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돌아오는 존박 더블유 화보 &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겨울, 그 후

2020-03-02T11:06:25+00:002020.03.01|FEATURE, 피플|

겨울의 그물망을 통과해 마침내 봄이 찾아오고, 존박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한다.

분홍 셔츠는 보네가 베네타, 시스루 터틀넥은 랑방 제품.

도시를 좋아하는 편인가? 최근 만난 어느 사진가는 서울을 떠나 자연으로 향하며 ‘더러워진 것을 씻으러 간다’고 표현하던데, 당신은 어떤가? 늘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아마 평생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서울과는 정반대로 굉장히 한적했다. 시카고 도심에서 꽤 떨어진 교외였고, 거리에 건물이 드문드문 있는 한적한 곳이었지. 대신 녹지가 굉장히 많았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난데없이 도시 생활자가 된 셈인데, 처음엔 엄청 신났다. 모든 건물이 항상 열려 있고, 할 것도 너무 많고. 이제는 정말 이 도시에 익숙해졌다.

오늘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화보를 촬영했다. 이런 곳에서 며칠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떤 하루를 보낼 것 같나? 확실한 것은, 내가 꿈꾸는 바캉스와는 정반대다(웃음). 평소 생활하기에는 북적북적한 도시가 편하지만 쉴 때만큼은 자연으로 떠나고 싶다. 호캉스, 펜트하우스, 풀 파티는 나랑 맞지 않는다.

봄의 정오에 낮잠을 청하는 남자’라는 그림을 그려가며 촬영을 이어갔다. 그간 보여준 말랑말랑한 음악 탓인지 처음 당신을 생각했을 때만 하더라도 봄이 떠올랐는데, 좀 더 생각 해보니 사계절이 두루 어울리는 사람 같다. 특히 여름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지. 평양냉면 이라는… 하하. 요즘엔 냉면집 근처도 얼씬하지 못하고 있다. 식당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소곤대기 시작해서(웃음). 계절 중에서는 가을이 제일 친숙하게 느껴진다. 가을은, 가벼운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움직이는데 제자리를 지키는 느낌이 있어서.

오는 3월에 발매하는 신곡의 마스터링 전 음원을 들어봤다. 봄이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 이런 감각이겠구나 싶었다. 누 디스코로 도입부를 열고 계절이 바뀌듯 후렴구에서 극적 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는 곡이다. 봄을 노래하는 음악이지만, 사실 겨울을 말하면서 음악이 전개된다. 같이 작업한 프로듀서가 가사를 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침 그가 이별한 직후였다(웃음). 어쨌든 가사를 밝게 써야 해서 같이 고민하다 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됐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사랑하던 순간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사람이라면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는 것. 무엇보다 지금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영원이란 거짓말이야’나 ‘지금을 동경해’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을 놓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아프거나 아팠던 사람은 알지 않나? 일상에 호흡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혹은 그 무언가로 인해 나에게 봄이 찾아왔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면 좋겠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소속사에 힌트를 좀 달라 했다. ‘차분하고 과묵할 것이다’. 내가 전해 들은 유일한 말이다. 어느 정도 들어맞는 힌트라고 생각하나? 하하, 말이 없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의외로 ‘병맛’ 코드를 좋아한다. 특히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애청자였다.

과거 <마녀사냥>에 출연해 ‘통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라고 말한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맞다. 아마 평생 그럴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자유로워야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굳이 남녀 관계를 떠나, 억압받는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니트는 루이 비통 제품, 팬츠는 셀린 제품.

<Inner Child>의 수록곡이자 당신의 첫 자작곡이었던 ‘그만’에서 당신이 어렴풋이 보이더라. 마음이 식은 연인에게 더 이상 나를 위로할 필요도, 나의 자존심을 지켜줄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당신은 굉장히 솔직하고 명확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편이지. 그런데 사실 ‘그만’은 너무 어릴 때 쓴 곡이다. 지금 들으면 너무 낯간지럽다(웃음). 스물셋이었나? 당시 한국말이 굉장히 서툴렀는데 어떻게든 가사를 쥐어짜내며 쓴 곡이다. 좀 유치하지만 전 여자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가사에 그대로 담았고. 지금도 관계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는 편이긴 하다. 애절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치열하게 사랑을 갈구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아니고, 좋으면 좋고’라고 여기는 성격이다. 그래서 이소라 같은 가수를 보면 너무 놀라운 거다. 작게 내뱉는 숨소리만으로 듣는 사람이 절로 애절해지게 만드니까. 입을 얼마 움직이지 않는데도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 잘 들리고 드라마가 그려지지 않나.

직접 작사한 곡 가운데 당신을 가장 많이 투영한 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17년 발매한 <Smile>이란 싱글 앨범.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앨범이다. 작업을 마치고 ‘이제 됐다. 내가 가수로서 이런 곡을 냈다면 그것으로 됐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 앨범이었다. 특히 두 번째 트랙인 ‘오늘 바람’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보면서 쓴 곡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나는 ‘오늘 바람’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심을 담아 음악을 남길 수 있어서.

기술적인 완성도에서 성취를 얻었다기보다 누군가를 토닥일 수 있는 음악이었기에 기억에 남는다는 뜻인가? 맞다. 음악적 색깔은 한 사람이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의 ‘스타일’에 불과하다. 단지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공감하고, 또 자신이 만족스럽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래서일까? 디스코그래피를 살피면 흔히 알려진 ‘발라더’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난 트랙이 훨씬 많다. 팝, 재즈, 솔 등 여러 장르를 두루 걸치며 다양한 음악을 발표해왔다. 사실 가수가 성공하려면 하나의 장르를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이따금 음악적으로 모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계속해서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대중에게 혼란스럽게 다가가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모험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 고집이랄까 소신이랄까, 음악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한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태 새로운 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것도 내가 고집을 피웠기에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앞으로 발표할 곡들도 철저히 내 취향으로 버무렸다. 확실히 나에게 맞는 옷의 음악이라고 느껴진다. 누군가의 옷을 빌려 입는 것은 어릴 때부터 많이 해와서,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멋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유로워진 인상이다. 내 생각을 수용해주는 회사에 감사하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나를 너무 신뢰해서…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하고(웃음).

당신이 속한 ‘뮤직팜’은 국내 리스너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음악 제작사다. 소속사 식구인 이적, 김동률, 곽진언은 음악적으로 어떤 동료들인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형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덕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형들과 작업하며 어디서도 쉽게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는데, 그러면서 음악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옛날에는 곡을 작업하면 (김)동률이 형에게 데모를 보내서 어떠냐고 의견을 묻고 피드백을 산더미처럼 되받은 적이 많았다(웃음). 지금은 선배라기보다 친한 형들처럼 느껴진다. 감히 ‘동료’라고는 말 못하겠고(웃음). 나이가 드니 형들을 좀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동률이 형은 정말 음악밖에 모르는 ‘음악 바보’다. 음악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어릴 땐 음악에 왜 그토록 예민하고 완벽주의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지점이 너무 멋있다. 음악에 대해 저렇게까지 순수하게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대단하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당신은 그들에게 음악적으로 어떤 자극을 준다고 생각하나? 과연 내가 자극을 줄까? 웬만해서는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웃음). 나도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밀도가 형들에 비해선 낮은 것 같다. 나에게 음악은 항상 취미 같았으면 좋겠다. 너무 진지해서 나를 힘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아니라, 정말 내가 즐거워서 하는 놀이로 평생 남았으면 좋겠다.

터틀넥과 팬츠는 휴고 보스 제품.

삶에서 음악을 제하고 높은 밀도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내가 요즘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굉장히 작은 것에서 오는 것 같다. 일상에서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고 소중하다.

해탈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다. 지금 일상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시절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시절이 있었지. 꽤 길게. <슈퍼스타K2>가 끝난 직후 ‘숙취’를 앓았던 것 같다. 당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음악을 하며 돈도 벌었지만 항상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조금씩 나아져서 작년부터 확 바뀌었다. 작년을 겪기 전까지 별생각 없이 지냈다면, 작년부터 비로소 ‘깨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작년에 주변 사람들이 아프면서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그래서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고. 내가 평소 품고 있던 고민이 얼마나 자잘한 것이었는지, 정신 차리게 해준 시간을 지나왔다.

음악적으로 많이 변할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에는 그의 삶이 반영되기 마련이니까. 마음이 편안해서 찬송가를 써야 할 판이다(웃음). 앞으로 덜 치열하고, 더 잔잔해질 것 같긴 하다.

수많은 감정 가운데 유독 음악 언어로 다가오는 감정은 무엇인가? 여유로움. 편안한 저음으로 흥얼거리면서 여유 있게 부를 수 있는 곡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너를 사랑해’나 ‘잊지 못하겠어’라며 고음을 발사하면서 애절하게 부르는 것은 정말 못하겠다(웃음).

2014년 어느 인터뷰에서 ‘앞으로 정말 막 살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자유분방하게. 가면 갈수록 매사에 신경 안 쓸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그렇게 되지 않았지. 좀 얌전해진 것 같다. 갈수록 매사에 신경을 쓰고, 매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로부터 10년 뒤인 2030131일은 어떨 것 같나?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만은 잘 간직하고 싶다.

다가오는 봄의 정오에 반드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테니스. 최근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막 스윙을 배우는 초짜다. 봄이 되면 코치님과 공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가 돼 있을 거다. 땀 흘리고, 피부 좀 태우고. 바람이 조용히 부는 가운데 테니스를 실컷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