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영감을 얻으러 꿈꿔온 로망의 도시로, 다른 이는 편안한 휴식을 위해 익숙한 장소로. 각기 다른 업계에서 일하는 10사람의 새해 휴가 구상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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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휴스턴
미국 나사(NASA)의 근거지로 “응답하라 휴스턴!” 그 멘트 정도로만 친숙했던 도시. 휴스턴의 미술관은 기대 이상이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주택가 한편에는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건물에 위치한 메닐 컬렉션(The Menil Collection)이 있고, 그 주변에는 트웜블리(Cy Twombly) 갤러리, 댄 플래빈(Dan Flavin)의 설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리치먼드 홀(Richmond Hall)이 자리한다. 휴스턴 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은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이 지역 미술의 심장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울림을 남긴 곳은 마크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 그곳에는 로스코의 작품 14점과 긴 의자 여럿, 그리고 방석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명상을 해도 좋고 작품만 감상해도 좋지만, 결코 그 어떤 특정 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회당이자 절이며 교회이자 성당이자, 미술관인 셈이다. 새벽녘의 빛깔을 띠고 있는 그의 그림에는 슬픔과 경이로움, 살아 있음 혹은 죽음에 대한 한탄과 덧없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곳의 방석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들면, 각자의 바람과 다짐이 공기 사이사이를 조용히 배회함을 느낄 수 있다. 흐르는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주어진 삶의 체감 속도를 상대적으로 늦추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 말해주는 듯. 올해도 한 곳을 가자면 휴스턴, 누군가 한 곳을 묻는다면 역시 휴스턴이다. – 황다나 (루이 비통 기업홍보차장)

리투아니아, 자라사이
‘당신이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로 향하는 순간, 실험주의 음악에 목마른 이들은 베르크하인(Berghain)과 수피네스(S pynés)로 향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3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웹에서 본 기사인데, 영원히 잊힐 것 같지 않은 말처럼 느껴졌다. 베를린에서 방문한 클럽 베르크하인은 아찔했고 혼란스러웠지만, 끔찍하게 좋았다. 베르크하인의 경험은 수피네스를 방문할 충분한 이유가 됐다. 수피네스는 리투아니아의 ‘두부리스 레이크 아일랜드(Duburys Lake Island)’라는 강을 낀 울창한 숲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이다. 리투아니아어로 표기하면 ‘Duburio ežero sala’인데, 이를 구글 번역기에 입력하면, ‘고스트 호수 섬’이란 결과가 나온다. 유령이라도 사는 걸까 싶은 마음에 가고 싶은 열망은 배가된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이 전자 음악 파티는 리투아니아의 전자 음악 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자 음악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현장이다. 족히 10년도 더 된 명망 높은 파티지만, 수피네스를 아는 이들은 몇 없다. 그것만으로도 갈만한 이유가 된다. 캠퍼 밴과 텐트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강렬한 비트에 맞춰 춤추는 일. 그런 자유가 또 있긴 할까. – 서재우 (매거진 <B>에디터)

홍콩, 홍콩섬
지난 12년간 늘 그랬듯, 나만의 연례행사를 치르러 올해도 홍콩에 갈 것이다. 첫날은 무작정 센트럴 지역을 걷고 싶다. 층마다 세계적인 갤러리가 들어차 있는 ‘페더 빌딩(Pedder Building)’이 첫 목적지. 시간이 여의치 않아 모두 들러보지 못할 때엔 가고시안 갤러리와 리만 머핀 갤러리부터 탐색한다. 나와서는 고요함 속에 다양한 무드가 존재하는 고프 스트리트를 걷다가 출출하면 누들 한 그릇을 먹고 할리우드 로드 주변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쇼윈도를 구경한다. 해가 저물면 친구들을 만나 10년 넘게 늘 찾는 코즈웨이 베이의 골드핀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홍콩의 바 호핑을 하며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렇듯 해마다 변해 있는 그 무언가, 해마다 여전히 안녕한 그 무언가, 낯설기도 편하기도 하며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곳. 제2의 고향 홍콩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 제이백 (제이백쿠튀르 디자이너)

그리스 , 산토리니와 주변 섬들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사업과 그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산토리니와 그 주변의 작은 섬들, 미코노스, 자킨토스, 크레타로 휴가를 떠날 계획이다. 시간이 난다면 이탈 리아로 넘어가 역시 그에 속한 작은 섬들 포지타노, 아말피, 풀리아주도 둘러볼 생각. 그리스 출신의 클라이언트 덕분에 그곳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파란 바다가 보이는 바에 앉아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낮술을 즐기는 여유로운 그리스의 여름. 프랑스나 이탈리아, 미국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그리스 와인 ‘Alpha Estate Xinomavro(레드 와인)’, ‘Gavalas Santorini(화이트 와인)’와 함께 수블라키, 무사카 등의 로컬 푸드, 그리고 신선한 시푸드를 즐길 거다. 자연의 축복을 받는 곳이라면 늘 있는 와이너리 투어도 빼놓을 수 없겠다. 마라톤이 기원한 나라이니만큼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러닝과 요가 리트릿을 위한 정보도 구할 계획. 여행은 언제나 예상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하는데, 그리스라면 특히 더 그렇지 않을까. – 백은영 (W/E 마케팅커뮤니케이션스 대표)

중국, 칭다오
산둥반도에 위치한 칭다오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교류가 많은 지역이지만 베이징, 상하이에 비해 다소 작은 느낌이 있어 관광지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중국의 부성급 도시다. ‘칭다오 맥주’로 더 잘 알려진 곳. 올해 가죽 공장 현장 실사를 포함해 출장 겸 여행을 목적으로 방문할 예정이다. 칭다오는 중국 내 2성급 도시지만 인구 850만 명의 무역 도시로 경제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중국 공항들이 최근 경제 성장에 힘입어 꾸준히 리노베이션되고 있는 추세. 한국과는 반대로 국내선 공항이 국제선보다 10배 이상 크고 화려할 정도로 내수 경제에 초점을 두는 형국이라 그 흐름이 흥미롭다. 칭다오에는 무엇보다 지모루 시장(Jimo city Market)처럼 허가된 가품 시장이 크고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고난도의 초정밀 고급 시계를 전문가도 구별하기 힘든 수준으로 눈앞에서 직접 만들어준다는 장인들이 숨어 있는 뒷골목 탐방도 기대된다. – 안지용 (매니페스토 아키텍쳐 소장)

스페인, 말라가
요즘처럼 추울 때면 지중해의 햇살이 부쩍 그립다. 그중에서도 10년 전 영화제 초청으로 방문해 한동안 머문 말라가가 특히 생각난다. 말라가에는 피카소의 고향답게 피카소 생가 박물관(Fundacion Picasso)이 있다. 해외 투어도 거의 하지 않는 이 박물관의 소장품들이야말로 가지 않고는 절대 볼 수 없는 진귀한 유산. 스페인 전역에 있는 피카소 박물관은 당연히 이곳 말라가에도 있다. 또 자전거를 타고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는 일은 말라가로 여행을 간다면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때마침 접이식 자전거에 빠져 있던 나는 말라가에 그 자전거를 가져갔고, 돌아와서 자전거를 주제로 한 영화 시나리오 <폭풍 속으로>를 썼다(검색해도 안 나온다, 아직 영화화 전이다). 말라가에 다녀온 10주년 기념으로 올해 재방문을 해볼 심산에 가을 무렵 일정으로 티켓을 검색했다. 여름에는 기온이 40도까지 오르기 때문. 아, 전에 미처 들르지 못한 말라가 최대의 투우장 ‘라 말라게타(La Malagueta)’에서의 경기도 놓치고 싶지 않다. – 이우철 (영화감독)

일본, 교토
교토는 이율배반적이다. 천년 고도의 정취를 품고 있으면서도 현대 도시의 편리함 역시 갖추고 있다. 전통 가옥인 마치야가 늘어선 기온 거리를 걷다가 목이 마르면 언제든 지근 거리에서 편의점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교토를 좋아하고, 언제나 찾고 싶다. 교토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커피집 ‘우니르 커피(Unir Coffee)’. 교토 마루이 백화점 안에 있어 커피집으로는 다소 독특한 곳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지만, 최고 수준의 생두를 다루는 곳이다. 게다가 탐색해본 일본 커피 중에서도 로스팅과 추출 모두 훌륭한 편.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으로 만든 따뜻한 라테는 아주 더운 여름만 빼고는 항상 생각난다. 바리스타지만 커피를 하루에 한 잔 정도만 마시는데, 특이하게도 우니르 커피는 넉 잔도 훌훌 넘어간다. – 김병기 (프릳츠커피컴퍼니 대표)

스위스, 발스
휴가를 가서는 쉬겠다고 마음먹다가도 직업이 무서운지라 제품이 보이면 어느새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휴가만큼은, 제품을 볼 수 없는 자연을 찾게 됐다. 2015년 10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자연에서 힐링과 에너지를 얻은 후부터. 최근 마음에 둔 휴가지는 루체른주의 ‘발스 온천장(The ThermeVals)’. 자연 속에 녹아든 건축에도 관심이 높은데, ‘근원으로의 회귀’, ‘간결한 것(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를 지향하는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10년에 걸쳐 설계와 시공을 한 이 호젓한 온천은 사용자에게 태초로 돌아간 듯한, 그러니까 마치 엄마의 자궁에 들어간 듯 안온하고 평화로우며 온갖 상념을 잊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한다. 휴가지로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이 또 있을까? – 박근하 (루밍 대표)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어떤 도시를 가든 책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 특히 우리나 라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면 더 좋겠 다. 책이 놓인 모양새와 그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이 완벽 해 보이는 한 장의 사진을 마주한 적이 있다. 레이캬비크 에 있는 도서관 ‘노르딕 하우스’다.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 이너인 알바르 알토의 후기 작품으로 해가 짧은 아이슬 란드의 겨울을 고려해서 해가 잘 들어오도록 설계했고, 내부 가구나 조명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곳은 북유럽의 다양한 언어로 된 책을 소장하고 있고, 시시때때로 다채 로운 문화 행사나 전시가 진행된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하면 떠오른 대자연과 더불어 꼭 찾고 싶은 곳이다. – 김이경 (<어라운드> 편집장)

네덜란드, 로테르담
로테르담 중앙역의 정문을 열면 다소의 서늘한 습기와 스컹크 분비물에 쑥을 절인 듯한 대마 냄새, 그리고 큐브하우스와 MVRDV가 설계한 중앙시장 건물(서울로 7017에도 이거 10분의 1만 해주지 그랬어요)과 마주하며 비로소 화란의 맨 얼굴을 만나게 된다. 첫날은 화란에서 유일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로컬 푸드 감자튀김과 맥주로 저녁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는 에라스무스 다리를 건너며 렘 콜하스가 설계한 드 로테르담을 감상한 뒤 세계적인 디깅 스폿이자 로테르담을 상징하는 두 개의 부티크 ‘바이널스폿(Vinylspot)’과 ‘디몬즈퍼즈(Demonfuzz)’를 방문한다. 희귀한 유로피언 재즈, 아카이브 카피의 브리티시 록, 한층 뜨거워진 중근동 지방의 에스닉 그루브가 담긴 앨범을 디깅하고 주말엔 유럽 최대의 레코드 페어 ‘레코드 플래닛’에 참가하기 위해 근처의 위트레흐트에서 양일간 딜러와 병자들(자신이 ‘Vinyl enthusiast’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격전을 벌인 후 돌아온다. 마지막은 아마도 뫼비우스 계단을 볼 것이다. 그러고 나선 암스테르담에 가거나 탈리스를 타고 파리에 가서 나머지 디깅을 하든지, 아니면 노르웨지언 에어를 타고 스톡홀름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만약 사정이 닿지 않는다면 이런 톤앤매너의 레코드 숍이 신촌에 하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어도 좋다. – 박주혁 (레코드숍 Alouet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