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사려 깊은 감독 중 한 사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담담한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온몸에 온기가 돌게 하는 사람,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의 온도는 몇 도일까? 그의 영화는 주로 담담하고 가끔 차갑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쩐지 온몸에 뜨끈한 기운이 감돈다. “영화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굉장히 감사하고 좋은 일인 것 같다. 감상이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는 거니까.” 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질문을 던지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늘 목에 걸려 쉽사리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런 질문 말이다. 어른의 시선이 외면한 곳에서 시든 화초처럼 스러져가던 아이들의 마음을 응시한 <아무도 모른다>와 아무것도 갖지 않았기에 누구와도 관계 맺을 수 있는 인형을 통해 잔혹한 희망을 가늠한 <공기인형>은 도시인의 원죄를 상기시켰다. 자신이 아버지가 된 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이하 <기적>)과 ‘당신의 홈(home)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을 독특한 이야기 속에 벼려낸 <고잉 마이 홈> 이후, 그는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또 한 번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6년간 키워온 아들이 실은 병원에서 바뀐 남의 아이라는 걸 알게 된 부모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연결된 혈연과 차곡차곡 함께 쌓아온 시간의 무게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한다. 수염을 기른 둥근 얼굴이 인상 좋은 아저씨 같지만 가까이 마주 앉아 바라보면 눈이 서늘하고 입은 고집스러운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계 여러 영화제의 뜨거운 부름에 응하느라 토론토, 산세바스티안, LA, 뉴욕을 거쳐 부산을 찾은 그와 ‘영화라는 크고 의미 있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칸 국제영화제 심사 위원상을 시작으로 얼마 전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관객들이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어린 시절이나 키우고 있는 자녀를 겹쳐 서 봐주시는 것 같아 기쁘다. 얼마 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 기자도 입양 자녀를 키운 경험을 이야기하더라. 캐나다에서는 입양을 하고 6, 7주 내에 없던 일로 하고 아이를 다시 데려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양부모 입장에선 그동안 아이와 정이 들게 마련이다. 영화를 보면서 혹시라도 다시 아이를 데려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안고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고 하더라.

영화의 첫인상은 템포가 독특하다는 점이었다. 특유의 담담한 태도에 묘한 리듬감이 더해져 불안이 가중되는 듯했다. 줄곧 함께 작업한 야마자키 유타카가 아닌 타키모토 미키야가 촬영을 맡으며 생긴 변화로 봐도 될까?
아무래도 지금까지와는 좀 다를 거다. 따뜻한가 차가운가로 굳이 나눈다면 후자 쪽이다. 편집도 내가 직접 했는데 보는 사람이 영화 속 인물보다 한 발 정도 뒤처져서 따라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평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각 장면의 완결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큰 흐름을 만드는 엔진의 용량을 더 크게 봤다고 할까. 인물들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관객은 그걸 따라가는 흐름을 의식했다.

영어 제목이 <Like father, Like son>인데, 시나리오의 원래 제목이었다고 들었다.
좀처럼 제목이 정해지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떠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던 차에 조감독이 그 속담을 들려줬는데 바로 마음에 들었다. 혈연에 대한 속담이고 ‘father’와 ‘son’이 들어가 있는 것도 좋아서 인터내셔널 타이틀로 정했다.

영화의 첫 구상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재작년 12월 무렵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내 딸이 서너 살 무렵이었는데 일이 바빠서 좀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던 때였다. 원래 아빠라는 자리는 엄마만큼 밀착되는 느낌도 없고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지 않나.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 불안을 느끼는 와중에 촬영으로 한 달 정도 집을 떠나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갔더니 날 보고 긴장해서는 가까이 오지 않더라. 다음 날 현관에서는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인사를 하고(웃음).

완전히 손님 취급이네.
그 순간은 어떻게 웃음으로 넘겼지만 사실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훨씬 쉽게 나를 잊는구나 싶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즈음부터 피가 이어지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 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내 또래의 남자가 자신이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고 병원과 국가를 고소한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키워준 부모님께 물론 감사하지만 자신을 낳아 준 부모도 지금쯤 여든이 넘었을 텐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걸 보고, 수십 년이 지났어도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게 있구나, 혈연이라는 건 대단하구나 다시 느끼게 됐다.

아이가 바뀌었다는 설정은 다분히 자극적이지만 이야기의 방점은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아버지가 되어가는 성장, 그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쪽에 찍힌다.
설정의 센세이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입구로 부모 자식이라는 건 뭘까, 아버지라는 건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일본과 한국 개봉 제목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런 핵심을 알기 쉽고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지는 것을 모르며 살아온 남자가 예상치 못한 암초와 만나 당황하는 모습에서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톱스타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와 겹치거나 충돌하는 게 흥미로웠다.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다. 어떤 역을 맡기면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면 서 주인공인 료타를 만들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갖고 있는 특유의 멋과 쿨한 면모를 어떻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땅에 착지 시킬까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엘리트, 다른 사람에 대해 독설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냉정하고 어떤 의미에서 잔인하기도 한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걸어도 걸어도>와 <고잉 마이 홈>에서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아들 역의 이름도 료타였는데 의도한 것인가?
사실 고등학교 때 배구부 후배였던 아는 사람의 이름을 따온거다. ‘良多’라는 한자를 쓰는데 보통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다. 좋은 것이 많다는 의미라서 굉장히 좋아하는 이름이다.

<고잉 마이 홈>은 처음으로 미니 시리즈 연출을 맡았을 뿐 아니라 기획부터 각본, 편집까지 모두 담당했다.
원래 TV 다큐멘터리로 일을 시작했고, 어려서부터 TV를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미니 시리즈를 해보고 싶다고 줄곧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2010년 도쿄국제영화제의 한 이벤트에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미니 시리즈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마침 그걸 들은 아베 히로시의 기획사 대표와 칸사이TV 프로듀서가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거다. 나로서는 염원이 이뤄진 거지. 역시, 일단 말하고 볼 일이구나 싶더라.

<기적> 개봉 당시 만났을 때,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했다. 지역이라는 수평적 연결이나 세대라고 하는 수직적 연결 모두 약해진 채 각자가 표류하고 있다고. 그런 문제 의식이 <고잉 마이 홈> 속에 담긴 것 같다.
‘홈(home)’이라는 단어가 키워드였다. 사람이 무엇을 ‘홈’으로 여기는가를 둘러싼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주인공 료타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의 집을 ‘홈’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기도 하고, 미야자키 아오이가 연기한 공무원의 경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다시 한 번 사람들의 ‘홈’으로 만들려고 한다. 극 중 소인(小人)인 ‘쿠나’의 경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홈’이라는 게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태는 아니라는 의미에서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걸어도 걸어도>, <기적>, <고잉 마이 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까지 줄곧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이것이 당신에게 왜 흥미로운 주제인가?
가장 가까운 문제기도 하고 특히 이야기로 만들었을 때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는 그전에는 몰랐던 아버지로서의 입장이라는 것이 더해지면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걸어도 걸어도>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그렸다. 아버지가 된 후로는 <기적>이나 이번 영화처럼 자연스레 부모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더라. 한 사람이 복수의 시선을 가질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족을 그리는 건 재미있다.

실제 당신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나?
내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일을 해서 키워주셨기 때문에 어머니한테는 감사하고 있지만, 아버지와는 소원한 상태인 채로 돌아가셔서 친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도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구나, 감정 표현에 미숙했던 거구나 이해하게 되더라.

아들로서는 물론 같은 남자로서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꽤 있다.

특히 어린이 배우에게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사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절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 지를 상상하거나 직접 물어가면서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특성이나 말투의 특징 같은 것을 끄집어내서 활용하는 편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리메이크 계약이 결정되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만났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칸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았을 때 느낀 감동이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라고 굉장히 칭찬해주셔서 솔직히 감동했다. 가족이라는 게 보편적인 테마지만 료타의 아내를 비롯해 세부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일본적인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인물 설정을 포함해 자유롭게 각색을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그대로 갖고 가겠다고 하더라.

부산에 오기 전에 서울에서 배두나의 신작 <도희야> 촬영 현장을 견학했다고 들었다.
촬영 현장의 스태프들이 다 젊어서 놀랐다. 일본은 아직 조명이나 촬영 같은 기술 쪽은 도제 제도가 남아 있어서 수직적 관계가 많다. 나 역시 좀 더 수평적인 현장을 원하는데 이창동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은 <도희야> 현장은 상당히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한국 영화는 일본 영화와 달리, 특히 내가 만드는 작품과 비교하면, 감정 표현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직설적이다. 화낼 때도 확실히, 때릴 때도 확실히(웃음). 희로애락의 파고가 높아서 감정의 가장 꼭대기부터 밑바닥을 그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에 비하면 내 영화는 그 가운데 어딘가에서 만들어지는 거라서 밋밋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첫 에세이집 <걷는 것 같은 빠르기로>도 출간되었는데.
<기적>을 찍을 당시 큐슈의 한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중심으로 엮었다. 내 주위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어디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나 같은. 원래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사람이라서 내가 쓴 글이 책으로 엮이는 건 상당히 기쁜 일이다. 물론 글을 쓸 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일본 사회가 지난 3•11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상당히 위축 되었다가 아베 정권의 등장으로 표면적으로는 다소 회복되는 기미도 보인다.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이자 창작자로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낙심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같은 작품은 아마 만들지 않을 거다. 직접적인 응원가 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지진과 원전 사고 경험을 통해 나를 포함해 일본인의 가치관이 변해갈 것이 분명하다. 그 변화를 제대로 응시해서 반영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아무래도 큰 사고를 경험하면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나 도피처를 찾기 마련이다. 나는 ‘아베노믹스’라는 말 자체도 싫어하지만 불안하니까 그런 것에도 의지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지금 일본이 내셔널리즘에 천착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그렇지 않은 타자, 일본인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타자, 이렇게 배타적인 방식으로 나눠지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분명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일의 정치, 외교 상황이 상당히 좋지않은 와중에도 이렇게 부산에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 이창동, 봉준호, 배두나, 송강호와 같은 존경하는 영화인들과 함께 영화에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들에 대한경외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게 영화는 정치보다 훨씬 더 크고 의미 있는 세계다. 글 | 김희주 (영화&TV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