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은 믿는다. 여자는 누구나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그렇기에 디자이너들은 또한 믿는다. 계절과 유행은 더 이상 여자들의 옷 입기를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봄 트렌드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 급격한 다변화의 물결 속에서 더블유는 두 가지 큰 흐름을 포착해냈다.

PRIDE & GLORY

봄 패션위크는 지난 10월 끝났지만 디자이너들의 봄맞이는 이제 시작이다. 광고 캠페인, 그리고 숍에 속속 진열 되는 제품을 통해 지금부터 봄과 여름을 노래하게 될 테니. 이번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가장 충격적으로 각인된 흐름은 바로 ‘아트’였다. 아주 단순하게 보자면 예술품을 빚어내듯 패션을 디자인한 것인데, 2008년 패션계를 장악했던 아트 트렌드가 다시 귀환한 것이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14년의 아트 패션은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을 옷에 프린트하는 정도에 그친 2008년과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하나는 옷이나 액세서리, 또는 이를 입은 여자의 몸 그 자체를 완결된 예술품으로 접근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에 현대 패션이 요구하는 다양한 요소, 특히 스트리트적인 감성과 정교한 장식, 그리고 제3세계의 민속적인 요소를 영리하게 포진시켰다는 점이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멕시코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프린트를 높은 채도에 섞어 사용한 프라다는 레그 워머와 고무 소재의 스포티한 슈즈를 더해 파이터 이미지를 만들었고, 19세기 물감 회사인 로열 탈렌스에서 비롯된 다양한 색채로 된 컬렉션을 구성한 샤넬의 경우는 백팩과 헤드폰 같은 진주 초커를 더해 스트리트적 무드를 더했다. 대담한 붓터치와 아프리칸 무드를 조합한 셀린, 몬드리안식 그래픽과 트라이벌을 뒤섞은 알렉산더 매퀸, 헤이안 미술과 인도, 아프리카가 자유롭게 혼합된 지방시, 동양의 민속풍과 스트리트를 섞은 드리스 반 노튼돌체&가바나 등 전 도시의 주요 디자이너들이 이 흐름에 집중해 각자의 방식으로 풍성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1. 제3세계 다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알렉산더 매퀸의 예술적인 슈즈.
2. 페인팅의 요소가 섞인 샤넬의 핸드백.
3. 다양한 참이 부착된 랑방의 코스튬 목걸이.

ENERGY & MODULATION
예민한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을 앞두고서 보통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즌이 막을 내리고 나면,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흐름의 몇 가지 군이 포착된다. 우리는 이를 ‘트렌드’라고 부른다. 그러나 트렌드를 설명하는 일을 주업으로 삼는 패션 에디터로 일하면서, 이번 시즌처럼 한두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트렌드가 주요 트렌드인 경우는 처음이다. 최근 몇 년간의 인기 요소가 혼재하는 것. 단순한 미니멀리즘, 젊은 스트리트 패션, 맨즈웨어 룩, 우아한 스포티즘, 큼직한 실루엣이 한 룩에 섞여 있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이번 봄/여름에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건, 몇 년간 지겹도록 회자되던 ‘테일러링’, 즉 남성복 영향과 관련된 재킷과 코트의 비율이 줄어들었고, 그 대신 셔츠가 이 모든 코드를 아우르는 주요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페플럼 형태의 셔츠 드레스에 특유의 스트리트 감성을 섞어 넣은 발렌시아가, 복고적 실루엣에 액세서리로 스포티한 무드를 만든 마르니, 남성적인 셔츠와 관능적인 스커트에 일본 전통 기법을 접목한 알투자라, 큼직한 셔츠를 기본으로 입체적인 볼륨감에 집중한 보테가 베네타, 이브닝웨어로도 손색없는 스포츠웨어를 선보인 사카이구찌, 오버올즈로 스트리트 감성을 더한 랑방과 레이스를 밋밋한 셔츠에 매치한 N. 21이 대표적이다. 이 흐름에서 꼭 짚어야 할 특징은 셔츠와 하의를 모두 떼어 믹스 매치한 알렉산더 왕의 예처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스타일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담한 시도일 뿐이다.

1,2. 색감과 단순한 선의 조화가 아름다운 플랫 슈즈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메탈 소재 끝에 진주를 장식한 독특한 초커는 모두 디올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