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흥망성쇠에 점점 가속이 붙는 요즘 패션계에서 ‘역사’라 이름 붙일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은 브랜드의 가치는 점점 더 그 무게를 더하고 있다. 183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브랜드 울리치와, 울리치를 필두로 한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들의 셀렉트 숍인 WP스토어의 한국 론칭이 의미 깊은 이유다.

1. 1850년에 처음으로 생산된 울리치의 대표적인 패턴, 버펄로 체크. 2. 1887년에 촬영된 울리치 최초의 공장. 3. 일러스레이터 필리포 스코자리의 1986, 1987년 울리치 일러스트. 4. 1987, 1988년의 카탈로그.

1. 1850년에 처음으로 생산된 울리치의 대표적인 패턴, 버펄로 체크. 2. 1887년에 촬영된 울리치 최초의 공장. 3. 일러스레이터 필리포 스코자리의 1986, 1987년 울리치 일러스트. 4. 1987, 1988년의 카탈로그.

시류에 따라 새벽 별처럼 반짝 하고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트렌드에 상관없이 고유의 본질적인 가치로 승부하는 브랜드가 있다. 좋고 나쁨 혹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패션계의 생체 시계가 팽이처럼 빠르게 도는 요즘이기에 후자의 희소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소위 ‘스트리트 패션’이라고 불리는 쇼장 앞 패션 피플 군단의 현란하고 말초적인 룩에 피곤을 느끼는 멋쟁이들은 패션의 가치는 좀 더 영속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있다 여기며, 때문에 밀물과 썰물처럼 우루루 밀려들었다 쓸려나가는 일시적인 트렌드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오래된 역사에 의해 가치가 증명된 ‘클래식’이나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숨겨진 브랜드에 더욱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국내 디자이너 숍부터 SPA 브랜드까지 패션의 다양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서울의 패션 명소 가로수길에 얼마 전 오픈한 WP스토어는 이런 부류의 멋쟁이들이 무척이나 반길 만한 장소다. WP스토어는 울리치(Woolrich)를 필두로 바라쿠타(Baracuta), 바레나 베네치아(Barena Venezia) 등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들이 속해 있는 이탈리아의 셀렉트 숍. 하지만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이 숍을 정의하기에 ‘멀티숍’이라는 단어는 크게 부족하다. WP스토어는 30년간 실용성과 높은 퀄리티, 캐주얼한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에 근간을 둔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를 복원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드레아 케인의 치밀한 리서치를 통해 발굴된 이 역사적인 브랜드들은 디자이너 및 아티스트와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클래식한 동시에 가장 동시대적인 룩으로 재탄생했고, 이는 WP스토어가 성공에 이른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5. WP 매거진에 수록된 광고 사진. 6. 필리포 스코자리의 일러스트. 7. WP 로드트립 북에수록된 아틱 파카.8. WP스토어 30주년 기념북.9. 울리치의 175주년 기념북.

5. WP 매거진에 수록된 광고 사진. 6. 필리포 스코자리의 일러스트. 7. WP 로드트립 북에
수록된 아틱 파카.8. WP스토어 30주년 기념북.9. 울리치의 175주년 기념북.

183년이라는 긴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여전히 가장 핫한 셀레브리티들의 파파라치 컷에서 종종 눈에 띄는 브랜드인 울리치는 WP 스토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다. 19세기, 영국의 존 리치 2세가 남북전쟁 중 담요와 유니폼을 공급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에 공장을 설립하며 시작된 울리치는 이후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적인 의상을 선보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로 성장했다. 1990년대부터는 WP Lavori사와 손잡고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데, 1972년 알래스카 파이프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제작된 ‘아틱 파카’를 일본 디자이너와 협업해 트렌디하면서도 아이코닉한 히트 아이템으로 재탄생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 2013 F/W 시즌 스페셜 에디션으로 선보인 카무플라주 패턴의 아틱 파카와 보온, 방수에 강한 테톤 소재를 사용한 테톤 블리자드 파카 또한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성공적인 협업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183년이라는 유구한 시간에 의해 그 가치가 증명되고, 거기에 아티스트들의 동시대적 감각까지 더해진 옷. 서울에 갓 상륙한 이 역사적인 숍을 방문할 이유로 충분치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