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사박이 말하는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상관관계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관계의 예술

2019-07-18T14:58:03+00:002019.07.21|FEATURE, 컬처|

수수께끼처럼 심오한 세계를 인터랙티브 아트로 풀어내는 작가 리사박이 말하는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상관관계.

지난 5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애플 카네기도서관’이 공개됐다. 1903년 지어진 옛날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재탄생한 것. 116년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이 건물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 전 세계 혁신적인 아티스트 40명이 모였다. 여기에 한국 국적의 작가로는 유일하게 설치미술가 리사박이 초청받았다. 리사박은 이 자리에서 90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강연했고, 이후 애플 워치를 이용해 심장박동수가 그대로 모니터에 화려한 액션 페인팅으로 구현되는 독특한 인터랙티브 아트를 선보였다. 녹색 셔츠를 입은 애플 직원들은 참을 수 없는 흥을 발산하며 격렬하게 춤을 췄고, 어린아이들도 하나둘 무대 앞으로 나와 장난스럽게 몸을 흔들었다. 심박수가 올라가면 페인팅의 선이 훨씬 굵어지기 때문에 벌어진 관객들의 깜짝 퍼포먼스. 리사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청각화하는 독특한 작업을 전개해온 작가다. 말하자면 감정의 조절과 제어,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명상과 내적 성찰 등 정신적인 세계를 시청각화하기. 150m 길이의 대형 천을 몸에 감아 하나씩 풀어내는 ‘누에(Nue)’ 라는 번뇌의 퍼포먼스를 펼쳤고,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는 명상 작업 ‘유노이아(Eunoia)’를 선보이기도 했다. 철학적인 사유를 기반으로 조형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는 주목해야 할 다영역(Multidisciplinary) 아티스트다. 을지로의 작업실에서 작가를 만났다.

새롭게 문을 연 ‘애플 카네기도서관’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하다.

공간 자체만으로 예술적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완공하기까지 약 5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 116년이라는 유서 깊은 역사적 웅장함과 애플의 미니멀한 디자인 감각이 살아 있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계단으로 연결된 개방형 구조로 1층에 있는 라운지 공간이 특히 매력적이다. 공간 자체가 자유로운 놀이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개장을 기념하여 총 40명의 아티스트를 초청했다. 어떤 작품을 선보였나?

잭슨 폴록의 드리핑 페인팅 기법의 대표작 ‘가을 리듬 넘버 30(Autumn Rhythm: Number 30’에서 영감을 받은 ‘리듬 (Rhythm)’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관객의 심장박동을 실시간으로 추상화로 그리는 인터랙티브 아트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제스처와 움직임으로 심장박동수를 조절하고 그에 따른 심장박동의 데이터가 붓의 굵기와 강도를 조절한다. 느린 심박수는 얇은 선으로, 빠른 심박수는 두꺼운 선으로 표시된다. 관객들이 저마다 고유한 창조의 유희를 즐겼으면 했다.

 

이전에도 사람들의 심박수가 오케스트라 연주와 앙상블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하트모닉(Heartmonic)’을 선보 인 적 있다. ‘심장박동수’에 대해 계속해서 탐구하는 이유가 있나?

인간의 몸에서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반영하는 기관이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의 발달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관계를 형성한다. 누군가와 깊은 유대감을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시대다. 심장박동수는 인간의 감정을 거짓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들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시청각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바이오 피드백, 뇌파전위기술(EEG) 등 여러 테크놀로지를 퍼포먼스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연결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얻게 된 인사이트가 있나?

다양한 센서를 이용해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고 그 상태의 변화를 측정하여 시청각화해보고 싶었다. 시중에 출시된 웬만한 뇌파 기계와 심장박동수 센서는 다 써본 것 같다(웃음). 대중이 쉽게 센서를 사용할 수 있어야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형태의 기기를 다양하게 테스트해본다. 바이오 피드백 센서를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느낀 건 인간의 감정 상태를 제어하기 보다 감정의 변화를 인식하고 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해온 포트폴리오를 보면 관계, 감정, 내면, 명상, 사유 이런 것들이 작업의 키워드인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나 자신의 감정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나 자신과 마주해서 소통을 시도하는 퍼포먼스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혼자 시작한 작업이 점점 더 여러 명의 사람들로 확장되면서 작업의 스타일도 변화를 거듭하는 것 같다.

빛과 색, 소리와 음악의 매개체를 통해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인터랙티브 라이트 인스톨레이션 루마(Luma).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나?

이우환 작가님의 <여백의 예술>. 2011 년 뉴욕에서 구겐하임 회고전을 했을 당시에 처음 작품을 봤고, 재작년 일본 나오시마를 방문했을 때도 그분의 작품을 마주했다. 심플한 작품 속에 심오한 많은 사유의 편린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볼수록 더 알아가고 싶어서 책으로 읽고 있다.

 

아티스트로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누군가가 있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가를 정말로 좋아한다. 2013년 학교를 졸업 하고 그녀가 운영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MAI)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강인한 첫인상과는 달리 만나보면 정말 소녀 같은 분이다. 2014년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선보인 ‘512 Hours’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였다. 여러 개의 방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했는데, 이를테면 조용히 쌀알을 세거나, 안대를 하고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걸어보는 등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만드는 참여형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는 명상하는 분위기가 정말 특이했다.

 

언젠가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가 있나?

패션 디자이너 이리스 판 헤르펀(Iris Van Herpen). 3D 프린팅으로 기하학적인 패턴과 자연을 닮은 듯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인데 옷 하나하나가 모두 작품 같다. 기회가 된다면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패션쇼를 연출하거나 리미티드 제품을 만들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올해 계획된 또 다른 전시가 있나?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에서 11월에 새로운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샌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미술관이다. 관객들의 피부 접촉과 심장박동수, 움직임을 통해 3D 벚나무에서 꽃이 이리저리 휘날리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 될 것 같다.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피부의 감각을 통한 친밀감의 표현을 상기시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