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봄이라 말하지만,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승훈이 달린다면 곧 겨울이다.

이승훈이 입은 그레이 실버 스웨트 셔츠는 에잇세컨즈 제품, 흰색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승훈이 입은 그레이 실버 스웨트 셔츠는 에잇세컨즈 제품, 흰색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6분 25초 61.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0미터 경기에서, 이승훈은 12위를 기록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의 4년은 중간에 몇 번이라도 그만둬버리고 싶을 만큼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그 지루한 훈련의 결말이 부진 혹은 메달 획득 실패라는 값싼 꼬리표를 달고 기사화되는 데에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건 이승훈 자신이 자초한 일인지도 모른다.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5000미터와 1만 미터에서 연이어 은메달과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스케이트 종목이라곤 쇼트트랙밖에 몰랐던 나라에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경기에서도 금메달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옮겨간 지 7개월 만에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다들 곧 잊었다. 잊혀졌다고 해서 스케이트 선수가 스케이트를 타지 않는 것은 아니라, 지난 4년간 이승훈은 매일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얼음을 지쳤다. 소치에서의 첫 경기였던 5000미터 경기에서는 출발선을 벗어나는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달렸다. 그날 밤 1만 미터 기권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엔 또 달렸다. 13분 11초 68. 세계 4위라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메달을 휩쓴 네덜란드 선수들의 장벽에 쓰라렸지만, 팀추월을 또 달렸다. 그러곤 결국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유는? “몰라요. 그냥 죽어라 달릴 뿐이에요.”

이승훈이 입은 그래픽 패턴의 카디건, 흰색 셔츠, 흰색 팬츠는 모두 에잇세컨즈, 스웨이드 소재의 로퍼는 아니미스코드, 실버 브레이슬릿은 저스틴 데이비스 제품.

이승훈이 입은 그래픽 패턴의 카디건, 흰색 셔츠, 흰색 팬츠는 모두 에잇세컨즈, 스웨이드 소재의 로퍼는 아니미스코드, 실버 브레이슬릿은 저스틴 데이비스 제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까지 연이어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젠 공항으로 마중 나온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법하다.
그 많은 카메라, 다 김연아 선수 보러 온 거다. 나 때문이 아니다(웃음).

인터뷰 역시 워낙 많이 해서인지, 전혀 떨려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인터뷰가 가장 재미있다. 그런데 사진 촬영은 쉽지가 않다. 특히 웃으라고 하는 거 너무 어렵다! 평소 동갑내기인 이상화, 모태범선수랑 셋이 같이 찍는 경우가 많아서 농담하고, 장난치며 찍을 땐 괜찮지만, 이렇게 혼자 카메라 앞에 서면 아직 부담스럽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웃음).
재미있다. 잘하든 못하든 운동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접하는 기회지 않나. 그런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고, 이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동계올림픽에서 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은 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번엔 5000미터 스피드 스케이팅이 첫 경기였다. 4년 전 은메달을 딴 경기였기 때문에 스스로도 기대가 컸을 듯하다. 경기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 빙상 위에서의 심정은 어땠나?
첫 경기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었다. 무척 욕심이 났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스타트라인에서 출발해 뛰는 순간 느꼈다. ‘아, 몸이 안 움직인다.’ 그러고 나서 한 바퀴를 돌고 들어와 랩타임을 봤는데, 내가 쓰는 힘에 비해 속도가 너무 느린 거다. 랩타임이 잘 나올 경우엔 여유를 갖고 힘을 아껴 페이스를 조절할 수도 있지만, 반대일 경우엔 마음이 답답해진다. 원래 스케이트가 잘 나가야 덜 힘든 법인데, 출발과 동시에 이미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달려야 하지 않나.
달려야지.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을 떠나,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지난 4년간 준비했는데 왜 뜻대로 되지 않을까, 마음이 힘들었다.

그날 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허무했다. 무엇보다 1만 미터는 탈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실은 코치 선생님께 여쭤보기까지 했다. 1만 미터 꼭 타야 하느냐고. 기권까지 고려했다. 그런데도 결국 1만 미터에 출전한 이유가 있다면? 일단 며칠 더 지켜보자 하셔서 연습했는데, 점점 좋아지는 걸 느꼈다. 메달에 대한 기대를 놓아버렸다고 할까? 올림픽을 즐기자는 마음을 먹었더니, 변화가 생겼다.

그럼에도 1만 미터 출발 직전 스타트라인에 서서는 많이 긴장하지 않았을까?
5000미터를 너무 못 타서 오히려 괜찮았다(웃음). 스스로도 그렇고, 보시는 분들의 기대 또한 낮아지지 않았나? 분위기가 그랬다, 내가 느꼈다(웃음). 5000미터보다만 잘하자, 그런 마음이었다. 사실 매 경기마다 스케이트 끈을 묶을 때가 가장 떨린다. 그러다 막상 얼음 위에 올라서면 떨리지 않는다. 출발 직전 스타트라인에 멈춰 있을 때 잠시 긴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떻게 탈까 어떤 페이스로 갈까 그런 생각을 하느라 바쁘다. 일단 출발하고 나면야 말할 것도 없고.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르와는 5000미터, 1만 미터 경기 모두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겨룬 경쟁 상대였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팬들은 멋진 재대결을 기대했다.
이번에 크라머르가 1만 미터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런데 사실, 지금껏 크라머르가 누군가에게 지는 모습이라곤 이번 올림픽을 포함해 딱 세 번 봤을 뿐이다. 그야말로 지지 않는 선수다. 그래서 크라머르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은 없다. 크라머르가 나보다 한수 위인 선수인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올림픽에서만큼은 겨뤄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그게 좀 아쉽긴 하다.

마지막 경기였던 팀추월은 정말 멋진 승부였다. 4년 전엔 5위를 기록했는데, 이번엔 마지막까지 박빙의 승부를 겨룬 끝에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장거리 선수층이 두터워졌기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밴쿠버 이후 김철민, 주형준 선수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옮겨왔다. 쇼트트랙을 했던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앞 사람을 추격한다. 더욱 쉽게 쫓아 타는 방법을 안다. 솔직히 개인 기량에 있어선 네덜란드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쫓아 타는 것만큼은 그 어느 외국 선수들보다 잘할 자신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이상화, 모태범 선수와 함께 88년에 태어난 젊은 ‘88세대’로 주목받은 기억이 난다. 팀추월에서 후배들을 이끌면서 달리는 선배가 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역시 달라지지 않았을까?
맏형 이미지였나? 삭아서 그렇다. 운동할 때 햇볕을 너무 많이 쬐어서(웃음). 선배라고 다른 건 없다. 그저 우리 셋 다 팀추월이란 종목이 재미있었다. 사실 5000미터나 1만 미터에 비해 덜 힘들고 짧은 코스 아닌가. 게다가 셋 다 쇼트트랙 선수였기 때문에 발 맞춰 타는 것을 비롯해 비슷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철민이와 형준이 모두 앞 선수를 쫓아가는데 있어 지치지 않기 때문에, 맨 앞에서 달릴 때도 더욱 강하게 끌어줄 수 있었다.

4년 만의 올림픽을 마친 지금의 소회는 어떠한지?
소치로 떠나기 전, 개인 종목에서 동메달이라도 따는 것이 목표였다.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동생들과 함께, 아시아 국가에선 처음으로 팀추월 종목 메달을 딸 수 있어서 기뻤다.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돌아보면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한동안 부진, 슬럼프란 단어가 따라다녔다.
기사에 따르면 난 작년에도, 지지난해에도, 또 그 전전해에도 슬럼프였다(웃음). 사실 밴쿠버 올림픽 당시, 세계 랭킹 9위였다.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자, 원래의 랭킹보다 잘했을 뿐이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엔 오히려 이전보다 성적이 좋아졌다. 1등을 못했을 뿐 늘 상위권을 지켰다. 그런데도 항상 부진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아마 메달을 따지 못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부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심지어 더 좋아진 기량으로 잘하고 있는데, 속상하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지난 4년간 스스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내가 생각하는 진짜 슬럼프는 2011-2012년 시즌이었다. 그때 장비부터 훈련 방식까지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스케이트가 발에 잘 맞는데도 이상하게 잘 나가지 않았다. 이전까진 쇼트트랙 훈련을 항상 병행했는데, 쇼트트랙 훈련을 중지하는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을 늘렸더니 그러한 훈련 방식 또한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었다. 그땐 정말 20등 밑으로 떨어질 만큼, 성적이 좋지 않았다. 정말 부진이었고, 슬럼프였다.

밴쿠버 올림픽 당시엔, 사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옮겨온 지 겨우 7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원래 모든 분야가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지 않나. 완연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살아온 지난 4년간 느낀 어려움은 무언가?
사실 쇼트트랙이 훨씬 재미있고 긴장감이 있다. 훈련을 할 때도 시간이 빨리 간다. 반면 너무 위험하고 부상이 따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잘 탄다 해도, 경기마다 수많은 변수에 시달린다. 그에 반해 스피드 스케이팅은 지루하고, 고독하고, 외롭다. 아직은 쇼트트랙에 비해 함께 경쟁할 수 없는 동료 선수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경쟁 상대가 없는 훈련 역시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스피드 스케이팅에는 내가 노력한 것만큼 거둘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조금 더 정정당당하다고 해야 할까?

여전히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 보고 싶은 욕심이 있나?
연습은 항상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나가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부상의 위험이 있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포기해야 하는 경기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쇼트트랙에 대한 미련 때문은 아니다. 이미 쇼트트랙에서도 올림픽 메달만 없었을 뿐이다. 게다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올림픽 메달을 가졌기 때문에 아쉬울 건 없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4년 앞으로 다가왔다. 밴쿠버 이후 소치를 준비하는 4년 동안,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런데 이번엔 평창올림픽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니만큼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되고, 준비 과정 또한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되면 서른한 살이 된다. 진짜나가게 될 수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준비해보고 싶다. 생각해봐라, 우와 정말 대단할 것 같다.

4년이 너무 길게 느껴질 것 같다.
올림픽이 4년에 한 번 열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큰 상징과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다. 생각보단 금방 지나간다.

지금 당장은 동계올림픽은 물론 올해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든 시즌을 마쳤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언가?
자고 싶다. 알람 같은 거 안 맞추고 무한정(웃음). 평소 매일 4시 50분에 일어난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야간 훈련이 없을 경우엔 오후 6시에 훈련을 마친다. 사실 밴쿠버 이후 2년 동안, 6시에 훈련을 마친 후 영어 과외를 했다. 언젠가 나중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저히 몸이 감당하지를 못해서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물론 말만 이렇게 하지, 어릴 때부터 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익숙하기는 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잘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은퇴 시점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무조건 은퇴다(웃음). 더는 안 할 거다, 절대로 더는. 만약 그전이라도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면 그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길어야 평창이 아닐까 한다.

혹시 은퇴 이후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
지도자는 아니다. 선수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다. 말과 관련된 일, 스피치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강단에 선다면 어떨까?

이제 막 서른이 된 남자의 은퇴라니, 그 이후가 왠지 막막하게 느껴진다.
운동 선수로서 은퇴할 뿐이다. 그때 또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