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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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크로세티의 주얼리는 기존 관념을 도발하거나 파괴하려고 만든 액세서리는 아니다.

주얼리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주얼리 디자인을 처음 접한 건 센트럴 세인트 마틴 여성복학과 마지막 학년 때다. 광석의 아름다움과 제조 과정의 섬세함을 보고 바로 주얼리와 사랑에 빠졌다. 나는 그때 왜 사람들이 주얼리를 그저 액세서리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왜 그런 인식을 바꾸려 노력하는 사람이 없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주얼리의 위상을 새롭게 재정립해 패션에서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 난 졸업 직전 자퇴했지만 다행히 졸업 과제로 만든 주얼리가 반응이 좋았고, 그것과 관련해 글을 몇 개 쓰게 된 게 시작 이었다.

알란 크로세티는 어떤 브랜드이고, 브랜드의 비전은 무엇인가?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나는 주얼리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이 늘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남과 다름을 과시하기 위해 주얼리 디자인 을 하지 않는다. 낯선 작품을 만들어서 디자인, 착용감, 그리고 수요의 한계에 도전하려 했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그동안 선택하지 못했던 옵션을 주려 했달까. 남들과 다른 사람과 특별한 걸 원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얻고, 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개성을 기념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젠더리스주얼리라는 점이 굉장히 특별한 것 같다. 성별에 따른 주얼리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는 기존 관념을 도발하거나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메시지는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을 유기적인 현실 내에서 포용하자는 것이다. 내 생각에, 남성과 여성의 주얼리 경계는 늘 흐릿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주얼리는 나에게 늘 젠더플루이드적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매개라고 해도 좋겠다. 여성적 연약함이나 남성적 강인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 내 주위엔 늘 강인한 여성밖에 없었는데, 왜 여자는 연약하게 묘사되고, 남자 또한 늘 강하게 묘사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한 공감력이 늘 부족했다. 하지만 삶과 직장의 시스템에서, 난 ‘다름’으로 인해 어떤 것이 수반되는지, 흐름에 반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게 되었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바로 자신에게 진실하고,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입고 싶은 것을 입으라는 것이다. 자기 인식과 자기 애보다 더 자존감을 높이는 감정은 없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려면, 자신만의 갑옷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을 물질화해, 보고 만질 수 있게 하는 것 말이다. 어쨌든 난 첫 번째로 디자이너이고, ‘포스트젠 더’ 아이디어는 일종의 사회적인 아젠다로 제품에서 비간접적으로 표현된다. 어느 브랜드든지, 아무리 보수적인 브랜드여도 이러한 움 직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의미를 도출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내 관점에선 간단하다. 알란 크로세티는 내 디자인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다.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나? 난 주의력 결핍증이 있는데, 그 덕에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파리만큼 부산스러운 집중력을 가진 덕분에 어느 하나에 몰입해 있더라도 금방 다른 것으로 옮겨간다. 마치 금방 사랑에 빠지고 벗어나는 걸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고, 이는 기분을 늘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해마다 여러 컬렉션을 발표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창조 중이다. 나에게 최고의 심리치료법이다.

주얼리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기분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정해진 공식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느끼는 행복감, 우울감도 다 내 작품에 반영된다. 그 때문에 모든 작품에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일단 스케치하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하는 게 즐겁다. 다음엔 왁스 카빙을 하고 3D로 만들어본다. 이렇게 만들고 난 다음에 각 작품을 피팅해보면서 수정을 한다.

당신은 주얼리의 전통적인 경계를 확장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두세 손가락에 끼는 반지라던가, 손톱에 끼는 반지, 콧등이나 입술에 끼는 액세서리 등이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난 사람의 신체 구조가 너무 흥미롭다. 그리고 사람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일단 그런 관점이 세밀함과 통합의 시작점이 된다. 아직 활용되지 않은 신체 부위를 찾고 스타일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채 시도 되지 않은 것을 연구한다. 예를 들면 손가락 관절 부위를 부각시키는 건 늘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부위로 느껴졌고, 내가 어떻게 그 부위를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아르마딜로’와 ‘헤일로’ 조인트 링을 만들었다. 이러한 반지들은 구속 플레이와 연관되면서 동시에 자유롭고 기능적이다.

지금까지 디자인한 주얼리 중, 어떤 제품이 가장 만들기 재미있었나?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지금껏 만든 모든 작품과 컬렉션이 내 성격과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전부 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 디자인 여정을 상징하는 하나만 고른다면 아마 ‘로즈 이어링’ 을 고를 것 같다. 로즈 이어링은 내 개인 삶과 직업에 있어서 터닝포인트였다. 나에게 장미란, 끈기와 강인함을 지닌 동시에 연약함도 품고 있음을 상기시켜주 는 존재다.

당신은 아름다운 주얼리를 만들지만, 마케팅도 굉장히 세련되고 힙하게 한다. 칭찬 감사하다. 내 제품을 볼 때 알아야 할 것은 각 디자인마다 스토리와 만들 어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내 작품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영혼을 가진 존재다. 질문에 답하자면, 나의 디자인 과정은 컬렉션을 만들기 전부터 시작된다. 작업이 먼저 있는 것이다. 난 늘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것이 매우 짜릿하다. 아이디어를 공유 하는 것은 사람으로,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옷이나 주얼리를 입을 때 꼭 지키는 법칙이 있나? 없다. 말했다시피, 옷은 원하는 대로 입으면 된다. 입기 편하고 힘을 주는 의상이라면 상관없다.

당신의 성격을 묘사해줄 수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확실한 건 변덕이 심하다.

당신의 디자인을 보면, 관심 분야가 넓고 다양하다는 인상을 준다. 최근 관심을 가지거나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 철학, 해부학, 그리고 건축은 늘 내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다.

헬무트 랭과의 협업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 다른 패션 브랜드와 협업할 계획이 있는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직 말할 수는 없다.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일을 무척 즐기고 좋아한다. 결론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억압이나 침입이 아니라 좋은 개입, 긍정적인 영향을 같이 만들고 같이 표현하면서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공존하는 것이다. 나에게 협업의 과정 및 결과는 언제나 흥미롭다.

누군가를 위해 주얼리를 커스텀 제작한 적이 있나? 커스텀 제작을 해주고픈 사람이 있나? 최근 마일리 사이러스가 ‘돈 콜 미 에인절(Dont Call Me Angel)’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플라스터 작품을 제작했고, 또 베를린 브랜드 GmbH를 위해 커스텀 컬렉션을 몇 개 디자인해주었다.

향후 당신의 브랜드가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는지? 지금까지 해온 일, 겪은 모든 일을 진심으로 즐겼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약간 가식적으로 느껴 질지 모른다. 일단은 계속해서 내 목소리를 내고 싶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혁신의 바람을 지속하고 싶다. 그리고 내 작품이 잘 팔려서 사업이 잘되면 좋겠다. 최종적인 목표는 한 걸음씩 진실한 모습을 찾아 가는 것이다.

패션 에디터
김신
포토그래퍼
STEFANI DAN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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