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배우처럼

임예성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은 느슨하게 스치고 겹쳐지는 네 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다. 시스타의 멤버 다솜이 아닌 배우 김다솜의 표정을 그 안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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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퍼드 원피스는 CH 캐롤리나 헤레라 제품.

“오히려 잘됐어요. 덕분에 핼쑥해졌거든요. 사진은 말랐을 때 찍어야 잘 나오잖아요.” 음식 때문에 탈이 나서 이틀을 앓았다길래 조심스레 상태를 살폈더니, 김다솜이 걱정 말라는 듯 씩씩하게 답했다.
오늘 그는 가수가 아닌 배우로서 더블유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1월 중순에 개봉하는 신연식의 <프랑스 영화처럼>은 단편 넷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다. 김다솜은 그 가운데 두 편의 에피소드에서 주연을 맡았다. <맥주 파는 아가씨>에서는 남자들의 애정 고백에 시달리는 바의 점원으로 등장한다. 표제작인 <프랑스 영화처럼>의 기홍은 상대역인 신민철을 꾸준히 혼란스럽게 만드는 애매한 이성 친구다. 둘 다 속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짐작으로 채워 넣으며 읽어야 할 여백이 많은 인물이다. 시스타 멤버로서 춤과 노래를 소화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고 TV 드라마에서 맡아온 밝은 캐릭터들과도 거리가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다양한 작품을 접한 그는 늘 영화 작업이 궁금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기 보다는, 막연하게 영화가 ‘되고’ 싶었어요.” 사진 촬영을 준비하며 참고한 건 장 뤽 고다르의 뮤즈였던 안나 카리나의 젊은 시절 이미지들이었다. 물론 <프랑스 영화처럼>이라는 작품 제목에서 힌트를 얻었다. 첫 영화에서의 연기가 기대 이상이더라는 인사를 건네자 김다솜이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편집의 힘이에요.” 그는 <타짜>의 정 마담처럼 강한 캐릭터에도 욕심이 난다고 했다. 몇몇의 예를 더 대고도 추가할 사람이 남았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갑자기 배우 이름을 잊었어요. <여인의 향기>에 출연한…” 탱고신의 가브리엘 앤워를 말하는 걸까? “알 파치노요. 그 영화에서 맹인으로 등장해요. 세상에는 아름다운 게 정말 많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볼 수 없는 삶에 대해 가끔씩 생각하게 돼요.” 김다솜과의 대화는 종종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샛길로 흐르곤 했다. 이 신인 배우는 선입견에 뻔하게 갇히지 않는 의외의 표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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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케이프는 돌체 & 가바나 by 분더샵, 반지는 수엘 by 마이분 제품.

W Korea 앓고 난 뒤라 오늘 촬영이 쉽지 않았을 거다.
평소에는 체력이 괜찮은 편인가? 김다솜 약하다. 시스타 막내인데도 언니들보다 체력이 떨어진다. 행사 무대에서는 보통 네 곡 정도를 소화한다. 솔직히 나는 두 곡 마치면 숨이 차서 멘트가 어렵다. 그런데 언니들은 나처럼 힘들어하질 않는다. 그래서 나의 2016년 목표 중 하나가 기초대사량을 키우고 튼튼해지는 거다.

연기할 때도 체력은 중요하다. 일일 드라마 출연 당시에 고생을 좀 했겠다.
좋아서 하는 연기니까 과정 자체는 즐거웠다. 몸이 힘들었을 뿐이다. 8개월 정도 촬영을 했더니 막판에는 입 안이 다 헐었다.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운동도 하고, 비타민도 챙기고, 식습관도 바꾸고.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할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다. 스물셋이 이런 소리 하니까 좀 그렇다.

첫 영화 출연작인 신연식 감독의 <프랑스 영화처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작품인가?
원래부터 영화에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볼 만한 작품이 있을지 회사에 문의를 드렸다.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쪽에서 기회를 찾아보자는 의견을 주시더라. <프랑스 영화처럼>이 처음으로 오디션을 본 작품이다.

영화 현장은 TV 드라마 촬영장과 어떻게 다르던가?
상대적으로 영화는 진행이 여유로운 편이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워낙 스케줄에 쫓기다 보니 제대로 모니터링을 해본 적이 없다. <프랑스 영화처럼>은 내 연기를 꼼꼼히 확인해가며, 또 감독님과 이것저것 의견을 교환하며 찍은 작품이다. 신연식은 배우와 대화를 많이 하는 연출자로 알고 있다. 모든 감독이 그렇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직접 시나리오까지 쓰셨기 때문에 연기자 입장에서는 꼼꼼하게 의논하기가 편했다. 말씀이 좀 어렵긴 하다. 이야기가 정말 철학적이고….

<맥주 파는 아가씨>에서 이런 대사를 한다. “평범한 삶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극 중 캐릭터가 아닌 김다솜의 생각은 어떨까? 충분히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 같나? 아니면 평범한 삶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 같나?
(한참 생각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평범하지 않은데 나 자체는 너무 평범하다. 나는 그냥 집 근처에서 장 보고 공원에 가서 산책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알아봐주시는 분을 만나고 사인을 부탁받거나 사진을 찍히곤 한다. 나는 평범한데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꽤 자주 놓인다. 솔직히 가끔은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크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셈 아닌가? 그러면서도 내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 괜찮은 것 같다.

신연식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다솜 씨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전해 들었다. 다들 너무 좋은 분들이다. 게다가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누구나 그런가?
현장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했나 보다. 즐거웠다. 그리고 ‘배우님’이라는 말을 듣는 게 정말 어색했다. 드라마 현장은 다르다. <별난 며느리>에서 내 캐릭터 이름이 ‘인영’이었다. 내 차례가 되면 이렇게들 외치신다. “인영! 인영 오세요!” 그런데 영화 현장에서는 “배우님!” 이러는 거다. 난 너무 웃긴데 다들 그 호칭을 당연하게 사용하시더라. 여러모로 유쾌한 분위기였다. 방송 현장처럼 일정이 촉박하지도 않았고, 도시락 대신 맛있는 밥도 먹고… 그래서 좋았다(웃음).

스트랩 장식의 스웨이드 미니 드레스는 에밀리오 푸치 by 분더샵, 반지는 수엘 by 마이분 제품, 베레모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트랩 장식의 스웨이드 미니 드레스는 에밀리오 푸치 by 분더샵, 반지는 수엘 by 마이분 제품, 베레모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돌 출신 중에도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예는 이미 많다. 그래도 모종의 선입견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아이돌이니까 과감하거나 어둡거나 센 연기는 피할 거야’라고 지레 짐작한다거나.
시간을 두고 계속 좋은 연기로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을 거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무렵, 작품 방영 전부터 나에 대한 악플이 많았다. 그때 친구들에게 이랬다. “난 틀렸나 봐. 이런 선입견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런데 열심히 하면 조금씩, 서서히 인정을 해주는 것 같더라. <별난 며느리> 때도 캐스팅 발표 즈음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다. 겁도 났지만 이왕 결정한 거 진짜 재미있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덤볐다. 그러니까 칭찬이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기뻐서 혼자 울었다. 하는 만큼 알아주는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 다짐도 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이 누그러진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신선한 느낌은 부족하니까 그 역시 극복할 부분이다. 아이돌은 워낙 이미지 소비가 많은 편이다.

영화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
<프랑스 영화처럼>이 개봉되면 배우 김다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또 달라질 것 같다.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경험이나 쌓자는 기분으로 출연한 단편들인데 이렇게 극장 상영까지 하게 됐다. 사실 원래는 거의 단관 개봉 예정이었다. 친구들이 물어오면 “1월 14일 개봉인데 상영관이 많지는 않아. 보려면 홍대 앞 OO극장으로 와야 해.”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국 50개관으로 늘었다는 거다. “어, 전국 50개관 확보했으니까 아무 데서나 봐.” 사람들에게 이러면서 너무 즐거워하고 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사하다 보니, 사소하지 않게 감사할 큰일들이 많이 생긴다. 정말 좋다, 요즘.

팀으로 활동하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멤버끼리 주고받는 영향이 크겠다.
조언을 자주 나눈다. 사실 내가 하는 고민 가운데는 연예인이 아닌 친구들에게는 잘 와 닿지 않을 만한 것도 많다. 그런 부분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가족과 멤버들이다.

이번 영화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이 많이 궁금할 것 같다.
시사회 때 보러 온다고들 했다. 궁금하긴 한데 아마 언니들은 또 좋은 말만 해줄 거다. 나 행복하라고.

영화 제목이 <프랑스 영화처럼>이다. 혹시 프랑스 영화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을까?
나는 미국 영화 좋아하는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팬이다. 사실 타란티노를 좋아한다고 하면 종종 성향을 의심받기도 한다. 작품들이 폭력적인 편이니까. 연출이 좋은 거지 잔인한 걸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타란티노 영화 중에서 하나를 꼽는다면?
<킬 빌>. 그런데 다른 작품도 다 재미있게 봤다.

우마 서먼의 브라이드 같은 액션 연기에도 욕심이 있나?
물론이다. 아직 자신은 없지만. 사실 웬만한 장르는 다 해보고 싶다. 액션, 멜로, 코미디, 스릴러, SF, 사극도 궁금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 좀 많은 편이다. 아,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제임스 캐머런의 <타이타닉>이다.

책에서(2월호)

에디터
정준화
포토그래퍼
박종원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김석원
헤어
하나 (에이 바이 봄)
메이크업
박선미 (에이 바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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