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끊이지 않는 논란, 진짜를 입을 것인가 가짜를 입을 것인가. 이건 최근 일어난 페이크 퍼에 대한 이야기다.

페이크 퍼 모자와 코트, 살구색 드레스는 미우미우 제품.

페이크 퍼 모자와 코트, 살구색 드레스는 미우미우 제품.

“이거 진짜 토끼털이야?” 강원도 로케 촬영 후 만난 남자친 구가 안감이 토끼털로 뒤덮인 나의 A.P.C. 점퍼를 보고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순간 “어 응…”이라고 말끝을 흐렸고, 뭔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모피를 입었다고 말하는 내가 부끄러웠던 걸까. 패딩 모자를 덧댄 모피가 전부인 나에게 그 토끼털 점퍼는 5년 전 도쿄 여행 중에 60% 이상 세일해서 산(득템했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진짜 모피 아우터다. 그때만 해도 모피를 미학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한지라 제작 과정에서 오는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2년 전, 동물의 가죽을 벗겨내고 학대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페이스북에서 본 이후로 진짜 모피 코트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금액대도 문제였지만,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계기였다. 패션위크 때마다 이슈가 되는 모피 논란, 꾸준히 지속된 동물보호협회의 캠페인은 패션계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가짜 모피가 페이크 퍼, 에코 퍼라는 이름으로 유행의 열차에 탑승한 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스텔라 매카트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환경과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이들이 리얼 모피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할 당시만 해도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했다. 하지만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퍼 프리(Fur Free) 선언과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타미 힐피거, 드리스 반 노튼 등을 비롯한 여러 패션 하우스가 진짜 모피를 쓰지 않겠다는 이 흐름이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 리테일러 네타포르테도 모피 아이템을 팔지 않겠다는 대열에 합류했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건 바로 구찌의 모피 중단 선언이었다. 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패션지는 물론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에서 앞다퉈 다뤘을 만큼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구찌의 CEO 마르코 비차리(Marco Bizzarri)는 모피 반대 연합(Fur Free Alliance)에 가입했다고 밝히며, 2018 S/S 컬렉션부터 밍크, 여우, 토끼, 라쿤 등의 모피(양, 염소, 알파카는 제외)는 일절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발뒤꿈치에 캥거루 털이 달린 슬라이드 슈즈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윤기가 흐르는 알록달록한 문양의 모피는 구찌의 상징 아니었나. 이로써 패션 기업의 윤리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패션, 미국 동물보호단체를 지지하는 활동에 앞장서겠다는(이미지 마케팅 역시 포함) 케어링 그룹의 행보를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한편, 이런 페이크 퍼에 대한 지지는 유명 인사와 브랜드 사이에 크고 작은 이슈로 번졌다. CNN은 멜라닌 트럼프가 이제 진짜 모피를 입지 않겠다 약속했다는 뉴스를 내보 냈고, 파멜라 앤더슨을 비롯해 동물보호론자들은 트위터에 ‘땡큐 멜라닌’이라고 포스팅하며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페타(PETA)를 위해 활동해온 파멜라 앤더슨은 모피 애호가인 킴 카다시안(40도가 넘는 두바이에서도 모피를 입는다)에게 더는 퍼를 입지 말아달라며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킴은 묵묵부답. 일찍이 페이크 퍼와 가깝게 지낸 SPA 브랜드와 디자이너와의 마찰도 있었다. 미국의 디자이너 샌디 리앙은 포에버 21이 자신의 모피 코트와 똑같은 제품을 만들었다며, 인스타그램에 @forever21을 태그해 “Shame on you!!!!!”라고 보란 듯이 비난했다. 소매를 페이크 퍼로 장식한 가죽 재킷은 사실 누가 봐도 똑같다.

가짜 모피를 에코 퍼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염색과 가공 과정에서 생기는 화학 약품과 그을음 등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대로 야생 동물 비쿠냐의 털을 쓰는 로로피아나처럼 동물을 죽이지 않고 털을 채취해 최고급 옷을 만들며, 페루 지역의 경제 활동에 도움을 주는 브랜드도 있다. 결론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2018년이 페이크 퍼의 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yes’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