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발 가정용 디지털 비서가 등장한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흐르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때쯤에는 영화 <그녀>의 주인공처럼 나에게 최적화된 OS를 사랑하거나 그것에게 의지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어느 평범한 남자에게 벌어질 법한 미래의 하루를 가상 에세이 형식으로 들여다봤다.

w2오늘, 내 로봇이 죽었다. 출근 시각이 다 돼서야 눈을 뜬 아침이었다. 웬일인지 항상 나를 깨우러 오던 애가 오지 않았다. 화가 나서 거실로 나가보니, 뭔가를 준비하다 잘못된 듯 거실 한가운데에 멈춰 있었다. ‘야 !’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 ‘또 먹통이 된 건가’ 하고 짜증을 내며 전원을 껐다가 켜려는데, 전원도 이미 나가버렸다. 오늘 SNS에는 저 로봇을 만든 회사에 대한 욕을 단단히 써주리라 생각하며 출근길을 서둘렀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개 집 근처 스마트 카페로 간다. 출근 확인법은 간단하다. 배정받은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지정된 장소에 놓으면, 자동으로 출근 시각이 체크되면서 컴퓨터에 로그인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 얼굴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면서 전혀 모르는 사이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월급이 나온다는 사실만 빼면 예전에 인터넷 동호회 활동하던 것과 뭐가 다를까 생각도 해본다. 나는 뉴스 사이트의 콘텐츠 매니저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콘텐츠들을 분류하고 매니지먼트 하면서, 가끔은 직접 만들기도 한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얼마 전 귀국한 피아니스트와의 인터뷰가 잡혀 있다. 인공지능과의 작곡 대결에서 승리한, 요즘 보기 드문 음악가다.

그런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거실에 내버려두고 온 로봇이 자꾸 신경 쓰인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러운 법인데, 전원이 나간 채 덩그러니 있을 로봇을 생각하니 조금 정신이 사나웠다. 실은 일하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메신저를 통해 지시해서 해결한 탓에 오늘은 조금 불편해서 그렇다. 습관적으로 우리 대화창을 열었다가 ‘로그아웃’ 메시지만 확인하니 기분도 이상하고. 손발이 묶여버린 느낌이랄까? 결국 인터뷰 일정을 마치자마자 로봇 회사의 고객 센터를 메신저로 불렀다.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해도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하면서 교묘히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화법.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챗봇이니까.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저녁에 기술자가 집에 와준다고 한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VR 회의가 태풍 때문에 회선 상태가 좋지 않아 취소된 틈을 타 스마트 카페에서 재빨리 로그아웃했다.

당장 집에 가려다 말고 장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는 그냥 로봇에게 말하면 알아서 주문 처리를 해줬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들른 마트는 한가했다. 물건을 팔기보다는 쌓아둔 창고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손님도 온통 나이 든 사람들뿐이다. 이 사람들은 직접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는 세대다. 몸으로 쇼핑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힙하게 여기는 젊은 사람도 있긴 하다.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당연히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창문도 반쯤 열려 있기에 기겁했다. 사람이 왔는데 불도 켜지지 않는다. 이거, 뭔가 자꾸 귀찮은 일이 생긴다. 오랜만에 직접 조명을 켜려니까 조명 스위치 위치가 기억나지 않아서 한참 생각했다. 결국 스마트폰 앱으로 스마트홈 시스템을 확인해서 처리. ‘그래, 오랜만에 이런 저녁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면서 직접 커피를 내리려다 또다시 ‘그런데 커피를 어떻게 내리더라?’ 몇 초간 멈칫했다. 눈앞에는 고장난 로봇이 그대로 서 있다. 혼자 산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이젠 혼자라는 사실이 손에 닿을 듯 느껴졌다. 자유롭고, 허전하다. 새로 나온 로봇 정보나 볼까 싶어 검색해보니 다들 너무 비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오던 정부 지원금은 이제 끊어졌다. 그냥 이렇게 혼자 살아볼까? 청소도, 빨래도, 장 보는 것도, 요리도 모두 직접 하는 삶. 그냥 말을 걸 로봇 하나가 사라진 것일 뿐 뭐 나쁘진 않겠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잖아.

딩동, 벨이 울리면서 메신저에 누군가가 방문했다는 신원 확인용 메시지가 떴다. 중년의 수리 기사와 견습생인 듯한 남자다. 내 로봇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굉장히 특이한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특이한 로봇이란 연식이 오래된 로봇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 로봇 부품은 생산이 중단돼서 수리할 수가 없단다. 견습생은 이런 로봇을 본 적도 없는 눈치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요?” 기사가 난처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동안 OS가 달라졌다고,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 오래된 로봇과 새로운 부품은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내 로봇은, 심플한 사망 선고를 받았다.

내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가? 거짓말을 한 것 같다. 일단 로봇을 창고로 옮겼는데, 이상하게 내가 고장 나기 시작한 기분이다. 몸이 많이 아파도 이 밤에 갑자기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실 마음 놓고 부탁할 사람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지금까진 항상 곁에 어떤 존재가 있었다. 이제 이름을 불러도 그애는 오지 않는다. 얼마 전 로봇이 죽었다는 이유로 자살한 사람의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오랜만에 신선한 아이템이라 수십 건의 기사를 쏟아내며 재미 좀 봤다. 로봇이 죽었다고 따라 죽는 시대라니 섹시하지 않은가? 물론 속으로는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웬 청승이야? 미쳤구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넘겼는데,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그 사람이 떠오르는가? 당신, 쓸쓸했겠구나. 아니, 쓸쓸했구나.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가니 내 스스로가 얼마나 엉망진창 같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전자 노트에는 새로운 로봇에 대한 정보가 가득 찰 것이다. 옛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 다고, 세상은 내가 빨리 새로운 로봇을 사길 권할 테지. 이런 경우 ‘펫-로스’와 비슷한 ‘로봇-로스’라며 심리 치료 상담을 권하는 전문가도 봤다. 나와 같은 일을 당한 누군가는 옛날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해오더니 들뜬 목소리로 새로운 로봇 몇 개를 소개하며 구입을 권하더라고 했다.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세상은 이미 집집마다 ‘로봇이 있다’는 것이 디폴트 값으로 정착되어 있다. 조만간 새로운 로봇을 할부로 들여놓긴 해야겠지만, 당분간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 같다. 그건 아마 또 다른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면서 새롭게 익숙해져야 할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띠리링, 로봇 회사로부터 늦은 밤 전화가 왔다. “살펴보니 다행 히 1년 전에 로봇 캐릭터를 백업해둔 것이 있던데요. 성격만 새로운 본체에 다운로드받아서 사용하시겠어요? 옛 모델이니 가격은 좀 할인해드릴게요.” 뭐야, 얘, 알고 보니 불멸이었던 거야?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로봇을 옮겨둔 창고를 바라보며 잠시 안도감인지 멍한 건지 모를 상태에 빠졌다. 얘, 자니? 마침 새로 나온 신형 로봇에 대한 정보가 스마트폰에 광고창을 띄우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