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절반이 한 달에 한 번 겪는 일이잖아요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인류 절반이 한 달에 한 번 겪는 일이잖아요

2018-02-23T11:14:18+00:002018.02.23|FEATURE, 컬처, 피플|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는 여성들, 아니 ‘우리가 말하고 싶은 생리대’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피의 연대기>가 끝났을 때 관객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왜일까? 영화 시사회, 무비토크가 끝난 뒤 김보람 감독에게 명함을 주며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는 생리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방식은 제법 직관적이다. 첫 월경을 하던 날, 생리로 생긴 에피소드들, 불편함,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생리대 변화, 독자적인 생리대 가격 인상 반대, 무상 생리대 보급 운동 등. 엄마가 딸에게, 그리고 그 딸이 또 그녀의 딸에게. 그렇게 숨어 이야기했던 생리에 관한 이야기.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살아가면서 적어도 400번은 겪는 일. 생리는 무섭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다. 숨길 이유도 없다. 그녀가 말했다. “안면 인식으로 스마트폰 잠금 해제를 하는 시대에 생리대는 여전히 구식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우리가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죠?” 간만에 속이 후련한 영화가 나왔다.

<피의 연대기> 영화 제목이 지어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요?
제가 원래 제목을 잘 못 지어요. 생리혈을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성들의 역사를 다루고 싶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 남자친구가 “<피의 연대기>는 어때?”라고 했는데 그때는 제목이 너무 세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처음 제목은 ‘생리 축하합니다’ 였어요. 그렇게 6개월을 촬영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문이 생겼어요. ‘과연 생리를 축하할 일일까?’ 취재와 인터뷰를 하면서 여성들의 역사를 공부할수록 그 안에서 연대해온 여성들의 흔적을 발견했죠. 촬영이 끝날 때 즈음에야 <피의 연대기> 제목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주제가 특별합니다. ‘생리대’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저와 동갑인 샬롯이라는 친구를 만났어요. 이야기하다 보니 저와 전혀 다른 생리 경험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의문이 들었어요. 생리는 대체 왜 하는 걸까? 이 피를 처리하는 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리를 다룬 영화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검색을 시작하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어요. 말 그대로 ‘그 어떤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영화를 만들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다행히 주변 반응은 긍정적이었어요.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죠. 일단 제가 이전 연출작이 없어 못 미더운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소 정보 위주의 시놉시스가 매력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유튜브나 웹에 올릴 짧은 단편 형식의 콘텐츠로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러닝타임 내내 생리혈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영화, 그것이 새로운 경험이 될 것만 같았죠.

영화에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요. 영국 유튜버 브리, 이재명 성남시장까지. 섭외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생리대 리뷰 전문 유튜버 브리는 초반부터 섭외하고 싶었어요. 유튜브 채널에 메일을 보냈더니 흔쾌히 본인의 집에서 촬영하자고 하더군요. 이재명 성남 시장님 섭외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장님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어요. 근데 시장님이 직접 답장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보통 페북 메시지는 본인이 관리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미디어에 나온 모습만큼이나 호방하신 분이었어요.

섭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인물이 있다면?
코니 윌리스라는 미국 SF 소설 작가. <여왕마저도>라는 단편 소설이 있어요. 기술의 발전으로 여성들이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는 미래를 다룹니다. 하지만 생리를 하는 세대로 돌아가길 원하는 어린 손녀가 등장하면서 생기는 이야기예요. 그녀를 섭외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듣고 싶었어요. 에이전시 쪽으로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어요.

영국, 미국 등 다양한 로케 촬영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발생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영국에 갔을 때 제가 발을 다쳐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어요. 영국은 정말 비가 많이 오더라고요. 깁스가 젖어서 발이 너무 간지럽고 목발을 짚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참고하여 호텔방에서 깁스를 해체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왔다는 거였어요. 깁스한 발은 신발이 없어도 되니까요. 그래서 한 쪽 발에 봉지를 감고 신발을 사러 갔던 기억이 나요.

영화 애니메이션, 촬영, CG 등 스태프들에게 임금을 꼬박꼬박 챙겨드렸다면서요. 총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요?
총제작비는 약 1억 7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해외 촬영과 애니메이션 비용 때문에 다른 영화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었어요. 돈을 아끼려고 하지 않았어요. 카드를 돌려막더라도 쓸 땐 쓰자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남자친구 집에 있는 라면으로 며칠을 버티거나 해외 촬영 시 한국에서 통조림을 잔뜩 사 가기도 했지만(웃음)!

아직 여성 감독, 프로듀서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여성 감독으로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힘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여성으로 힘들만 한 요소를 다 제거하고 시작했거든요. 제작 스태프들도 모두 여자, 나이대도 비슷했어요. 누군가가 독자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였어요. 촬영이 끝나면 맛있는 걸 먹으러 갔고 일을 하면서도 수다를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자료화면에 다양한 생리대들이 등장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생리대가 있다면?
당시엔 충격적이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쓰게 된 물건으로 스펀지 탐폰과 일회용 생리 컵이 있어요. 둘 다 손잡이라고 할 수 있는 꼬리가 있어요. 그리고 질관이 아닌 자궁 경부 바로 앞까지 밀어 넣어야 합니다. 질관을 쑥 지나가서 경부 아래에 장착되어야 하기 때문에 질관에 남성 성기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생리 중 삽입 섹스 시 사용하는 제품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남성으로서 자기반성을 하면서,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월경이라는 행위가 남성은 겪지 않는 일이니 여성들만의 정서, 기억을 공유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오해와 편견, 무지에서 비롯된 잔인한 공격들이 생기는 거고요. 그걸 극복하는 건 상상력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남성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생리가 무엇인지 상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보람 감독 프로필

김보람 감독

어떤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나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성들. 아직 본인의 몸을 알기도 전에 섹스를 경험할 수도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내 몸을 먼저 잘 알아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