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을 위해서 스타일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주장이다. 두꺼울수록 멋스러운, 거대한 퍼와 무톤이 그 대안이다.

 

SONIA RYKIEL

SONIA RYKIEL 

 

 

소재 불문 테디 베어 신드롬

그간 퍼 아우터는 전통적으로 ‘마담의 영역’으로 취급되곤 했다. 통모피의 경우 가격도 가격이지만 와일드한 퍼 자체가 가지는 원숙한 럭셔리함은 일반적으로 젊은 숙녀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 디자이너들은 시즌에 따라 퍼에 여러 색을 입혀 발랄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소매나 칼라, 밑단 등 일부의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면서 통모피 특유의 낡은 부담감을 상쇄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모피가 갖는 특징적인 요소, 즉 거대한 부피감과 북슬북슬한 질감을 ‘오버사이즈’ 트렌드와 접목시켜 젊고 트렌디하게 풀어내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서너 가지 색을 섞어 만화 속의 야수 같은 장모의 퍼 코트를 만든 마르니, 곱슬거리는 양모가 주는 부피감을 강조한 구찌의 달콤한 핑크 코트, 안에 입은 니트와 같은 색의 큼직한 퍼 코트로 ‘가로 본능’을 자극한 소니아 리키엘, 끌로에 코트, 사카이의 그래픽적인 패딩 퍼 코트, 동화 <빨간 모자>를 연상시키는 돌체&가바나의 후드 코트 등은 모두 퍼의 거대한 부피감과 생동감 넘치는 컬러를 응용한 경우다. 이는 몇 시즌 전부터 유행한 캔디 컬러의 큼직한 코트가 소재를 달리해 나타난 현상인 것. 마르케스 & 알메이다, 오쥬르르쥬르, 까르벵 등 스트리트 신에서 각광받는 브랜드들은 페이크 퍼(동물 보호의 의미를 담아 ‘에코 퍼’라고도 한다)로 한결 신선한 디자인을 내놓아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내추럴한 퍼에 달콤한 핑크색 퍼를 부분적으로 매치한 펜디의 클러치

내추럴한 퍼에 달콤한 핑크색 퍼를 부분적으로 매치한 펜디의 클러치 

 

보송한 양털 퍼가 포근한 느낌을 주는 어그의 실내화

보송한 양털 퍼가 포근한 느낌을 주는 어그의 실내화 

 

수직으로 퍼를 매치해 투박한 느낌을 살린 펜디의 라이딩 부츠

수직으로 퍼를 매치해 투박한 느낌을 살린 펜디의 라이딩 부츠 

 

양들의 전성시대

멀리 갈 것도 없이 두세 시즌 정도의 모피 패션 경향을 살펴보면 상반된 것들이 마구 혼재되어 공존한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다. 진짜와 가짜, 자연 그대로의 와일드 퍼와 인공적인 염색을 더한 것, 길고 곱슬거리는 털과 짧게 깎은 털, 간결하게 모피만으로 승부를 본 것과 온갖 장식을 더한 것 등 선택의 폭도 광대역급으로 넓어졌다. 소재만으로 보자면 밍크와 세이블, 염소, 라쿤에 이르는 다양한 모피가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지만 무엇보다 각광받고 있는 것은 것은 양털과 양가죽이다. 양모는 보온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오랜 전통의 클래식한 겨울 소재이며 가죽 또한 가격 대비 튼튼한 품질로 정평이 났다. 아이보리 계열의 바탕색으로 염색을 통해 멋을 내기도 쉽다. 흔히 ‘무스탕’ ‘무톤’으로 불리는 시어링(Shearing)은 털을 깎아 가공한 양가죽을 말하는데 폴로 랄프 로렌, 토즈, 에밀리오 푸치 등에서 클래식한 에이비에이터, 모터사이클 재킷 스타일로 모두 이 시어링 소재를 사용했다. 안토니 바카렐로처럼 안의 내피를 짧게 깎아 부피를 줄이면 몸에 달라붙어 센슈얼한 느낌을 주며, 사카이처럼 양털의 부피감을 최대한으로 부풀리면 트렌디한 오버사이즈 아우터의 실루엣을 즐길 수 있다. 버버리 프로섬이나 프라다, 타미 힐피거, 제이슨 우의 코트처럼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은 유행에 상관없이 해를 거듭해 입을 수 있어 더 유용한 아이템이다

 

밖을 스웨이드로 가공해 시어링 소재의 보온성을 극대화한 코치의 웨지힐 부츠

밖을 스웨이드로 가공해 시어링 소재의 보온성을 극대화한 코치의 웨지힐 부츠 

 

퍼와 가죽이 만나 대단한 보온력을 자랑하는 에르메스의 무톤 모자

퍼와 가죽이 만나 대단한 보온력을 자랑하는 에르메스의 무톤 모자 

 

토즈의 모피 가방은 앞판에는 밍크, 핸들과 사이드에는 가죽이 매치된 디자인이다

토즈의 모피 가방은 앞판에는 밍크, 핸들과 사이드에는 가죽이 매치된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