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출발선에 섰거나, 뚜벅뚜벅 걸어오다 훌쩍 날아오른 사람들. 더블유는 그들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오래 지켜보기로 한다.

 

안효섭 · 배우
드라마 <가화만사성>, <세 가지 색 판타지- 반지의 여왕>, <아버지가 이상해> 출연. 2017 AAA 신인상 수상.

드라마 , ,  출연. 2017 AAA 신인상 수상.

검정 슈트는 디올 옴므. 반짝이는 스톤 단추 장식 셔츠는 지방시 제품.

20대 초반의, 경험이 적은 남자 배우를 인터뷰해보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자신감 혹은 초조함이 작용해 자기를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사람, 그리고 수줍거나 신중해서 모든 게 조심스러운 나머지 모호하게 느껴지는 사람. 안효섭은 두 번째 타입이었다. 아마 청소년기를 캐나다에서 보내고 돌아와 한국에서 어른들과 일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했기 때문에 몸에 밴 조심성인지도 모른다. 중견 배우 출연자의 비중이 큰 주말 드라마를 몇 번 찍으면서 겨우 선배 배우들과 소통하는 어려움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얼마나 해야 예의 바른 거고 어떻게 하면 경직돼 보이는지, 커피 한 잔 드시겠냐 먼저 청해도 선을 넘지 않는 건지 사소한 행동 하나가 어려웠다는 그는 결국 먼저 밝게 다가가면 누구나 좋아해준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장르나 배역의 성격이 전혀 다른 <세 가지 색 판타지- 반지의 여왕>, 그리고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를 만난 데뷔 3년 차의 1년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었고, 신인상 트로피를 하나 남겼다.

시청률 20% 가족 드라마 <가화만사성>에 이어 30%를 넘긴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두 번의 ‘철수’ 역할을 거치자 그는 식당 이모님들에게 반찬 서비스를 받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연기 욕심이 생긴 해였던 것 같아요. 부족한 걸 알아서 오기가 생기고 더 배우고 싶어졌죠.” 같은 소속사의 배우 네명과 프로젝트 그룹인 ‘원오원’에 소속된 안효섭은(비슷한 이름이라 혼동이 될 수 있어 ‘워너원’ 팬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인터뷰 다음 주 일본 팬미팅에 갈 예정이다. 무대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맨 인 더 미러’를 즐겨 부른다는 그는 메이저 음악 기획사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더 나이 먹기 전에 학생 역할을 꼭 해보고 싶고, 일을 안 할 때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알아본 옆자리 수험생을 위해 수능 잘 보라는 응원을 해주고 인스타 DM을 받았다고.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따뜻한 집에서 고양이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고양이 이름은 바울이에요. 제 영어 이름이 폴이라서 효섭 주니어 느낌으로 그렇게 지었어요. 제 혀가 그렇게 짧아질 수 있는지 몰랐는데, 바울이랑 얘기할 때는 어느새 애교를 부리고 있더라고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고, 개보다는 고양잇과의 사람이 아닐까 짐작한 게 역시 맞았다.

 

정세랑 · 소설가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이만큼 가까이>,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등. <피프티 피플>로 2017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소매가 긴 원피스는 렉토. 스트라이프 재킷은 몬세 by 10 꼬르소 꼬모 제품.

소매가 긴 원피스는 렉토. 스트라이프 재킷은 몬세 by 10 꼬르소 꼬모 제품.

좋은 예술가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소설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정세랑은 그걸 아주 와그작 경쾌한 소리를 내며 깨주는 인물이다. 작품만 그런 줄 알았는데, 눈앞에 앉아서 말하는 사람의 존재도 그랬다. 프린트가 귀여운 천 가방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패딩 머플러를 꺼내 보여주고, 요즘의 관심사를 물으면 친척 어른에게 동백나무를 한 그루 받아와 잘 키울 일이 걱정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삶의 고뇌를 심각하게 흩뿌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댄디한 취향을 나열하는 것으로 멋을 잡는 부류도 아니다. “뇌세포를 쓰는 운동선수처럼 살고 있어요.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글 쓰고, 요가도 열심히 하고요. 한국에서는 소설가가 그런 이미지가 아니지만 앞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제 또래 동료들은 술도 잘 안 마시고, 아이허브에서 어떤 영양제를 사 먹었더니 집중이 잘 되더라, 이런 정보를 교환하며 지내거든요. 새로운 유형의 작가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날 거예요.” 뇌세포를 쓰는 운동선수답게 그는 건강하게 더 오래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이번에 받은 한국일보 문학상의 상금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보건교사 안은영> <재인, 재욱, 재훈> 같은 정세랑의 소설 은 웃기고 신난다.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이며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미덕이다. 그런 이유로 장르 문학과 순문학의 경계인쯤으로 여겨지던 그에게 이번 문학상은 주류 문학계의 뒤늦은 인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세랑은 그런 인정을 결핍으로 느낀 적 없이 성실하고 또 명랑하게 글을 써온 작가다. “제가 이런 큰 상을 받았다는 건 한국 문학의 포용성이 그만큼 커져서일 거예요. 문학계가 다채로워지는 기미, 조금 더 이질적 작가들이 앞으로 계속 나타나도 문학계 안에 안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조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84년생으로 역사를 전공하고 편집자로 책을 만들기 시작한 이 소설가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차오르는 걸 막을 수 없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의 경험 때문인지 유난히 인물을 구성하는 직업의 세계를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런 성향은 50명의 인물이 대학병원 공간을 중심으로 주인공 없는 주인공으로 서로 연결되는 <피프티 피플>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직업뿐 아니라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사람들, 성소수자나 외국인 노동자도 소설 속 50명의 인물 가운데 정규 분포를 이루고 있다. 점점 공격적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엉뚱하게 화살을 맞는 약자의 목소리를 끌어안는 게 작가의 책무라고 그는 믿는다. 요즘 영상 쪽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탐험을 하고 있다는 정세랑은 동시대 독자에게 무엇이 의미 있을까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스스로를 ‘연쇄 책 추천마’라고 말하는 만큼, 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동세대 한국 작가를 발견하고 함께 나이 먹어가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젊은 작가들의 스펙트럼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요. 문장 자체에 집중하고 감성적으로 밀도가 높은 소설이 주였다면 요즘은 통계 자료를 토대로 글을 쓰는 작가도 있고, 전개가 아주 빠르기도 하고, 우주로 가버리기도 하고…. 다만 발견의 기회가 적을 뿐이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딱 맞는 독자와 작가가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해요. 좋아하는 작가가 모국어로 쓰는 문학을 읽으며 함께 나이 드는 일은 평생의 친구를 사귀는 것 같은 멋진 경험이거든요. 밤하늘에서 자신의 별자리를 찾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유쾌하고 뭉클한 독서의 경험을 통해 발견해낸 정세랑이라는 별자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

 

김종완 · 인테리어 디자이너
구호 플래그십 스토어, 인테리어 셀렉트 숍 인터로그, 베트남 레스토랑 안남, 프렌치 레스토랑 알테르 에고, 디저트 카페 오트뤼 등 인테리어 디자인.

니트는 르메르, 검은색 팬츠는 마가렛 호웰, 흰색 스니커즈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니트는 르메르, 검은색 팬츠는 마가렛 호웰, 흰색 스니커즈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한남동 구호 플래그십 스토어는 디테일이 빼어난 공간이다. 부드럽게 조형된 곡면, 타일이나 대리석, 우드 같은 소재의 적절한 조화, 옷을 무대 위 주인공처럼 비추는 조명, 그리고 가구를 밟고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중앙의 나무 계단, 이 모든 공간을 아우르는 윤택한 공기까지. 종킴 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종완 대표는 곡선적인 공간을 디자인한 사람치고는 놀랄 만큼 직선적으로 말했다. “모든 일은 다 돈과 연관되잖아요. 저는 디자이너의 철학, 나만의 색깔 같은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업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니까 중요한 건 내가 만든 공간에서 클라이언트가 돈을 잘 버느냐죠. 나를 발판 삼아 고객이 돈을 잘 벌게 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한 지 아직 2년이 되지 않은 그는 굵직한 클라이언트들의 프로젝트를 맡아, 전체적인 브랜딩까지 제시해가며 일하면서 신뢰를 쌓고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해갈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패트릭 주앙의 회사에서 브랜드 관련 팀장으로 일한 이력이 마케팅과 접목한 인테리어 디자인에 특장점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아직 주거보다는 규모가 작더라도 상업 프로젝트가 훨씬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브랜딩해서 성공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대기업뿐 아니라 주택을 개조한 카페 프리시즌, 강아지 호텔 하울팟, 로데오거리 갈빗집 같은 곳도 그의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다. 엇비슷한 한국의 인테리어 트렌드에서 그가 조금 다른 방식을 찾는 길은 기성 마감재가 아닌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 청자 타일, 유리 공예, 레진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공예 작가를 찾아내고 연결해서 협업을 시도하는 식으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또 한 가지 자긍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시공비의 몇 퍼센트 하는 식이 아니라 설계 디자인이나 피티 비용을 따로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과정이 투명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 더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모든 일은 다 돈과 연관된다’는 그의 이론에 따라서 확인해보자면,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다고 한다. 언젠가 맡아보고 싶은 클라이언트를 묻자 그는 뜻밖의 장소를 이야기했다. “청와대 귀빈실, 국빈 접객실 같은 곳을 디자인해보고 싶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이라고 해서 한지를 발라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동시대의 한국을 과거의 유산과 접목해서 미래 지향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흥미로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