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코리아의 세 작가 안용진, 유병재, 강유미를 만났다.

왼쪽부터 | 안용진이 입은 흰색 셔츠와 검은 팬츠, 서스팬더는 모두 Caruso 제품. 유병재가 입은 러플 장식의 흰색 셔츠와 에나멜 소재의 신발은 Caruso, 체크 패턴의 팬츠는 Kimseoryung Homme 제품. 강유미가 입은 흰색 셔츠와 스트라이프 패턴의 팬츠는 Studio K제품.

왼쪽부터 | 안용진이 입은 흰색 셔츠와 검은 팬츠, 서스팬더는 모두 Caruso 제품. 유병재가 입은 러플 장식의 흰색 셔츠와 에나멜 소재의 신발은 Caruso, 체크 패턴의 팬츠는 Kimseoryung Homme 제품. 강유미가 입은 흰색 셔츠와 스트라이프 패턴의 팬츠는 Studio K제품.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거울 앞에 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파우더를 두드리는 손이 더뎌지고 있었다. 별말도 별일도 없었지만, 하필 스튜디오 분장실이라는 공간에 이 사람들이 앉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출세작이었던 강유미는 이름 앞에 개그우먼 외에도 ‘작가’ 라는 타이틀이 붙었다는 것이 그때와는 달라진 점이다. “요즘은 연애도 안 하고, 이게 제 낙이에요.” 강유미가 얘기하는 ‘이거’란, 대본 쓰는 작가이자 연기하는 크루로서 소속된 SNL 얘기다. “병재야, 너 요즘 매니저 필요하지 않니?” 선배 작가 안용진은 ‘극한직업’ 코너가 히트하면서 CF까지 찍는 스타가 된 유병재에게 말을 건넨다. 괴팍한 연예인들을 보필하다 더러 뺨 맞고, 좋아하는 분장 담당에게(분장실에서) 거듭 고백하지만 늘 거절당하는 억울한 인상의 매니저를 연기하는 사람이 바로 유병재 작가다. 요즘 인기인 그의 페이스북 얘기를 꺼냈더니 마치 일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코미디의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사나 줄바꿈을 두고 고민하거나 5고, 6고씩 고쳐 쓰기도 해요.”

 

금요일 아침 일찍 스튜디오에 모인 세 작가에게는, 다음 날 SNL 스튜디오에서 훨씬 급박하게 진행될 추석 특집을 하루 앞둔 긴장감이 흘렀다. SNL 스태프와 크루들에게 펼쳐진 1주일의 스케줄은 토요일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뜨겁게 달려간다. 정치 풍자나 성인 코드까지 포함한 SNL 특유의 수위 높은 코미디를 생방송으로 실수 없이 내보내기 위해 방송 12시 간 전부터 리허설이 거듭된다. 스탠딩 코미디처럼 상황이나 소품을 생략한 채 ‘거기 있다 치고’ 연기하는 포맷이 아니기에 현장의 변수는 한없이 늘어난다. 토요일의 SNL 세트는, 말하자면 엄청난 양의 카페인과 레드불을 연료로 돌아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엔진이다.

 

“생방송이다보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이 있죠. 하지만 현장의 에너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건 장점이기도 해요. 저희끼리 연습할 때도 재미있지만, 300명 넘는 관객이 같이 웃으면 뭐라 말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끼거든요.”(안용진) 강유미와 마찬가지로 개그맨 출신인 안용진 작가는 무대에 더 이상 서지 않으니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지금도 웃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의도대로 쓴 걸 다른 크루나 호스트가 터뜨려줄 때의 희열은 직접 무대에 설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주니까요.” 강유미의 경우 온주완의 ‘민간중독’이나 김민준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특히 작가로서 만족했던 코너로 꼽는다. “작가를 겸하게 되면서 연기자들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크루로만 뛸 때는 경쟁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쓴 아이디어를 열심히 살리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럽거든요.” 한 편 두 사람과 반대로 유병재 작가는 작가로 출발했다가 신선한 얼굴이 필요했던 코너에서 연기를 겸하게 된 경우다. 세 사람 중 막내인 그는 대학 시절 UCC를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린 걸 계기로 Mnet의 페이크 다큐 콘셉트 프로그램인 <유세윤의 아트 비디오> 조감독을 거쳤다. SNL의 경우 매주 고정 코너가 거의 없이 새로운 콩트를 만들 수 있다는게 제작진 입장에서 신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SNL은 두 팀, 4~5명의 메인 작가진이 격주로 돌아가며 각자 아이디어를 낸 코너의 초고를 써서 토요일까지 계속 수정 완성하는 수평적 자율 경쟁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안용진의 말을 빌리자면 ‘타짜들이 모인’ 집단이다. 웬만한 패는 작가들끼리 다 서로 읽히기 때문에 한 급수 위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다는 것. “내공이 강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스템이 에요. 자기를 확실히 증명하는 프로그램이죠.”(유병재) “ 힘들지 않은 한 주가 없지만, 토요일 방송날만 되면 다 잊혀요. 오프닝 음악이 나오면 어느새 설레요.” (강유미) 세 사람에게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함께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게 묻어 났다. 세 작가 각자의 강점도 다르다. 강유미가 실험적인 코미디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스타일이라면 안용진은 안정적이고 대중적인 감각으로 조율하는 균형 감각이 뛰어나며, 유병재는 규격화된 구성을 짜고 복선을 깔아서 매끄럽게 의도된 웃음을 추구하는 식이다. 물론 각자의 아이디어 노트에 적는 메모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암호화하는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하다.

 

“나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그 문제에만 가라앉지 않도록 일이 건져내주는 부분도 있어요.”(안용진) “집에서 대본을 쓰면 힘든데 회의 나가면 즐거워요. 혼자 있을 때 외롭고 짜증나고 내가 누굴 어떻게 웃기지 하다가도 같이 농담하며 회의하면 오히려 풀리거든요.”( 유병재) 서로 못하는 얘기가 없는 SNL 회의실에서 유일한 금기어는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에이, 그거 재미없어’ 하며 풀을 꺾어놓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