라면 미리 반길 필요가 있을까 싶다. 게다가 겨우 반쯤 돌아간 얼굴 탓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힐끔’거리게 되는 모양새가 싫다. 트위스트된 목만큼이나 뻐근하고 껄끄러운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는 행동을 하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그런데 몸 전체를 돌려 뒤를 확인하는 움직임으로 자세를 바꾸자 희한하게도 찝찝한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 얼굴 전체가 온전히 뒤를 향하게 되자 눈동자를 눈 가운데 두고 당당히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인기척의 주인공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많은 감각과 기분이 단 몇 초 안에 머리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고 고백했더니 그게 바로 마음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몸의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건 곧 뇌가 유연하게 사고한다는 뜻입니다.” 몸을 다르게 움직이면 시각도 달라진다는 거다. 김경희 티처도 비슷한 맥락의 이 야기를 전했다.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운 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역지 사지의 마음부터 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타인에 대한 애티튜드가 바뀌는 게 느껴진대요.” 움직임의 변화를 통해 생각, 느낌, 감각이 유기적으로 달라짐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소마틱스라더니 명불허전, 삶이 좀 더 긍정적이고 편안하게 바뀌고 있다는 간증이 쏟아진다.

사실 일상에서 소마틱스를 실천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트레이드 밀에서 TV를 시청하며 1시간을 뛰는 것보다 엉덩이의 움직임과 무릎의 방향을 의식하며 10분 계단을 오르는 것이 더 소마틱스 적이다. 그리고 힘을 빼는 연습을 해본다. 소마틱스 수업 내내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숨 쉬고 있나요?”였다. 사람들은 집중하면 숨을 죽인다. 의식적으로, 지나치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는 수축을 가져온다. 거듭 말하지만 소마틱스에서 수축은 곧 통증이고 뇌의 경직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하고, 걷고, 스마트폰을 보다 문득문득 내가 숨 쉬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 렇게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차분히 몇 번 호흡하다 보면 ‘삶은 치열한 것인데 이렇게 쉽게 살아도 괜찮을까’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냉장고 문을 여는 데까지 그렇게 많은 힘을 쓸 필요는 없는 것도 같다.

요즘 우리 모두의 마음은 미병 상태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프지 않지만 병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얻은 마음의 안정이 내일의 변화한 환경에서도 유효할지 미지수인 하루하루,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유연한 몸 과 마음을 만들고자 한다면 소마틱스가 적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