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화려한 패션 신의 한가운데에 소박하게 자리했던 사진가 빌 커닝햄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625일, 여든일곱의 나이로 이별을 고한 빌을 추모하다.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꼭대기엔 빌 커닝햄이 자리한다. 1970년대부터 그레타 가르보를 비롯한 패셔너블한 여인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스트리트 사진계의 조상님 격인 유일무이한 존재. 맨해튼의 이스트 57 스트리트와 5번가의 코너는 빌 커닝햄이 무려 50여 년 동안 낡은 자전거를 타고 나와 수많은 패션 모멘트를 포착한 곳이다. <뉴욕 타임스>의 일요일 고정 칼럼인 ‘온 더 스트리트’에 담긴 뉴요커의 패션은 빌을 단순히 스냅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가 아닌, 뉴욕의 삶을 가장 생동감 있게 담아내는 도시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빌 커닝햄, 스타일의 정수와 뉴욕의 영혼을 유일하게 포착한 사진가’라는 문구와 함께 특별 추모판을 인쇄했다. 그리고 지난 6일, 뉴욕시는 빌을 기리는 의미로 5번가의 루이 비통 부티크 옆길을 ‘빌 커닝햄 코너’라 부를 것이라 발표했다. 버그도프 굿맨 역시 빌 커닝햄의 파란 재킷이 떠오르는 블루 쇼윈도에 작은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타던 자전거와 실제로 사용한 니콘 카메라에선 자전거 사고로 다친 다리를 이끌고도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언가를 꼭 찍겠다는 계획을 하고 사진을 찍지는 않아요. 길 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도록 지켜볼 뿐이죠.” 즉흥적인 영감과 사진에 관한 빌의 철학은 추모 쇼윈도에 새겨져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984년, 커닝햄은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온전히 제 자신을 위해 사진을 찍어요. 제가 피사체의 그림자를 훔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인지 사진을 팔지 않아야 죄책감이 덜하다는 생각을 하죠”라고 말했다. 실제로 빌은 자신이 찍은 막대한 양의 사진 대부분을 공개하거나 팔지 않았는데, 사진을 대하는 그의 애티튜드는 상업화된 스트리트 사진의 혼돈 속에서 희미해진 진정성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들의 그림자를 훔쳤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림자가 되기를 자청한 건빌 자신이었다. 가득한 단칸방 같은 아파트에 살고, 언제나 파란 재킷, 카키 팬츠 차림의 단벌 신사였던 빌은 “피사체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사진 찍히는 걸 의식하지 않도록요! ”라며 화려한 패션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길 위나 파티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진을 찍는 데 모든 것을 바쳤다. 빌 커닝햄과 뉴욕 패션의 역사를 써온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는 “빌은 특별히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내는 사진가예요. 그가 어떤 사진을 찍을지 예측할 수가 없었죠”라며 그를 추억한다. 패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공유했던 아이리스 아펠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RIPBillCunningham’이라는 짧은 해시태그와 함께 며칠 동안 그의 모습을 특별한 말 없이 포스팅했다. 패션과 삶에 대해 고집스러우리만큼 한결같았던 빌 커닝햄. 그의 빈자리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패션계에서 모두가 찾아 헤매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