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고 이기기 위해 단련한 운동선수의 몸은 과시용으로 부풀린 근육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섯 명의 스포츠 스타가 각자의 치열한 역사를 몸으로 증명했다.


배구, 김요한
“은퇴 후를 그려볼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그냥 멈추게 돼요. 어차피 제가 제일 잘하는 건 운동이고 할 수 있는 한 여기에만 집중하고 싶은 거죠.”

가까이에서 본 김요한은 브루스 웨버의 사진집이나 양장본 그리스 신화에서 찢어낸 한 페이지 같았다. 잘생긴 얼굴 위에 잠시 머물렀던 시선은 곧 단단한 왼쪽 어깨 쪽으로 움직였다. TV 중계를 통해 여러 번 확인해서 이미 눈에 익은 문양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가 시작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 선수들은 문신을 조심스러워했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최근에는 오프 시즌의 휴가를 틈타 만화 <원피스>의 캐릭터(‘불주먹’이라고 했다)가 한 것과 똑같은 디자인을 팔 안쪽에 추가했다. 한편 왼쪽 가슴에는 구약성서의 여호수아 1장 9절을 새겨 넣은 상태다.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마라는 내용이다. “한참 고민이 많던 시절, 큰 힘이 된 구절이거든요”.
거대한 조각처럼 완벽해 보이는 이 스타 플레이어의 몸은 평화로운 시절이 드문 전쟁터이기도 하다. 왼쪽 손등 위에 나란히 얹힌 두 개의 긴 흉터는 2012년과 2013년에 부상을 당한 흔적이다. 어쩌면 그 외에도, 문신보다 많은 상처들이 몸 곳곳에 있을 터였다. 배구 코트에서 치열하게 땀을 쏟은 지난 20여 년을 말해주는 그 나름의 증명이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김요한은 슬슬 나이를 의식한다고 했다. “은퇴 후를 그려볼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그냥 멈추게 돼요. 모든 선수가 다 비슷할 거예요. 어치파 제가 제일 잘하는 건 운동이고 할 수 있는 한 여기에만 집중하고 싶은 거죠.” 운동선수에게 서른은 그리 적지 않은 나이지만 남자에게는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이제껏 성취한 것 이상으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게 많은 김요한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농구, 문성곤
“마인드를 잘 다스려야 해요. 경기하다가 흥분을 해서 집중력을 놓칠 때가 있거든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시합할 때는 희한하게 다혈질이 돼요.”

고려대의 포워드인 문성곤에게 2015년은 상당히 중요한 시기다. 올해 10월, 드래프트를 거쳐 프로 데뷔를 치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1순위 후보로 점쳐지는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은 이미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런데 선수 본인은 오히려 침착하고 담담하게 연초를 맞고 있는 듯했다. “어수선하게 갈팡질팡하는 대신 지금껏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서 부족한 점을 채워가려고요.” 선해 보이는 얼굴이 모범생처럼 반듯한 대답을 들려줬다. 그렇다면 문성곤은 스스로가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마인드를 잘 다스려야 해요. 경기하다가 흥분을 해서 집중력을 놓칠 때가 있거든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시합할 때는 희한하게 다혈질이 돼요.” 모범생이라고 해도 결코 만만한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농구를 시작한 계기는 대다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큰 키다. “초등학교 코치님께서 권유를 하셨어요. 농구화까지 사주시면서. 안 사주셨으면 안 했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렇다면 계기는 키가 아니라 농구화였던 걸까. 아무튼 문성곤의 키는 대학 진학 이후까지도 자라 현재는 196센티미터에 이르렀다. 그는 딱 1센티미터만 더 컸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196과 197은 느낌이 많이 다르잖아요.” 172센티미터의 나는 알 리가 없는 차이다. 과연 스물셋 청년의 성장판이 아직 열려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선수로서의 역량은 앞으로도 한참 더 성장하리라는 것, 그리고 팬들이 그 결과를 목격할기회는 점점 더 많아지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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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허준
“작은 대신 더 빨리 움직이면 돼요. 상대 선수보다 한 걸음 먼저 나아가야 이길 수 있어요.”

한국 남자 펜싱의 미래로 꼽히는 허준의 오른쪽 하복부에 는 길이 10cm 정도의 흉터가 자리 잡고 있다. 혹시 훈련 중 생긴 부상인지 궁금해했는데 맹장 수술 자국이라는 허 탈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펜싱 칼에 찍힌 자리라고 거짓말할 때도 있어요. 내장이 흘러내려서 막 쑤셔넣으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선수가 잽싸게 농 담을 찔러 넣는다. 알고 보니 한창 관리 중인 부위는 따로 있었다. 약 3개월 전 무릎 수술을 했고 재활 훈련 덕분에 현재는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도 그는 허벅지 부상을 안고 플뢰레 개 인전 결승에 임했다. 은메달 획득 후 가진 인터뷰에서 허 준은 부상이 아니라 실력이 낳은 결과라고 담담하게 이야 기했다. “핑계를 대기는 싫었어요. 게다가 자기 관리에 실 패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실력 부족이죠. 아쉽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니까요. ”
허준은 아담하지만 다부진 체구를 지녔다. 작은 키는 장신 의 유럽 선수를 상대해야 하는 국제 대회에서 아무래도 불 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기가 꺾 이는 대신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작으니까 더 빨리 움직이면 돼요. 결국 순발력인 거죠. 상대보다 한 걸음 먼 저 나아가야 이길 수 있어요.”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목표 는 물론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다. 그는 개인전보 다는 단체전 출전 티켓을 꼭 따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최)병철이 형 혼자만 플 레뢰 개인전에 출전했어요. 한국에 남아 그 모습을 지켜보 던 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내년에는 모두가 함께 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


태권도, 이대훈
“응원이야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우승을 당연하게 예상하는 말씀들을 접하면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워지죠. 그 어디에도 당연한 우승이라는 건 없으니까요.”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섬세한 이대훈은 체대 훈련장보다 음대 연습실에 더 잘 어울릴 듯한 외모다. 하지만 셔츠를 벗고 카메라 앞에 서자, 그가 매일 땀을 흘리는 공간이 어 디인지가 분명해졌다. 불필요한 살집이라고는 없이 잔근 육만으로 채워진 상체는 날렵하지만 단단하다. 말로만 듣 던 체지방 1%의 상태가 이런 걸까 싶기도 하다. 태권도처 럼 체급별로 운영되는 종목의 경우, 선수들의 몸 관리는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감량, 혹은 증량은 출전 여부 를 결정짓는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다. 63kg급으로 참가해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를 각각 2연패한 이대훈은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58kg까지 감량을 감행 했다. 올림픽 남자 태권도에서는 63kg급 경기가 아예 치 러지지 않는 까닭이다. 당시 은메달을 획득한 그가 내년의 브라질 리우에서는 68kg급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미 3년 전에, 58kg으로는 마지막 시합이라고 생각하면서 뛰었어 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차라리 체급을 높이는 게 저한테는 당연한 결정이에요.”
세계태권도연맹이 선정한 2014년 올해의 선수였던 이대 훈은 리우 올림픽에서의 활약이 특히 기대되는 스포츠 스 타 가운데 한 명이다. 혹시 이런 이야기가 그에게 성급한 압박감을 주는 건 아닐까? “응원이야 늘 감사하게 생각해 요. 하지만 우승을 당연하게 예상하는 말씀들을 접하면 아 무래도 마음이 무거워지죠. 그 어디에도 당연한 우승이라 는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부담마저 이겨내는 것 역 시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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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박선관
“국제 시합에 다녀오면 저도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해요. 메달을 따는 것뿐만 아니라 경험을 쌓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고요.”
지난 3월, 박선관은 제주 한라배 전국수영대회에서 전 종목을 석권하며 5관왕에 등극했다. “원래는 시즌 초반 경기 출전을 피하는 편이었어요. 동계 훈련을 마치고 컨디션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뭔가 느낌이 좋더라고요.”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기록을 세우고 난 뒤 자신감이 붙었는데, 그 기세가 올해까지 이어지는 듯하다는 게 선수 본인의 분석이다. 그는 스스로가 큰 대회에 강한 편이라고 했다. 작년 아시안 게임뿐만 아니라 전국체전에서도 거의 출전 때마다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곤 했다. 과연 어떤 이유 때문일까? “어, 현실적으로 전국체전 결과에는 저희 연봉이 걸려 있기도 하고요…” 예상 밖의 대답에 허를 찔려서 그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물론 박선관이 큰 무대를 기대하는 이유가 연봉 인상만은 아니다. 2009년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래 올림픽을 비롯한 최고 수준의 경쟁에 참여할 때마다 전율을 느꼈다는 목소리에서 소년처럼 청량한 흥분이 묻어났다. “국제시합에 다녀오면 저도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해요. 메달을 따는 것뿐만 아니라 경험을 쌓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고요.” 20대 중반의 선수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성실함을 꼽았다. 그리고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신 ‘물을 잘 탄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길게 늘인 모습을 봤을때, 알 듯 말 듯한 설명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섬세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강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이 당연하다는 듯 물을 가르는 모습이 금세 그려졌기 때문이다.

팬츠는 이스트쿤스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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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김선형
“예전과 비교하면 경기를 할 때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공격에만 치중하기보다는 흐름을 만들어주는 어시스트에도 욕심이 생겼어요.”

한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시절의 김선형은 축구선수였다. 그런데 공을 가지고 놀던 6학년 아들의 재능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덜컥 중학교 농구부에 데려가 입단 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그날의 사건이 아니었다면 지금 그는 손 대신 발로 공을 다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뒤바뀐 운명을 당사자는 기꺼이 받아들인 눈치다. 농구를 택한 이후, 진로에 대한 확신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장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했어요. 진로, 혹은 직업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 건 대학 진학 이후였고요.” 그리고 마침내 프로 데뷔를 했을 때는 이게 자신의 무대라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관중의 환호는 고스란히 선수의 에너지가 됐다.
김선형이 서울 SK나이츠에 입단한 건 지난 2011년이었다. 4번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스스로는 어떤 변화와 성장을 거쳤다고 평가할까?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1~2년 차 때는 멋도 모르고 달려들기만 했거든요. 포인트 가드를 맡아도 공격에 더 치중했는데 이제는 흐름을 만들어주는 어시스트에 욕심이 생겼어요.” 물론 앞으로의 목표도 있다. 일단은 지금껏 한 번도 껴보지 못한 챔피언 반지가 간절하다. “정규 리그 우승은 해봤는데 챔피언 전은 아직이거든요.” 그리고 좀 더 멀고 막막하지만 분명한 바람도 덧붙였다. 이른바 한국 농구계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의 반열에 나란히 오르고 싶다는것. 강한 의지가 번뜩이는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 가능성이 더욱크고 확실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