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지만 그의 업적은 현재진행형이다. 더블유가 최근 뉴욕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면서 보다 높이 도약하고 있는 이 열정적인 듀오 디자이너를 만났다.

로마 오페라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포즈를 취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

로마 오페라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포즈를 취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

 

 

“Bello, bello, bellissimo!(아름다워요. 최고로 아름다워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는 모델들이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을 향해 워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모델이 입은 크림 색상의 격자무늬 실크 시폰과 초콜릿색의 대담한 꽃무늬 시스 드레스를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다. 곧이어 흰색 코트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는 6명의 모델들이 방으로 들어서자, 치우리 옆에 앉아 있던 피에르파울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 드레스는 발렌티노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치우리와 피치올리가 올가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해 디자인한 의상 중 하나. 최근 다시 부활한 하우스의 아틀리에에 바치는 헌정작으로, 정교한 바느질 때문에 스티치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기본적인 바느질 작업은 견습공들의 오랜 전통이지만, 완성도가 높은 최종 작업은 오롯이 장인들의 몫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발렌티노의 쿠튀르 아틀리에는 여성 일색이었지만, 이제 견습공 중에는 남자들도 제법 눈에 띈다. 더욱이 오랜 장인들이 지배하는 재봉업계의 관행에 비한다면 이들 견습공들은 놀랍도록 젊다. 치우리와 피치올리가 디렉터를 맡기 시작한 6년 전부터 쿠튀르 확장과 혁신이 일어난 데다가 워크숍 인력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67명의 쿠튀르 스태프 중 20대가 10명을 차지할 정도. 물론 쿠튀르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디 로커에 가까운 피치올리(48세)와 치우리(50세)는 형광색 스니커를 신고 패셔너블한 수염을 기른 20대 스태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피팅 작업은 아름다운 팔라초 미냐넬리(Palazzo Mignanelli)의 그랜드 룸에서 진행되었는데, 로마의 심장부에 위치한 이 16세기 맨션은 1988년부터 발렌티노의 본사로 쓰이고 있다. 짙은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에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긴 치우리는 술 장식의 검은색 스웨이드 케이프를 걸쳤다. 그리고 뱀과 해골 장식의 너클 링과 구불구불한 서펜트 팔찌를 매치한 모습.

 

“아주 우아한, 미니멀리스트다워요!” 화이트 셔츠에 발렌티노 컬렉션의 데님 파자마 수트, 그리고 스니커즈 차림의 피치올리가 놀리듯이 말을 건넨다.

 

“이제 쿠튀르는 더 이상 구닥다리 같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에요.” 피치올리가 말한다. “아주 섬세한 손길로 완성된,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현대적이고 정교한 선물이죠.” 미래의 쿠튀르를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은 20대의 재능 넘치는 스태프들을 고용하고 제3의 여성복 쿠튀르 아틀리에와 네 번째로 실험적인 맨스웨어를 오픈하며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 1980년대 후반부터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팔라초 미냐넬리의 여기저기를 복원했다. 이렇듯 하우스 운영에 관련해 치우리와 피치올리가 거둔 성공적인 증거가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오스카 수상식장의 올리비아 와일드, 골든 글로브의 에이미 애덤스, 그래미의 케이티 페리 등 해마다 주요 행사장에서 발렌티노 드레스를 선택한 셀레브리티들을 떠올려보라). 알렉사 청과 키라 나이틀리는 인스타그램에 발렌티노의 호리호리한 프록 드레스를 입은 스냅 사진을 올려 화제를 모았고, 벼룩시장 곳곳에는 치우리와 피치올리의 금빛 스파이크 록스터드 신발과 가방 복제품이 열풍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달에는 세계 최대의 발렌티노 매장이 뉴욕 5번가에 오픈한다.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한 이곳은 인근 파크 애비뉴의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유리 외관이 눈길을 끈다.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오는 12월 뉴욕으로 날아가 5번가 플래그십의 오픈을 기념하는 쿠튀르 쇼를 열 예정이라고.

 

 

 

아티스트 지오세타 피오로니(Giosetta Fioroni)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발렌티노의 드레스.

아티스트 지오세타 피오로니(Giosetta Fioroni)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발렌티노의 드레스.

 

 

재능 넘치는 창조적인 디자이너의 영입으로 브랜드를 변화시킨 패션 하우스 가운데 발렌티노는 가장 성공적인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마리아 그라치아와 피에르 파올로가 발렌티노에 안착한 이후로 얼마나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떠올려보세요. 이런 작업들이 결코 요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이뤄졌지만 말이에요.”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패션 에디터 리사 암스트롱이 말한다. ”그들은 하우스를 사랑하는 기존의 수많은 팬을 소외시키지 않고도 꽤 두터운 차세대 팬층까지 끌어들였어요.“

 

미스터 발렌티노가 하우스를 세운 1960년 이후 2008년 은퇴하기까지, ‘시크의 제왕(Sheikh of Chic)’이라 불린 발렌티노는 화려하고 근사한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는 브랜드로 유명했다. 매혹적인 고급 쿠튀르뿐만 아니라 제트기와 요트, 퍼그 애완견들 그리고 파리 인근의 17세기 자택 위드빌 성(Chateau de Wideville)에서 열리곤 한 환상적인 파티에 이르기까지,게다가 미디어에서의 신화는 초창기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로마에서 <클레오파트라> 촬영 당시, 주문한 흰색 시폰 가운을 입은 채 <스파르타쿠스>의 시사회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고, 심지어 다음 날엔 언론 홍보를 위한 7벌의 드레스를 더 주문했다. 재키 케네디와 오드리 헵번뿐만 아니라 최근의 귀네스 팰트로와 앤 해서웨이에 이르기까지, 발렌티노와 오랜 파트너인 지안카를로 지아메티(Giancarlo Giammetti)는 능숙한 전략과 쇼맨십을 통해 쿠튀르의 우아함을 21세기까지 꽃피웠다.

 

2008년 발렌티노의 은퇴 후 첫 번째 계승자인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레산드라 파키네티(Alessandra Facchinetti)는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지만 하우스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두 시즌 만에 하차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리고 2006년부터 발렌티노의 CEO로 활동해온 스테파노 사시(Stefano Sassi)는 결국 이미 발렌티노의 일원이었던 치우리와 피치올리(1999년부터 발렌티노의 슈즈, 백, 기타 액세서리를 디자인해 왔다)를 후임으로 결정했다.

 

피치올리와 치우리는 80년대 후반 처음 만났는데, 피치올리는 당시 로마에서 공부 중이었고, 치우리는 플로렌스에서 패션 디 자이너가 수습 과정을 밟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의 친구가 있는데 치우리가 친구를 대신해 기차역으로 피치올리를 마중 나갔다고 한다. 손으로 직접 쓴 ‘피에르 파올로’라는 사인을 들고 있던 그를 만난 순간, 두 로마인은 패션에 대한 사랑에서 예술, 사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재봉사의 딸이자 ’태어날 때부터 패션에 이끌렸다‘는 치우리는 주로 플리마켓의 빈티지 백을 찾아다니며 틴에이저 시절을 보낸 반면, 피치올리는 다방면에 관심사가 많았다. “스토리를 전달해주는 아이디어들이 언제나 흥미로웠어요.” 그가 말한다. “틴에이저 때는 영화와 사진에 깊이 빠져들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건 ’패션이라 불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죠.”

 

1.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상하이 발렌티노 스토어.2,3. 뉴욕 5번가 발렌티노 플래그십 스토어의 렌더링.

1.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상하이 발렌티노 스토어.
2,3. 뉴욕 5번가 발렌티노 플래그십 스토어의 렌더링.

 

 

4. 2004년 로마 팔라초 미냐넬리에서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지안카를로 지아메티.5. 2013년 파리 발렌티노 가을/ 겨울 런웨이 쇼에서 모인 피치올리, 미스터 발렌티노, 치우리.6. 파리에서 마지막 쇼를 마친 후의 가라바니,

4. 2004년 로마 팔라초 미냐넬리에서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지안카를로 지아메티.
5. 2013년 파리 발렌티노 가을/ 겨울 런웨이 쇼에서 모인 피치올리, 미스터 발렌티노, 치우리.
6. 파리에서 마지막 쇼를 마친 후의 가라바니,

 

 

1989년 펜디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을 때 치우리는 피치올리에게 함께 일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2년 후에 그가 합류했다. 치우리는 ‘혼자서 일하기보다는 사람들과 팀을 이뤄 작업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피치올리 역시 ‘패션에 있어서는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서 일할 때보다 마리아 그라치아와 함께일 때 더 많은 것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요. 디자이너가 단독으로 작업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낡은 아이디어예요. 치우리도 장난스럽게 눈동자를 굴리며 ‘그건 지루해요!’라고 동조한다.

 

프로페셔널 듀오로 활동하면서 둘의 성향을 나누자면 치우리가 좀 더 직관적인 반면 피치올리는 좀 더 사색적이다. 하지만 두 사 람은 책임감은 물론 모든 일을 공유하며, 서로의 일에 마침표를 찍어주면서 완성도를 높여간다.

 

펜디에서 바게트백을 디자인하면서 성장한 이들은 발렌티노에선 신중하면서도 충실하게 틈새 시장을 공략해왔다. 파키네티가 떠날 무렵, 듀오는 거의 10여 년간 발렌티노에서 활동하면서 각자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다. 치우리와 남편은 두 아이와 함께 로마 중심지에 살고 있고, 피치올리와 아내 그리고 세 아이는 40마일 떨어진 해안가 타운인 네투노(Nettuno)에 살고 있다.

 

이들의 초창기 컬렉션은 그다지 호평받지 못했고, 심지어 가끔 적대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2009년 두 번째 쿠튀르 쇼가 끝난 후 캐시 호린은 <뉴욕 타임스>에 ‘솔직히 말하자면 똑같은 나뭇가지에서 가시만 뾰족뾰족 돋아난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평했고, 는 ‘쿨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절망스럽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묵묵하게 그들의 일을 해나갔다.

 

“미스터 발렌티노가 수장으로 있을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하우스의 결과물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치우리와 피치올리가 디렉터로 임명된 해부터 지금까지 쭉 스토어 디자인을 맡아온 치퍼 필드의 말이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 다들 발렌티노의 그림자로 부터 벗어나려 애쓰면서도 ‘발렌티노의 정신’ 혹은 ‘발렌티노답지 않은 것’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죠. 하우스의 모든 측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스터 발렌티노는 당대의 럭셔리 하우스 디자이너들이 그랬듯이 부유한 고객들과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면서 일 했지만, 치우리나 피치올리의 성향은 정반대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난 해변가에 살고 있고, 패션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차츰 이곳에 속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어요.” 피치올리가 말한다. “파티도, 수많은 군중이 모여드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화려한 럭셔리 하우스가 대표하는 것이 아닌, 디자이너로서의 피치올리 자체를 바라 봐주길 원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하우스의 역사와 디자이너들의 특성은 팔라초 미냐넬리의 인테리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발렌티노의 자화상은 그가 디자인한 60년대 드레스를 입은 재키 케네디와 오드리 헵번 등과 함께 중앙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동시에 그 곁에는 엠마 스톤과 미셸 윌리엄스가 발렌티노를 입은 잡지 사진이 자리한다. 그리고 치우리와 피치올리의 인물 사진은 회의실 바깥 벽면에 매 시즌 쿠튀르 컬렉션을 위해 애쓴 동료들과 함께 나란히 붙어 있다. 이 듀오는 발렌티노의 오랜 오피스에서 일을 하며, 호화로운 책상 대신에 나란히 공간을 차지하는 두 개의 심플한 나무 데스크를 둔 것 외에는 많은 부분을 그대로 유지했다(미스터 발렌티노만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는 이젠 누구나 사용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되었다). 즉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미스터 발렌티노를 대신하기보단, 하우스의 빛나는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수호자인 동시에 차세대를 위한 새로운 차원의 럭셔리를 꿈꾼다.

 

아티스트 지오세타 피오로니의 로마 스튜디오에서 2014 F/W 발렌티노 컬렉션의 아름다운 나비 모티프 드레스를 입은 모델.

아티스트 지오세타 피오로니의 로마 스튜디오에서 2014 F/W 발렌티노 컬렉션의 아름다운 나비 모티프 드레스를 입은 모델.

 

 

타 디자이너들이 가능하면 관능적인 노출로 현대성을 표현하는 반면에, 치우리와 피치올리의 뉴 발렌티노 룩은 하이네크와 호리 호리한 소매로 이루어진 롱 드레스에 애착을 드러낸다. 알렉사 청과 키라 나이틀리가 그 아름다움을 입증했듯이, 오히려 이 룩은 신선하고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데다가 입고 벗기도 쉽다. “치우리와 피치올리의 비전은 미스터 발렌티노의 고급스러운 공주풍의 드레스와 닮아 있어요. 세련된 미학과 예의 바른 품격까지 갖추었죠.” 암스트롱이 말한다. “미스터 발렌티노는 몸통 부분이 뚜렷하게 좁고 허리 라인이 살짝 올라간 실루엣이 특징인데, 치우리와 피치올리도 마찬가지예요. 단, 그의 드레스가 기네비어 왕비 시대의 신화에 뿌리를 둔 좀 더 극단적인 버전이긴 하지만요.” 기네비어 룩은 발렌티노 컬렉션 내에서도 인기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카피가 넘쳐났기 때문에,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새로운 조율이 필요했다. 지난 7월 파리에서 베일을 벗은 가을 쿠튀르 컬렉션 쇼에선 블랙 레이스 드레스 차림의 엠마 왓슨, 발렌티노가 라바니와 킴 카다시안, 지아메티 등이 프런트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듀오는 1800년대 중반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전시회에서 보았던 고대 그리스 회화로부터 영감을 얻은, 플리츠 실크 시폰 드레스(뒷면은 대담하게 노출된) 시리즈를 선보였다. “대부분의 발렌티노 우먼은 드레스에 감싸져 있어요. 하지만 우린 좀 더  대담하게 노출하면서도 고전적인 우아함과 품격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에 스릴을 느꼈죠”라고 치우리가 설명한다.

 

듀오가 특히 주의하는 건 현대적 해석이 지나쳐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현대 패션 문화를 이해하되,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같은 목소리를 실으려 애쓴다. “인터넷은 패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변화시켰어요.” 피치올리가 말한다. “수많은 옷과 수많은 액세서리, 다들 정말 빠르게, 심지어 수많은 걸 접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오히려 일관성과 철학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드레스 하나, 가방 하나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죠. 매 시즌 서로 다른 스토리를 말할지라도 그 언어는 동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테니까요.”

 

정교한 로마 팔라초에 현대적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치퍼필드의 건축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각각의 공간은 대리석과 팔라초 등 전통적인 이탈리아 건축 자재를 사용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로 설계되었다. “데이비드는 장식가가 아닌 건축가이기 때문에, 중요한 차이점을 만들어내죠.” 피치올리가 설명한다. “그는 우리의 비전을 가구가 아닌 공간에 해석해놓았어요. 우리의 쿠튀르가 그렇듯이, 그 역시도 앤티크 재료를 모던하게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설계한 부티크들은 빠르게 완성되는 여느 패션 스토어들과는 달리, 한층 우아하고 럭셔리한 느낌이다. 그리고 뉴욕 5번가 매장에선 다른 발렌티노 매장에선 볼 수 없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로고’다. “우리에겐 정말 중요한 의미예요.” 치우리가 말한다. “그저 장식이 아닌, 로고는 ‘최고의 퀄리 티’를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한편 듀오는 발렌티노 광고를 맡았던 사진가들과도 친분을 쌓는다. 2011년에는 멕시코로 날아가 지금은 고인이 된 데보라 터브 빌(Deborah Turbeville)과도 캠페인을 찍었다. “이른 새벽에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데보라가 아주 특별한 빛을 원했기 때문이죠.” 피치올리의 말이다. “게다가 촬영을 재개할 때까지 빛이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던 터라, 우린 텐트를 친 채 6시간을 머물렀어요.” 치우리는 ‘모두가 굉장히 지친 상태였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힘들게 작업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요. 하지만 당시 80세였던 데보라는 ‘우린 반드시 빛을 포착해야만 한다!’고 말했어요.” 이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사진가는 이번 시즌 캠페인을 맡은 데이비드 베일리다. 피치올리는 ‘그는 나의 새로운 히어로’라고 칭할 정도. “때론 펑키하면서도 때론 무심하고, 다이애나 브릴랜드나 폴리 멜렌과 함께 작업한 그의 경험담을 듣다 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죠.”

 

또한 듀오는 올봄 이탤리언 팝 아티스트 조세타 피오로니(81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그녀의 초창기 작업은 이번 가을 레디 투웨어 컬렉션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 나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발렌티노 웹사이트에 올릴 필름을 만든 피오로니의 말이다.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아, 이건 1970년에 작업하신 거네요. 그리고 저건 1979년이었죠!’” 이제 피오로니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자수 장식의 이국적인 새들과 기하학적인 프린트는 매장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동안 치우리와 피치올리는 파리에서 9월에 선보일 레디투웨어 쇼의 막바지 작업과 뉴욕 쿠튀르 쇼의 준비 작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일정은 로마로 돌아가 뉴욕 5번가 매장보다 좀 더 큰 규모의 부티크를 오픈하는 것이다. 게다가 쿠튀르 스쿨에 합류해 많은 견습공을 가르치고, 갤러리 전시를 통해 발렌티노 컬렉션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작업도 수행해야 한다.

 

“우린 발렌티노의 본고장인 로마에 사로잡혀 있어요. 이 아름답고 귀한 우리의 도시에 뭔가를 선믈해야죠.” 치우리가 미소를 띠며 말한다. “아카이브에서부터 디자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발렌티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전시 공간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우스의 헤리티지와 가치를 존중하고 여기에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예요. 다름 아닌 현재의 ‘이 순간’에 살아 숨 쉬는 발렌티노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