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혹은 호기심은 거둬도 좋다. 싱글 앨범 <I’m Good>으로 돌아온 래퍼 이센스는 정말 잘 지내고 있다. 당신이 듣고 있듯이.

빈티지한 프린트의 검은색 티셔츠는 디젤, 회색 하프 쇼츠는 릭 오웬스, 화이트 프레임의 선글라스는 뮤지크, 검은색 메탈 시계는 헬 다이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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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물을 때, 우린 그 안에 몇 퍼센트의 진심을 담을까. 지난해 아메바컬쳐, 슈프림팀과의 이별로 모두들 떠드는 힙합 디스전의 중심에 서게 된 이후, 이센스는 지겹도록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마주해야 했다. 그중엔 진짜 잘 지내길 바라기보다는 더욱 거칠고, 자극적이고 그래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또 한번의 싸움을 기대하는 시선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센스는 <I’m Good>이라는 이름의 싱글 앨범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기로 했다. 물론 진짜 ‘아임, 굿’이 되기 위해서는 똑같은 비트를 1600번 돌려 들어야 했다. ‘나는 잘 지내 오늘같이, 나는 잘 지내 그냥 지금같이’ 라고 이야기하는 가사가 백퍼센트 진심이 되기까지, 꼬박 한 달을 쓰고 지웠다. 그래서 결국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을까? 이번엔 진심을 담아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
네, 잘 지냈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새로운 싱글 음반 제목부터 <I’m Good>이다.
그런 질문엔 설사 잘 못 지낸다 할지라도 솔직하게 대답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이번엔 진짜 잘 지낸다. 사실 맨 처음 가사를 쓸 때만 해도, 애초에 음악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꽤 다른 상태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최근 괴로운 일이 많기도 했지만, 돈이 돌아가는 세상에 내 스스로 젖어든 것도 없지 않았다. ‘I’m Good’을 작업하려면 정말 ‘아임, 굿’ 해야 하는데, 그 세상의 기준에 내 기준을 두고 있으니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시기엔 잘 지내느냐는 질문이 편치 않았을 듯하다. 가사 중에 ‘나한테 잘 지내냐고 지겹게 묻네’라는 대목이 있다. 잘 지내냐는 인사엔 ‘너 앞으로 어떡할래, 회사는 어떻게 할 거야, 돈은 어떻게 벌려고?’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음반을 준비한다고 할 때도 사람들은 돈은 얼마나 벌 것인가, 유명세나 인기가 떨어지지는 않을까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음악 하는 사람에게 망하고 그렇지 않고는 몇 장 팔렸느냐가 아니라, 작품의 퀄리티로 정해지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나 역시 그런 건 상관없다고 대답해놓고는 흔들렸다. 아, 완전 망하면 어떡하지 그러면서.

그럼 정말 잘 지내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
어느 날 함께 살고 있는 DJ 베이비쿨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깐만 형, 내가 지금 엄청 행복한 상태인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영화 <노예 12년>엔 “살아남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노예에 비교하는 건 이상하지만, 정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음악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녹음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그토록 원했던 시간이 찾아왔는데, 예전 세계에 젖어 있느라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I’m Good’ 때문에 잘 지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거칠게 까발릴 거라고 기대했을 거다. 사실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I’m Good’이 나에게 온 거다. 맞다. 비트를 듣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건 무조건 아임 굿인데.’ 질투, 분노, 인기 같은 것들은 떠올릴 수 없었다.

‘원하는 건 한 가지 매 순간이 전부 진짜이길’이라는 가사가 유난히 와 닿았다.
사람들이 성공, 성공 말한다. 그런데 성공이라는 게 솔직히 말해 돈이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사는 것. 물론 나도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차 타고 싶다. 그런데 스물세 살 때였나, 그땐 3천만원만 있으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았다. 공사판에서 일해서 돈 벌며 음악 하던 시절이었는데, 월세 40만원이 그렇게 밀렸다. 그러다 믹스테이프를 팔아서 4천만원을 벌었다. 돈이 들어온 순간엔 정말 기분이 ‘쩔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엄청 속물인가? 랩으론 맨날 진정한 가치 얘기하면서, 통장에 돈 꽂혔다고 이렇게 기뻐할 수가 있나?’ 혼란스럽기도 했다. 4천만원에 그 정도로 행복했으니, 더 큰돈을 벌면 더욱 행복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니었다. 순위 경쟁하듯 남들보다 비교해서 얼마 버는 데 행복이 있지 않았다.

그럼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매 순간 모든 자극을 온전히 느낄 여유가 있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평균적인 속도란 것이 있고, 그 속도에 맞는 사람들이 돈을 잘 벌긴 하는 것 같다. 그들을 속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속물이라면, 엄청 속물이니까. 다만 내가 조금 느린 사람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겠지만 결국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모든 자극을 제대로 느끼는 것, 결국에 남는 건 그거였다. 첫 콘서트,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가수의 첫 공연, 그건 굳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지 않아도 뇌에 박힌다. 그런 순간들만 연속되기를 바라는 거다.

블루 톤의 스웨트 셔츠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 묶어서 연출할 수 있는 회색 트레이닝 쇼츠는 아디다스 오리지널 바이 제레미 스콧, 검은색 하이톱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 은색 메탈 시계는 디젤 바이 파슬 코리아 제품, 회색 비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루 톤의 스웨트 셔츠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 묶어서 연출할 수 있는 회색 트레이닝 쇼츠는 아디다스 오리지널 바이 제레미 스콧, 검은색 하이톱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 은색 메탈 시계는 디젤 바이 파슬 코리아 제품, 회색 비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프림팀으로 활동한 시간이 그런 깨달음을 준걸까?
사실 욕심이 있었다. 자기 혼자 방구석에서만 음악하려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무조건 TV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다가 아니라, TV에 나가면 사람들이 내 음악을 많이 듣게 될 테니까 그런 기회를 원했다. 어떤 가게에 들어갔는데 아는 동료들 음악이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부러워했다. 부러워하고 원했던 걸 경험한 5년이었다. 물론 세상이 내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체감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과 1년 365일 중 300일을 붙어 있으면서 같은 걸 공유하고, 고민하고, 맞춰간 5년은 한 사람으로서 값진 시간이었다.

회사를 떠난 지금, 더 자유로워졌나?
막말로 나도 돈 욕심이 생기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 ‘한번 잘 팔리는 노래 만들어볼까?’ 하지만 적어도 그런 결정마저 나의 결정이어야 한다. 그러면 부딪쳐도 내 책임인 거니까. 그런데 수많은 사람과 큰 조직 안에서 움직이다 보면, 나는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좋은 만큼 참아야 하는 일도 있다. 물론 그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긴 싫다. 내 선택의 결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 세계에서 나온 지금, 이게 맞다고 느낀다. 비록 메이저와 언더그라운드를 나누는 기준이 애매하지만, 난 내가 지금 언더그라운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길을 믿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라서 더없이 좋다.

언더그라운드로 돌아온 이후의 첫 솔로 싱글 앨범이다.
그동안 솔로곡이 많지 않았다. ‘꽐라’, ‘Where To Go’ 포함해서 3~4곡 쯤 되려나? 항상 정규 작업물 없이 팀으로 먼저 알려진 게 마음에 걸렸다. 믹스테이프를 내긴 했지만, 그건 작품이라기보다 랩을 끼적거린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팀 활동을 하면서는 솔로 작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걸 겪고 나서야 나온 내 솔로. 한마디로 멍석이 깔린 건데,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다. <I’m Good>과 함께 내 진짜 커리어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이제 데뷔했다고 생각할 작정이다. 팬들에겐 무례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배우는 학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젠 졸업하고 내디뎌야지. 무조건 잘될 거라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해 가려고 한다. 일단은 내 창작물에 책임지고, 부끄럽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음악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3월 21일엔 케익샵에서 깜짝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 I’m Good’으로 관객과 처음 만난 기분이 궁금하다.
두 번째 벌스(Verse)가 시작될 때다.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라고 외쳤는데, 모든 관객들이 “네!” 외쳤다. 와우, 무조건 좋았다. 단순히 호응이 커서가 아니라,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모두 부자가 되고 싶지. ‘난 잘 지내’라는 가사에 진심을 담고 공연했기 때문에 행복하기도 했다. 무대 역시 정식 무대가 아니라 DJ 부스였지않나. 내가 10대였을 때 DJ 베이비쿨 형이랑 맨날 대구 클럽에서 하던 게 그거였다. 형이 음악을 틀고, 브레이크를 걸고, 내가 랩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꽐라’ 리믹스 버전도 <I’m Good>도 비스츠앤네이티브스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비스츠앤네이티브스의 정체는 무언가?
한국 땅에서 확실하게 잘 뿌리내린 문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힙합이나 록은 해외에서 들어온 문화이기 때문에, 저변이 튼튼해지려면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무에 비교해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라면 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지더라도 봄이 되면 다시 싹이 난다. 그러려면 묘목일 때 뿌리가 깊게 박힐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그런데 묘목에 이파리가 예쁘게 돋으면, 돈 있는 사람들이 툭 뽑아서 팔고 버린다. 늘 그렇게 뿌리가 뽑히고 명맥이 끊겨왔던 것 같다.

그렇다면 비스츠앤네이티브스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려는 움직임일까?
그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너무 거창해보인다. 거창하게 안 비쳐졌으면 좋겠다(웃음). 올해 내내 여러 싱글과 정규 1집을 발매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정규 음반이 나오기 전까지는, 현재의 기분에 집중한 노래들을 작업하려고 한다. 오늘 이렇게 촬영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기분이 좋다, 마침 스튜디오에 갔다, 가사를 후루룩 썼다, 그런데 괜찮다. 그럼 공짜로 풀든 정식으로 음원을 발표하든 공개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규 1집인 <디 애닉도트(the anecdote)>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강민호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겪어온 것들을 쭉 훑어보고 싶다. 말 그대로 개인의 일화다. 솔직하게 풀어낸다면, 내 인생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서 공감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규 1집을 이야기하며, 표정까지 밝아진 걸 알고 있나? 음악을 하고 싶어도 마음껏 하지 못했던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일까?
지난 몇 년과 비교해 달라졌다기보다는, 다시 처음을 기억해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다들 마치 죽어 있는 언어처럼 초심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초심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예술가가 있을까? 다만 자신이 항상 머무는 바닥에서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이제, 조금은 처음을 찾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음악의 원동력은 노래를 듣는 사람들과 관객들의 피드백이었다.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동안엔 가사를 쓰다가도 ‘쓰면 뭐해, 녹음이나 하겠어?’라는 생각이 불쑥 치밀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좋은 가사가 나올 리 없었다. 이제 피드백이 오기 시작한다. 신난다.

이제 더 이상 혹시 망하면 어쩌나 걱정은 하지 않게 된 건가?
내가 중심이 되지 않은 바닥에서는 겁을 먹었다. ‘성공해야 돼, 최소 이 정도는 해야 하고, 이 정도까지 되면 좋아’라고 겁을 주니까. 적어도 지금은 걱정은 하더라도, 겁먹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