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스톤즈의 투어를 기록하고 루 리드에게 데이비드 보위를 소개한 장본인이자, 트위터가 생기기 전 록스타와 팬 사이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했던 음악 저널리스트 리사 로빈슨이 그간 담아뒀던 이야기들을 드디어 공개했다.

“투어 때 여자와 함께 다닐 필요는 전혀 없어요. 거기서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믹 재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있어야 한다면 그건 데리고 자기 위해서죠. 그 외의 시간에는 내내 지루해하거든요. 멍하니 앉아서 투덜대는 게 고작이에요.” 때는 1975년이었고 재거의 인터뷰어는 리사 로빈슨이었다. 젊은 음악 저널리스트였던 그녀는 롤링스톤즈의 미대륙 투어에 동행할 예정이었다. “기분이 상했냐고요?” 로빈슨이 웃으며 회상한다. “전혀요! 절 염두에 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 방에 걸어 들어간 여자들 대부분은 밴드를 좇아 다니는 그루피였죠. 하지만 전 달랐잖아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갔죠.”

트위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칸예 웨스트의 편집되지 않은 생각이나 불평이 섞인 중얼거림, 혹은 케이티 페리의 즉흥적인 발언과 잡담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를 들어 뉴욕의 아파트 부엌에 있는 존 레넌의 소식을 들으려면 팬들은 로빈슨의 정보력에 기대야 했다. 1970년대에 파티광인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스톤즈의 투어에 동행했으며, 어느 누구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누구와도 자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써낸 그녀는 자타공인 최고의 뮤직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당대의 쿨걸이었던 로빈슨에게는 솔깃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녀는 데이비드 보위를 루 리드에게 소개한 장본인이며, 센트럴 파크 공연장의 한쪽에서 패티 스미스가 소변을 보는 동안 망을 봐주기도 했다. 클래시와 엘비스 코스텔로의 첫 번째 레코드 계약을 도와주었고(하지만 그들로부터 한 번도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는 못했다며 툴툴거렸다)지나치게 꽉 끼는 바지 밖에 없던 믹 재거에게는 토론토 공연 때 자신이 가진 가장 비싼 레이스 속옷을 빌려주기도 했다.

회고록 <중력을 느끼며 : 로큰롤 인생(There Goes Gravity : A life in Rock and Roll)>에서 로빈슨은 40여 년에 걸친 추억을 되새긴다. “뉴욕 펑크의 미디어 대모이자 남자뿐이었던 록 저널리즘 계에서 여성의 길을 개척한 분이죠.” <롤링스톤>의 비평가인 윌 허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매거진 <록 신>의 전속 사진가였던 밥 그루언은 로빈슨이 재목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제게 신인 시절 라몬스의 사진을 찍으라고 한 것도 리사였으니까요. 언젠가는 스틸레토라는 이름의 밴드를 언급하며 이러더군요. ‘데비 해리는 정말 예뻐. 스타가 될 거라니까.’ ” 그녀는 늘 자신만만해 보이는 믹 재거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귀띔을 했다. 남모르는 불안이 컸던 그는 비평에 지나치게 집착했으며, 데이비드 보위와 의상에 관한 아이디어는 공유하지 않으려 들었다. 마이클 잭슨이 열네 살이 되던 해에는 캘리포니아의 엔치노에 있던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린 뮤지션은 두 가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공식석상에는 높고 속삭이는 듯한 음색이었지만 음반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때의 음성은 평범하면서도 단호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안 로빈슨은 스타들을 사생활을 존중했다. “엘튼 존이 자신에 대해 밝히기를 꺼렸을 때 그 뜻을 따랐지요. 누구에게나 그럴 권리는 있으니까요.”

록 음악계에서 일하는 여자는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는 걸 로빈슨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남자들만의 세상이었으니까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죠.”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다. “상당수 로커가 농장에서 자란 촌사람들이었어요. 로버트 플랜트처럼요. 전 뉴욕에서 자란 세련된 여자였죠. 그래서 늘 그들보다 제가 더 쿨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우리는 거기서 거기였던 거예요. 단지 그들이 저보다 더 유명하고 돈이 많았을 뿐이죠.” 글 | Catherine 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