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 속 사진 폴더에 자신의 일상을 빼곡하게 쌓으며 지낸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는 질문을 건네는 대신 최근 기록한 시간들을 부탁했다.

지중해 건축 기행
건축 칼럼니스트이자 한겨레 대중문화팀장인 구본준은 분수와 골목이 보고 싶어 지중해로 떠났다고 했다.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쓰고 살면서 가장 사랑하게 된 것이 이 두 가지라는 것. “물과 돌, 빛이 어우러지는 곳이 나타나면 절로 눈길이 가 머문다. 여행을 가면 거대한 건축이나 위대한 도시보다도 거리에 숨어 있는 재미를 만날 때 더 즐거워진다. 숨어 있는 것들이 많은 도시가 진정 좋은 도시가 아닐까?”

1.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집인 가우디의 대표작 카사 바트요 바로 옆집 창문. 카사 바트요 이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이 집의 창문은 가우디 옆에서도 당당하다.
2. 위대한 문호의 작은 두상 하나 벽에 붙인 간결한 디자인이 거대한 동상보다 인상적이다. 그 아래 한 줄로 바친 꽃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헌화였다.
3. 로마 나보나 광장의 스타인 모로 분수. 가운데 무어인의 조각상이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뒤에서 본 엉덩이가 실로 박력 넘친다. 엉덩이에도 표정이 있다.
4. ‘분수의 달인’ 베르니니의 명작 트리톤 분수를 보러 갔다 배신당했다. 전면 보수 중인 것. 아쉬움을 이 분수가 달래줬다. 벌 세 마리에서 물이 나오는 그의 또 다른 걸작, 벌의 분수.
5. 벽돌담을 만나면 손을 대고 걸어본다. 벽돌처럼 진실되어 보이는 재료가 또 있을까? 벽돌을 만지며 걷다 보면 내가 벽돌을 만지는 게 아니라 저 벽돌이 나를 만지는 것 같다.
6.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베드로가 처형당할 때 묶인 쇠사슬을 보관하는 성당인데,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으로 더 유명하다. 소박한 성당을 철문 그림자가 장식해준다.
7. 산마르코 광장, 카를로 스카르파가 설계한 올리베티 전시관. 스카르파는 재료와 재료, 선과 선, 면과 면이 만나는 디테일 하나하나를 작품으로 만들고, 이 모두를 모아 집을 만든다.
8.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는 시처럼 오래된 건물은 다 아름답다. 고치고 덧대고 손을 본 흔적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보여준다. 저 흔적은 원래 무엇이 있던 자리일까.
9. 수입해오고 싶은 지중해의 하늘. 그 아래에선 무엇이든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건축 콜로세움조차도. 저 눈부신 하늘 아래 사람 죽이는 경기장을 지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제주도 육견생활
올드독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만화가 정우열은 올해 초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물론 가족인 두 마리 개 소리와 풋코도 그와 함께 섬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게 됐다.

1. 함덕 해변을 질주하는 풋코. 이럴 때 보면 폭스테리어가 사냥개라는 게 제법 실감이 난다.
2. 그간 개 헤엄 수중 촬영을 위해 방수팩, 방수 카메라 등 각종 장비를 전전했으나 사진 결과물이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하이브리드 디카 + 방수 하우징.
3. 제주도에서 처음 맞는 풋코(오른쪽)의 생일이다. 잔칫상은 바나나, 호박, 토마토, 노가리 등.
4. 좌보미 오름에 관해서는 고단한 기억이 있다. 멋모르고 데려간 풋코와 소리가 진드기 수백 마리에 물리는 바람에, 결국 한밤중에 들쳐 업고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말 그대로 개고생.
5. 지난봄, 일찌감치 여름을 대비하며 원터치 팝업 텐트와 고무 보트를 구입했다. 물론 바닷가 나들이를 위해서였지만 이렇듯
집 안에서도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6. 함덕 해변에서의 보트 출항. 이사를 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문득 깨달았는데, 나는 이렇게 개들과 헤엄치기 위해서 제주도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7. 무료한 오후의 손님놀이.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안 사요.”
8. 풋코의 어미인 소리는 선풍기, 난로 등을 곧잘 활용한다. 문명의 이기를 아는 개.
9. 김녕 해변 근처의 올레길이다. 제주도에 이사한 뒤로 개들과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풍경이 무척 다양해졌다.

뮤지션의 B사이드
얼마 전 발표된 앨범 <나의 쓸모>는 요조의 ‘쓸모’에 관한 담백한 증명이다. 더 깊어진 음악과 분명해진 목소리를 갖고 돌아온 뮤지션이 2집 활동의 뒷면을 뒤집어 보인다.

1. 부산과 거제도로 이어지는 스케줄을 마친 뒤 광안리에서 공연이 있었던 옥상달빛과 만났다. 스태프로 전격 합류.
2. 앨범 발매일, 김소연 시인과 상수동의 라바라는 가게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다. 신난 나.
3. 국군방송 라디오를 마치고 나오던 길. 관용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뜬금없이 마주하니까 좀 이상했다.
4. 공연 일정 때문에 들른 부산에서. 국제시장의 꼬마.
5. 부산 국제시장을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오겡키카레집 사장님. 유명한 뮤지션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다. 나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6.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벙글 웃어봐 했더니 진짜 벙글 웃는 루빈(이번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다).
7. 신난 얼굴은 언제나 옳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나의 매니저 홍달님.
8. 네이버 음악감상회 때. 개인 면담을 하듯 진행했다. 앨범 발매 후 첫 라이브였다.

맨날 술이야
술의 종류만큼이나 술을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다. 피처 에디터 정준화의 종횡무진 음주 편력.

1. 연남동 사용법.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걸치거나 크래프트 원에 들러 수제 맥주인 밍글을 주문한다. 가볍고 향긋하고 깔끔하다.
2. 스카치위스키 브랜드인 시바스 리갈은 패션 디자이너 4명과 모던 젠틀맨이라는 주제로 협업을 진행했다. 사진은 송지오가디자인한 스카프와 손수건. 무척 더웠던 날이라 스카프보다는 위스키 온더락이 급했다.
3.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밤안개는 더 엑스엑스의 음악과 썩 잘 어울렸다. 예거밤을 두 잔쯤 들이켰더니 주위가 기분 좋게 몽롱해졌다.
4. 바에 앉으면 곁에 앉은 손님과 대화를 섞거나 카운터 너머의 농담을 훔쳐 듣게 되는 등 테이블에서는 놓쳤을 즐거운 우연을 경험하곤 한다. 저녁을 잔뜩 먹은 뒤라 맥파이의 페일 에일은 작은 잔으로 마셨다.
5. 언짢은 날을 위한 보험으로 종종 비싼 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산 지 이틀 만에 벨기에의 IPA인 호퍼스를 딸 일이 생겼다.
6. 어떤 술은 원산지의 느낌을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하와이산 맥주인 코나와 빅웨이브는 뭐랄까, 모래사장에 드러누운 서퍼들의 휴식처럼 낙천적인 맛이 난다.
7. 사막에서 일주일 쯤 헤맨 쳇 베이커처럼 노래하는 빈센트 갈로의 앨범 <When>은 혼자 마시는 술에 잘 어울린다. 어느덧 희귀 음반이 된 물건을 동교동 김밥레코즈 매장에서 극적으로 입수.
8. 술자리에서 디제잉 중인 친구의 고양이. 사실 랜덤 재생 상태지만 당당한 표정이 거의 데이비드 게타다.
9. 음악의 숲은 서촌 한구석을 수년째 지키고 있는 작은 LP 바다. 힙스터들의 아날로그 취향보다는 시대착오적인 구식 술집의 분위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뚝심 있는 투박함 덕분에 더 매력적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