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와 모델, 에디터 등이 완성한 화보 이미지에 미술가 김홍석은 자신의 노동으로 이렇게 개입했다.

베스트 형태의 테일러드 재킷은 Dior, 뱀을 티프로 한 핑크 드와 스틸 소재의 세르펜티 투보가스 치와 다이아몬드가 팅된 비제로원 반지는 Bulgari 제품.

베스트 형태의 테일러드 재킷은 Dior, 뱀을 티프로 한 핑크 드와 스틸 소재의 세르펜티 투보가스 치와 다이아몬드가 팅된 비제로원 반지는 Bulgari 제품.

 

GIMHONGSOK

김홍석의 작품은 종종 진지한 농담 같다. 한국적인 구화의 흔적들, 산업에 가까워진 현대미술, 번역과 통, 교육과 윤리 등 자못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화법만큼은 도발적으로 유쾌하다. 요즘 구체적이고 리적인 노동에 관심이 많다는 작가는 더블유와의 로젝트도 같은 맥락에서 고민했다. 사진가, 매체, 모델 등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완성해놓은 판에 개입했을 때 아티스트는 어떤 ‘노동’을 할 수 있을까? 김홍석이 내린 름의 답이 여기에 있다.

원색의 그래픽 패턴이 돋보이는 브라톱과 팬츠, 그리고 버클 장식의 플랫폼 힐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원색의 그래픽 패턴이 돋보이는 브라톱과 팬츠, 그리고 버클 장식의 플랫폼 힐은 모두 Alexander McQueen 제품.

 

검은색 스팽글 장식 재킷은 Isabel Marant, 프린지 장식 모자는 Balenciaga 제품.

검은색 스팽글 장식 재킷은 Isabel Marant, 프린지 장식 모자는 Balenciaga 제품.

 

어깨 라인이 드러나는 트렌치코트는 Burberry Prorsum, 쿠튀르적 터치가 가미된 진주 목걸이는 Dior 제품.

어깨 라인이 드러나는 트렌치코트는 Burberry Prorsum, 쿠튀르적 터치가 가미된 진주 목걸이는 Dior 제품.

볼펜을 사용해 인물 뒤의 배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자신이 투자한 노동의 양, 모델이 보여준 노동의 가치 등을 텍스트로 적었다.어떤 의미의 작업인가?
사진 안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옷이 있고 모델이 등장하고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있다. 편집을 맡은 더블유도 빠뜨릴 수 없다. 이미 전문적인 일이 진행된 상황에 아티스트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사실 요즘 수작업, 즉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노동을 한 결과물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가장 싸고 흔한 재료인 볼펜을 사용한 그리기를 시도하고 그 내용을 텍스트로 기록했다. 자본주의 체계에는 나름의 공고한 규칙이 있다. 사진, 출판, 모델, 브랜드 등이 그에 따라 자본적, 이윤적, 심리적 대가를 주고 받는다. 그 틈에서 아티스트의 노동은 어떻게 자본 가치로 환산될 수 있을까? 그 가치에는 정신적 노동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어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해봤다.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온 작가 중 한 명이다. 어떤 관심 때문일까?
미술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무척 어렵게 여긴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작가를 일종의 ‘전문가’라고 보는 거다. 이를 계기로 전문성이라는 개념에 의심을 품게 됐다. 이른바 전문 분야를 실제로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있을지 궁금했다.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내가 아는 것과 그 사람이 아는 것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를 모르는 집단 간에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지에 관심이 있다.

작품을 통해 번역과 통역, 즉 소통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만 정말 관심을 갖고 있는 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짜 텍스트를 곁들이고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활용하는 등 감상자가 ‘오해하기’ 쉬운 작업을 여럿 선보였다.
해외 여행을 가면 언어적 갭과 문화적 차이가 문제가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다들 큰 문제 없이 다녀오고 한국에 도착한 뒤에는 힘들었던 사건까지 좋은 추억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오역이 생기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우리에게는 원작을 정확히 좇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그래서 맞는 번역인지 아니면 오역인지를 자꾸 따져 묻는다. 어떻게 보면 오역 역시 또 하나의 자의적인 해석일지 모른다. 오역이 열어주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훨씬 문화적으로 재미있는 탐색이 이루어질 거다.

마네킹에 인형 옷을 입혀놓고 안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안내문을 붙여둔 ‘브레멘 악대’의 경우, 감상자가 속느냐 속지 않느냐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서는 보는 사람이 속기를 바라나, 아니면 거짓말이 간파되기를 기대하나?
속는다는 표현에 다소 부정적인 어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도 있고, 거짓이라고 딱히 못박을 수 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나는 번역가에게 의뢰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한국어로 옮겼다가 다시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한 적이있다. 과정은 진지했지만 최종 결과물은 당연히 원작에서 멀어졌다. 이건 사기나 거짓말일까? 성실히 맡겨진 일을 한 번역가의 작업은 가볍게 무시되어도 좋을까?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가 많다.

윤리의 문제 역시 중요하게 언급된다. 작년에 플라토에서 열린 <좋은 노동 나쁜 미술>이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였다. 현대미술의 이면에 존재하는 산업적 메커니즘을 지적했다.
더 이상은 문화도 자본적 이윤 창출을 우선시하는 전 지구적 산업 체계와 무관할 수가 없다. 예술에서 일단 중요한 게 자기 자신의 표출이라면 산업 시스템의 프로듀서는 유저, 즉 수요를 먼저 고려한다. 요즘은 어떤 미술가가 유명해지면 개인전 기회가 금세 늘어난다. 당연히 일정 규모 이상의 작품이 필요해지는데 오히려 작업에 쏟을 시간은 부족해진다. 결국 실제적인 작업의 여부보다 시스템의 통솔 능력이 작가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기 위해 거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거부하고자 한다.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화법은 가볍고 유쾌할 때가 많다.
내 성향이 작업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진지한 걸 진지하게 못 받아들이고 가벼운 것 역시 가볍게 넘기질 않는 편이다. 농담은 좋아하는데 남들과 코드가 좀 어긋나는 모양이다. 내 딴에는 진지한 이야기를 했는데 주위에서는 웃어넘기거나, 반대로 가볍게 한마디 던졌는데 무척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가 있다.

 

<화보 메이킹 영상>
Artist / GIMHONGS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