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내버린 배우 이윤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처음 만나는 자유 (이윤지)

2019-01-10T17:47:07+00:002018.12.21|FASHION, FEATURE, 피플, 화보|

그깟 머리카락은 싹둑 잘라내면 그만인데, 얼굴을 발가벗긴 것처럼 다 거둬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드라마를 핑계 삼아 어릴 적 소망 하나를 이룬 이윤지는 이제 속마음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큰 눈으로, 새롭게 자신을 바라본다.

하얀색 셔츠는 조셉, 페이즐리 무늬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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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제3의 매력> 때문에 쇼트커트를 했는데, 당신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 익숙한 얼굴이 낯설어 보이고. 헤어 콤플렉스가 좀 있었다. 숱이 너무 많아서,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다 풀어 내리면 머리카락이 나를 잡아먹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짧게 자르니까 풍성한 숱이 오히려 모양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튀어나온 두상도 이 스타일과 무척 잘 어울린다. 나에게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다(웃음).

드라마에서 대형 미용실 원장 역할이었다. 숍은 성공적으로 일궜지만 연애는 잘 안 풀리는 여성으로 내내 ‘우당탕탕’ 부산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후반에 암 환자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제작진이 처음 섭외할 때부터 삭발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잘 됐다 싶었다. 어렸을 때 ‘결혼하기 전에 삭발 한번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착한 딸 콤플렉스 비슷한 게 있어서 차마 저지르질 못했다. 작품을 핑계로 한 번에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에 해당하는 길이를 확 잘라내니까 속이 시원하다.

착한 딸 콤플렉스라. 그래서, 친정 어머니나 시댁의 반응이 어떤가?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한결같다. ‘괜찮은데? 더 나은데?’ 남편은 항암 치료를 받는 설정이면 더 짧게 깎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했다.

본인도 아주 만족하는 것 같고 주변 반응도 좋으니 변신이 성공적인 셈이다. 심지어 어릴 적 소망 하나를 드디어 이뤘고(웃음). 2015년에 딸을 낳고, 엄마가 된 누구나 그렇듯이 나름 인생의 큰 산을 넘으며 살고 있었는데, 내가 아기 상태로 돌아간 것 같다. 드라마 막바지에는 아픈 모습을 연기하느라 아예 숍에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촬영 전 준비하는 시간이 4시간은 당겨지더라. 삶에서 걷어내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머리를 기르거나, 혹은 남자아이기 때문에 저절로 자라는 머리카락을 주기적으로 자르는 일이 세상에 흔하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품이 넉넉한 줄무늬 재킷은 제이백 쿠튀르, 벨벳 튜브톱 드레스는 노르마 카말리 by 매치스 패션닷컴, 슈즈는 유니페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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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결혼할 때 ‘10년 동안 친구로 지낸 사람과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기사가 나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친구까지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카카오톡 리스트에 있던 사람’ 이었지.

어떻게 만난 사이인가? 시아버님을 더 먼저 알았다. 내가 알고 지내면서 가끔씩 인사 드리는 교수님 중 한 분이셨다. 명절 때 우리 집에서 먹을 떡을 마련하면서 교수님 들께 드릴 떡도 함께 주문했는데, 그때 바쁘셨는지 아들을 대신 내보내셨다. 한마디로 남편은 ‘쑥떡을 이 차에서 저 차로 옮기는 운반책’이었다(웃음). 접선 장소를 정하느라 서로가 서로를 카카오톡 친구로 추가했다.

‘쑥떡은 사랑을 싣고’ 같은 상황이 벌어졌나? 아니. 그때는 그냥 흘러간 인물이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다. 교수님이 따님 결혼식, 그러니까 지금 나의 시누이가 결혼할 때 나를 초대했는데, 일이 생겨 못 갈 형편이었다. 결혼식 당일에 죄송하다고 연락을 드리면서 어른과 약속 을 어긴 게 신경 쓰여 아침에 잠깐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 마침 내가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숍과 가까운 숍에 시댁 식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다시 남편에게 연락 을 했다. 정신없는 숍에서 서성대고 있으면 ‘나를 아는 그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겠지’ 했는데 남편 얼굴이 몰라 볼 정도였다. 남편을 처음 만난 때와 다시 만났을 때 몸 무게가 20kg은 차이 났다고 하더라.

품이 넉넉한 줄무늬 재킷은 제이백 쿠튀르, 벨벳 튜브톱 드레스는 노르마 카말리 by 매치스 패션닷컴, 슈즈는 유니페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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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하고 1년 후부터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출산이나 육아와 관련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산후우울증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출산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내가 아이를 너무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었다. 죽을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아이로 인해 죽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때도 있었다. 다른 게 작아서가 아니라 자식의 존재가 너무 커서 다른 것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달까? 아이를 위해서 산다고 할 수는 없어도 내가 살아 있는 한 아이를 위해 내 소임을 다해야겠다, 내가 잘못해서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가 노래 강사로 사회 활동을 하신다. 엄마라는 존재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뭔가? 일하신 지 20년이 넘었다. 어릴 때부터 ‘그 여성’을 참 좋아했다, 다른 사람이 ‘윤지는 엄마를 좋아하는 딸이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게 속상할 정도로. 무지 열정적이시거든. 젊은 시절엔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고 앨범도 냈던 분이다. 엄마를 멋진 여성으로 여기다가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비로소 엄마가 엄마로 보이기 시작했다.

베어백 드레스는 미스지콜렉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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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딸 사진을 보니 일단 눈이 큰 건 당신을 닮았다. 외모에서 눈을 제외한 나머지 틀은 남편을 더 닮은 편이다. 똑똑한 건 남편을 닮은 것 같고, 감성이 풍부 해서 감정 기복이 있는 건 나와 비슷하다. 내가 일명 ‘이기복’이다. 자식 키우는 사람들은 공감할 텐데, 자식의 어떤 면을 보고 부부가 서로 ‘당신이 어릴 때 저랬지? 저거 당신이지?’ 같은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딸이 만화를 보다 말고 난데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이런다. ‘갑자기 기분이가 안 좋아.’ 바로 인정하고 남편에게 자수했다. ‘미안해, 저거 나야…’

당신은 아기 때부터 눈이 컸겠지? 배우에게 눈이 중요하 다는 게 눈의 크기나 모양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감독이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눈에 대해 들은 코멘트가 있나? ‘그 흰자위 좀 어떻게 해봐’ ‘눈을 왜 그렇게 뜨냐’는 말. 특히 내 얼굴을 클로즈업하면 눈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거지. 나처럼 쌍꺼풀이 진하고 큰 눈이 요즘 시대엔 다소 촌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전형적이어서 트렌디하지 않은? 안 그래도 눈 때문에 요즘 고민이다.

어떤 고민이 드나? ‘요즘에는 그렇게 감정을 많이 보여주는 식으로 연기하지 않아 윤지야’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차라리 감정 전달이 중요한 연기를 할 때는 전달력이 좋은데, 그런 상황이 아닐 때는 이 큰 눈이 불리하다. 어떤 마음을 품는 순간 눈에 다 드러나는데 어떡하나? 인간관계에서도 눈 때문에 속마음을 들킬 때가 있고. 창이 커서 나라는 사람이 너무 빨리 읽힌다. 그게 요즘 트렌드와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다.

데뷔한 지 15년 정도 됐다. 눈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기까지, 연예계 세상에 들어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 후회한 적이 없다가 처음으로 후회스러울 즈음 결혼이 성사됐다. 난 별 재주 없이 순수한 마음 하나로 일한 것에 비해서는 기회가 많았다. 먹는 문제 하나만 두고 봐도, 먹고 싶고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선택을 잘 못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삭제해가면 선택을 좀 할 수 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살았다. 덕분에 나에게 오는 기회를 거의 거절하지 않고 소화하며 결혼 직전까지 성실하게 살았다.

그 후회는 왜 생긴 걸까? 사람들 틈에서 좀 지쳤던 것 같다. 사람이야 주변에 늘 있는 법인데, 어느 순간 사람에게 좀 치인다고 느꼈다. 권태기라기보다는 정체기 정도?

슈즈는 유니페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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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언제인가?3 때. 나는 그즈음에 다들 진로를 정하는 줄 알았다. 방송반 활동을 하기도 했고, 내 성향에 어울리면서 방송과 관련된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배우를 하면 될 것 같더라. 끼는 전혀 없는 아이여서 선생님도 깜짝 놀랐다.

일하면서 다른 여배우에게 질투 같은 감정을 느껴본 적 있나? 질투까진 아니지만, 나도 저렇게 좀 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은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은데 자기 것 잘 챙기는 사람’이다. 간단히 말하면 좀 못됐는데도 잘 되는 여자들. 사실 오늘 화보 촬영 때 우리 회사 사람이 많이 나와 있는 게 계속 신경 쓰였다. 촬영을 하다 말고 ‘어? 실장님이네? 이따 인사해야지.’ ‘어? 저분은 왜 나왔지?’ 식으로, 아는 얼굴이 보일 때마다 속으로 반응했다. 나는 같이 식사하는 무리 중 하나가 좀 젓가락을 꼼지락거리면 ‘맛이 없나? 메뉴가 마음에 안 드나?’라고 생각한다. 늘 신경의 안테나가 서 있다 보니 에너지가 계속 새어 나간다. 안테나를 끄고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사람은 그 안테나 때문에 별일 안 해도 집에 가면 지쳐 쓰러진다. 달리 생각하면, 끼가 별로 없던 당신이 배우를 결심한 요인도 그 안테나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맞다. 못됐다 싶을 만큼 나에게만 집중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배우라는 직업을 잘 택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지점 때문이다. 작품을 쉬면 돈을 못 벌어서 우울한 게 아니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계속 어떤 감정이 나오 고 촉이 서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힘이 든다. 이 직업은 나에게서 뭔가가 넘쳐 나오면 그걸 연기에 담을 수 있다. 꾸역꾸역 뭐가 나오면 비우고 채우고 하는 걸 반복하면서. 그걸 하지 못하면 물이 차서 질퍽거리는 느낌이 드는 거지. 그래서 계속하나 보다.

하얀색 셔츠는 조셉, 코튜로이 팬츠는 로우클래식, 슈즈는 트리커즈 by 유니페어 제품.

하얀색 셔츠는 조셉, 코튜로이 팬츠는 로우클래식, 슈즈는 트리커즈 by 유니페어 제품.

그럼 배우가 어느 정도 수준이면 성공했다고 보나? 팬들 뿐 아니라 감독이나 작가들이 ‘그 배우 요즘 뭐해?’ 하면서 계속 찾아주는 배우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일 것 이다. 혼자서 매일 신들린 연기를 연습해도 기회가 안 주어지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본인 스스로도 검증할 수가 없다. 배우는 무조건 쓰여야 한다.

쓰이고 부름받기 위해 지금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이 없어지니 말 그대로 얼굴이 더 잘 보인다. 화면 속의 내 모습이 나도 궁금하고, 나를 좀 더 보고 싶다. 뭔가 리셋한 기분이라 앞으로의 삶이 기대된다. 누구든 나와 같이 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