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패션사전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알아두면 유용한 신비한 패션사전

2018-04-23T14:54:47+00:002018.05.01|FASHION, 트렌드|

디자이너들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걸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보고 읽고 느낀 것은 모두 컬렉션의 원천이 된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2018 S/S 디자이너들의 영감의 원천을 찾아서.

 

 

디올과 린다 노클린

Photo: Yannis Vlamos / Indigital.tv
1 린다노클린 책

2018 S/S 시즌 디올 런웨이의 오프닝 룩은 사샤 피보바로바가 입고 나온 줄무늬 티셔츠와 데님이었다. 티셔츠에는 “왜 유명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유명한 미술 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린다 노클린이 1971년 처음 제기한 질문이다. 노클린의 주장은 이렇다. 과거에도 분명 훌륭하고 흥미로운 여성 예술가가 존재했을 테지만 여성 예술가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가부장적 사회 제도와 교육 문제라는 것.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디올에 부임하면서 자신의 페미니스트적 신념을 꾸준히 런웨이에 투영했는데, 최근 세계적으로 부는 여성의 각성을 계기로 더욱 뿌리 내리게 된 셈. 디올의 런웨이에 올려진 룩을 음미한 뒤, 린다의 저서 중 <절단된 신체와 모더니티> <리얼리즘> <페미니즘 미술사> 같은 책을 더 읽어보면 좋을 듯.

 

트루사르디와 여류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밀란 브랜드 트루사르디는 이번 시즌 미국 최초의 여성 항공 조종사 아멜리아 에어하트에게서 영감 받아 컬렉션을 완성했다. 1932년 여성 조종사로는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국민적 영웅이 된 그녀. 그 당시 그녀는 물론 언론에 비친 그녀의 패션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1932년 조퍼스 팬츠에 가죽 점퍼를 입은 여성은 많지 않았으니까. 트루사르디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죽 점퍼를 조퍼스 팬츠와 매치하거나, 여성스러운 H라인 스커트에 매치하는 등 스타일 변주를 보여줬다. 런웨이를 가득 채운 견고한 가죽 의상은 뚝심 있고, 진취적이었던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보여준 여성상이 묻어난다. 최근 그녀의 유해가 80년 만에 발견되어 이슈가 됐다.

 

안토니오 마라스와 1965년 영화 <영혼의 줄리에타>

안토니오 마라스는 쇼에 극적인 요소를 담는다. 이번 런웨이에서도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 모델과 배우들이 어우러져 춤을 추고 껴안고 키스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연출했는데, 바로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영혼의 줄리에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영혼의 줄리에타>는 우아하고 정숙한 부인이 남편의 외도를 알고 나서 겪는 정신적 갈등과 극복에 관한 영화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첫 컬러 영화로, 안토니오 마라스도 펠리니도 왜 그렇게 색채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영화 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색의 가발은 자신을 숨기는 수단, 즉 가면 같은 도구로 작용한다. 쇼에서도 모델들은 다양한 색상의 가발을 쓰고 등장한다. 영화 속 명장면을 쇼의 퍼포먼스로도 활용한 마라스의 쇼를 영상으로도 즐겨보길 바란다.

 

프린과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 퓨린

이번 시즌 프린이 뮤즈로 내세운 여성은 미국의 작가 N.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다. 소설의 내용은 모두가 알다시피 17세기 청교도 시대에 간통 사건에 얽힌 한 여인의 이야기. 여주인공은 간통을 저지른 죗값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A자를 가슴에 달고 평생을 살라는 형을 선고받는다. 이번 시즌 프린의 컬렉션 의상에는 빨간색 알파벳 ‘A’가 곳곳에 들어 있다. 너무 1차원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컬렉션의 볼거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몸이 아름답게 비치는 파스텔 컬러 시스루 드레스와 프린의 장기인 꽃무늬가 함께 런웨이를 장식했으니까. 의미심장했지만 정작 런웨이에선 디자인적 요소로만 보이고,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 같은 알파벳 A. 오랜만에 청소년 권장 도서인 <주홍글씨>를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게 만들긴 했다.

 

스텔라 장과 볼리비아 촐리타 레슬링

아이티 출신 디자이너 스텔라 장은 볼리비아 여자들의 레슬링 복장에서 영감 받아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다. 볼리비아는 브라질의 남서부에 있는 나라다. 촐리타란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 여성에 대한 호칭이고, 포예라(치마)를 입은 여자를 가리킨다. 왜 볼리비아 여자들이 전통 복장 차림으로 레슬링을 하는 걸까? 알아보니, 그곳에는 아직도 남성 중심주의 사상이 강해 많은 여성이 차별과 폭력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레슬링을 통해 여성 폭력을 근절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 결과 2014년 볼리비아에 여성 보호법을 제정하게 만들었다고. 스텔라 장의 스포티즘과 전통 의상이 섞인 아름다운 컬렉션에는 볼리비아 여성의 강인한 투지가 담겨 있다.

 

크리스토퍼 케인과 신시아 페인

크리스토퍼 케인이 컬렉션의 소재를 선택하는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몇 시즌 전 식물도감에서 영감 받아 컬렉션을 완성한 그는, 평소에는 과학책을 읽고 스케치할 정도로 자연과 과학에 관심이 깊다. 이번 시즌 그는 여러 군데에서 받은 영감을 조합했는데, 그중 하나는 1978년 영국의 고위 공직자들과 섹스 파티를 벌인 호스티스 신시아 페인, 그리고 결벽증이 있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뭔가 심오해 보이겠지만 그가 풀어낸 방식은 의외로 굉장히 위트 있고, 기발했다. 예를 들어 영국 신사들의 넥타이를 형상화한 블라우스와 자루 걸레에서 영감 받은 걸레 신발이 등장하는가 하면, 샤워커튼 같은 비닐 옷과 입은 것도 벗은 것도 아니게 스타일링한 카디건의 매치, 가슴이 훤히 보이는 음란한 드레스와 크록스 신발의 조합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관심이 가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어내는 재능이 탁월하다. 그리고 거기엔 늘 해학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토리 버치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

최근 아카이브 북을 만든 토리 버치의 책은 페이지 곳곳에서 인테리어에 대한 그녀의 깊은 조예가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이번 컬렉션을 평소 좋아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의 아카이브를 참조해 만들었다. 데이비드 힉스는 기하학적인 레트로 패턴을 가구나 벽지에 넣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름은 생소해도, 아마 그가 만든 빈티지 패턴을 보면 어떤 작업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을 듯. 토리 버치는 본인의 시그너처 컬러인 주황색과 기하학적인 패턴을 이용해 프린트를 만들었다. 패턴을 담는 그릇인 실루엣은 간단하고 명료해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다. 그뿐 아니라 중간중간 모델들이 들고 나온 담요는 그녀가 추구하는 긍정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이번 컬렉션은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와 패션이 주고받는 상호 작용을 완벽하게 구현한 결과물인 셈.

로다테와 로버트 앨트먼의 영화 <세 여인>

로버트 앨트먼 감독의 영화 <세 여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로다테. 1977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외모와 성격이 다른 세 여자가 겪는 쓸쓸하고 애잔한 인생살이를 화면에 담은 영화다. 로다테의 컬렉션에는 여리디여린 시스루 드레스와 바이커 재킷과 팬츠, 화려한 꽃무늬 등 서로 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룩들이 등장하는데, 로다테는 영화 속의 할머니, 어머니, 딸 3대에 걸친 여인들의 특징을 날카롭게 포착해 컬렉션을 전개한 듯 보인다. 독특한 정신 세계를 보여주는 세 여자와 70년대풍 의상, <세 여인>은 로버트 앨트먼의 수작 중 하나이니 꼭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유돈초이와 가구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 디자이너

최유돈은 이번 시즌 아일랜드의 여류 실내 장식가 겸 가구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와 그녀의 연인이 함께 머물던 프랑스 남부의 빌라 E1027에서 영감 받아 컬렉션을 만들었다. 더 정확히 말해, 공간은 사는 사람에 따라 그 모양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을 컬렉션에 응용했다. 입는 방식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케이프 재킷, 단추를 채우는 방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드레스, 여기저기 달린 리본을 어떻게 조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드레스처럼. 그가 컬렉션을 통해 보여주려 한 공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 그를 통해 알게된 아일린 그레이의 정제되고 세련된 가구를 보면, 1920년대에 이렇게 세련된 눈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아직도 그녀의 미학이 통용된다는 점 역시 놀랍다. 심지어 요즘 나온 가구보다 훨씬 더 모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