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쟁점을 국내 번역 출간 전에 미리 살폈다.

 

일본에서 ‘문학의 종언’이 운운된 지 벌써 오래다. 이제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문학이 화젯거리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가 7년 만에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낸다는 소식을 출판사가 발표하자마자 저녁 뉴스에 보도되었고, 출간일인 2월 24일에 는 자정부터 도쿄 대형 서점인 키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에서 일본 하루키스트들이 줄을 섰다. 출시되기 전부터 증쇄를 찍었다는 뉴스로도 화제가 된 이 소설은 전후편을 합쳐 무려 130만 부나 판매된 상황이다.
초상화가로 이름난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는다. 당황한 그는 무작정 동일본 지방을 몇 개월 동안 헤매다가 자동차가 고장나 도쿄에 돌아온다. 아내와의 대면이 껄끄러운 그는 치매 상태에 있는 친구 아버지가 혼자서 살고 있던 산골집에서 지낸다. 집 안에서 친구 아버지가 옛날에 그리다가 숨겨둔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는데, 그 그림의 제목이 바로 ‘기사단장 죽이기’다. 그림 발견 직후부터 주인공 주변에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한밤중에 어디선가 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의 발신지를 따라가니 집 뒤의 돌무지 무덤 속에 방울만 하나 놓여 있는 식이다. 그날 밤 의문에 싸인 주인공 앞으로, 그림 속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하루키 작품 가운데 자주 등장해온 중년 남성의 위기, 판타지적 요소와 추리물의 서사 양식 등이 발견되는 이 소설에 대해 ‘집대성’이라는 극찬과 ‘기시감’ 내지 ‘자기 모방’이라는 혹평이 갈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문학적 평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을 격렬히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소위 우익 계열에서 이 소설 안에 나오는 난징 대학살에 대한 기술을 문제 삼은 것이다.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의 입을 빌려 당시 일본군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이 40만 명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 발언이 학살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우파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베스트셀러 <영원의 제로> 작가인 햐쿠타 나오키는 “노벨 문학상을 타기 위해 중국에 어필하려는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또 기타무라 미노루 리쓰메이칸 대학 명예교수는 “무슨 근거로 40만 명이라는 숫자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고 “하루키가 워낙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작가인지라 앞으로 중국이 이 대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타무라 자신이 지적하듯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말한 대사”이며 그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시비를 거는 일은 지엽적인 논의로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주인공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자신이 여행한 장소가 많은 피해를 입는 걸 TV에서 목도하는 후일담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비평가 사토 미키오가 말하듯이 이 소설에는 3•11 이후의 세계에 대한, “거대한 폭력이나 악을 경험한 후, 우리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루키 자신이 노벨 문학상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을 생각해도 그렇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