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는 무수한 이름과 숫자, 단어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지난 일 년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는 과연 어떤 것들일까? 2013년을 되짚어 보기 위해 해독해야 할 암호들을 분야별로 모았다.

조용필

조용필

음악

EXO
한 기획사의 노하우가 축적되며 아이돌은 진화한다. SM 보이밴드의 최근작인 EXO에 특이점이 있다면, 팀 자체에 스토리를 부여했으며 노래들이 이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데뷔 티저를 통해 ‘미지의 세계인 EXO 플래닛에서 온 새로운 스타’로 캐릭터를 설정한 이 팀은 올해 ‘으르렁’으로 ‘늑대와 미녀’에서 등장시킨 늑대인간 모티프를 이어가면서 강렬한 퍼포먼스와 혁신적인 뮤직 비디오로 놀라운 팬덤을 구축했다.

BOUNCE
그전까지 심장 뛰는 소리의 의성어는 ‘두근두근’이었지만 올해 4월 조용필이 이 싱글을 내놓은 이후로는 ‘바운스 바운스’가 되었다. 10년 만의 19집 <Hello>에서 조용필은 다양한 해외 작곡가들과 작업, 자신의 기존 스타일과 다른 음악적 결과물을 내놓으며 박제된 가왕이 아니라 동시대 뮤지션임을 증명했다.

CONTROL BEAT
Big Sean의 ‘Control’이라는 곡에 피처링한 켄트릭 라마가 미국의 래퍼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비판한 데서 유래한 힙합 신의 디스 열풍. 이 곡의 리듬을 가져와 한국 래퍼들을 자극하는 랩을 얹은 스윙스에 이어서 어글리덕, 테이크원, 슈프림팀의 이센스와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 등이 꼬리를 물며 서로를 랩으로 공격했다. 이 사건은 공격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의 ‘컨트롤 비트 다운받았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뮤지컬

뮤지컬 <그날들>

빠빠빠
작년의 홀연한 히트곡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었다면 올해는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같은 맥락에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특수 촬영물을 떠올리게 하는 체육복과 헬멧 의상, ‘직렬5기통’ 춤의 단순한 점프 동작, 특별한 메시지 없이 안무를 선동하는 노랫말… 유머러스한 요소를 아우른 이 곡의 유행으로 크레용팝은 소니뮤직과도 계약했지만 후속곡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돌로서의 지속가능성은 의문 상태다.

1020, 1027
일주일 차이로 두 사람의 뮤지션이 세상을 떠났다. 들국화의 드러머이자 솔로 앨범 6장을 낸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던 주찬권, 그리고 벨벳 언더 그라운드를 이끌었으며 ‘Pale Blue Eyes’와 ‘Perfect Day’를 남긴 루 리드. 58세의 주찬권이나 71세의 루 리드, 모두 갑작스러운 작별이지만 우리 곁을 떠난 많은 뮤지션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음악만은 오래 남을 것이다.

김광석
해외에는 ABBA 음악만으로 구성된 <맘마미아!>나 퀸의 명곡으로 만들어진 <We Will Rock You> 같은 주크 박스 뮤지컬이 있다면 올해 창작 뮤지컬계에서는 김광석을 불러왔다. 그의 히트곡으로 구성된 <그날들>은 한국 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올해 최고 창작뮤지컬 상을 받았으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시즌2를 개막했다. 12월에 개봉할 <디셈버>에서는 발표되지 않은 곡인 ‘다시 돌아온 그대’와 ‘12월’ 도 공개될 예정이다.

원작 열풍을 낳은 영화

원작 열풍을 낳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

출판

개츠비
영화화되는 소설 원작이 다시 주목 받고 팔리는 현상은 캄캄한 출판 시장에 어른대는 초록색 불빛이었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역시 바즈 루어만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로 개봉하면서 재조명받았다. 저작권 기한이 풀려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된 가운데 김욱동 교수 번역의 민음사 판, 김석희 번역의 열림원 판, 소설가 김영하 번역의 문학동네 판 등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각 번역에 대한 비교와 찬반 논쟁도 있었다.

400,000
하루키가 <1Q84>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장편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엄청난 선인세와 판권 경쟁, 서점에 줄을 늘어선 독자들의 기다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의 판매량은 11월 초로 40만 부를 넘어섰다.

간헐적 단식
1주일에 이틀은 절식하자는 간헐적 단식 건강법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부터 유행한 ‘1일 1식’과 결합해, 덜 먹는 건강법이 트렌드로 조명받으면서 하루에 한 끼면 된다, 아니다 두 끼다, 간헐적으로 굶는 게 좋다, 굶으면 쇼크가 온다 등등. 서점 건강 섹션의 한 코너에서만도 모아 놓은 의견이 분분했다.

28
<7년의 밤>에 이은 정유정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은 역시 흡인력에 있어서는 최고 솜씨인 작가라는 평을 확인시켰다. 다소 잔인한 소재와 거침없는 문장, 긴박한 묘사로 읽는 맛을 주며 하루키 소설과 더불어 여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래 머물렀다.

진격의 거인
지난해 만화계의 화제작이 윤태호의 <미생>이었다면 올해는 일본 작가 하지메 이사야마의 <진격의 거인>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인기를 끌고, 여기저기서 패러디되기도 한 이 만화는 닥치는 대로 마을을 부수고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의 파괴적인 설정으로, 일본 극우 군국주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논란도 있었다.

백민석
인터넷 서점에 그의 이름을 넣어보면 2003년에 마지막 책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 <내가 사랑한 캔디>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등 90년대 말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며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구축했던 작가 백민석(42)이 절필한 지 10년 만에 돌아온다. 11월에 소설집 <혀끝의 남자>를 펴낼 예정이다.

앨리스 먼로
하루키냐, 고은이냐, 조이스 캐롤 오츠냐. 예측이 엇갈리던 올해 노벨 문학상은 이미 은퇴를 선언한 캐나다의 1931년생 여성 작가 앨리스 먼로에게로 갔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단편 소설에 대한 새로운 인정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수상이었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등의 단편선이 대표작이며, 12월에는 <디어 라이프>가 새로 출간된다.

스포츠

RYU
한국 프로야구의 괴물 투수가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몬스터’로 별명을 바꿔 달았다. 지난해 말 LA다저스에 입단한 ‘RYU’, 류현진은 데뷔 첫 해 30 경기에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며 총 14승을 쌓았다. 윤석민이 류현진의 에이전트이기도한 스캇 보라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 중이고, 오승환 역시 메이저리그와 일본행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지금, 야구팬들은 2014년을 대비해 시차 적응 훈련부터 시작해야겠다.

16
2013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서울, 서울, 서울’, 서울을 연고로 한 세 팀의 활약상일 것이다. LG트윈스는 11년 만에 가을 야구에 진출하며 유광 잠바 매진 사태를 일으켰고, 넥센 히어로즈는 2008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번 가을 잔치의 주인공은 그 누구보다 두산베어스. 비록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성라이온즈에게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내주기는 했으나, 포스트시즌 사상 최다인 16경기를 치르는 내내 두산 특유의 ‘허슬 플레이’를 선보이며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는 주인공이 됐다.

기성용 & 박지성
기성용과 박지성은 2013년 내내 연예 뉴스를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기성용이 지난 3월 배우 한혜진과의 교제를 인정한 후 7월 결혼에 골인한 데 이어, 박지성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한국-이란전이 열리던 날 잠원지구에서 여자친구와 ‘치킨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스포츠 면에서는 적신호가 울렸다. 기성용은 자신의 비밀 페이스북을 통해 최강희 전 국가대표 감독을 비난했다는 논란에 시달렸고, 박지성은 캡틴을 맡았던 QPR에서의 아쉬운 성적을 뒤로하고 PSV 아인트호벤으로 1년간 임대 이적했으나 두 달 가까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TV

JTBC
지난 8월 <마녀사냥> 첫 방송에서, MC 성시경은 <슈퍼스타K 5>와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는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어도 더럽힐 수는 있다.” 그리고 11월 현재, 계란은 바위를 깼다. <썰전>과 <히든 싱어>에 이어 <마녀사냥>까지, JTBC는 지상파의 틈새를 날카롭게 공략하며 1년 내내 예능 히트 상품을 내놨다.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이 메인 앵커뿐만 아니라 클로징 음악을 선곡하는 DJ 역할까지 맡은 <뉴스 9> 역시 꼿꼿하게 새로운 뉴스를 실험 중이다. 개국 초기 주목받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과 보도 분야에서까지 가능성을 증명하면서, JTBC는 지금 지상파 방송국을 위협하는 종합편성채널로 견고한 기
반을 다지는 중이다.

아빠, 어디 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해법은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아니라 <아빠! 어디 가?>에 있었다. 엄마 없이 떠나는 아빠와 아이들의 1박 2일 여행기는 리얼리티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서투른 아빠들의 성장기가 맞물려, <일밤>을 오랜 암흑기에서 구출했다. 얼마 전 엄마 없는 48시간을 관찰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동시간대에 정규 편성되면서, 집 안팎에서 육아를 책임져야하는 아빠들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질 예정.

진짜 사나이
남자들이 군대 간 이야기, 심지어 남자들이 군대에서 족구 한 이야기가 주말 예능 전면에 등장했다. 연출진의 개입을 극도로 제한한 이 관찰 예능은 여성 시청자의 호기심과 남성 시청자의 공감을 사며, 주말 밤의 절대 강자 <개그콘서트>를 위협하는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샘 해밍턴과 박형식이 <진짜 사나이>의 최대 수혜자가 된 반면, 엠블랙의 미르는 2013년의 가장 안타까운 사나이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먹방
지난해 먹방의 최강자가 명실공히 하정우라면, 올해 먹방 1인자 자리를 두고 벌이는 싸움은 꽤나 치열하다. 모든 후보자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것 또한 올해의 특징. 먼저 <아빠! 어디 가?>의 윤후가 짜파구리의 CF까지 거머쥐며 단숨에 치고 올라왔고, <진짜 사나이>의 샘 해밍턴은 군대리아, 바나나라떼, 보글이로 이어지는 군대 음식을 ‘민간인’에게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최근엔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사랑이 떠오르는 먹방 신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특히 사우나에서 김이 빠진 <해피투게더>는 야간 매점으로 자리를 옮겨 골빔면, 비빙수, 닭갈비 만두 등 히트 메뉴를 내놓은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꽃보다 할배
평균 연령 76세의 H4가 배낭여행을 떠났다. 직진 순재, 구야형, 닭살 근형, 떼쟁이 일섭의 여행엔 복불복 게임도 없고 야외 취침도 없었지만, 시청자들은 수도권 최고 시청률 10% 이상의 호응을 보냈다. 짐꾼, 운전기사, 총무 노릇을 톡톡히 한 이서진, CJ E&M으로 이적해서도 특유의 깐죽(?)거리는 연출력을 선보인 나영석 PD 역시 <꽃보다 할배>를 통해 존재감을 입증했다. 배낭여행 프로젝트 2탄 <꽃보다 누나>는 11월 말 방송을 앞두고 있다.

9
케이블 드라마 일명 ‘케드’ 약진의 정점엔 tvN <나인 :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이 있었다. 본격 타임슬립 판타지 장르를 표방한 <나인>의 완성도는 비단 케이블 드라마뿐만 아니라, 2013년의 드라마를 통틀어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미국 페이크 엠 파이어 엔터테인먼트에 포맷 형태로 판매되면서 리메이크를 앞두고 있지만,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표절했다는 의혹은 아직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MADE IN JAPAN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꺼림칙했던 2013년, 수월하게 국경을 넘은 대표적인 수입품은 단연 드라마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이후, 각각 <파견의 품격>, >여왕의 교실>, <가정부 미타>를 원작으로 한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수상한 가정부>가 쉴 틈 없이 전파를 탔다. 원작의 사회 비판적인 관점과 여배우가 원톱으로 등장하는 줄거리를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 세 편의 공통점. 다만 <직장의 신>을 제외하면 큰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일본 드라마를어떻게 하면 한국 시청자의 정서에 맞게 재창조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

단언컨대
올해의 유행어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단언컨대이다. 스마트폰 광고 속에서 이병헌의 중저음 보이스를 타고 주목받은 이후, 개그맨 김준현이 이를 패러디한 CF까지 인기를 누리며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 그렇다면 <개그콘서트> ‘뿜 엔터테인먼트’의 유행어 ‘느낌 아니까~’와 ‘단언컨대’를 비교한다면 누가 이길까? 정답은, 안알랴줌.

JOHN PARK
존박은 Mnet <방송의 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의 존박은 <아메리칸 아이돌> TOP 20 출신의 <슈퍼스타K 2> 준우승자. 이후의 존박은? 덜덜이, 냉면 성애자, 그리고 ‘니냐니뇨’, ‘이 방송국 놈들아’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예능 대세.

신동엽
올해 예능을 관통하는 19금 코드의 한복판에는 신동엽이 있었다. <SNL 코리아>가 노골적이면서도 비호감의 강을 건너지 않는 신동엽표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재확인하는 장이었다면, <마녀사냥>이 시각적인 자극 없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 역시 신동엽 덕분(?)일 것이다. 이윤석은 <썰전>을 통해, 묘한 성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서슴없이 던진 후 마치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듯 능글맞게 물타기하는 신동엽의 19금 개그를 가리켜 ‘사후 합리화 개그’라 명명했다.

19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눈으로 마음을 읽는 박수하 역할을 맡아, 누나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연하남으로 떠오른 이종석은 3년째 19세다. 2011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안종석, 2012년 방영을 시작한 <학교 2013>의 고남순, 그리고 박수하까지 그가 맡은 극 중 인물이 모두 열아홉 살이었기 때문이다. 10월 말 개봉한 영화 <노브레싱>에서도 다시 한 번 마린보이 고등학생 ‘우상’으로 등장하는 만큼, 스물다섯 살 청년의 안티에이징 비법을 연구해봐야겠다.

1994
지난해 1997년에 응답했던 시청자들은 1994년의 부름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각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대학 신입생들이 모여 사는 ‘신촌하숙’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1994>는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아이들부터 삐삐, 드라마 <M>, 보이런던, 플로피디스크, KFC의 비스킷까지, 94년으로 상징되는 90년대 초중반의 추억을 깨알같이 소환한다. 하지만 97년에도, 94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청춘들의 삼각 로맨스. 결국 나정이의 남편은 쓰레기일까, 칠봉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