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러시 속에서 눈길 가는 점 하나. 영화는 그때 그 영화지만, 포스터의 감성은 달라졌다.

<델마와 루이스>
여성 버디 무비의 고전이자 갓 데뷔한 브래드 피트의 어설픈 연기를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국내에서 1993년 개봉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이니, 현재 40대로 접어든 사람조차 이 작품을 극장에서 못 보고 비디오로 접했다는 뜻이다. 과거 할리우드 키드들에게 그랜드캐니언의 결정적 이미지를 안겨준 엔딩 장면은 필히 스크린으로 봐야 마땅하겠다. 3월 1일 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1차 특별 포스터는 일러스트레이터 황정호가 그렸다. ‘2030 여성 관객’을 타깃 삼아 아기자기한 비주얼을 선보이고자 한 영화사의 의도. 예쁘면서 쓸쓸하다.

<라빠르망>
1997년 당시에는 ‘사랑의 열병’이라는 카피가 X세대에게 먹혔을지 몰라도, 21세기엔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의 얼굴을 내세우는 게 더 효과적이다. 모니카 벨루치가 가장 아름답게 나온 작품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이 영화 아닐까? 어긋나는 연애 여정을 감각적으로 담은 <라빠르망>은 할리우드에서 조시 하트넷 주연의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로 리메이크됐고, 재밌게도 이 리메이크작이 지난 연말 먼저 재개봉했다.

<아무도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4남매의 담담한 시간, 그걸 지켜보던 관객의 먹먹한 마음. 이 영화를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영화사는 재개봉에 맞춰 메인 포스터 외에도 일러스트 버전, 남자 주인공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을 쓴 버전 등 몇 가지 특별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그중 ‘벚꽃’ 버전이 가장 아련하다. 2004년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기라 유야가 학교 시험 기간이라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귀여운 일화도 다시금 떠오른다.

<패왕별희>
1993년 이래 많은 이들을 아득하게 만들며 장국영이라는 인장을 선명하게 새긴 영화. 그 시절에도 드물게 대단히 절제된 디자인의 포스터를 선보인 점이 놀랍다. 고 장국영 14주기에 맞춘 재개봉 일(3월 30일)을 앞두고 공개된 아트 포스터는 단 한 장면에 영화의 정서를 담았다. 화려한 장신구와 치켜 올라간 눈 모양 분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슬픈 눈빛, 거기에 얹힌 강렬한 빨강 글씨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기 전에 예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제리 맥과이어>
이 작품을 혹시 ‘친절한 톰 아저씨가 잘생김을 연기하고 있는 오락 영화’ 내지 ‘처음 보는 신인 르네 젤위거가 무려 톰 크루즈 상대역으로 나와 황당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면, 다시 봐야 한다. <제리 맥과이어>의 메시지는 재개봉 포스터의 메인 카피인 ‘당신의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1996년 포스터엔 남자 혼자였지만, 이제는 둘이다. 마음 맞은 두 사람이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대문 앞 조명 때문에 보송보송한 화면이 연출되던 바로 그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