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없이는 촬영을 못하는 에디터에게 영감을 준, 이번 시즌 런웨이에 올라선 장갑의 다양한 얼굴.

최근 진행한 스타일링 화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통적인 소품이 발견되었다. 모자도, 선글라스도, 스카프도 아닌 바로 장갑! 그러고 보니 촬영 현장에서 어시스턴트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도, “장갑 가져와, 장갑 꼭 챙겨, 어떤 장갑 하기로 했지?”였던것 같다. 몇 달째 호흡을 맞춰온 사진가가 오죽했으면 “기자님은 장갑이 없으면 촬영을 못하나봐”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을까. 지난달에는 프라다의 강렬한 원색 가죽 장갑이나 하이더 애커만의 파이톤 롱 장갑으로 과거로 불시착한 우주 소녀를 표현했고, 이달에는 억새밭에서 뒹구는 야생 소녀를 떠올리며 쟈딕&볼테르의 손가락 니트 장갑이나 샤넬의 양털 장갑을 컷마다 사용했다. 그리고 12월호 선진행 기사에서는 새틴과 벨벳 장갑을 번갈아 끼워가며 룩의 화려함을 부각시켰다. 따지고 보니 어떤 상황이나 옷차림의 콘셉트, 인물의 캐릭터를 극명하게 드러내기에 장갑만큼 효과적인 장치도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런웨이로 옮겨오자면, 이번 시즌 장갑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컬렉션은 프라다다. 손목부터 팔 전체를 감싸는 것까지 다양한 길이는 물론이고 악어, 타조, 뱀 등 이국적인 소재에 과감한 컬러링으로 미래적인 무드를 주입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롱 장갑은 레이디라이크 룩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처럼 보였지만, 이번 시즌엔 여성스럽기보다는 실용적이고 파워풀한 노선을 택한다. 이를테면 드리스 반 노튼에서는 소매를 돌돌 말아 올린 셔츠형 재킷에 매치되었고, 디스퀘어드2는 곱디고운 분홍색과 샛노랑 스웨이드 장갑을 에스닉한 유목민룩에 등장시켰다. 한편, 독특한 (화보 촬영으로 제격인!) 장갑도 어김없이 올라왔는데, 마르코 드 빈센초의 은가루를 입힌 반짝이 장갑을 비롯해 쉽게 찢어질 것 같은 연약한 망사로 이루어진 N˚21의 레이스 장갑, 정원을 가꿀 때 필요한 베트멍의 레몬색 장갑, 검정 마네킹의 팔처럼 보이는 토마스 타이트의 글로시장갑은 쇼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파티의 달, 12월호에는 드레시한 이브닝 룩에, 마구 껴입어야 하는 1월호에는 모피와 패딩 스타일링에도 장갑을 끼울 예정이다. 스타일링에 재미와 개성을 줄 뿐만 아니라 우아함까지 깃든 이 아이템을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게다가 추위 걱정을 해야 하는 계절을 앞두고 보온의 기능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