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은 지난 40여 년간 드라마를 만들어온 연출가다.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는 새로운 사극으로 주목받았고, 시청률 60%라는 황홀한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가 비단 연륜 또는 경험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의 드라마는 치열한 고민, 계속되는 실패, 그리고 뛰는 심장에서 출발한다.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면 자책, 질투, 욕심, 후회 따위는 모두 내려놓고, 그 대가로 의연함이나 초연함 같은 것을 얻는 줄로만 알았다. “내 능력이 부족했죠.” “속상했어요.” “후배는 한 걸 왜 나는 못했나 싶더군요.” “너무너무 힘들더라고요.” 90년대 말, 우리나라 사극의 물성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이병훈 감독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지난 1999년 <허준>, 그리고 2003년 방영된 <대장금>을 통해, 왕을 중심으로 한 실제 궁중의 역사에 집중하는 기존의 사극에 균열을 일으킨 인물이다. 대신 역사적 기록에는 단 몇 줄로 밖에 남지 못한 평범한 사람을 찾아내, 사극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상상력을 덧입히는 모험을 감행했다. 새로운 것이 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이전까지의 무겁고 어려운 사극에 지쳐 있었던 시청자들은 역사 속 인물들이 마치 게임을 하듯 단계별로 미션을 완수하는 빠르고 시원한 사극에 시청률로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응원은 <서동요>, <이산>, 그리고 <동이>를 거치며, 백제의 과학기술부터 천민 출신으로 왕을 키워낸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은 이병훈 감독의 갈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15년 전에 새로웠던 것이 지금에 와서도 새롭기란 쉬운 게 아니어서, 이 사극의 거장은 얼마 전 막을 내린 <마의>를 통해 관객의 비판 앞에 서는 낯선 곤혹을 치러야 했다. 그렇다고 시청자를 탓하지는 않았다. “시청자에게 서운할 수는 없어요. 시청자는 언제든지 변덕스러울 권리가 있는 거니까요.” 그저 언제나처럼 왜 전과 달라지지 못했나 자책하고, 후배 연출가를 질투하고, 조금 더 새로운 것을 욕심내고, 시청자 앞에 겸손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올해로 일흔이 된 이병훈 감독에게 <마의>가 마지막 작품일지 아닐지는 그조차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만약 우리 앞에 무언가 새로운 드라마가 출현한다면 그건 의연함이나 초연함을 지닌 어른의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움이란 자책, 질투, 욕심, 후회로 괴로워하는, 그러니까 여전히 피가 끓는 어른에게서만 비롯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드라마 <마의>를 마치고 사모님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막 돌아오셨다고 들었다.
이병훈 동유럽에 다녀왔다. 열흘 동안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5개국을 돌았다. 드라마를 끝내고 나면 항상 여행을 떠난다. 거의 1년 가까이 밖에서 살았으니, 아내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이다(웃음).

미니 시리즈를 연출하는 젊은 PD들도 괴로워할 만큼 빠듯하게 돌아가는 드라마 현장이다. 6개월에 걸쳐 50편을 방영하는 대장정이 힘에 부치지는 않으셨나?
방송은 6개월이지만 촬영은 8개월, 대본 작업하느라 실랑이하고 준비하는 과정까지 합하면 치열하게 일하는 시간은 1년 6개월 정도다. 워낙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고 잠도 못 자는 일이라, <허준>이나 <대장금> 때만 해도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두 달 정도 잠만 자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융통성이 생겼다고 할까, 아니면 속된 말로 농땡이를 부려서 그런가, 예전만큼 기진맥진하진 않은 편이다. 게다가 나의 경우엔 드라마가 끝났다고 해서, 시체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모든 생각을 다 버리는 게 잘 안 된다. 하나 끝나면 그다음을 생각하고, 보름만 지나도 또 새 일을 생각한다.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드라마 <마의>에 스스로 만족하시는지?
이 작품을 끝낸 소회가 참 복잡하다. 드라마 연출이란 게 할수록 어렵다. <허준> 때는 시청률이 60%를 넘었고, <대장금>은 50%를 넘었다. <이산>의 경우에도 40% 가까이 갔고, <동이>는 30% 정도였다. 그런데 <마의>는 20%에서 계속 헤맸다. 물론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매체에 대한 접촉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20% 넘는 드라마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를 품은 달>은 40%까지 기록하지 않았나. 나는 왜 그걸 못했나, 열심히 해도 안 되는구나, 드라마가 힘들구나, 너무너무 힘들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선생님’ 반열에 오른 연출자도 시청률에 대한 압박을 느끼신다니 신기하다. 결과에 초연하시리라 예상했다.
지난번에 강우석 감독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은 작품성보다, 관객의 호응을 최고로 친다고 말하는 걸 봤다. 어느 정도 동감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내 드라마를 보고 즐기기를 바라는데, 그 척도가 시청률이기 때문이다.

<마의>를 끝내신 후 ‘역사의 한 인물을 조명하는 사극은 더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보았다. 역사 속에 많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인물을 발굴해,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는 스토리는 이병훈 사극의 근간이었는데, 그걸 하지 않으시겠다니 마음고생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나? 시청자들로부터 이병훈의 사극은 이제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돼서 재미가 없다, 똑같은 걸 반복한다는 말을 들으니 속상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 전환점을 마련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의>를 끝내고서는 자신감도 없어지고 그랬다.

사실 <허준>과 <대장금>을 거치며, 이른바 ‘이병훈표 사극’은 새로운 사극과 같은 말로 쓰였다. 그랬기에 ‘새롭지 않다’는 비판이 더욱 아프셨을 듯한데?
12년 동안 7편의 드라마를 했다. 사실 그때마다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게 굉장히 힘들다. <마의> 역시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 인간과 동물의 교감 등 이전에 다룬 적 없는 소재를 시도하기 위해 꽤 노력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청자들이 새로운 동물 이야기에 열광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방영을 시작하니 그렇지 않더라.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대장금> 2 같다거나, 주인공이 헤쳐 나가는 인생 역정이 <허준>이나 <상도>와 다를 게 뭐냐고 비판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으신가?
시청자에게 서운할 수는 없다. 내가 시청자의 마음을 좇아야 하는 거지, 시청자에게 내 마음에 맞추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시청자는 언제든지 변덕스러울 권리가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할 권리, 언제든지 취향을 바꿀 수 있는 권리 또한 있다. 그걸 따르는 게 제작자의 몫이다.

감독님의 사극이 왕을 중심으로 한 궁중의 역사를 기록에 근거해 보여주는 기존의 사극으로부터의 새로운 시도였다면, 최근 사극에서의 역사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낯선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관심 있게 즐겨 보는 사극이 있으신가?
<마의>가 끝난 후에 이어서 <구가의 서>가 시작됐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색감, 내가 쓰고 싶었던 컴퓨터 그래픽을 다 쓴 거다. 그래서 모르는 사이인데도 신윤철 감독한테 전화를 해서는 잘 보고 있다, 참 잘 만들었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라. 그때 신윤철 감독한테 카메라는 F65 쓴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는데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사실 처음엔 F65를 쓰고 싶었는데 당시 수입이 안 돼 레드에픽을 썼고, 후반 작업이 원하는 대로 나오질 않아서 7회까지 쓰고는 소니 9000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F65를 썼다고 해서 화면이 <구가의 서>처럼 나오진 않았을 거다. 연출자가 카메라에 맞게 영상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후배인 신윤철 감독은 했는데, 왜 나는 못했나 그런 속상함도 있었다.

최근의 사극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역사 고증에 관한 논란은 여전하다.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하다.
나도 사실은 할 말이 없다. 예전엔 사극에 있어 역사 고증이 중요했었는데, 내 스스로 고증을 깬 적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너는 제대로 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서, 고증에 관해서는 얘기를 않기로 했다. 다만 우리나라 사극의 다행스러운 점은 중국이나 일본의 사극과 달리, 젊은 시청자 또한 많이 본다는 거다. 나는 그게 <허준> 때부터라는 자부심이 있다.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내보고 싶다. 70년대엔 드라마 PD가 지금처럼 잘 알려진 직업도 아니었고, 대학에서도 전혀 관련없는 분야를 전공하신 걸로 안다. 어떻게 드라마 PD가 되신 건가?
그냥 취직하려고 들어온 거다. 당시엔 PD라는 직업이 뭔지도 모를 때다. 1970년 9월에 시험을 봤는데, 같이 시험 보자고 한 친구한테 PD가 무어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른다더라. 그냥 가수와 탤런트가 꼼짝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웃음). 그때만 해도 일반인들은 방송국엔 아나운서만 있는 줄 알았을 때니까. 방송국에 입사한 후에야 PD가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처음엔 편성국에 근무했는데, 쇼는 너무 화려해서 성격에 안 맞고 그렇다고 교양은 너무 점잖고, 그런데 드라마는 예쁜 탤런트도 막 돌아다니는 것 아닌가. 게다가 드라마 대본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작품이고 아카데믹한 요소도 있어서, 적당히 화려하고 적당히 아카데믹한 중간을 택한 거다.

처음부터 사극만 하신 건 아니다. 현대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
왜 안 하나. 늘 생각한다. 특히 모든 PD가 그러하듯 러브 스토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게 드라마가 갖고 있는 본질이라고 생각해서다. 내가 사극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러브 스토리를 집어넣는건 그 이유다. 한국 드라마가 참 유별나다. 로맨스가 없는 드라마가 없다. 예를 들어 하키 선수들이 등장하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면, 거긴 남자 하키 선수들만 나온다. 그런데 우린 절대 안 된다. 하키 선수가 나오면 여학생이 등장해야 하고, 결국 하키 선수들이 사랑하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라며 비판하는 시청자도 많다.
그걸 꼭 비판해야 하나. 사랑 얘기를 좋아할 뿐인데.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한 편에 70분씩 일주일에 2편을 방영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40분짜리 드라마를 방영하는 외국과는 사정이다르다. 드라마에서 로맨스가 시작되면 감정이 섬세해지기 때문에 크게 진전이 없어도 시간이 간다. 만약 사랑 얘길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다 이끌고 갈 수 있을까. 그래서 장편 드라마에서 사랑이 빠지면 큰일나는 거다. 게다가 시청자들이 끊임없이 원하고 기다리지 않나. 그래서 내가 옛날에 <암행어사>를 할때도 반드시 사랑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작가한테 당부했다. 이 드라마엔 액션, 미스터리, 그리고 러브 스토리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허준>을 연출하신 때가, 이미 현장에서 물러나 이미 국장 자리에 10년 정도 계신 후더라. 50세가 넘은 나이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어떠셨는지?
두려웠다. 아, 정말 엄청나게 두려웠다. 그래도 그때 돌아왔으니까 지금까지 연출을 할 수 있는 거다. 내 동기 중 사장까지 한 사람들도 벌써 4~5년 전에 그만뒀으니까(웃음).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엔 <조선왕조 500년>을 연출하셨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극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런데 젊은 시절엔 전통적인 사극을 연출하다가, 오히려 연륜이 쌓인 후 새로운 사극을 시도한 이유가 있으시다면?
<허준>이라는 드라마를 시작할 때, 그때 막 대학교에 입학한 딸이 그랬다. “아빠, 또 사극해? 제발 하지 마.” 그래서 걱정이 많았다. 내가 국장 자리에 있는 동안 드라마, 쇼, 교양 PD 합쳐서 100여 명 되는 PD들에게 만날 잘하라고 지시했으니, 이제 다들 두고보자 하지 않았겠나. 그런 상황에 내 자식조차 싫어하는 장르를 연출해서 될까 싶었다. 그래서 사극 대본을 한 번도 안 써본 최완규 작가를 섭외하고, 의상도 기존의 흰색과 검은색 외에 40여 가지 색상으로 화사하게 준비하고, 궁중에서만 쓰는 용어를 빼는 대신 다 현대어로 바꿨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굉장히 빠르게 진척시켰다. 당시 원작이었던 <동의보감>이 세 권짜리 책이었는데, 작가에게 세 권을 10회 안에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라도 안 보면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게끔 하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이 언제나 환영받지는 못하나 보다. <대장금>을 시작하기 전에 방송사 간부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반대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지?
우선 반대하는 간부들이 나보다 후배들이었고(웃음), 그들의 드라마관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나와 작가는 이 방향이 옳다고 합의했고, 믿었기 때문에 밀어붙인 거다. 새롭지 않으면 무조건 망한다고 여겼다.

그렇게 2년에 한 편씩 꾸준히 드라마를 만들어오셨고, 현장에서 최고령 PD가 되셨다. 일선에서 물러나 기획을 하거나, 제작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장을 택하신 이유가 있으시다면?
연출가는 작품을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만드는 사람이다.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면서 화면 하나하나를 만들고, 작가와 함께 스토리 하나하나를 만들고, 연기자의 연기 하나하나를 지도한다. 그러니까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크고, 그 작품에 대한 반응 역시 직접 부딪힌다. 그래서 연출이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전작 <동이> 때부터 이번 작품이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일거라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정말 은퇴를 고민하고 계신지 여쭤보고 싶다.
나는 <마의>가 내 마지막 작품이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 그런데 언론에서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니, 이제 그만해야 하는 모양인가 보다(웃음). 결국은 자신없을 때가 마지막이다. 이러다 도저히 새로운 걸 할 수 없겠구나 싶다면 못하는 거다. 대신 아, 새로운 거다, 시청자에게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으면 다시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아무 계획도 없다.

평생 현장에서 구르고, 다치며, 피까지 흘린 PD에게 은퇴란 더욱 잔인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내가 그만두면 병 나서 쓰러질 거라고들 한다(웃음).

드라마 PD로 꼬박 40년을 살아오셨다. 뿌듯한 점도, 아쉬운 점도 있으실 텐데?
행복한 연출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많이 먹어서도 시청자에게 크게 버림받지 않고, 비교적 무난하게 드라마를 쭉 만들어왔으니까. 게다가 그 대부분이 인생 후반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지 않나. 나 스스로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글쎄, 드라마마다 전부 아쉬움이 있다. <마의> 할 땐 왜 그랬나, <동이> 때는 또 왜 그랬나, 끊임없이 땅을 친다. 무엇보다 비교적 겸손한 자세로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겸손함이 부족하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어서 겸손함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 정도면 됐겠다 싶은 생각, 결국 자만을 뜻한다. <마의>를 끝내고서 내린 결론은 시청자의 마음을 안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럴 것이다라고 짐작해서 최선을 다해서 갈 뿐인 거다. 그래서 맞아떨어지면 좋은 거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항상 시청자의 마음과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결국 감독님께 드라마란 무엇인가?
드라마는 꿈이다. 갖고 싶은 꿈, 이루고 싶은 꿈, 그걸 드라마에서 이루는 거다. 그래서 극 중의 인물이 성공하면 자신이 성공한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좌절하면 함께 괴로워하는 것 아닐까. 시청자는 드라마 속 인물이 살아가는 과정을 자신의 인생에 빗대면서, 그렇게 동시에 살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만든다는 건, 그 꿈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