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엔 뉴욕에 가길 참 잘했다. 지방시 by 리카르도 티시의 2016 S/S 컬렉션이 펼쳐진 공감각적인 패션의 현장을 직접 두 눈과 가슴으로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 패션이라는 범주를 넘어 도시의 문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과 나눔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선사한 한 편의 서사시와도 같았던 그 현장.
검정과 순백의 팔레트만으로 지방시의 미학과 스타일을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시킨 지방시 쇼는 SNS에 울려 퍼진 #neverforget 해시태그처럼 감각과 감정을 넘어서는 감동을 선사했다.

우린 왜 패션쇼에 열광하는가, 패션쇼는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응답한 보기 드문 현장을 목도했다. 바로 지난 9월 11일 뉴욕 허드슨 강가에서 펼쳐진 지방시 쇼. 파리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가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처음으로 쇼를 펼친다는 것, 그리고 패션계의 콧대 높은 특권층을 위해서만 자리를 내주던 이들이 뉴욕의 패션스쿨 학생과 동네 주민 등을 이 특급 쇼에 초대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뉴욕 패션위크의 지방시 쇼’는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진짜 볼거리는 쇼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때 사라져버린 트윈 월드트레이드센터 자리에 우뚝 선 원 월드트레이드센터. 뉴욕의 새로운 이정표와도 같은 이 건물이 훤히 보이는 허드슨 강가의 쇼장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 재활용 재료로 만든 설치물이 눈길을 끌었고, 쇼장 곳곳에서는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이끄는 아티스트들이 사랑과 나눔의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한편 쇼장에는 지방시의 아트 디렉터로서 10주년을 맞이한 리카르도 티시의 뉴욕 쇼를 축하하기 위한 절친들, 일명 ‘패션 갱’이라 불리는 셀레브리티들이 대거 자리했다. 카린 로이펠드와 사진가 스티븐 클라인, 칸예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 커플, 그뿐 아니라 줄리아 로버츠, 우마 서먼,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같은 할리우드 배우 및 알렉산더 왕, 조셉 알투자라와 같은 뉴욕 디자이너들이 프런트로에 자리했다.

신비로운 음악이 장내를 휘감으면서 2016 S/S 컬렉션의 첫 번째 룩이 등장했다. 리카르도 티시가 사랑하는 뮤즈인 마리아칼라 보스코노가 입은 룩은 더없이 섬세한 레이스와 새틴 소재의 순백 톱, 여기에 부드럽고 우아하게 흘러내리는 검정 팬츠가 어우러진 매혹적인 앙상블. 이어서 켄달 제너, 라쿠엘 짐머만, 캔디스 스와네포엘 등 개성 넘치는 핫한 톱모델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며 관능적이고 파워풀한 란제리 룩의 다채로운 변주를 보여주었다. 여성 컬렉션은 결혼식장의 신랑과 신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티시의 말처럼 새틴과 레이스 등으로 만든 로맨틱한 화이트 웨딩 드레스에 검정 턱시도 재킷을 걸친 신부의 모습이 연상시켰다. 주요 스타일인 섹시한 란제리 룩에 오버사이즈 턱시도 재킷을 코트처럼 걸치거나 여유로운 실루엣의 매니시한 팬츠를 매치하고, 때론 스트리트 스피릿을 지닌 란제리 스타일의 올인원을 통해 동시대적인 미학의 실험을 보여주었다. 또한 모든 룩은 순결과 경건을 상징하는 흑과 백으로만 이뤄졌다. 이 간결한 집중엔 #911memorial로 대변되는 추모의 의미, 즉 뉴욕이라는 메트로폴리탄이 지닌 아픔과 희망의 메시지가 응축되어 있었고 말이다.

이번 컬렉션에 인상적인 방점을 찍은 건 극도로 정교하고 드라마틱한 쿠튀르 컬렉션. 쇼 중반쯤 멋진 흑백의 슈트를 입은 남성 모델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이어서 티시의 뮤즈 조앤 스몰스가 풍성한 볼륨감의 드라마틱한 검정 쿠튀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쇼의 열기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일명 ‘쿠튀르 에센셜 by 리카르도 티시(Couture Essential by Riccardo Tisci)’라고 불린 이 컬렉션은 지방시의 아카이브를 한눈에 보여주며 ‘다크 로맨티시즘’의 정수를 강렬하게 선사하는 총 10벌로 구성되었다. 나아가 쇼 전반에는 티시가 특별히 강조한 ‘지방시 스타일’, 즉 매혹적인 이중성을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뉴욕의 스트리트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캐주얼한 요소와 오트 쿠튀르 정신, 블랙과 화이트, 남성성과 여성성, 견고함과 민첩성, 로맨티시즘과 다크니스, 재단사의 엄격함과 란제리의 섬세함 등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지방시의 스타일에 녹아들었다.

리카르도 티시가 선사한 이 특별한 쇼엔 그의 심미적 가치를 넘어 패션 월드를 이끄는 비전이 그대로 담겨 있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소통의 중심에는 늘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존재했고 이번 쇼를 통해 한 층 더 따뜻한 그의 시선을 충분히 입증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그의 관찰은 강렬한 비주얼 판타지를 통해 지극히 하이패션적으로 해석된 채 우리를 매혹시켜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자신의 지방시 10주년 기념 뉴욕 쇼를 통해 패션쇼가 단순히 새 시즌의 옷을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라는 통속적인 틀을 과감히 깬 리카르도 티시. 지방시는 이 명민하고 재능 넘치는 디자이너가 전하는 궁극의 메시지를 특별한 예술적 퍼포먼스와 음악, 의미 있는 쇼장과 오픈된 게스트 리스트, 궁극적으로 컬렉션을 채운 룩 안에 감각적인 동시에 감동적으로 담아내며 브랜드 역사의 기념비적인 한 챕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소통의 한계는 없음을 보여주며, 아니 패션을 통한 인류의 소통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을 설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