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티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하이더 애커만을 임명했다는 뉴스에 패션계는 술렁였다. 최고급 가죽 브랜드로서 112년, 레디투웨어를 선보인 지 15년의 역사를 짊어지게 된 그가 남성복을 시작한 지는 이제 겨우 2년 반이 지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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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더 애커만

<W Korea> 벨루티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감회가 어떤가?
이제야 한숨 돌렸다. 사람들은 내가 벨루티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해했고,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나는 벨루티를 선택한 이유가 명확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선택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중압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컬렉션은 쓰레기, 어둠, 나무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다. 다소 독특한 소재인데, 이런 것들로 테마를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이번에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에서는 남성에게 어떤 애티튜드와 스타일을 부여하고 싶었다. 내게 벨루티의 남성은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해하려고 했고, 사람들에게도 어디에서 오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쇼의 시작을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연기가 자욱한 신비한 배경으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남성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수가 없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지난밤 연인과 사랑을 나눈 침대에서 걸어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새벽 5시 혹은 저녁 7시에 걸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번 의상들이나 콘셉트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궁금하다.
예를 들면, 캐시미어 트렌치코트도 있고 캐시미어 더블 코트도 있다. 이 코트를 아침을 먹을 때 입고 나가거나, 스니커즈에 매칭해 입고 조깅을 갈 수도 있다. 심플한 블랙 재킷이나 레드 크로커다일 칼라 장식을 덧댄 재킷도 있다. 매혹적으로 보이고 싶으면 레드 칼라를 달아서 입고, 그게 아닐 땐 또 떼서 입을 수도 있다. 자기가 원할 때 자기만의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거다. 나는 럭셔리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의 소중함, 그것이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고. 컬렉션에 그런 순간을 담아내려고 했다.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아주 천천히 걷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컬렉션에서 어떤 모델은 빨리 걷고 어떤 모델은 천천히 걷고, 그 사이로 여성 모델이 걷기도 했다. 다른 장치들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저 흐르는 음악 속에, 관객이 자신의 앞을 걸어 지나가는 모델만을 지켜보는 장면을 좋아한다. 나는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쇼를 보는 사람은 모델을 눈에 담을 수 있지만 그들은 결국 스치듯 지나가버린다. 잡을 수는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다.

이번 시즌 벨루티의 남자들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무드를 드러낸다. 하이더 애커만 특유의 반항적이고 섹시한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섹시한 남성이란 완벽하게 자유로운 남성이다. 매력적이지만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무심한 남성 말이다. 주목받고 싶어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지만 잡을 수 없는 그런 남성이야말로 섹시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한 마리의 새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벨루티와 하이더 애커만 두 브랜드의 남자가 지닌 섹시함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이더 애커만의 섹시함은 한마디로 아편과도 같다. 몽상가이자 방랑자이며 가둘 수 없는 남성, 신기루같이 몽환적이고 느긋하고 나른한 이미지의 남성이다. 반면, 벨루티의 섹시함은 반듯하고 바르고 확신에 찬, 매력적이지만 정도를 걷는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왜?’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여성복이 아닌 남성복을, 그것도 클래식한 하우스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을 한다는 것, 그 자체에 흥미와 매력을 느낀다. 벨루티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좀 의외긴 했지만 흥미로웠다. 벨루티 사람들을 만나면서 확신이 커졌고, 어느 순간 내가 준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준비되지 않았을 때 받는 제안이야말로 정말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내 일과 삶이 그랬듯이 말이다. 여성복을 전문으로 했던 내게 남성복 분야는 분명 도전이지만, 나는 도전이 필요하고, 기꺼이 도전에 응할 것이다.

하이더 애커만은 젊은 층에게, 벨루티는 좀 더 나이가 있는 층에게 사랑받지 않나. 두 브랜드 사이의 간극이 꽤 크게 느껴지는데, 일을 겸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는지.
벨루티는 내가 지향하는 바를 비추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원하는 남성 이미지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어 그런 어려움은 없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며 성숙해가고 있으니까. 벨루티 맨의 이미지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오랜 역사의 빅 하우스들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며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전통의 브랜드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벨루티라는 하우스를 특별히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브랜드 코드를 연구하고 이해하고 유구한 역사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는 그저 그 안을 걷는 사람이다. 주변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나를 매료시키는 아이템을 찾아 컬렉션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고자 한다. 남성 카테고리에만 국한된 제한적인 컬렉션을 열고 싶지는 않다. 더욱 현실적인 컬렉션으로 패션에도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가져오고 싶다.

그렇다면 벨루티에서 당신을 디렉터로 임명하며 기대하는 변화는 무엇일까?
글쎄, 내 생각에 나보다 적임자라고 생각한 다른 디자이너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맡게 되었고 벨루티와 내가 서로 맞는 어떤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15년이 넘는 남성복 역사의 벨루티가 이제 겨우 2년 반 경력의 나를 선택한 것은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첫 단추를 꿰었다. 당신과 벨루티에게 2017년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당연히 컬렉션이 발전하고 더불어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것이다. 벨루티는 내게 컬렉션의 자유를 주었다. 따라서 나는 컬렉션과 비즈니스 둘 모두 완벽하게 해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