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거할 집을 스물 다섯에 샀으면서도, 생애 첫 소설은 마흔세 살이 되어서야 내놓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주소는 변함없이 파리 외곽의 작은 마을.혹시라도 노벨상을 받게 되면 자신을 닮은 밀랍 인형을 앉혀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겠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당대의 지성, 미셸 투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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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Tournier 1924. 12. 19 – 2016. 1. 18

창밖으로독해불능의 프랑스어 표지판이 스치고, 사라진다. 콜택시 운전기사는 하얀  자가가 뾰족하게 솟은 사제관을 찾아 아까부터 좁은 시골길을 꼬불꼬불 헤매고 있다. 10분 넘게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나서야, 가까스로 빨간 벽돌로 지은 성당 뒤로 네모지고 하얀 사제관을 발견했다. 문을 열어준 것은 지난 수년간 내가 책 날개에서 보던 그 주름진 미소였다. “반가워요. 어서, 어서 들어와요.” 낮인데도 조금 어두운 집 안에서는 어렴풋이 마른 나무 냄새가 났다. 창가에 놓인 의자 앞으로는 수백권의 책이 근사하게 무질서한 방식으로 뒹굴고 있었다. 종이와 노트가 쌓인 나무 테이블, 목가풍의 러그, 일렬로 도열한 지팡이, 오래된 액자 같은 것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도무지 사양이라는 걸 모르는 인터뷰어는 식전에 드는 술을 홀짝이며 프랑스의 지성이라 불리는 노인에게 무람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미셸 투르니에는 사진을 찍는 게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막상 사진을 찍게 되자 ‘잠깐만!’ 하더니 주머니에서 하늘색 손뜨개 모자를 꺼내 썼다. 사제관을 둘러싼 돌담 위에는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고양이가 졸고 있었다. 마당에는 청록색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푸르고, 푸르렀다. 나른하고 쓸쓸하고, 어딘가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이 사제관을 1950년대, 즉 당신이 막 글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에 전 재산을 털어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원히 기거할 집으로 사제관을 사는 젊은 남자라니.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 작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지만,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많이 읽혀진 책은 <방드르디, 야생의 삶>이다. 나는 늘 시골에서 사는 꿈을 꿨다. 캠핑을 좋아하던 젊은 시절에 자주 놀러 가던 게 바로 이 마을이었다. 그러다 이 집을 발견했고. 일단 사제관이라는 점, 매우 가톨릭적인 분위기, 경건하면서도 엄격해 보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제관엔 나의 모든 책과 인생이 담겨 있다.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내 삶의 소소한 조각들이 이곳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가?
이렇게 한국인 기자의 방문을 받는 경우는 흔치않다. 나는 유럽에서 더 알려진 편이라, 유럽인 기자들이 많이 온다.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집에는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나?
무언가 할 말이 있을 때 쓴다. 천천히 느긋하게 쓰는 편이다. 책 한 권 출간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는 <외면 일기>의 원고가 되었던 마흔 권의 창작 노트를 꺼냈다.) 예를 들어서 이 수첩들은 여행 다니면서 틈틈이 내가 ‘본 것들’을 느낀 대로 써놓은 노트이다. 사소하지만 중대한, 혹은 중요하지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사항들을 조목조목 적어놓은 것이다. 자, 예를 들자면… (수첩을 뒤적이던 손을 멈추고 그 페이지를 읽기 시작한다.) “우연히 문밖에 난 밀 한 가닥을 보고 있자니 문득 슬퍼졌다. 요즘 어린아이들은 이 식물이 자기가 먹는 주식의 원료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흔한 잡   취급하고 말 테지.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언젠가 어린아이들이 소와 말을 보고도 구별할 줄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 (낭독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목소리는, 노인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바람 부는 날의 깃대처럼 떨렸다. 그러나 맑았다. 수첩을 뒤적이던 주름진 손가락이 다시 한번 멈추었고, 그는 또 읽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으로 해수욕을 했다. 유럽의 물은 여름에도 차다.”
그래도 역시 나의 가장 훌륭한 관찰 대상은 인간의 얼굴이다. 기차나 지하철을 타면 앞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러고는 슬픔에 젖는다. 이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이 얼굴이 그저 스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그런데 왜 내 얼굴은 유심히 쳐다보시지 않으시나? 농담이다.
글쎄, 그렇게 흥미로운 얼굴이 아니라서 그런가? (웃음) 나도 농담이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당신에게 관심 있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털웃음) 오늘 신문을 읽다가 자크 랑스만이 세상을 떴다는 기사를 봤다. 워낙 오래된 친구라 슬픔이 더하다. 어제 그렇게 훌쩍 가버렸다. 장  식에는 가지  으련다. 거기에 왜 가야 하는가?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입술을 깨물며 잠시 침묵)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렇게 노인들이 세상을 떠난다. 봄은 위험한 계절이다.

문득 <외면 일기>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을 읽은 기억이 난다. <외면 일기>의 시선은 밖을 향해 있지만 결국 근본적으로는 인간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불어에는 ‘내면 일기’라는 말은 있어도 ‘외면 일기’라는 말은 없다. ‘외면의(extime)’라는 형용사는 ‘내면의, 친밀한(intime)’이라는 형용사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낸 나의 신조어이다. 내가 만든 단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해저(bassitude)’이다. 이스라엘의 사해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누가 사해의 깊이를 이야기하면서 ‘네거티브 고도(altitude negative)’라는 말을 쓰더라. 나는 그 표현이   무나 우습다고 생각했다. 고도라는 말을 수심을 나타내는 데 갖다 붙이다니. 그래서 낮음을 나타내는 형용사 ‘bas’와 고도를 가리키는 ‘altitude’를 합성해서 ‘bassitude’라는 새로운 명사를 정식으로 제안한 바 있다. 또 측대 보행(amble)이라는 표현이 있다. 네발 짐승이 같은 편 앞발과 뒷발을 동시에 올려서 걷는 모양새를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네발 짐승 중에는 이렇게 한 발씩 떼어가면서 걷는 동물도 있다. (네 개의 주름진 손가락으로 동물의 걸음걸이를 흉내낸다.) 개나 고양이, 곤충이 그렇다. 특히 인간은 측대 보행과 무관하다. 아기가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라. 오른손을 떼면 왼   무릎이 떼어지고, 왼손을 떼면 오른   무릎이 떼어진다. 프랑스어 사전에는 이런 식의 걷기를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나는 대각선을 뜻하는 말 ‘diagonale’을 차용해서 ‘대각 보행(demarche)’이라는 용어를 발명해냈다. (의기양양한 표정)

<외면 일기>는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혹시 12개월, 즉 1년이라는 삶의 주기를 상징하는 것인가?
<외면 일기>는 아까 보여준 마흔 권의 작가 수첩을 간추린 일기다. 이 마흔 권의 노트에는 내가 무려 35년 동안 여행하면서 관찰한 일상들이 꼼꼼히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세세한 메모가 모든 독자들에게 흥미롭진  을 것이다. 그래서 35년간의 일기를 1년 정도의 분량으로 줄여서 출간한 것이다.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외면 일기>가 마치 1년간의 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12장의 구성이 12개월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외면 일기>는 35년을 1년의 호흡으로 압축시킨 가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지 않나?
어째서 노벨상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상을 받은 적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받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녀작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과 공쿠르 상을 받았다. 이미 충분히 만족스럽다. 게다가 나는  무 늙었다. 이왕이면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길 바란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텍스트보다는 시각 이미지에 익숙한. 소위 ‘디지털 세대’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화를 오히려 문자로의 회귀라고 본다.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비디오 문화는 사람들을 글로부터 괴리시킨 장본인이긴 하다. 하지만 컴퓨터는 문자, 이미지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텍스트화되어 있는 그야말로 하이퍼텍스트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컴퓨터 문화로 인해 젊은이들이 텍스트와 멀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구나! 왠지 안심이 된다. 참, 에두와르 부바와 당신의 합작품인 <뒷모습>이 한국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그렇지 않아도 그 사진집에 등장하는 신혼부부의 사진 배경이 바로 요 앞의 교회라고 말하려던 참이다. 내가 만난 동양인(대체로는 일본인)들은 사진에 호의적이더라마는, 프랑스인들은 사진보다는 회화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어떤 화가는 사진의 발명이 회화의 죽음을  래했다고 불평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화가들이 사진의 실사에 위기감을 느낀 덕분에 회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사진의 발명 이후 회화의 하위 장르가 분화되고 풍요로워졌다. 인상파, 큐비즘,  현실주의 등은 사진의 등장 이후에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쓰고 있는 글들, 앞으로 전 세계 독자들이 읽게 될 당신의 글이 궁금하다.
<흡혈귀의 비상>과 비슷한 형식의 작품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아마도 <흡혈귀의 비상 vol. 2>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듯싶다.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풍경을 사랑하고 그것을 글로 묘사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이다. 가칭 <흡혈귀의 비상 vol. 2>에서 지적하는 창작의 모티프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지리학이다. 예컨대, 호머의 <일리아드>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고, <오딧세이아>는 지리학적 이야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