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보다도 작은 향수 한 병에는 손바닥으로는 가릴 수 없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들어 있다. 그곳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거닐던 이른 새벽녘의 장미 정원일 수도 있고, 천일야화의 신비를 간직한 아시아의 작은 마을일 수도, 막 사랑에 빠진 소녀의 심장 속일 수도 있다.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것. 눈에 담을 수 없어 더 매력적인 두 글자, 향수. 수백 년 동안 오직 좋은 향기를 만드는 데 열중해온 퍼퓸 하우스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쾰른의 신비수 4711

독일인의 뚝심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정확히 이런 느낌이 아닐까? 1792년 한 수도승이 뮐헨스 부부의 결혼 선물로 알려준 ‘기적의 물을 만드는 레시피’. 그 한 장의 종이에서 4711 향수는 시작되었다. 이후 나폴레옹군이 뮐헨스 부부가 사는 독일의 쾰른 지방을 점령하면서 프랑스군에게까지 알려졌는데, 당시 나폴레옹은 한 달에 무려 60병 이상을 사용했을 정도로 4711의 향기에 매료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불필요한 것은 모조리 덜어내어 정수만을 남긴, 그래서 무겁지는 않지만 가볍다기보다 는 심플하다는 인상을 주는 향수 4711. 지금도 독일에선 잠들기 전 베개에, 손수건에, 여름엔 냉장고에 넣어 청량제로 사용하는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가 모두 애용하는 국민 향수다. 수도승의 레시피로부터 기적의 비밀이 풀린 지 200여 년. 그동안 4711도 향수 브랜드로서 몇 번의 외도를 거쳤지만 그 핵심을 잃지 않았고,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그 정체성은 지켜냈다. 덕분에 지금도 독일 쾰른 지방에서는 4711 향수가 쾰른 대성당, 쾰른 맥주와 함께3 대 명물로 꼽힌다.

1 오리지널 오드 콜로뉴 오데코롱의 시초로 알려졌으며, 원액의 농도가 3~5%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향과 사용감이 가볍다. 긴장과 스트레스 완화등 아로마테라피 효능이 뛰어나다.

2 누보 콜로뉴 ‘새롭다(new)’는 의미의 이름처럼 오리지널 오드 콜로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푸른 바다에 빠져드는 듯한 상쾌한 향.

3 아쿠아 콜로니아 레몬&진저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가볍고 프레시한 느낌의 아쿠아 콜로니아 컬렉션 중 하나. 천연의 향을 그대로 사용해 아로마테라피 효과를 꾀했다.

4 4711 오리지널 오드 콜로뉴 올드 디자인과 1 2 3 광고 비주얼.

황금의 제국 산타 마리아 노벨라 SANTA MARIA NOVELLA

‘고현정 크림’으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는 그보다 더 특별한 셀레브리티가 있다. 지금의 재벌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부를 축적한 16세기의 메디치 가문부터 17세기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 그야말로 로열 패밀리의 편애를 병 위에 얹고 위풍당당 유럽을 넘어 인도와 중국에까지 수출된 브랜드가 바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다. 시작은 이러하다. 당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의 수도사들은 메디치가의 카트리나 공주와 프랑스 앙리 2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향수를 하나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아쿠아 디 콜로니아’다. 이는 카트리나 공주 일행이 파리에 도착한 뒤 현지에서 ‘왕비의 물(Acqua Della Regina)’이라 불리며 대중에게까지 유명해졌는데, 후에 ‘오드 코롱(Eau De Cologne)’의 어원이 되었을 정도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16세기에 일어났다는 사실. 그때로부터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고집스러운 전통의 방식으로 한 병 한 병 수작업으로 향수를 만들고 있다. 무려 400년이 넘도록. 오래되었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좋으니까 오래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1 엔젤스 오브 플로렌스 오드 꼴롱 1966년 11월, 피렌체의 아르노 강이 범람해 도시 전체가 진흙으로 뒤덮였을 때 이를 복구하기 위해 애썼던 자원 봉사자에게 헌정하기 위해 탄생된 향수.

2 알바 디 서울 가장 최근에 출시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향수로 쿠바, 교토, 피렌체, 시칠리아에 이어 세계의 도시 가운데 한국의 서울을 선택했다. 소나무를 베이스로 역동적인 하루가 시작되기 전 고요한 서울의 새벽 이미지를 담은 향수.

3 아쿠아 디 콜로니아 멜로그라노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베스트셀링 향수. 석류를 닮은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향이 특징인 남녀 공용 향수.

4 아쿠아 디 콜로니아 1612 포르첼라나 2010년 말 출시되어 브랜드 론칭400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판매된 리미티드 에디션. 보틀의 뚜껑은 동과 자기로 만들어졌으며, 고유 번호가 새겨져 있어 소장 가치가 뛰어나다.

5. 아쿠아 디 콜로니아 라벤더 초창기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향수 보틀.

전설이 온다 갈리마드 GALIMARD

갈리마드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그라스 얘기부터 해야겠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그라스는 명실상부 향료의 메카. ‘향수를 알고 싶으면 그라스부터 찾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향수와 그 역사를 함께했다. 일교차가 적고 따뜻한 기후는 그라스를 세계 최대의 향료 생산지로 만들었는데, 16세기 초에는 이곳에서만 무려 8백 톤의 재스민과 1천 톤의 장미, 1천8백 톤의 광귤나무 꽃이 추수될 정도였다. 지금도 수많은 향료&향수 회사들이 그라스에 그 본적을 두고 있는데, 갈리마드는 그라스에서도 손꼽히는 퍼퓸 하우스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조향사 가문이다.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애들로 가득한 국제중에서도 전교 3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라 비유한다면 이해가 빠를까? 1747년 처음 창설된 갈리마드 퍼퓸은 오직 그라스 지역에서 채취한 최상급의 원료와 프랑스 왕실의 총애를 자산으로 보기 좋게 성장했고, 왕실의 전유물처럼 비밀리에 운영되었다. 그러나 향수가 변하듯 시대도 변했다. 2013년, 갈리마드 퍼퓸은 마침내 한국 땅에 상륙했다. 뿐만 아니라 그라스의 갈리미드 스튜디오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전문 퍼퓸 컨설턴트와 함께 ‘나만의 맞춤 향수’를 제작할 수 있다. 이쯤은 되어야 진짜 ‘하이엔드’다.

1 봄부 트레플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직접 에즈빌리지 갈리마드 부티크에 방문해 선택한 향수.

2 뿌르 루이 루이 15세를 위해 특별 제작된 것으로, 이 향수를 시작으로 그라스 지역의 향수 산업이 본격화되었을 정도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3 오드 콜로뉴 19가지 싱글 노트로 구성된 향수 컬렉션. 270년 동안 동일한 디자인을 고수 중이다.

4 1747 그동안 오직 왕실만을 위해 향수를 제작해오던 갈리마드 가문이 1747년, 처음 대중을 위한 향수 개발을 시작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향수.

말하자면 딥티크 DIPTYQUE

딥티크는 시크한 향수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한번도 촌스러웠던 적도 실망시킨 적도 없다. 심지어 독특하기까지 하다. 여기에는 딥티크의 창시자이자 창조적 열정이 충만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티안 고트로, 화가인 데스몬드 녹스 리트, 그리고 세트 디자이너 이브 쿠에랑이라는 절친 세 명이 존재한다. 그들은 지금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바잉한 특이하고 이국적인 아이템들로 딥티크의 아틀리에를 채우고,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배합하고, 스토리를 전개한다. 지금이야 이러한 콘셉트의 브랜드가 흔해졌지만, 손으로 직접 그린 일러스트 라벨이며 타원형의 레이블, 독특한 검은색 서체 등은 당시로는 꽤나 파격적이었다.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예리한 미적 감각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딥티크만의 확고한 색깔을 만들었고, 처음으로 선보인 향수 ‘로(L’eau)’는 파리 상류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딥티크라는 이름을 방방곡곡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즐기는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1 딥티크 최초의 매장.

2 딥티크 볼류트 오드 뚜왈렛.

3 딥티크의 창시자 데스몬드의 스케치 노트.

4 1세대 딥티크 향수 보틀.

은밀하게 위대하게 펜할리곤스 PENHALIGON’S

가슴에 훈장을 달고 금의환향한 장군마냥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표명하는 모양새다. 처음부터 다르게 보이는 게 목적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펜할리곤스는 여느 클래식 향수와는 겉모습부터가 다르다. 태생이 다른 까닭이다. 많은 퍼퓸 하우스들이 그 근거지를 유럽 대륙의 어디쯤에 두고 있다. 프랑스나 이태리, 멀리 가도 독일이다. 그에 반해 1870년, 펜할리곤스가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은 런던 피카딜리의 저민 스트리트(Jermyn Street). 다시 말해, 영국이다. 지금이야 유로스타로 파리까지 2시간 정도면 도착할 만큼 물리적으로 가까워졌지만, 1800년대만 해도 대영제국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 거리가 있는, 가깝고도 먼 바다 건너 섬나라였으니까. 펜할리곤스의 독특한 매력은 디자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창시자인 윌리엄 펜할리곤스의 정신과 신념을 이어받아 주변의 기상천외한 소재로부터 영감을 받은 위트 넘치는 향의 향수들이 넘쳐난다. 첫 번째 향수인 ‘하맘 부케’는 공중목욕탕 특유의 냄새를 묘하게 닮았고, 영국의 독특한 차 문화인 애프터눈 티타임을 모티프로 한 ‘말라바’, 양복점의 직물 냄새와 재단사의 초크 냄새에서 영감을 받은 ‘사토리얼’,양조장에서 갓 뽑은 드라이진(gin)의 맛을 연상시키는 ‘쥬니퍼 슬링’등의 향수가 대표적이다. 일상적인 소재를 차용함에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건 최상의 고급 원료만을 사용하는 고집스러움과 빅토리아 시대부터 이어져온 144년의 블렌딩 노하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찰스 왕세자와 에든버러 공작은 ‘영국 왕실이 인증한 브랜드’라는 상징의 왕실 조달 허가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향수 브랜드로는 펜할리곤스가 유일하다.

1 블렌하임 부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말버러 공작의 블렌하임 대저택에서 영감을 받았다. 세계 최초의 시트러스 계열 향수로 탄생한 지 100년도 더 되었지만 여전히 세련되고 기품이 넘치는 듯한 느낌. 윌리엄 왕자와 귀네스 팰트로가 애용한다고 알려졌다.

2 쥬빌리 부케 엘리자베스 여왕의 취임 25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백합, 재스민, 머스크, 나무 향이 조화된 화려하고 고귀한 느낌의 향수.

3 하맘 부케 1872년, ‘터키식 목욕탕’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펜할리곤스의 첫 번째 향수. 당시 귀족들만 누리던 터키식 욕탕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온천의 수증기와 황 냄새가 뒤섞인 듯한 독특한 이미지의 향수를 만들었다.

뿌리 깊은 향수 겔랑 GUERLAIN

겔랑은 존재 자체가 역사인 퍼퓸 하우스다. 그간 보여준 모든 향수는 그 자체로 고유한 영역이 되었다. 피에르 프랑수아 겔랑이 파리 리볼리가에 자신의 이름을 딴 최초의 부티크를 연 1828년부터 현대 역사상 합성 오일을 배합한 최초의 향수로 기록된 지키18(89년),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를 위해 만들었다는 최초의 오데 코롱 향수 임페리얼(1853), 최초의 오리엔탈 향수이자 최초의 앰버 계열 향수인 샬리마(1925년)까지. 과연 ‘최초’라는 단어를 이렇게 남발해도 되나 싶을 만큼 매번 진화를 거듭한 겔랑의 향수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었다. 변화는 있었지만 철학은 고수했다. 조건은 두 가지. 모든 향수는 겔랑가의 후계자가 조향할 것. 그리고 어떠한 향수 원액도 조향사의 사인 없이는 단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을 것. 5대를 넘도록 전승해온 가문의 헤리티지와 품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견고한 흐름이 되었고, 18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리 없이 강하게 이어오고 있다.

1 샬리마 1925년 처음 발표된 이래 현재까지도 최고의 오리엔탈 향수로 손꼽힐 만큼 겔랑을 대표하는 수작. 조향사 자크 겔랑이 인도 뭄타즈 마할 공주와 샤 자한의 러브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아 조제했다.

2 지키 2대 조향사 애메 겔랑이 사랑하던 여인을 추억하며 만든 향수. 당시 천연 향료를 단순하게 섞어 향수를 만들던 것에 반해, 오일계 합성 항료를 처음으로 사용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3 오데 코롱 임페리얼 초대 조향사인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이 유제니 황후에게 헌사한 최초의 오데 코롱.

4 아쿠아 알레고리아 ‘향수병에 담은 자연’을 콘셉트로 오데 코롱 임페리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5 미츠코 1919년, 겔랑의 3대 조향사인 자크 겔랑이 푸치니의 <나비부인>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만든 향수.

6 라 쁘띠 로브 느와르 2013년 3월, ‘마이 리틀 블랙 드레스’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겔랑의 최신작. 초대 미츠코 향수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7 겔랑 최초의 부티크

위대한 탄생 에르메스 HERMES

에르메스 향수의 역사는 1949년부터 시작된다. 브랜드가 생겨난 지 꼬박 100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심지어 최초의 여성 향수는 그보다 늦은 1961년에 탄생했다. ‘작은 마차’라는 뜻의 깔레쉬가 그 주인공. 고급스러운 비누 향을 담은 정갈한 금색 유리 보틀의 향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향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엄격히 말 해 에르메스의 향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무심코 물으면 ‘툭’ 하고 내뱉을 만큼 기억나는 향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에르메스를 전통적인 퍼퓸 하우스로 꼽는 데에는 에르메스라는 패션 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고집과 전통성, 그리고 장클로드 엘레나라는 전속 조향사가있다. 그는 시슬리 오드 캉파뉴, 입생로랑의 인 러브 어게인, 불가리 오 파퓨메 오떼 베르 등을 탄생시킨 세계적인 톱 조향사 중 하나. 2000년대 후반 에르메스 최초의 전속 조향사로 합류하였는데, 그 뒤로 선보인 윈 자르뎅, 켈리 깔리쉬, 보야지 드라메스 같은 향수들이 하나같이 최고의 향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에르메스 향수의 역사는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1 오 도랑쥬 베르트 1979년 조향사 프랑수아 카롤이 만든 에르메스의 첫 번째 코롱. 아침 이슬에 촉촉하게 젖은 숲의 향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2 깔레쉬 조향사 기 로베르에 의해 탄생한 에르메스 최초의 여성 향수.

3 에르메스 광고 비주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초창기 광고 비주얼.

명불허전 샤넬 CHANEL

고집스럽기로 치자면 샤넬을 따라갈 브랜드가 없다. 샤넬 NO.5는 처음 발매된 1921년부터 지금까지도 부동의 상징이며, 이는 이변이 없는 한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잠옷 대신N O.5를 뿌리고 잠든다고 말한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미군 병사들마저도 NO.5를 사기 위해 캉봉 매장 앞에 줄지어 밤을 지새웠다는 식의 일화는 너무 많이 들어 지겨울 정도다. 그러니 NO.5 얘기는 그만하도록 하자. 샤넬에는 NO.5 말고도 괜찮은 향수가 꽤 많다. 먼저, 초대 조향사인 에르네스트 보가 가브리엘 샤넬을 위해 만든 16가지 향수 가운데 하나인 NO.22(1922년), 샤넬의 두 번째 조향사인 앙리 로베르가 탄생시킨 NO.19(1970년), 가브리엘 샤넬이 직접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향수이자 자크 폴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코코 샤넬(1984년)과 이를 재해석한 코코 마드무아젤(2002년), 자크 폴주가 11년 만에 완성한 알뤼르(1996년),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블랙 드레스와 베니스를 모티프로 탄생한 코코 누아르(2012년)까지. 곱씹어보면 무엇 하나 생소한 것이 없다. 샤넬은 겔랑, 에르메스 등과 함께 전속 조향사를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 오직 샤넬만을 위한, 샤넬스러운, 샤넬의 향수를 만들어왔다는 의미다. 2013년 9월부터는 자크 폴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올리비에 폴주가 새로운 샤넬 향수 연구소의 조향사로 합류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최고급 장미와 재스민을 공급할 전용 농장도, 물론 있다. 그러니 샤넬은 무엇을 선택해도 기대 이상을 한다. 샤넬이니까.

1 NO.5 오드 빠르펭 디자이너의 이름을 건 최초의 향수. 1921년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제작한 이래 지금까지 변함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향수로 손꼽힌다.

2 샹스 오 프레쉬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천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이미지의 플로럴 스파클링 계열 향수.

3 코코 마드무아젤 오드 퍼퓸 중국산 칠기와 도자기, 화려한 문양의 가구로 가득한 샤넬의 아파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오리엔탈 계열의 향수.

4 NO.5 광고 비주얼 왼쪽부터 차례로 1972년, 2005년, 2009년 버전.

5 자크 폴주 샤넬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3대 조향사.

6 올리비에 폴주 2013년 9월부터 샤넬 하우스에 합류하는 신예 조향사.

패션 향수의 종결자 디올 DIOR

디올 향수는 항상 완성형이다. 화장대 위에 꼭 올려두고 싶은 아름다운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 패션 하우스로서 디올이 가지고 있는 고급한 이미지와 그에 걸맞은 평균의 기준을 가뿐히 상회하는 질 좋은 향…. 그간 출시된 디올의 향수는 모두 세대를 막론하고 전 지구적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자신의 의상실을 개업한 이듬해인 1947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최초의 향수 ‘미스 디올’, 차기작으로 선보인 ‘디오리시모(1956년)’, 치명적인 유혹의 향수 ‘쁘와종(1985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향수로 선정된 ‘듄(1991년)’, 뒤이어 선보인 14번째 향수 ‘돌체 비타(1998년)’와 15번째 향수 ‘쟈도르(1999년)’까지. 대충 생각나는 대로 리스트를 읊는다 해도 이 정도다. 하나의 퍼퓸 하우스가 이토록 다양하면서도 탄탄한 스펙트럼을 보유하기란 쉽지 않다. 디올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1 쁘와종 오드 뚜왈렛 1985년 처음 발매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4천8백만 개 이상 판매된 마력의 향수.

2 미스 디올 자신이 만든 드레스의 아름다움을 향기로 담아내고자 했던 무슈 디올이 선보인 첫 번째 향수.

3 디올 어딕트 오 델리스 이번 여름, 디올 퍼퓸 하우스에서 출시한 야심작. 늘씬한 고양이처럼 대담하고 유쾌한 매력을 지닌 여성을 연상시키는 관능적이고도 상큼한 향이다.

4 쟈도르 오드 퍼퓸 여성의 보디를 닮은 수려한 곡선의 보틀 디자인과 골드 색상으로 대변되는 디올의 베스트 셀링 향수.

위대한 가족 크리드 CREED

크리드는 니치 향수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조건을 깨알같이 충족시킨다. 향수의 본 고장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최상급 원료를 사용하고, 처음 창시된 이래 쭉 핸드메이드 방식을 고수하며, 한 때는 이름 좀 날린다 하는 가문의 스페셜 오더 메이드 향수를 담당했고, 그래서 황실로부터 공식 향수 인증 자격 하나쯤은 받았으며, 전속 조향사를 두고 있다. 1760년 1대손 제임스 헨리 크리드에 의해 시작된 크리드 가문의 역사는 빅토리아 여왕,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헵번의 시대를 거쳐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을 넘나들며 7대째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대째 이어온 맛집’도 줄 서서 맛보아야 하는 세상인데 일곱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그 어떤 저명한 조향사 가문도 이를 넘어서진 못했다면 과연 그 답이 되려나.

1 퓨어 화이트 코롱 향수 명가 크리드 가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로열 익스클루시브 라인의 하나.

2 아쿠아 피오렌티나, 앙코르 크리드의 6대손 조향사 올리비에 크리드가 올해 초 선보인 신제품.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예술의 도시, 이태리 피렌체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3 플러리시모 1956년 그레이스 켈리와의 결혼을 위해 예비 남편인 모나코의 레니에 공이 준비한 스페셜 향수. 당시 왕실 결혼식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고귀하고 성스러운 향.

4 스프링 플라워 크리드 마니아로 알려진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특별 주문해 만들어진 핑크빛 향수.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플로럴 프루티 계열 향수로 훗날 대중에게 공개되어 많은 여성에게 사랑받고 있다.

5 올리비에 크리드 지금의 크리드를 이끌고 있는 6대손 조향사.

6 제임 스헨리 크리드 크리드의 창시자 이자 초대 조향사.

7 황실 공식 향수 인증서 스페인 황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황후로부터 수여받은 인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