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미술관에서 열리는 하이메 아욘의 국내 첫 개인전 소식!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긍정의 하이브리드

2019-06-02T19:12:32+00:002019.06.04|FEATURE, 컬처|

하이메 아욘의 국내 첫 개인전.

화병에 표정을 담고,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캐릭터를 그림자극으로 되살린다. 평범함에 깃든 판타지를 발견하는 하이메 아욘 (Jaime Hayon)은  그렇게 사물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하이메 아욘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프로필 사진. ‘그린 치킨’과 함께.

 

‘디자이너’라고 하면 패션 피플은 옷을 짓는 사람을 떠올리겠지만, 미술과 디자인 분야를 자주 들여다보고 사는 이들이 떠올리는 군상은 좀 다르다. 누군가가 위대한 디자이너로 샤넬이나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말할 때, 다른 누군가는 재스퍼 모리슨이나 마르셀 반더스 같은 산업 디자이너를 먼저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물건, 미술적으로 기능하는 오브제에는 그 형태를 최초로 구상하고 실현해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단일 제품을 다루는 일에서 더 나아가 어느 공간 전체의 조형미를 완성하거나 제조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견고하게 만드는 공을 세우기도 하고, 재능과 감각이 극에 달하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다. 분야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디자이너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새삼스럽게도 그들이 위대해지는 과정과 맥락은 비슷하다는 걸 안다. 모든 디자이너는 백 마디 말 보다 생활 속 유형의 자산으로 자기다움을 말한다.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은 ‘스페인 출신의 스타 디자이너’라고 하면 금세 떠오르는 인물이다. 1974년생인 그를 지금 위대한 디자이너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그는 그의 조국에서 뛰는 축구 선수 메시의 전성기 때처럼 요즘 폼이 탁월한 상태다.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 누가 가장 주가 높은 디자이너인지 알아채기 좋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둘러보면, 여러 브랜드의 전시관에서 몇 년째 가장 자주 접하는 이름 중 하나가 하이메 아욘이다. 2001년 발렌시아에 ‘아욘 스튜디오’를 차린 후 바르셀로나와 트레비소에 지사를 둔 그는 할 수 있는 디자인 활동을 정말이지 왕성하게 하고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위스콘신의 밀워키 미술관과 타이페이의 송산 컬처럴 파크에서 할 전시를 준비하면서 두 달 후의 마드리드 디자인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그 사이 가구 브랜드들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식이다. ‘클라이언트가 없는 디자이너들아, 스스로 클라이언트가 되어 필요한 것을 디자인하라’는 정신의 소유자다.

흰색 의자가 전시된 이 공간의 콘셉트는 ‘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

그동안 프리츠 한센과의 협업과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세미나를 위해 서울을 찾은 적 있는 하이메 아욘이 국내에서 이제야 첫 개인전을 여는 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427일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Jaime Hayon: Serious Fun)>전이 오픈하던 날, 대림미술관을 둘러보던 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도 내 전시가 신기함.’ 미술관 1층부터 4층까지 천천히 감상한 그는 ‘오호, 한국에서 내 작업물을 140여 점이나 가져가더니 그걸 가지고 이렇게 흥미롭게 풀어냈구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관람 동선상 가장 마지막에 있는 4층의 ‘Hayon Shadow Theater’는 이번 전시를 위해 그가 처음 선보이는 설치 작업으로, 그의 상상 속 캐릭터가 머문다는 콘셉트의 거대한 그림자 극장이다. 이곳은 스필버그가 영화화하기도 했던 1980년대 미드 <환상특급>의 판타지와 기괴함이 누그러진 버전의 공간 같기도 하다. 아욘은 모든 게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을 흥미로운 감상 자의 태도로 지켜보고, 구조물 사이를 걸어보며, 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아프리카의 강렬한 장식 미술을 모티프로 태어난 화병 세트, ‘Afrikando’.

전시와 협업, 미팅은 물론 개인 시간을 위해 상당 시간을 여행하며 보내는 이 여행자에게 국적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쾌함과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디자인을 보면서 낙관적 열정을 품은 스페인의 흥이 연상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제가 태어났을 때, 오랫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악명 높은 독재자가 사망했어요. 한마디로 저는 날 때부터 자유를 얻은 셈이죠(웃음). 뭐든 시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대를 살았어요.” 그의 자유로움은 반항보다 엉뚱함과 기발함에 가깝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 ‘그린 치킨’이 있다. 생김새는 닭, 색은 초록색인 이 흔들목마는 한마디로 ‘놀이하듯 앉을 수 있는 의자’. 이 의자를 두고 아욘의 주변에서는 ‘이게 뭔가, 앉을 만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 다. 그러나 그는 이질적인 것을 혼합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을 낳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20년 전만 해도 제가 디자인한 의자를 두고 누군가 필립스탁 디자인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죠. 이제는 신진 작가가 나오면 평론가들이 그에게 하이메 아욘 스타일을 닮았다는 소리를 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창의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변화를 지켜보는 건 흥미롭습니다.”

하이메 아욘의 스케치북 속 드로잉이 3차원으로 만들어진다면?

인형처럼 생긴 화병인 ‘크리스털 캔디 세트’ 시리즈, 아프리카의 전통 마스크와 강렬한 장식 미술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화병인 ‘Afrikando’ 시리즈를 비롯해 아욘이 디자인한 많은 오브제는 귀여운 캐릭터를 닮았다. 전시 관람 후 인터뷰를 위해 미술관 옆 카페의 아늑한 방에 자리 잡았을 때, 문득 이 호기로운 디자이너가 스스로를 의심한 적은 없는지 묻고 싶어졌다. 애교 있는 디자인이 자칫 모던함이나 럭셔리함과 거리가 있을까봐 우려한 적은 없는지 말이다.

청소년 시절 그라피티를 즐겼다는 성향이 대형 벽화에도 묻어 나온다.

“귀여움과 모던함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어요. 이번 전시의 제목인 ‘Serious Fun’도 대비되는 두 표현을 나란히 쓴 문구인데, 그 대비로 인해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하죠.” 그는 우리 사이의 테이블에 놓인 작은 나무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욘이 디자인한 것이었다. “이거 꽤 귀엽죠? 월넛 우드로 만든 오브제예요. 그런데 새를 닮았으면서 눈이 없으니 어쩌면 누군가는 이걸 보고 좀 무섭다고 느낄 수도 있겠어요. 제 작업은 그렇게 상반되는 느낌 사이 어딘가에 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 뚜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뚜껑을 열면 ‘아, 화병 같은데?’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부터 이것은 더 이상 그냥 조각이 아닌, 화병 조각으로 인식되죠. 서프라이즈 요소 역시 제 작업의 특징 중 하나예요. 저는 사람들이 ‘아하!’ 할 수 있는 감탄사와 감정을 가지고 놀이하길 즐깁니다. 단지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물질과 기능성, 감탄과 놀람이 결합된 세상을 창조하고 싶어요.” 그는 디자인에서 귀여움을 의도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화병. 일렬로 나열된 오브제는 세라믹 브랜드 보사와 협력한 시리즈.

Serious Fun’을 우리 말로 옮기면 일반적으로 ‘엄청나게 재밌는 것’이라는 뜻의 관용구지만, 아욘은 ‘진지한 목적을 가진 즐거움’ 정도로 풀이한다. 디자이너가 편안한 농담을 건네는 마음으로 사물을 고안하고, 사용자는 디자이너의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 아욘의 디자인 철학은 그곳으로 향한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의 감정과 감성을 건드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와 관객을 디자인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방식은 대규모 설치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2009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트라팔가의 체스 경기’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간의 역사적 전투인 트라팔가 해전에서 모티프를 얻은 대형 게임이다. 아욘은 이탈리아 세라믹 브랜드 보사의 장인들과 협력해 웬만한 성인의 키보다 큰 세라믹 말을 만들고, 각각에 런던을 대표하는 건물, 타워, 첨탑 등을 직접 그려넣었다.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말에 바퀴가 달려 있어, 관객이 말을 밀고 당기며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화병. 일렬로 나열된 오브제는 세라믹 브랜드 보사와 협력한 시리즈.

실제로 아욘의 여러 작품을 눈앞에서 보면 캐릭터 오브제 하나도 장인 정신으로 완성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질 좋은 재료, 재료의 텍스처, 디테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 디자이너와 제작자의 손길 등 무엇이 그 요인인지 단번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 모든 요인이 복합적일 것이다. 그는 자칭 ‘퀄리티에 미친 사람’이다. 그가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가 유쾌함과 퀄리티다. “저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관할해요. 재료가 잘리는 단면까지 관찰합니다. 하지만 제가 재료와 공예를 깊이 파고들며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죠. 그 깊이를 위해 유리 세공사, 도자기 조각가 등의 장인을 찾는 겁니다. 그들을 존경해요. 어느 도시를 가건 그곳의 뛰어난 장인을 찾아 재료와 기법을 유심히 관찰하죠.”

바카라와 협업한 화병 여러 점도 11월 17일까지 계속되는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자라는 개념에 동물과 경쾌한 원색을, 화병과 캐릭터를 믹스하는 아욘식 접근법은 소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50년 전통의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와 협업해 오브제 겸 화병인 ‘크리스털 캔디 세트’를 만들 때, 아욘은 크리스털과 세라믹이라는 전혀 다른 물성의 만남을 주선했다. 기하학적 형태의 크리스털 제품만을 제작해온 바카라는 아욘의 모험에 기꺼이 동참했다. 열대과일을 본떠 만든 몸에 조각 패턴을 입혀 빛이 보석처럼 눈부시고, 상체는 매끈한 세라믹에 하체는 영롱한 크리스털이며, 투명함과 컬러가 섞인 혼종이 탄생했다. 투명한 것, 투명함과 컬러가 혼재하는 것, 텍스처와 두께가 다양한 것이 쭉 진열된 전시장 풍경에는 리듬감이 있었다. “저는 버튼만 누르면 완료되는 기술보다 옛날 방식을 고수합니다. 일본의 이시카와 지역에서 170여 년 된 도자기로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곳 장인들은 오직 한 가지 기법과 다섯 가지 색만 쓰더군요. 한국에서는 금속 기술에 관심이 갑니다. 한국산 나무나 전통적인 등불도 눈여겨봤죠. 그런 것으로 새 프로젝트를 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설치 작품인 ‘트라팔가의 체스 경기’는 전시장 눈앞에서 직접 감상하길 추천한다.

그 무엇을 봐도 21세기에 태어난 디자인임이 확실한데, 실은 하이테크의 대척점에 있는 수공예 장인과 추진한 작업. 이건 또 어떨까? 점잖기만 할 것 같은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 한센은 2011년부터 이 남자와 함께 가고 있다. 프리츠 한센은 과거 아르네 야콥센이나 한스 베그네르 같은 거장과 작업하며 아이콘이 된 의자를 남겼다. 그들이 선택한 디자이너가 아욘이다. 허리 굴곡을 반영한 듯한 곡선 흐름이 눈에 띄는 체어, 직각과 원형과 타원형의 이로운 점만 모은 둥근 모서리의 테이블 등, 아욘은 프리츠 한센과 환상의 짝꿍이 되어 다양한 라인을 발표했다. 가구와 공간은 한 몸이다. 공간 전체까지 디자인하는 아욘의 커리어는 코펜하겐의 레디슨 블루 로열 호텔 506호, 얼마 전 중국 시안에 오픈한 프리츠 한센 스토어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모던한 북유럽 가구의 DNA로 가득한 시안의 프리츠 한센 스토어에 아욘은 직각 대신 아치형 통로를 여러 개 만들어 부드러움을 줬다(우리 몸 어느 한 군데 각진 곳이 없는 것처럼, 그는 사물도 둥글둥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닥에 의미 없이 펼쳐진 것으로 보이는 금색 선은 위층에서 내려다보면 사람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 그와 대면한 초반, 왜 나는 ‘귀여움과 모던함의 거리’에 대한 질문을 섣불리 던졌을까?

더블유 독자에게 보내는 아욘의 드로잉과 메시지.

약속된 짧은 시간이 야속하게 지나가고 그와 헤어져야 할 타이밍이 됐을 때, <더블유> 독자들을 위해 드로잉을 남겨달라고 종이와 펜을 들이밀었다. 미술관 1층 디자인 숍에서 야심 차게 구입한 7가지 색 형광펜과 5가지 색 색연필, 그리고 ‘기자의 펜대’였던 검정 볼펜 중에서 그는 주저 없이 볼펜을 골랐다. ‘W’를 그는 여자의 가슴을 닮은 곡선 형태로 나풀거리게 그렸다. 직선과 직선으로 이뤄진 시크한 알파벳이 ‘더블유~’라는 표정을 갖는 순간. “디자이너로서 정점에 와 있다고 느껴요. 클라이언트와 일할 때도 대체로 제 방식대로 일하며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최고의 럭셔리함 같거든요.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저만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려고 합니다. 기쁨과 긍정을 불러일으키는 하이메 아욘 스타일 말이에요.” 시간이 흘러 그가 디자이너의 전설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을까? ‘평범한 것도 재밌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디자이너’의 자리는 의심 없이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