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테일’이라는 별명은 그에게 완벽하다. 봉 감독의 작업 방식은 대단히 확고하고 견고했지만 동시에 장난기가 넘쳤다. 이러한 점이 내가 그와 잘 맞는 이유다. 계획적인 봉 감독이지만 나에게만은 더 즉흥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관대했다.” 서로 동경하던 팬이었던 감독과 배우는 의기투합하여 함께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W Korea>와의 화보 촬영이 확정되자 틸다는 봉준호 감독과 더블유 코리아 팀을 스코틀랜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지만, 봉 감독의 에든버러 영화제 일정 상 아깝게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런던에서 틸다를, 서울에서 봉 감독을 따로 만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와서 죽은 자식 나이 세기 같은 소리지만, 틸다 스윈턴과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는 한날 한자리에서, 그것도 틸다의 집에서 이루어질 뻔했다. 틸다가 스코틀랜드 북쪽 끝 하일랜드의 인버네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봉 감독과 더블유 코리아 스태프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가 열차에 대한 이야기니, 두 사람이 에든버러에서 함께 기차를 타고 인버네스까지 오면서 인터뷰를 하면 좋겠네요!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이 사진을 찍고 말이죠.” 틸다의 제안은 참 귀여웠고 (인터뷰가 지나치게 길어질 우려는 있었지만) 이미 틸다의 집을 방문한 전력이 있는 봉 감독은 흔쾌히 길을 안내하겠노라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기회들이 그렇듯이, 이 제안은 약간의 행운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에든버러 영화제를 심사위원으로 방문한 봉 감독의 일정과, <더 리틀 블랙 재킷> 상하이 전시 오프닝에 참석해야 하는 틸다의 일정이 아깝게 단 하루 어긋났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에서 만난 봉 감독의 아이폰에 저장된 틸다의 집과 개들, 북해로 이어지는 집 근처의 해변, 파를 썰어 요리를 만드는 그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지만 달래질 리가 있나. 이 두 사람을 같은 장소 한 공간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근사했을까 하는 가정을 완전히 떨치기는 힘들었다.

봉 감독과 틸다가 서로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이름을 부를 땐 어떤 억양으로 부르는지, 촬영 당시에 대해 어떻게 회상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사래를 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비행기로 10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시간 차를 둔 메신저 노릇을 하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었다. 봉 감독에게 묻고 싶은 뭔가를 질문해보라고 하는 더블유의 주문에 틸다는 “시사회 때 서울에 가면 우리 어디에 같이 갈거예요?”라고 물었고, 봉 감독은 “크레이지한 뒷골목들에 데려갈 테니 안전벨트 매는 느낌으로 각오해요”라고 답했다. 동시대, 다른 문화권의 감독과 배우는 영화를 보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3국의 영화제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약속하고 그것을 이루었다. 봉준호 감독은 특유의 입담으로 틸다와 처음 만났던 칸 영화제에서의 아침 식사, 집을 방문했을 때 맛본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 하기스, 틸다의 쌍둥이 자녀가 <설국열차>에 단역으로 출연한 일, 촬영장에서 송강호와 틸다가 일으킨 화학작용에 대해 들려주었다. 장소가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였다면 황홀했겠지만, 논현동 스튜디오도 충분했다.

틸다에게서, <설국열차>에 함께하게 된 스토리를 들었는데 이 이야기의 감독님 버전을 듣고 싶다. 칸에서 만나 서로 의기투합하고, 프로젝트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뭐든 같이해보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었다고 들었다. 할리우드 배우와는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 영화제에서 꼭두새벽에 만나서 같이 아침 먹었다. 그 양반에게도 물론 에이전시와 변호사가 있지만, 일단 자기가 꽂히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심플하더라. 처음 만났을 때가 <설국열차> 시나리오 나오기 전이었다. 캐스팅 제안을 하기도 전에 일단 그냥 만났고 뭔가 하자고 서로 동의했다. 이걸 이 양반이 하면 재밌겠다 해서 메이슨이라는 남자 역할을 여자로 바꿨다. 영화화 과정에서 원작의 성을 바꾸는 경우를 ‘젠더 체인지’라고 하는데 앤젤리나 졸리가 액션을 했던 <솔트>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예다. 틸다도 그런 걸 낯설어하지 않더라.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친절하다는 걸 넘어서 사랑이 넘치는 사람 같았다. 정이 느껴졌다.
영국 애들이 점잖으면서 음흉한 느낌이라면, 스코틀랜드가 우리나라랑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에든버러 영화제에도 두 번 갔고, <설국열차> 배우 중에 이완 브렘너도 스코티시인데 이 두 배우가 아주 송강호 같은 느낌이었다. 일하는 스타일도 비슷하고, 한국인 기질하고 잘 맞는 것 같다.

틸다가 초대해준 대로 그녀의 집에서 함께 인터뷰가 성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이전에는 무슨 일로 갔던 것인가?
그전에 방문했을 때는 나와 의상팀, 프로듀서가 같이 갔다. 틸다가 갖고 있는 의상을 활용해서 온갖 스타일을 다 입어보고 아이폰으로 찍으면서 메이슨 캐릭터 코디네이션의 시뮬레이션을 거기서 했다. 가발도 써보고, 남미 독재자처럼도 입어보고, 마가릿 대처 느낌도 내보고… 틸다는 얘기하다가 연기하다가 막 그랬다. 일이지만 같이 놀다시피 한 거다.

캐릭터에 틸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됐다고 하던데.
들창코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웃음). 촬영 용어로 보철이라고 하는 걸 코에다 넣고 싶어 하더라. 틀니도 넣었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배우에게 내가 무슨 변태적인 짓을 한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본인이 이상한 걸 하고 싶다 자처하고 나는 말리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적정선에서 마무리된 게 저 정도인데 만약에 안 말렸으면 뮤턴트가 나왔을 것 같다(웃음).

영화에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데 익숙한 배우 같다.
상업 영화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데릭 저먼 실험 영화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마인드 자체가 그렇게 세팅된 것 같다. 미국 영화에 가면 또 천연덕스럽게 맞춰서 연기하지만. 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자기는 프로페셔널 액터가 아니라고 얘기하더라. 아마추어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 사람과 일을 해보니 그 말의 맥락을 알 것 같았다. 어떤 일이건 자기가 꽂혀서 하는 거고, 스스로 크리에이터로서 참여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해서는, 꼼꼼하고 성실하게 준비해오기 때문에 즐겁게 놀 듯이 작업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이 영화를 하면서 틸다의 화두가 있었다. 이 작업 자체가 자기에게는 ‘Fun’이라고 하더라. 자연스럽게, 그게 우리의 슬로건처럼 됐다. 데릭 저먼이나 짐 자 무시 같은 감독들과의 작업이나 MoMA에서의 잠자는 퍼포먼스처럼 특이한 행위도 재미있는 일 자체를 추구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양반이 나랑 처음 칸에서 만났을 때, 영화에서는 한동안 재미를 못 느꼈다고 고백하더라. 솔직히 지쳐 있다고. <설국열차>를 통해서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다 했고, 영화를 다 찍었을 때는 만족하고 좋아했다. 영화에 대한 흥미를 이 작품 덕분에 되찾은 것 같다고 얘기하니 나로서는 보람찬 일이었다. 물론 영화 현장에서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느라 정신없었지만, 세트장에서 아무리 힘들다 해도 틸다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힘든 와중에도 틸다가 나를 많이 릴랙스시켜줬고 틸다랑 있다 보면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 다른 배우들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감독이 너무 그러면 안 되는데, 티가 난 것 같다(웃음).

틸다뿐 아니라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를 비롯해 영어권 배우 그리고 스태프들과의 의사 소통은 어땠나. 문화적 차이, 영화현장 차이에서 빚어지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한국 조감독들은 감독의 기분과 의지, 변덕까지 살피고 감당하는 감독의 전사들인데, 미국이나 영국의 전문 조감독들은 현장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감독을 압박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 점심 식사 전에 이 샷까진 찍으시겠죠? 그러시면 오후가 수월해지실 텐데…” 이런 식으로 웃으면서 부담을 주고 다닌다. 감독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보이지 않는 고삐를 당기는 거다. 그렇게 하니까 72회 촬영, 2개월 28일 만에 다 찍을 수 있었다. 1년 넘게 프리 프로덕션을 해놨고, 야외 로케이션도 있었지만 세트 분량이 많으니까 날씨 영향을 안 받아서 그럴 수 있었던 거 같다. 외국 배우나 스태프들은 더 짧게 찍는 거에 익숙해있더라. 내 경우 <마더>는 한국에서 90회, 4개월 찍었고, <살인의 추억>은 옮겨 다니느라 100회를 찍었다. 나로선 가장 스케일이 큰 영화를 가장 단기간에 찍은 셈이다.

김지운, 박찬욱 감독의 해외 프로젝트와 비슷한 시기에겹쳐서 같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개봉하게 되는데 기분이 어떤가?
어쩌다 보니 패키지처럼 같은 해에 그렇게 됐는데 전혀 의도한바가 아니다. 출발한 시점은 서로 다 다르다. 외국 프로듀서들에게 연락받기 시작한 게 박 감독님은 2004년 <올드보이>가 칸에서 공개된 후부터, 김지운 감독님은 <달콤한 인생> 때부터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2006년에 <괴물>이 칸이랑 토론토에서 공개되고 나서 에이전트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기억엔 박 감독님이 선두에 서서 미국 영화를 찍고 싶어 하셨던 거 같다. 나는 이미 김혜자 선생님과 작업하기로 돼 있었고, <설국열차>도 계획이 미리 짜져 있던 데다 한 편 하면 이삼 년 걸리는 사람이니까(웃음)… 그 당시 향후 오륙 년 계획이 짜여져 있었던 셈이니 바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라스트 스탠드>는 라이온스게이트 영화에 김지운 감독님이, 그리고 <스토커>는 폭스서치라이트에 마찬가지로 박찬욱 감독님이 연출을 해주러 간 거다. 스크립트나 기획 자체를 그쪽에서 제안한 거고. 나는 내가 발견한 원작 만화로 내가 대본을 쓴 거고. 한국 중심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 배우 스태프들이 조직돼서 찍은 영화라는 점도 다르다. 다른 시스템과 다른 환경에서 작업하셨지만 여전히 자기 버릇 뭐 못 준다고 할까… 두 영화가 모두 영어 대사에 외국 배우가 나오는데 그래도 여전히 두 감독님의 버릇은 그대로 있는 게 좋더라. 박스오피스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오우삼이나 앙리 같은사람도 처음부터 흥행한 건 아니었으니까. 두 분 모두 또 작품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니까, 두 번째 세 번째 기대를 하고 있다.

다음 영화의 구상은 나와 있나?
2010년부터 구상해놓은 게 하나 있는데 다음 것으로 해야 할지 말지 백 프로 마음은 못 정했다. ‘옥자’라는 여자의 독특한 모험담이다. 최근 새로 떠오른 스토리도 있는데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미국 에이전시에서 보내주는 시나리오도 계속 검토는 하고 있고… 정확히 결정은 못했다.

한국 영화가 될지 외국 영화가 될지도?
이번에 함께한 배우들 가운데 좋은 분들이 많아서 일부와 함께 영어 영화로 더 재밌는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동시에 반대로 아주 작은 규모의 한국어 영화를 해서 알궁달궁 아기자기한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도 있고. 오락가락한다.

송강호와 고아성이 <괴물> 이후 다시 나온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같이 일한 한국 배우들을 데려가는 건 믿을 구석을 만들어둔다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실생활에서도 낯을 많이 가리고, 모르는 사람들 있는 곳에 가면 몸이 경직돼버리고, 어딘가 아는 사람, 기댈 언덕을 찾아야만 하는 편이다. 송강호 씨, 고아성 양이 있으면 뭔가 좀 든든한 기분이 드는 거다. 강호 형은 내 선배니까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하고 일하러 가는데 동네 형을 하나 데리고 가는 느낌이었다. 안 풀리면 이 형이 해결해줄 거 같은…. (웃음)

실제로도 뭔가 해결해주던가?
모니터 근처에 어슬렁거리고만 있어도 좋았다. 다른 외국 배우들 연기하는 거 보면서 우리말로 품평도 많이 했다. ‘감독님, 쟤는 저런 쪽이 좀 발달한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또 자기 연기 하고 나면 나한테 와서 궁시렁거린다. ‘감독님, 크리스 쟤는 액션 기곕니다,기계! 제대로 맞았으면 난 아마 죽었을 거야. 멱살을 잡는데 근육이 돌이에요.’ (웃음)

송강호와 틸다 스윈턴이 같은 영화에 나온다는 건 잘 안 그려지는 그림이기도 했다.
박지성이 처음 프리미어리그 가서 웨인 루니와 같이 잡히는 그런 그림인가?

그것보다는 운동 종목 자체가 아예 다른 것 같다. 다이빙과 투포환이라던가, 축구와 양궁이라거나….
보다 보면 금방 자연스러워질 거다. 틸다는 송강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 보면서 송강호 씨에 대한여러 가지 생각이나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강호 형 찍는 분량에서 자기가 안 나오는 장면이라도 내 옆에서 모니터를 유심히 본다거나 관찰을 많이 하더라. 두 배우가 서로 얘기는 안 했다. 강호 형이 별로 영어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웃음). 그런데 서로 보고 있는 거다. 틸다 분량 찍을 땐 강호 형이 모니터근처에서 어른거리면서 보고, 틸다도 마찬가지고. 둘이 은근히관심이 많았다. 배우가 보는 배우는 또 다르니까, 서로 통하는게 있었을 거다. 송강호 씨랑 뭔가 서로 직접 맞닥뜨리는 신을더 써달라고 틸다가 제안도 했다. 카메라가 돌다가 꺼졌을 때혹은 꺼져 있다가 켜질 때, 카메라 스위치가 온오프될 때 배우들마다 패턴이 다르다. 배우들끼리 그런 게 궁금한지 현장에서서로 관찰하더라. 틸다가 나한테 와서 어떤 제안을 하고 나도 그건 별로다, 이건 재밌을 거 같다 이야기하고 있으면 강호 형이 안 듣는 척하고 있다가 틸다가 가고 나서 슬쩍 물어본다. ‘무슨 얘기 하신 거예요? 괜찮네 왜, 하시지!’ 이러면서… 두 배우가 서로 어떻게 작업하나 궁금했던 것 같다.

틸다와 다른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는 어땠나?
크리스 에반스가 틸다를 아주 존경하더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텐션이 강한 신을 찍은 게 몇 개 있었다. 리액션을 받아주는 동안 크리스가 감탄을 연발하더라.

열차 칸으로 나뉜 계급 사회라는 설정, 앞쪽 칸으로 전진하는 혁명, 달리는 바깥은 얼음과 눈의 세상. 서늘한 영화일 것 같다.
유혈이 낭자하지만 밝은 영화다. 나는 해피엔딩이라고 믿고 있다. 보시는 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틸다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언제 다시 스코틀랜드 우리 집에 올 건가?” – 불러주면 언제나 갈 준비 돼 있다. 하기스 만들어주시오. ”우린언제 또 같이 작업하나?” – 나의 넥스트 무비. 바로 다음이 될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국에 가면 우린 뭘 할건가?” – 서울의 크레이지한 뒷골목들로 모험을 다닐 거니까 안전벨트를 매는 느낌으로 각오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