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는 이름들, 혹은 최근의 문화계를 흥미롭게 가속시킨 진짜 에너지들.

<더 테러 라이브> 감독 김병우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연출한 김병우 감독은 영화 제작을 앞두고 자신의 각오를 굳이 글로 써서 남겼다. “낯부끄러워요. 그냥 일기거든요. 신인만이 할 수 있는 걸 보여주겠다, 기존의 영화와 다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각 생했어요. 당시엔 저 나름의 전략이었는지도 모르죠.” 대부분의 일기장에 쓰여진 각오들과 달리, 김병우 감독의 각오는 충실히 이행되었다. 엔딩 크레딧을 제외하면 9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테러범의 협박 전화로부터 건물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거의 리얼타임에 가깝게 분 단위로 사건을 뒤쫓게 된다. 편집 막판엔1 ~2초를 가지고 넣을지 뺄지를 고민할 만큼, 속도감을 신앙처럼 여긴 감독의 추진력 덕분이다. 오직 방송사 라디오 부스라는 하나의 세트 안에 하정우라는 배우 하나만 집어넣고 카메라5대 로 현장감과 긴박감을 살린 연출 역시, 상업 영화에 처음 도전하는 감독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날카롭고 힘이 세다. 그리고 이 모든 것 감이독 자신의 말처럼 전략이었다면, 전략은 통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맞붙은 이 작은 영화는 개봉 한 달도 안 돼 5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설국열차> 만큼의 존재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극장에 들어갈 땐 배우 하정우만 보이던 영화,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감의독 이름부터 찾게 만드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크레딧에 존재하던 감독 김병우를 스크린 밖으로 초대했다.

개봉 한 달여 만에 <더 테러 라이브> 관객수가 550만 명을 넘어섰다. 어젯밤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걸 보았다.
어젯밤 검색어에 오른 건 토렌트에 떴기 때문이다. 다 퍼졌다(웃음). 1년간 영화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서 지난 한 달, 잘 놀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뿌듯한 기분은 시사회 하루 이틀 만에 다 끝나더라.

총 4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다듬은 걸로 알고 있다. 그 하루하루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냥 백수다. 집에서 매일 시나리오만 썼다. 워낙 나다니는 성격도 아니지만, 손에서 놓으면 불안했다. 개봉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 짐을 내려놓았다.

제작사인 씨네2000을 만난 이후, 시나리오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결국 처음 생각한 대로 다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제작사와 의논하며 수정하고 또 수정했지만,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두세 달 정도 연락을 끊고 혼자 정리를 해볼 테니까 기다려달라, 안 나타나면 포기한 줄 알아라 그랬다. 촬영을 1년 앞둔 시점이었는데, 그렇게 완성한 시나리오가 지금 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한 가지를 꼽으라면?
형식이다. 단순히 실시간 뉴스 속보라는 형식이 아니라, 오직 윤영화라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간다는 게 중요했다. 그럼으로써 현장감이 나올 수 있고, 현장감을 통해 긴박감까지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주인공의 역할이 너무 커서, 오히려 주변 인물을 설정하고 그려가는 데 고민이 컸겠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고민이긴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을 윤영화 바로 옆 자리에 앉히는 영화다. 당연히 윤영화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타자화될 수밖에 없다. 윤영화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은 관객에게도 전달할 수 없고, 라디오 부스 이외의 공간에서 어떤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지 또한 보여줄 수 없다. 형식이 지닌 제약일 수 있지만, 다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언론인, 정치인 등 주변 인물을 그리는 방식 때문에 이 영화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관객 또한 많다.
난 별로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저 이 나라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왔고 서울의 현재를 동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내가 특히 뉴스와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나왔을 뿐이다. 결코 나의 어떤 ‘좌익적 성향’을 밝혀 선동하고 싶은 건 아니다(웃음). 정치적 미에서 추켜세워주는 분도 있는데, 민망하고 부끄럽다.

거의 리얼타임에 가깝게 흐르는 영화의 속도감은 <더 테러 라이브>의 가장 큰 묘미다.
편집 막바지엔 1~2초를 넣을지 뺄지를 고민했을 정도다. 테러범이 어떻게 폭탄을 구했는지, 어떻게 그 작은 폭발물 때문에 건물 한 채가 넘어갈 수 있는지 개연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시나리오상에선 설명이 되어 있고 촬영도 했지만, 지루해서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건 재미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관객에게 쉬지 않고 다음 상황을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묘미 말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 스스로 가장 재미있는 과정은 무엇인가?
편집을 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머릿속에 떠다닌 장면, 컷과 컷이 부딪치면서 탄생하는 새로운 효과, 그 모든 것을 내 눈으로 최초로 확인하는 과정이니까. 카메라 다섯 대로 촬영한 이유 역시, 결국은 편집이 재미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공대에 입학했다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꿨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1년 반 즈음 학교를 다니다가, 학사경고를 3번 받아서 잘렸다(웃음). 대학 입학 시절만 해도,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영화에 대한 관심 역시, 여느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잘린 이후 다시 시험을 봐야 하나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이렇게 됐다. 당시엔 영화 자체보다는 영상 매체에 대한 관심이 컸다.

첫 영화 <아나모픽>과 졸업 작품 <리튼> 모두, 단편이 아닌 장편 영화다.
객기였을 수 있다. 영화를 처음 찍으면서 장편을 찍는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지 않나? 하지만 장편과 단편은 아예 다른 장르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장편을 찍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장편의 경우 제작 과정도 길고 작업량도 많고 해결해가야 하는 문제도 많아서, 그 단계마다 연구하고 습득하며 많이 배웠다.

하지만 같은 장편이라도,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처음 경험한 상업 영화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니었을까?
단적으로사람이 많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스태프로 모이다 보니, 처음엔 의견을 조율해가는 데 방법적으로 서툴렀다. 한편으론 누구를 신뢰하고 함께하는 데 익숙지 않은 편이라, 그런 면에서 실수를 하기도 했다.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내 판단이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다.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내 손을 안 거치면 불안한 강박이 있어서, 세트의 방음벽 색깔 하나가지고도 미술 감독님과 싸울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촬영이 끝나는 날까지, 이 세트가 잘 만들어진 세트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미술 감독님이 공간 전체의 구조는 물론 물건을 배치하는 데 이르기까지 이 모든 걸 그냥 쉽게 하신 게 아니구나 알게 됐다.

맨 처음 <더 테러 라이브>가 하정우의 영화였다면, 지금은 김병우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이 많다.
남들이 다할 수 있는 걸, 굳이 내가 또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거기에선 어떤 쾌감도 느낄 수가 없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찾아내서 만들고 싶다. 결국 감독은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게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