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온전히 이순신과 함께 보낸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물었다.

체크무늬 셔츠와 감색 재킷은 빈폴맨, 회색 팬츠는 S.T.듀퐁, 슈즈는 스티븐 매든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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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에 관한 다큐멘터 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극 영화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한민 <명량> 준비 단계에서부터 가진 궁금증이 있었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수군을 재건해서 열두 척으로나마 전투 채비를 갖췄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그 의문을 풀기 위한 작업이다.

 

이미 극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다큐 멘터리에 대한 구상이 있었던 건가?

아니다. 좀 막연한 상태였다. 애초에는 아예 <명량>을 수군 재건 단계에서부터 시작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해전 파트의 임팩트가 약해질 것 같았다. 결국 오프닝에서 짧게 설명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전투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 물론 미련은 계속 남더라. 그래서 다큐멘터리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려 한 거다. <최종병기 활>의 조감독이었던 정세교 감독이 나와 함께 공동 연출을 한다.

 

약 1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명량>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개봉 전의 기대치는 어느 정도였나? 

 

작비가 컸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은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장 매출로 따지면 650만 관객 정도? 물론 그 역시 녹록지 않은 숫자지만 왠지 실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최종병기 활>과 비교하면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스코어는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18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숫자다. 이 작품에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호응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확히는 1760만 명이다. 기자부터 평론가까지 다양한 분들이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외부적으로는 리더십이 부재한 시대에 이상적 인지도자 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특히 많았다. 그 외에 이 영화의 오락적 요소,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화두에 집중한 드라마도 언급할 수 있을 듯하다. 관객들이 이순신의 인간적인 두려움에 감응하고 강한 울림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명량>을 다분히 이상화된 영웅의 이야기로 이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인간 이순신의 개연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작위적이고 영웅적인 인물 묘사를 배제하고 최대한 리얼리티를 강조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인물의 카리스마가 살아난 모양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순신에 대한 존경이 감독인 나뿐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찍다 보면 카메라가 자꾸로 앵글로 인물을 올려다보고 있는 거다. 촬영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어떤 면에 특히 매력을 느끼나?

담백한 무인이라는 점. 자기 전에 남의 일기 훔쳐 읽듯 종종 <난중일기>를 들춰본다. 그때 마다 원칙과 상식에 충실했던, 그리고 명징하면서도 명확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을 새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봤는데도 <난중일기>는 희한할 만큼 질리지가 않는다. 담백한 문체만큼이나 담백한 사람이었다. 내가 <명량>에서 그리고 싶었던 모습 역시 그런 것이었다.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나면 영화가 단순한 영화 이상이 된다. 만든 사람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며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작품의 흥행을 한국 영화 산업의 견지에서 분석한다. <명량>을 둘러싼 담론이 거대해지는 풍경 앞에서 감독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중요한 부분이다. 이 작품을 둘러싼 현상과 의미를 진중하게 복기하고 있다. 관객 1000만 명을 넘겼을 때는 그저 흥행 이 잘돼서 기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1500만 명이 넘어가자 여기에는 뭔가 다른 의미, 혹은 계시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됐다. 관객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기다려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지금은 그런 의미들을 내 안에서 되짚으며 소화시키는 단계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내 나름대로 또 환원할 부분이 생길 거라 기대한다.

 

해외 개봉판을 위해 재편집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국내 상영판과는 어떤 것들이 달라지나?

해외 관객의 이해를 돕고자 오프닝의 스케일을 키웠다. 오리지널은 1597년의 정유재란부터 시작하는데 이번 편집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 라는 문구와 함께 1592년에서 출발한다. ‘명나라를 치러 가니 길을 비켜달라’ 는 뜻으로 조선 침략 전 왜군들이 내세운 대의명분이다. 이 전쟁이 삼국의 관계가 맞물린 동북아 규모의 분쟁이었음 을 강조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속도감 있는 영화로 다듬으려고 했고 자연스럽게 러닝타임도 줄어들었다. 결국 해전에 더욱 집중하는 영화가 됐지 만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의 묘사가 가벼워진 건 아니다. 그를 모르는 관객이라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버전이 됐다.

 

이미 완성된 작품을 다시 편집하며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새삼스러운 감정이 있었을 듯하다.

이 작업은 끝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편집실에 앉아 있노라면 자꾸 데자뷔가 스쳐 지났다. 그래도 꼭 해야만 했던 작업이었다.

 

<명량>은 이순신 삼부작의 첫 번째 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속편인 <한산>과 <노량> 프로젝트는 어떻게 구상 중 인가?

<한산>은 이미 시나리오가 완성 됐고 지금은 <노량>을 쓰는 중이다. 후자는 한중 합작을 고려하고 있다. 등자룡이나 진린 같은 명나라 장수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니 두 나라가 함께 완성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11월 말에 중국에서 <명량>이 개봉되면 이런 방향으로 홍보를 할 생각이다. 이게 7년에 걸쳐 이어진, 중국인들과도 무관하지 않은 큰 전쟁이었고 그 중심에 이순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한다. 한편 <한산>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거북선의 활약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명량>에 12척의 배가 등장했다면 <한산>에서는 54척의 거대한 조선 함대가 기동하는 광경이 펼쳐 진다. 비주얼적인 호쾌함이 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극락도 살인사건>이나 <핸드폰> 같은 초기작은 스릴러였다. 그런데 <최종병기 활> 이후 이순신 삼부작에 돌입하면서 필모그래피의 무게중심이 역사물 쪽으로 치우치게 된 느낌이다. 현재로서는 날렵하고 현대적인 장르물에 대한 관심이 잦아든 상태인 걸까?

작품의 외피는 이야기하려는 바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내 경우에는 주제 의식이 먼저 정해져야 거기에 맞춰 장르, 캐릭터, 사건 등의 하위 개념이 정리된다. 즉, 역사 물이냐 현대물이냐부터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그래도 이제 큰 방향성은 어느 정도 선 느낌이다. 일단 인생에서의 성숙과 성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종교적인 구도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예술을 통하면 훨씬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질문이 가능하다. 또한 영화는 여러 예술 가운데서도 가장 짜릿하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작업들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명량>의 제작사인 빅스톤픽쳐스의 대표이기도 하다. 직접 영화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내가 기획이 좀 많다. 직접 연출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감독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무척 즐겁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감독을 할 때도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면서 영화적으로 필요한 고집을 지키는 방식이 성향에 잘 맞는다. 제작을 겸하면서 한정된 예산으로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할지 많이 고민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연출에도 도움이 됐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니 묻겠다. 2014년은 감독 김한민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가장 뜨겁고 극적인 해였다. 내가 인생을 설계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힘을 준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곱씹을 만한 성찰적인 메시지를 상업 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전할 토대가 마련됐다. 그런 측면에서 나름의 자신감을 얻었다.

 

주제 의식을 대중 영화의 화법으로 전하는 일에 큰 의의를 두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중요한 이야기를 되새기게 하는 작업이 즐겁다. 가치도 느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