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움과 차가움, 웅장함과 가녀림, 봄과 겨울…. 손열음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아주 먼 경계까지 두려움 없이 탐색하는 모험가다.

검은색 더블 버튼 재킷은 보테가 베네타. 금색 목걸이는 자라. 조형적인 귀고리는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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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에게 검은 팬츠 슈트를 입히고 공단 터번을 씌웠다. 고전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에게 지나친 연출인가 하는 염려가 살짝 들 때, 단호하고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선수를 쳤다. “저는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 연주를 통해, 그리고 신문 연재 칼럼이나 책에 실린 글을 통해 짐작해온 이 피아니스트의 담대한 품성이 그저 넘겨짚은 인상만은 아니었다고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해석에 대해 “뜨거운 걸 차갑게 읽어내서” 손열음이 대단한 거라고, 드라마 <밀회>의 대사를 통해 정성주 작가는 이야기했다. ‘강렬한 타건’, ‘화려한 테크닉의 젊은 거장’ 같은 표현도 그를 자주 따라다닌다. “칭찬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에게는 내 스스로의 평가가 더 중요하거든요. 거꾸로 비판도 마찬가지고요.” 눈앞의 손열음은 그런 수식어에 들어맞는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납작한 낱말들에 가두어지지 않는 입체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이 다면적인 것처럼.

비슷한 연배의 연주자 김선욱이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등 몇 년째 베토벤을 전공 삼은 듯 할 때, 손열음은 폭넓은 시대와 작곡가를 부지런히 오간다. 올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로 연주했다가, 내년 초에 있을 자신의 독주회에서는 20세기 초반의 곡으로만 프로그램을 짜는 식이다.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곡들이 이 악기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레퍼토리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다른 악기에 비할 때 피아노를 하는 사람만의 기쁨이라고 그는 말한다. “첼로는 나이 스물이면 웬만한 곡을 다 해볼 수 있거든요. 배우들 중에도 일정 범위의 비슷한 역할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걸 자꾸 시도해보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좋아하는 것만 계속하면 상대성을 잃을 거 같아요. 쇼팽을 하다가 돌아왔을 때 베토벤스러움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식이 더 좋거든요.”

콩쿠르 우승에 집착하며 클래식 음악을 마치 순위를 매기는 국가 대항 스포츠처럼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있지만, 손열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차라리 요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수치나 객관보다는 주관과 테이스트가 기본이 되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서 대접하는 요리사이며, 세상의 다양한 맛을 직접 느끼고자 하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누리는 일이 삶에 더 큰 기쁨을 주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믿으며.

검은색 퍼 베스트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안에 입은 검은색 터틀넥 톱은 유니클로, 검은색 시가렛 팬츠는 폴 스미스, 페이턴트 워커는 생 로랑, 남성적인 페도라는 뮬바우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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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새로움이라는 게 당신에게는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새롭다는 의미가 이전에 없었던 것, 전례가 없었던 것이라 정의한다면 그런 것엔 사실 관심이 없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새로운 것인 경우는 좀 있었다. ‘왜 이런건 없지?’ 하고 하다 보니 우연하게. 성격적으로는 새로운 걸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밥 먹는 데도 한군데만 가기도 하고.

흔치 않은 연주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선보여 그런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독주회에서도 알캉, 카푸스틴같이 자주 듣기 힘든 작곡가를 넣고. 성시연 지휘자와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택했다. 대부분 알고 있는 1번이 아니라.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 했을 뿐이다. 1번에 비해 2번은 라이브 연주가 잘 안 되니까. 다른 분들이 잘 모르는 곡, 노출이 덜 된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떤 사명감으로 시도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새로운 걸 할 수 있어야 예술가다’ 라고 나갔는데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예술가지(웃음).

내년 2월의 독주회 연주 프로그램은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과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등 1910년대에 발표된 곡들로 구성한 점이 재미있다. 어떤 의미를 두었는지 궁금하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에서는 몇 차례 연주했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첫 곡인 ‘다뉴브 왈츠’를 제외하면 대부분 1910년에서 20년 사이에 쓰여진 곡들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셈인데, 그 짧은 기간이 나에게는 역사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 시기에 인류가 살아왔던 패턴이 크게 바뀌기도 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이 그 시대의 유산이 많기도 하고, 문화적으로도 풍성했다. 클래식 음악사로 한정해서 얘기해보자면 어떤 부분일까? 클래식 음악에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출현한 시대다. 세계의 여러 지역이 지리적으로 연결되기도 했는데 음악가들도 그랬다. 스트라빈스키 같은 사람은 러시아인이지만 파리에 와서 코즈모폴리턴 같은 삶을 살았고, 라벨도 스페인 계통인데 프랑스에서 활동했고… 그전까지의 클래식 음악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독주회 프로그램 가운데 거슈윈이 기대가 된다. 당신의 연주를 들으면 늘 리듬감이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재즈적인 것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거슈윈은 3분짜리 아주 짧은 곡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있어서 레슨을 받기도 했다. 늘 시간이 없지만, 조급하게는 생각 안 한다. 재즈 역시 새로운 걸 일부러 찾아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재즈 피아노를 따로 배운다고 할 때, 주변에서 유별나다고 바라보는 보수적인 분위기는 없었나?
재즈는 클래식 음악이랑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관계다, 시대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지만 스트라빈스키, 코플랜드, 바버 이런 사람들은 재즈 요소가 없었다면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라벨의 후기 작품을 봐도 베이스가 정말 재지하다. 재즈를 배우면 배울수록 즉흥성, 화성, 구성 같은 것들이 1700년대 초반 음악과 닮아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다.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 시대에 아주 정통한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재즈도 잘할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도니까 어떤 시대의 텀이 돌아서 이 시기로 근접한 것 같다.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로 피아니스트가 아닌 바이올리니스트를 꼽는 점이 신기했다. 당신이 직접 연주하는 악기라면 그렇게 좋아하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못 좋아하지 않을까. 바이올린은 연습량이나 노동치가 다른 악기에 비해 너무 높다. 예민할 수밖에 없다. 늘 악기를 보고 있어야 하고 지키고 있어야 하고, 음을 내는 간격도 너무 좁고. 피아노는 있으니까 누르면 그만인데. 내 성격에도 안 맞고 못했을 텐데 듣는 건 좋아한다.

‘강렬한 타건’ ‘화려한 테크닉’ ‘냉정과 열정 사이’. 이런 표현이 늘 언급되는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소개라고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연주의 소리가 큰 건 사실이고 그건 내가 스스로에 대해 좋아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관악기는 그렇지 않겠지만, 피아노는 체급이라는 게 나눠지는 편이다. 소리가 크다는 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많이 노력해서 성취한 부분이어서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가 크게만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자를 접하는 게 리스너로서는 재밌다. 베토벤만 고집하는 김선욱과, 시대를 폭넓게 오가는 당신을 봐도 그렇고. 이 음악가의 실제 성격은 어떨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선욱이랑은 같이 공부하며 자랐는데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일상에서 나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스타일이고, 선욱이는 케어리스한 편이다. 그런데 연주에서는 거꾸로 선욱이가 완벽주의자다. 아마 일상보다는 음악 할 때의 모습이 자신의 본성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 독주회는 어떤 관점으로 공연을 보면 재미있을까?
피아노를 위해 먼저 쓰였거나 그렇지 않거나 거의 모든 곡이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었다. 그만큼 피아노란 100개의 악기를 대체 할 수 있는 악기이다. 마치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버전처럼 오케스트라와 비교하는 관점으로 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 1910년대, 혁명적인 그 시대에 대한 애착이나 관심 같은 걸 부추길 수 있다면 나로서는 만족이다.

아까 여든이 되었을 때, 많이 했던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는데, 다양한 시대와 작곡가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넓게 소화하는 것이 피아니스트로서 당신의 최종 목표인가?
꼭 그런 프레임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로는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와 릴리 크라우스를 꼽는데 이 두 연주자의 스타일도 그런 면에서는 아주 다르다. 바이센베르크는 바로크 시대부터 자신이 작곡한 레퍼토리까지, 300년 넘는 시대를 넘나들었고, 크라우스는 반대로 한 세기도 안 되는 범위를 대상으로 연주했지만 어느 한 사람이 좁고 깊고 다른 사람은 넓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목표 같은 것이 있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클래식 음악 연주란 어떤 관점에서는 굉장히 폐쇄적일 수 있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상관 없이 사회와 동떨어져서 탐미적인 행위가 되기도 쉬운 거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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