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는 갔지만, OST는 남아 있다. 드라마를 떠나보내기 싫은 이들에겐 공감각적인 처방전이다. ‘뽕 발라드’를 넘어 다채로운 장르를 쏟아내며 음원 시장의 한 축으로 부상한 OST, 그 현재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OST의 神, 연주곡에서 가창곡으로
흥미로운 설정과 화려한 연출로 첫 회부터 화제를 낳은 tvN <도깨비> 시청률은 6.5%로 시작해 3회 만에 12.5%를, 최종회에 이르러 22.1%를 찍었다. 케이블방송 사상 가장 높은 숫자다. 평균 시청률은 20.5%로 같은 방송사의 <응답하라 1988>과 <시그널>도 훌쩍 뛰어넘었다. OST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방송일까지 기다리는 시청자를 드라마의 자장 안에 머물도록 붙잡고, 드라마가 끝난 후엔 여운으로 작용한다. 멜론을 비롯한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있는 <도깨비> OST는 드라마 종영 후에도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크러쉬의 ‘Beautiful’, 찬열과 펀치의 ‘Stay With Me’를 비롯해 소유, 샘김, 어반자카파, 정준일, 정승환 등이 참여한 곡 모두 그렇다. 자이언티, 레드벨벳, 블락비 등의 신보가 발표될 때면 잠시 흔들렸던 차트 1위도 이내 탈환하는 OST의 저력. <도깨비> OST를 담당한 CJ E&M OST 팀은 성공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음악을 다시 들었을 때 드라마에서 음악이 삽입된 장면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를 만큼, 드라마와 음악이 강한 시너지를 발휘했어요. 크러쉬의 ‘Beautiful’을 들으면 공유가 우산을 들고 있던 신이,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들으면 검을 뽑는 장면이 생각나는 것처럼음악과 영상 간의 케미스트리가 잘 어우러졌죠.” 김신과 지은탁, 저승사자와 써니의 엇갈림에 발을 동동 구르던 시청자들이 음악을 들으며 지금껏 그 설렘을 곱씹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음악과 영상의 절묘한 싱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연출가와 음악감독 간의 긴밀하고 유연한 협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2016년 KBS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이라는 초유의 OST 히트작을 이끌어낸 음악감독 개미가 힘주어 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연출가와 사전 회의를 통해 대본을 분석하고 어떤 음악이 어울릴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해요. 사전 제작된 <태양의 후예>는 16부작의 그림이 모두 그려져 있는 상태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한 만큼 성과가 좋았어요. 어떤 곡을 어떤 회차에 붙일지 의논하고 결정한 뒤, 음악에 맞춰 편집을 다시 하는 경우까지 있었으니까요.” <태양의 후예>의 경우 모든 음원 출시일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가창곡뿐 아니라 연주곡도 장면마다 매끄럽게 붙도록 고심해서 배치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OST에서는 연주곡과 가창곡이 분리되는 모양새가 지배적이었다. 말하자면 음악감독은 주로 연주곡을 담당하고, 가창곡은 OST 제작사에서 톱 가수를 기용해 따로 만들어오는 방식. 가수의 인지도를 활용해서라도 제작비를 최대한 안전하게 회수하길 원하는 OST 제작사의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래를 잘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도 드라마에 딱 들어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음악은 몰입을 방해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시청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피로감이 쌓이고, OST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드라마를 위해 음악이 있는 것이지, 음악을 위해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 개미 감독은 <태양의 후예>와 한 몸처럼 떠오르는 거미의 ‘You Are My Everything’,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의 ‘내 사람’을 직접 쓴 장본인이다.
찬열과 펀치의 ‘Stay With Me’를 시작으로 헤이즈와 한수지의 ‘Round and Round’까지, 디지털 싱글 형태로 발매된 <도깨비> OST는 모두 가창곡이다. 예전 드라마 음악의 절반 이상이 등장인물의 이름을 빌린 ‘~의 테마’와 같은 연주 음악이었음을 떠올릴 때 엄청난 변화다. 드라마 곳곳에 삽입된 연주곡, 즉 ‘스코어’들은 CD라는 피지컬 음반 형태로 한데 모여 발매됐다. 누군가가 드라마의 연주곡을 다시 듣고 싶다면 음반이 발매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말이다. “요즘 드라마 OST는 노래 위주로 가고 있어요. 물론 연출가와 음악감독, 작품의 성향에 따라 스코어를 중시하는 작품도 있고요. 하지만 부가적으로 음원 수익을 내기에는 스코어보다 가창곡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2014년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으로 수출되면서 드라마뿐 아니라 ‘My Destiny’를 비롯한 OST도 큰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OST 제작비에서 가창곡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제작비가 넉넉지 않은 드라마 측에서 스코어를 만들 때 예산이 많이 드는 오케스트라 대신 미디 작업만으로 하기도 해요.” 가요, 영화, 뮤지컬, 방송,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작곡가 이웅의 말이다. 스코어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장면의 분위기를 고조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전반적인 색깔은 스코어로 잡아간다’고들 해도, 그 곡이 음원으로까지 발매되는 경우는 적다.
가창곡 위주의 OST 대부분은 곡이 삽입된 해당 회차가 방송된 당일 디지털로 발매된다. 일명 ‘쪼개기’ 식 발표다. 드라마에 쓰인 음악을 죄다 그러모아 한 장의 앨범으로 내놓던 음반 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음원 위주로 돌아가는 시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일 방송에서 나온 음악이 바로 그날 발매되느냐’ 여부가 직접적으로 차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도깨비> OST의 경우 외국곡인 라세 린드의 노래를 포함해 총 16개 곡이 한 주에 한두 개씩 풀렸다. Part 1, Part 2… 차례대로 풀린 OST는 드라마 종영일에 이르러 Part 14까지 발표되며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개미 감독이 말한다. “새로운 음악이 방송에 등장한 당일, 해당 곡을 발표해놔야 합니다. 그래야 반짝 이슈가 되든, 음원 차트 100위 안에 들든, 최소한의 가능성이 생겨요. 요즘처럼 매일 새로운 음원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언제 어떤 노래가 나왔는지 아무도 모르게 묻혀버리기 십상이죠. 음악 팀은 힘들게 작업한 곡이 행여 편집 과정에서 빠지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하고요. 제작진 입장에서는 연출에 맞지 않는 곡을 억지로 틀 수도 없으니 서로 실랑이의 연속입니다. 중요한 건 방송과 발매 간의 흐름과 호흡이 잘 맞아야 시청자의 귀에 안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음원 시장의 한 축
한동안 ‘OST 흥행 공식’에는 몇몇 가수의 이름이 포함됐다. 거미, 린, 백지영, 성시경, 김범수 등이다. OST 퀸과 킹의 존재감은 변함없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이제 더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에는 거미, 성시경, 소유, 베이지, 황치열, 케이윌, 백지영, 에디킴, 이적 등이, SBS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는 엑소 첸, 다비치, 태연, 에픽하이, 백아연, SG워너비, 이하이, 정승환, 악동뮤지션 등 다양한 가수가 참여했다. 이 두 작품이 함께 방영되던 시기와 그 전후로는 다른 드라마의 음악 팀이 섭외할 수 있는 가수가 없었다는 업계의 볼멘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어떤 드라마가 한 주에 딱 한 곡씩만 내놓는다고 해도, 온갖 채널에서 물량 공세를 하는 드라마의 편수를 생각하면 발표되는 음원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드라마 한 편에 투입되는 가수가 많아지고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가 부르면 성공한다’는 법칙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 등에 참여한 작곡가 김세진이 덧붙인다. “무조건 폭발적으로 가창하는 것, 검증된 가수를 쓰는 것보다 인기와 상관없이 색깔 있는 뮤지션을 다양하게 참여시키는게 중요해졌어요. 독특하고 신선한 가수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가 됐죠. 아이돌 그룹 멤버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 OST에 참여하고, 발라드뿐 아니라 힙합과 R&B 등으로 OST 장르가 확장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대중의 눈과 귀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요즘 OST 담당자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우는 장면이라고 해서 슬픈 노래만 까는 단순한 발상을 할 수가 없다. 장면이 지닌 감정선을 섬세하게 받쳐주는 세련된 음악만이 시청자의 공감을 산다. 김세진 작곡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 삽입된 ‘내 사람’의 성공이 쉽게 얻어진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보검이라는 인기 절정의 배우가 불렀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죠. 하지만 가수가 아닌 배우가 노래한 곡이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인기 많은 배우는 쉽게 노래한다’는 편견을 깨고, ‘박보검이 노래도 웬만큼 하는구나’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주연 배우의 서비스 차원이 아닌, 완성도 있는 한 곡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발라드’일지 몰라도 부르기 쉽지 않은 노래예요.” 작곡가는 이 노래를 작업하며 맨 처음 잡은 콘셉트를 엎기도 하고, 멜로디를 수정하는 데만 꼬박 10일을 보냈다. 현재 국내 음원 시장에서 소위 ‘돈이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아이돌 음악, 또는 드라마 OST. 상황이 이러니 폭넓게 활동하면서 충분히 수익을 내고 있는 작곡가라 해도 드라마 OST는 늘 입성하고 싶은 꿈의 분야다. 적재적소에 자신이 만든 곡이 쓰여 드라마와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성취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는 데서 오는 뮤지션으로서의 만족감, 여기에 저작권료 보장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드라마 OST에 한 곡이 삽입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드라마 총괄 음악감독은 한 편의 드라마를 위해 수없이 많은 곡을 수집하고 들어본다. 제작진은 단 한 곡을 채택하더라도 작곡가에게 수정을 요청할 수도 있고, 채택한 곡을 편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빼기도 한다. 드라마에 삽입되지 않은 곡이 나중에 따로 발매될 때는 바로 그런 경우다. 수많은 드라마와 음원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서 OST 시장이 딱히 커진 것은 아니다. ‘터지는’ 작품은 1년에 1~2편, 많아야 4편 정도에 그친다. 들이는 제작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어려운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그 많은 OST 중에서 대중에게 인식되는 곡의 수는 매우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이쯤 되면 위험 부담이 큰 경쟁에 너무 많은 인력과 돈과 시간이 투입되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쏟아붓는 것에 비해 성과를 올리는 경우는 소수이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쌓이는 것은 아닐까? 기왕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보다 자주, 보다 많은 음원을 발표하길 원하는 투자자도 등장할 법하다.
의심의 싹이 트는 한편에서, OST 시장에 관한 고무적인 사실 역시 점점 견고해지고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 책임감 있는 마인드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전문가가 늘어나고, 그들로 이뤄진 전담 팀도 꾸려진다. CJ E&M이 OST 제작팀을 아예 따로 구성한 것도 그중 하나다. “OST 팀의 역할은 드라마의 재미를 극대화하고 드라마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OST를 제작하는 일이에요. 연출, 작가, 음악감독, 프로듀서와 긴밀히 협업해서 드라마에 어울리는 음악, 특히 가창곡을 만드는 것부터 유통, 마케팅, 홍보, 음반 제작 등 OST와 관련한 모든 업무를 진행해요.” 다시 말해 뻔하디뻔한 공식을 답습하며 안일하게 만들어지는 ‘억지 뽕 발라드’ 식 OST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 흐름이면 언젠가 해외에서 ‘K팝’이라고 할 때 한국 드라마를 떠올리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요즘 OST야말로 다른 어떤 K팝보다 치열하게 만들어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