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측이 2013년의 후보로 지목한 작가는 나현, 노순택, 그리고 정은영이다. 서로 다른 시선과 목소리로 9월 29일까지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공간을 채우게 된 세 명과 그들의 작업에 관하여.

노순택: 전쟁과 분단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사진을 통해 탐색한다.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 전시에 소개된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의 해프닝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안상수 전 의원은 민가에 떨어진 보온병을 포탄으로 오해해 구설에 올랐다. 노순택의 프로젝트는 문제의 보온병을 직접 찾아나서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해프닝 이후, 보온병은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 작가에게는 합리적인 판단 이상의 엉뚱한 상상력과 그 상상을 실행에 옮기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결국 연평도로 향했고, 사진과 대조해가며 문제의 보온병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찾았다. 애초에 왜 보온병은 그 장소에 놓이게 됐을까? 잔해로만 남은 목조 건물 안에는 원래 다방이 있었다. 포구에 들르는 어부들을 위해 다방 아가씨들이 보온병에 담긴 차를 배달했을 것이다. 즉,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물건인 셈이다. 아마 스스로는 포탄으로 오인되거나 서울로 옮겨질 앞으로 의 운명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왜 이토록 분단이라는 주제에 매달리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연평도 포격 이후의, 하지만 그 사건과 직접적 관련은 없는 2년 반의 일상을 일기로 기록하고 하나의 책으로 묶었다. 마지막 날의 글을 액자에 담아 걸었는데, 그 요지는 우리가 남한인도 북한인도 아닌 분단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의 속살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남한과 북한은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탐색하기 바쁘지만, 정작 들여다봐야 할 건 거울이다. 긴장은 놓지 않되 이분법적인 논리는 버려야 한다. 죽어라 대립하는 둘은 어쩌면 무척 닮은 존재일 수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 단계 더 나아간 대화가 가능하다. 사진이 모든 걸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거나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건 낭만적인 신화다. 오히려 사진은 편협하고 사실의 오독이 잦은 매체다. 다만 그 안에 무언가의 흔적이 담긴다는 건 분명하다. 나는 석연찮은, 의심스러운, 하지만 존재하는 확실한 장면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게 뭘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나는 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 않고 그럴 역량도 못 된다. 다만 꾸준히 의문과 의심을 제기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게 사진에 대한 나의 태도다.”

나현: 촘촘한 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사료를 수집하고, 그 아카이브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낸다. 신작 <바벨탑>이 다루는 건 2차 세계대전 후의 잔해로 이루어진 베를린의 악마의 산과 서울 근대화의 배설물인 난지도다. 작가는 두 도시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현대의 바벨탑으로 재해석한다.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 전시에는 반드시 신작을 출품해야 하는데, 주어진 기간이 딱 4개월이었다. 내 기준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이미 베를린에서 삽을 뜬 프로젝트가 있으니, 더도 덜도 말고 그 안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보여주자는 생각을 했다. 현재로서는 베를린 악마의 산에 대한 조사만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한동안 서울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난지도는 거의 손을 못 댄 상태다. 에르메스 전시에는 생각을 출발시킬 단초 정도만 제시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발전시킬 계획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나는 객관적 사료를 제시하며, 동시에 객관적 진실이라 불리는 게 이토록 모호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내 관심은 피사체의 이미지보다는 그 피사체를 바라보고 보여주는 시점에 머문다. 꽤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미술 안에서 이렇게 다른 언어도 존재한다는 걸 감상자들이 인정해줬으면 한다. 익숙한 문법이 아니라고 해서 난잡한 무언가로 쉽게 배척해버린다면 서운한 일이다. 아카이브 구축 위주로 이루어지는 작업의 특성상 명확하게 마침표를 찍는 게 늘 어렵다. ‘프로젝트(pro-ject)’라는 단어가 내 작업에는 무척 잘 맞는다. 뭔가 앞으로 던지고 보는 거다. 기존 질서를 동어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완결된 무언가보다 그 과정 자체가 내 작업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정은영: 여성주의 미디어 아티스트로 2008년부터 여성 국극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정동의 막>은 스러져가는 여성 국극 전통의 마지막 세대인 젊은 남역 배우를 담은 작업이다.

“사실 나는 국악이나 무대 예술에 문외한이고, 연극 혹은 뮤지컬은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국극에 대한 관심도 애호와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는 ‘수행하면서 체득되는 젠더’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곁에서 꾸준히 관찰하는 동안 전통적 여성 국극의 낡은 레퍼토리가 개선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배우들은 지나간 향수에 젖어 새로운 서사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등을 확인하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극을 홍보하는 게 내 목표는 아니다. 다만 이 장르의 급진적인 특징을 미술이라는 현장 안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퍼포먼스를 기획한 건 국극 배우들이란 무대에 서야만 스스로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동의 막>에서는 여성 국극 전통의 끝자락에 놓인 젊은 배우를 내세웠다. 장르는 사라져가는 중이고, 이에 대해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사람이 전무한 상황이다. 그럼 이 사람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국극을 그만둘 결심을 했다가 <정동의 막> 프로젝트를 계기로 다시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선생님들을 카메라 앞에 세웠을 때와 달리, 적극적인 협업이 가능했던 경우다. 그가 털어놓은 바람이나 갈등, 국극에 대한 생각 등이 반영됐다. 국극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더 남아 있다. 곧 사라질 역사이자 자기 목소리를 잃게 될 존재들에 대해 조명할 필요를 느낀다. 선생님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구술사를 출판 프로젝트로 모색 중이다. 그 외에는 트랜스젠더 이슈에도 관심이 있다. 지인인 김일란 감독(<두 개의 문>)이 트랜스젠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며 느낀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새로운 접근으로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