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키워드는 ‘정신과’다.
<하트투하트>, <하이드 지킬, 나>, <킬미, 힐미>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직접 물어봤다.

<킬미, 힐미>
환자 차도현(지성) 

병명 다중인격장애

 

차도현은 일곱 개의 다른 인격을 지닌 인물이다. 실제로 일곱 개의 다른 인격이 존재할 수 있나?
Doctor says 현재 주류 정신의학계에서는 다중인격 장애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최신판에는 그 명칭이 삭제된 상태고, 그 흔적은 ‘해리성 주체성 장애’라는 명칭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그런 진단을 하는 정신과 의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다중인격장애와 혼돈해서 생각하는 ‘양극모드장애(Bipolar Mood Disorder)’는 기분 장애의 일종으로 우울증과 조증의 양극단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정신 질환이다.

 

이와 달리 다중인격장애는 자신을 지각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독립적인 인격체가 하나 이상 존재하는 해리장애의 일종을 말한다. 조현병(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장애는 객관적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 중 자신에게 다른 인격이 있다고 믿고싶어 하는 일부 환자를 비과학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설명하고 싶어 한 일부 치료자들이 다중인격장애라는 극적인 진단명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신과에는 다른 정신과 질병을 가진 몇몇 환자가 자신도 다중인격이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는 자신 스스로 인정하거나 대면하기 불편한 특성, 즉 충동적인 부분, 성 정체성, 욕구, 기대보다 낮은 능력 같은 것들이 실제의 자신과 별개의 인격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로 등장하는 오리진(황정음)은 차도현을 치료하기 위해 합숙 생활을 자처하며 고군분투한다. 실제로 이러한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는 어떤 치료가 필요한가?
Doctor says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다중인격장애라는 개념은 인정한다고 가정해도 그 진단을 내린 후 동반되어야 하는 주된 치료법은 심리 치료다. 심리치료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물론 심리적 거리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분석적 치료가 가능하다. 1년 차 전공의가 그런 치료를 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치료자와 환자 관계의 기본 규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 때문에 야단을 맞아야 될 법한 상황이다.

 

<하트투하트>
환자 차홍도(최강희)
병명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

 

홍도는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을 앓고 있다.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은 실제로 흔한 병인가?
Doctor says 사람은 누구나 긴장을 하면 자율신경계가 반응하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빨라지고 얼굴이 붉어진다. 즉, 드라마에서 홍도가 앓고 있다고 알려진 안면홍조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류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어떤 환경에서 이런 자율신경의 반응을 통해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런데 일부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민감한 사람은 때때로 심각하지 않은 자극에 대해 과한 자율신경 반응을 보이면서 손이 떨리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당사자가 스스로 그런 반응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한심하게 보거나 싫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결국에는 이런 상황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사회공포증이라고 진단하는데, 이는 내과의 독감만큼이나 흔하게 정신과 진료실에서 볼 수 있는 질병이다. 실제로 증상이 극도로 심하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홍도는 신기하게도 할머니 분장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 지도 않고 지극히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변장’을 통해 잠시나마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을 극복할 수 있나?
Doctor says 자신의 안면홍조 증상을 타인이 알아채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자율신경계의 흥분을 더 악화시켜서 극심한 홍조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들킬 리 없다는 안심을 하게되면 긴장이 풀리고 홍조 증상도 오히려 호전될 수 있으니 극 중의 변장은 아주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다. 실제 환자 중에서도 위급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안면 홍조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나중에 자신이 그 상황을 그토록 유연하게 넘겼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평소에 대인 관계의 공포증이나 회피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어떤 치료 가 필요하나?
Doctor says 먼저 과도한 긴장과 안면홍조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진 내재된 두려움을 파악하고 잘못된 사고방식을 교정하는 인지 행동 치료를 시행한다. 심한 경우 자율신경의 과도한 반응을 제어하는 약물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이나 부정적 자의식 등 성격적 요인과 관련된 경우에는 개인 정신치료나 집단 상담 같은 심층 심리 치료를 권유하기도 한다.

 

<하이드 지킬, 나>
환자 구서진(현빈)
병명 다중인격장애

 

이번 드라마에서 현빈은 까칠한 재벌 3세 구서진과 그의 또 다른 인격인 ‘착한 남자’ 로빈 역할을 맡았다. 구서진이 로빈으로 변할 때나 로빈이 구서진으로 변할 때, 우리는 그가 마치 마법처럼 ‘변신’ 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현실에서도 하나의 인격이 다른 인격으로 눈에 띌 정도로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변화할 수 있나?
Doctor says 이미 정신의학에서는 다중인격장애 자체를 의미 있는 과학적 진단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195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 내 임상정신의학계는 마치 유행처럼 다중인격장애에 과도하게 관심을 두었지만 이는 다중인격을 주제로 다룬 영화나 문학 그리고 사이비 치료술사의 유행이 결합하여 일어난 것으로 보고있다. 과거 다중인격의 진단 기준이나 임상 특징을 서술한 내용을 고려해도 <하이드 지킬, 나>에서 보이는 극적인 인격 변화 묘사는 그저 영화적인 표현으로 봐야 한다.

 

때때로 구서진은 의도적으로 로빈 행세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 인격이 아니면서도 다른 인격인 것처럼 ‘가짜행세’를 하는 것인데,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

Doctor says 만약 우리가 다중인격장애의 광풍에 휩싸인 1990년대의 미국 사회에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물론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 시대에 쓰여진 다중인격 환자들에 대한 일부 사이비 치료자들의 묘사는 문학 작품이나 공상과학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