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킴은 그림을 파는 사람이다.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하는 이 갤러리스트 또는 아트 딜러가 스스로를 일컬을 때는 주로 ‘화상(畵商)’이라고 칭했다. 그 겸손하고 담백한 단어에는 그림을 파는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진하게 녹아 있었다.

1월 말의 서울에는 눈이 채 녹지 않았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꼭대기가 저만치 희끗희끗하게 내다보이는 국제갤러리에서는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런던에서 온 작가 트레이시 에민과 블리자드에 파묻혀버린 뉴욕에서 온 갤러리스트 티나 킴의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시 장소를 미리 둘러보며 앞으로 계절이 세 번 바뀌고 난 다음 11월에 있을 에민의 첫 서울 개인전을 상의하는 중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첼시의 티나킴 갤러리를 운영하는 일, 그리고 서울의 국제갤러리를 위한 업무가 뉴욕의 티나 킴에게는 엇비슷한 비중을 가진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대표의 장녀. 하지만 패밀리 비즈니스를 물려받아 미술계에서 일하는 것이 그에게 처음부터 흔쾌했던 건 아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랐죠. 어려서 화랑은 나에게 학교 끝나면 오후에 가서 노는 곳이었어요. 작가 선생님 뵈러 가면 같이 식사한 다음 옆에서 뛰어놀았고요.” 미술품과 수석, 골동품까지 뭔가 늘 수집하는 게 생활이던 부모님의 영향 속에 자라면서도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직업 성장기의 그에게 저항하는 마음을 일으켰다고 한다. ‘미술이 싫으면 디자인이라도 공부하지’라는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한 다음 전공을 살려 취직할 요량이었던 그는, 교환학생으로 간 런던에서 미술을 재발견했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수업을 들으며 사이 톰블리, 프랭크 스텔라 같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다시 접한것. “집에서 예사롭게 본 작품들이라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인지 몰랐거든요. 미술관 바닥에 앉아서 처음으로 느낀 것 같아요. 아, 우리 집이 그냥 그림만 파는 집은 아니었구나.”

 

우회로를 거쳐 미술계로 돌아온 그에게 이제 목적지는 컨템퍼러리 아트의 중심, 뉴욕 외엔 없었다. NYU 대학원을 졸업한 다음 미국의 유명한 아트 딜러인 폴라 쿠퍼의 갤러리에서 인턴십을 시작했다. 미트패킹에서는 진짜 고기를 잘라 팔고 갤러리들이 아직 소호에 모여 있던 90년대, 갤러리 업무가 전산화되기 이전에 손으로 작품 정보를 적고 이미지 슬라이드를 분류하며 작가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일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던 데 대해 티나 킴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2~3년의 경력이 쌓였을 즈음, 육아와 탄력적으로 병행하기 위해 ‘월세 정도는 내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화랑을 오픈했다. “앤서니 도페라고 당시 런던에서 활동하는 전설적인 딜러가 있었는데 그가 뉴욕에 작은 화랑을 갖고 있었어요. 그 장소를 인수해 처음 57가에 화랑을 열었네요.” 미술계 선배이자 어머니인 이현숙 대표가 그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편안하게 작가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화상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조언은, 처음에 크게 시작하지 마라는 것. 이방인인 그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위협감을 주면 적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가르침 덕분인지 2001년 친구 사무실의 책상 하나를 빌려 작게 출발한 티나 킴은 오는 5월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게 된다. 첼시의 21가, 그가 처음 일했던 폴라 쿠퍼의 갤러리와 같은 길이며 국제갤러리 3관을 디자인했던 건축가 그룹 쏘일(SO-IL)의 플로리안 아이덴버그가 이번에도 설계를 맡았다.

아트 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물론 작품을 잘 파는 일이다. 그리고 ‘어떻게’ 잘 파는가에, 각자의 실력과 노하우가 녹아 있을것이다. “화랑을 하다 보면 고객은 있게 마련이에요. 작가와 같이 좋은 작품을 좋은 때에 준비하는 것이 관건이죠. 작가들이 스튜디오에 갖고 있는 숱한 작품 속에서도 이 작품을 이때에 여기서 선보이면 좋겠다는 걸 골라내는 안목, 그건 바로 어머니에게서 받은 유산 같아요. 안목은 단시간 공부해서 생기는 게 아니고 평생을 통해 길러지는 거거든요.” 오래 가꿔야 하는 안목만큼이나 중요한 건 화상의 테이스트다.

 

“어떤 화랑이건 기존 작가들은 있지만 똑같은 것만 계속 보여주면 옛날 가게가 되어버리죠.” 머물러 있으면 뒤처지는 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화랑이 쌓아온 이미지를 바꾸고 변신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화랑은 변해도, 화상의 테이스트는 변하지 않는다.그 취향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접하면서 프로그램에 맞는 작가를 발굴하며 계속 공감을 얻는 것. 그 과정에서 갤러리스트가 작가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지금은 티나 킴의 절친한 친구가 된 가다 아메르가 그 예. 수 윌리엄스, 쉬라제 후쉬아리 등 3 명의 여성 페인터들 전시를 열면서 가까워진 아메르는 페인팅으로 인정받는 작가였지만 새로운 작업 방식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고 있었다. “보통 화랑들이 그런 걸 디스커리지 하거든요. 지금 잘 팔리는 걸 이번 전시에 몇 점 줄 거냐고 묻죠. 가다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설치 조각을 넣기를 원했고, 나는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고 했죠. 레진, 브론즈… 여러 가지 소재를 가지고 같이 프로듀스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거치고… 그렇게 어렵게 함께 만들어간 조각 작품이 나중에는 구겐하임 같은 미술관에까지 들어가게 됐어요. 작가와의 관계가 돈독해진 건 말할 것도 없죠.”

 

작가를 편하게 해주고 친밀하게 일하는 화상이, 아티스트의 비위를 맞춰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인의 작품만 바라보다 보면 좁아질 수 있는 작가의 시야를 넓혀주고, 같이 고민하고 의논하는 역할까지가 좋은 갤러리의 역할이라는 게 티나 킴의 생각이다.

“훌륭한 작가들은 대체로 자기 주장이 세요.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꿈 안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만큼 민감하죠. 그런 작가들을 사회로 나올 수 있게 가이드해주는 사람, 편안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내 역할이에요. 물론 자리가 잡히지 않은 젊은 작가 가운데 화랑이 던지는 조언에 너무 기우는 작가도 있지만 뛰어난 아티스트들은 그걸 적절하게 반영해서 자기 작품으로 만들어나가죠.” 트레이시 에민의 코멘트는 그녀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듯했다. “티나는 친절하고, 세련되고 겸손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아주 솔직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되는 사람이죠. 그녀와 일할 때는 내가 행복하면 행복하다, 이게 좋으면 좋다라고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어요.”

일하면서 만난 작가들이 좋은 벗이라면, 가구 디자이너인 남편은 그에게 훌륭한 파트너다. 결혼 20년 차에 접어든 이 부부는 신혼부터 결혼기념일,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부부의 컬렉션을 늘려가고 있다. “처음 뉴욕에서 생활할 즈음 가장 핫한 작가가 매튜 바니였어요. (그의 <크리마스터> 연작을 지원했으며, 영향력이 큰 갤러리스트인) 바바라 글래스톤에 연락해서 바니의 작품을 좀 알고 싶다고 했더니 매우 호의적으로 갤러리에 초대하더군요. 방에 들어가 앉으니 1시간이 넘는 비디오를 두 개 연거푸 틀어주더라구요. 가격이 너무 비싸 살 수 없는 작품인데 갤러리의 배려를 생각하면 일어날 수도 없고… 그렇게 아무것도 못 사고 나와서 바로 길 건너면 폴라 쿠퍼 갤러리에 갔어요. 고생해서 작품을 봤지만 너무 비싸서 못 사고 왔다는 얘기를 했더니 폴라가 갖고 있는 바니의 작은 포트레이트, 30개 에디션 중에 하나인 작품을 권하더라구요. 자기도 서포트하느라 구매했지만 자기 작가가 아니니까 큰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인연이 닿은 작품이었어요. 3천 달러라는 가격이 당시 저희 부부에게는 큰돈이어서 반 년 동안 할부로 샀지만요(웃음). 안방에 걸려 있는 이우환 선생님 그림도 남편이 가구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을 좋아해서 꼭 함께 두고 싶다고 어렵게 구입한 작품이라 각별하고요.”

 

주 단위로 대륙을 넘나드는 바쁜 삶 속에 그에게 성취감을 주는 건 커리어에서 크게 이룬 업적보다는 그때그때의 프로젝트들이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경쟁을 하는 거니까요.” 또 존경할 만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정치 문화 경제에 대해 나보다 더 해박한 90대 컬렉터 분을 보면, 이런 사람들과 일하며 배울 수 있는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느껴요.” 5월에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의 단색화 전시를 가져가 선보인다. 눈에 보이는 치열한 경쟁의 장 속으로 또 한번 들어가는 것이다.

티나 킴과 함께 일해온 동료이자 그녀의 친구들이 모였다.서울의 국제갤러리 3관과 오는 5월 이전할 뉴욕의 티나킴 갤러리 디자인을 지휘한 건축가 플로리안 아이덴버그는 칸디다 회퍼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맨해튼 티나 킴의 거실에 모인 아티스트 가다 아메르, 티나 킴, 플로리안 아이덴버그, 애런 영. 11월에 국제갤러리에서 있을 개인전을 준비 중인 트레이시 에민, 함께 일하며 티나 킴과 절친한 벗이 된 이집트 미술가 가다 아메르 티, 나 킴의 남편인 가구 디자이너 제이 정. 테이트 모던과 광주 비엔날레 아트 디렉터를 거쳐 뉴욕 디아 아트 재단의 디렉터로 일하는 제시카 모건은 젊은 큐레이터 시절부터 티나킴과 인연이 깊다. 은둔하는 아티스트 로니 혼도 ‘티’와 함께라는 조건을 달고 기꺼이 더블유 앞에 서주었으며, 애런 영의 2009년 서울 전시에 다리 역할을 한 것도 티나 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