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엄지손가락이 척 올라가는 가방들의 고향이 알고 보니 한국이라고 한다.

1. 시퀸으로 수놓은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노랑 샤이걸 백은 플레이노모어 제품. 2. 도트와 줄무늬가 그래픽적으로 배치된 토트백은 덱케 제품. 3. 컬러풀한 이그조틱 스킨의 느낌을 살린 태슬 장식 클러치는 타마백 제품.

1. 시퀸으로 수놓은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노랑 샤이걸 백은 플레이노모어 제품.

2. 도트와 줄무늬가 그래픽적으로 배치된 토트백은 덱케 제품.

3. 컬러풀한 이그조틱 스킨의 느낌을 살린 태슬 장식 클러치는 타마백 제품.

 

 

한국 가방 브랜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익숙한 디자인에 비슷비슷한 마케팅으로 승부수를 던져서, 시즌 광고에 등장한 백 정도만 베스 트셀러 반열에 올렸다가 이내 쇠퇴기를 맞고 만 예전의 그 가방들이 아니다. 소지품 수납이라는 본질적인 용도는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할 법한 디자인에, 가끔은 이게 손에 드는 가방이 아니고 장식장 위에 올려놓거나, 애완견에게 장난감으로 갖고 놀라고 던져주면 더 반색할 만하게 생긴 것들도 있다. 이런 가방들은 특히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서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댓글을 통해 자발적이고도 열성적인 제품 정보가 오가는 건 물론 자연히 따라붙는 과정인데, 여기서 해당 제품이 한국 브랜드, 혹은 디자이너 레이블 제품이라는 것이 드러나도 이미 단단히 사로잡힌 유저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존재감을 뚜렷하게 확장하고 있는 한국 출신 가방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컨템퍼러리 시장을 노린 ‘절대 다수의 에브리데이 백’이다. 샤넬, 에르메스 등 접근하기 힘든 가격대는 물론이고 프라다, 피에르 아르디, 제롬 드레이퓌스 등 해외에서도 유행하는 디자인의 가방은 대부분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평상복’을 입을 때 매일 들 수 있는 편안한 디자인과 가격대를 목표로 한다. 대표적으로 한섬의 덱케와 예진상사의 칼린을 들 수 있다. 올해 3월 론칭한 덱케는 기본적으로는 ‘컨템퍼러리’ 감성을 표방하고(시스템, 타임 등을 배출한 한섬은 컨템퍼러리 분야에서 남다른 자부심과 노하우를 갖고 있을 터다), 좋은 가죽을 쓰되 높지 않은 가격대를 형성해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들고 다니는 데일리 백으로 활용도를 높이고자 했다. 2012년 론칭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패션 전문 회사(예진상사)가 영입해 올해 재론칭을 마친 칼린은 좀 더 ‘디자이너’를 내세우는 편이다. 기존의 한국 가방 브랜드들이 ‘잘 팔리는’ 쪽으로만 획일화되어 있음을 포착하고 제품명에 뉴욕의 갤러리 이름을 붙이는 등 다양성을 강조한다.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서도 좀 더 유연하게 무장된 ‘컨템퍼러리’의 수요를 읽을 수 있다. 가방이 벨트를 착용한 듯한 모양의 로니 백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유진화의 브랜드, 진유 103684는 여전히 질 좋은 가죽과 빈티지한 디자인의 핸드백 라인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을 보여준 크리스타 백의 주인공, 디자이너 이수정의 브랜드 타마백도 시즌을 타지 않고 선전하고 있다. 옷보다는 액세서리로 스타일을 강조하고 싶은 날 제격인 합리적인 디자이너 악어 가방 브랜드, 비엘타 역시 꾸준히 좋은 반응이다. 가방은 역시 패션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게 마련인데,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올세인츠, 이로, 쿠플스 등 컨템퍼러리 브랜드에는 별도의 액세서리가 없기에 이런 가방들이 인기를 얻는 요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

 

4. 레터링 장식의 분홍색 아크릴 클러치 겸 숄더백은 202팩토리 제품.5. 위트 넘치는 아날로그 TV 모양의 클러치 겸 숄더백은 Bpb 제품.6. 스니커의 레이스업 장식을 손잡이로 응용한 검은색 클러치는 멜로우 플래닛 제품.

4. 레터링 장식의 분홍색 아크릴 클러치 겸 숄더백은 202팩토리 제품.
5. 위트 넘치는 아날로그 TV 모양의 클러치 겸 숄더백은 Bpb 제품.
6. 스니커의 레이스업 장식을 손잡이로 응용한 검은색 클러치는 멜로우 플래닛 제품.

 

 

컨템퍼러리 백 군단에 못지않은 개성파 가방의 존재감은 더욱 놀랍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스트리트 신에서나 보이는 생소한 디자인의 가방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 대표적으로 플레이노모어의 샤이걸(Shy Girl) 백을 들 수 있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닮은 디자인에 커다란 시퀸 소재 눈동자가 수놓아진 샤이걸 백은 모델들의 인스타 그램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품절 행진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2주 이상 웨 이팅을 해야 ‘득템’ 가능하다고 한다. 아트와 위트가 뒤섞인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이보람은 202팩토리라는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투명한 아크릴 클러치를 히트시켰고, 이번 시즌에는 소녀들의 침대 에서 영감을 받은 ‘필로우 토크’라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디자이너 조계주의 멜로우 플래닛은 의류와 액세서리를 아우르는 토털 브랜드인데, 특히 로프 형태의 탈착 가능한 스트랩이 돋보이는 로프 백이 크게 입소문을 탔다. 키치하면서도 소녀스러운 디자인이 특징인 디자이너 하보배의 브랜드 Bpb는 2NE1의 스타일리스트가 먼저 알아보고 멤버들이 착용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가방뿐만 아니라 코스튬 주얼리, 티셔츠, 문구류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마치 <판타스틱 소녀 백서>의 세트에 등장하는 물건 같은 느낌을 준다. 취향을 크게 탄다는 약점이 있지만 한번 형성된 마니아층의 충성과 이들의 자발적인 홍보 효과는 엄청나다.

더욱 긍정적인 현상은 K-패션이 급속도로 영향력을 미치는 요즘, 잇백 보다는 개성에 집중한 메이드 인 코리아 가방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 덱케의 경우 한국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경향을 읽고 역수 출될 경우를 미리 염두에 두어 지난 3월 톰그레이하운드 파리 오픈에 제품을 소개하여 외국의 반향을 먼저 이끌어냈다. 플레이노모어의 샤이걸 이나 202팩토리, Bpb 역시 모델이나 셀렙 등 SNS 퀸들의 영향을 받아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다. 한국 브랜드라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 마지막 공정을 외국에서 마무리하고 ‘Made in Italy’ ‘Made in France’라는 딱지를 붙이려 애썼던 현상을 생각하면, 가방 안쪽에 메이드 인 코리아-심지어는 차이나-라는 점을 당연하게 표기한 태도는 쿨하다 못해 대단한 자부심으로 느껴질 정도다. 요란하게까지 느껴지는 한국산 가방의 열풍은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SNS에 열광하는 10~20대의 리그에 멈추지 않고 더 높은 단계에 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해외 브랜드와 그 카피캣에 편향되어 있던 가방 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 것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7. 벨트 장식이 달린 로니 백은 진유 103684 제품.8. 베이지색과 살구색이 오묘하게 섞인 라운드 핸들 악어가죽 가방은 비엘타 제품.9. 회색과 파란색의 컬러 블록이 인상적인 큼직한 토트백은 칼린 제품.

7. 벨트 장식이 달린 로니 백은 진유 103684 제품.
8. 베이지색과 살구색이 오묘하게 섞인 라운드 핸들 악어가죽 가방은 비엘타 제품.
9. 회색과 파란색의 컬러 블록이 인상적인 큼직한 토트백은 칼린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