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은 뉴욕에서 26년을 살았다. 다양한 부분의 조각이 모여 새로운 전체를 드러내는 이 도시의 유연한 속성은강익중의 작품과도 몹시 닮았다. 그러나 백남준의 예술적 적자로 불리는 이 아티스트가 첼시의 작업실에서 인터뷰 내내 언급한 것은 머나먼 고향을 소환하는 단서와도 같은 아주 낡은 낱말, 지금 현대 미술 신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생경한 단어, 민족과 통일이었다.

미국은 수평의 대륙이지만 뉴욕은 수직의 도시다. 강익중을 만난 첼시의 아파트는 그 수직을 한눈에 드러낼 만큼 충분히 높았다. 작업이 다 끝나면 작품을 옮겨와 사진을 찍는 등 마지막 완성 단계의 마무리를 하는 아틀리에다. 차이나타운에도 다른 작업실이 있지만, 그가 더블유를 초대한 곳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마치 갤러리 같은 이곳이었다. 벽에 걸린 달항아리 그림과 한글 타일 작품이 서쪽으로는 허드슨 강을, 동쪽으로는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을 내려다보는 전망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너무나 뉴욕스러운 그 풍경 가운데 한국인 강익중이 함께 있다. 3X3인치짜리 작은 사이즈 그림들을 그리고 모아 붙여 마치 픽셀처럼 거대한 전체를 만드는 강익중의 작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다. 광화문 공사를 할 때 가림막 그림도 그의 작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작은 사이즈 그림이, 뉴욕에서 옷장사를 하며 버스를 타고 오가던 그가 차안에서 시간을 아껴 작업을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백남준과의 2인전이 열리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설치 작업을 의뢰받고, 휘트니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창작 형식의 아이디어로 촉발시켰던 그의 현재는, 뉴욕 거리의 부감 풍경을 발밑에 두고 높이 솟아 올랐다. 광화문을 비롯해 여러 공항과 공원의 공공 미술 기획들을 거쳐온 강익중은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으고 있다. 수십만 개의 3X3인치들이 모여서 어린이 병동에 벽화로 설치되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렇게 말해요. 쿨하지 않게 애들 그림을 왜 모으냐, 그런 건 현대미술의 커팅 에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나는 여기에 정답이 있다고 믿어요. 내가 좋아하는 게 아이들을 만나는 거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거니까.”

그가 지금 염원하는 프로젝트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아서 임진각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아래의 반구와 위의 반구가 모여 하나를 이루고 불이라는 시련을 통과하는 달항아리처럼, 모음과 자음이 만나 하나의 소리를 내는 한글처럼, 갈라져 있는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강익중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다. 철학이란 결국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고,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돌아갈 사람이라는 자기 위치를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철학, 그리고 정치,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가 강익중에게서는 아트나 미술과 비슷한 빈도로 나왔다. 도인이라는 낱말도.

한 면이 3인치 짜리작은 타일에 그림을 그리는건 일하러 다니는뉴욕의 버스 안에서그림을 그려야 하는 한계상황에서 나온 나름의방법이었다. 이 타일들을모아 거대한 그림을구성하는 강익중의 작품은,이제 수십만의 사람들이그린 작은 타일그림을 모아 설치작품을 만들면서 그들과소통하는 방식이 된다.

한 면이 3인치 짜리
작은 타일에 그림을 그리는
건 일하러 다니는
뉴욕의 버스 안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한계
상황에서 나온 나름의
방법이었다. 이 타일들을
모아 거대한 그림을
구성하는 강익중의 작품은,
이제 수십만의 사람들이
그린 작은 타일
그림을 모아 설치
작품을 만들면서 그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된다.

아틀리에 전면의 달항아리 작품이 인상적이다.
2004년에 어린이들 그림 13만장을 모아 붙인 대형 공을 일산 호수공원에 띄웠다. 그런데 바람을 너무 많이 넣어서 다음 날 아침에 터져버렸다. 약간 기우뚱해졌는 데, 그걸 낮에 보니까 마치 어릴 때 본 달항아리 같았다. 달 항아리는 보통의 항아리처럼 전체를 빚는 게 아니라 아래와 위를 따로 만들어서 연결한다.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 그림을 많이 모아서 임진강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달항아리에는 그게 다 들어 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이 든다.

아이디어의 근원도 들었지만, 미학적으로 달항아리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달항아리는 사람으로 따지면 욕심이 많은 사람 같다. 배는 부르지만 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 사람. 성인 군자도 사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큰 욕심인가. 같은 양의 흙으로 빚어도 작은 그릇은 자신에 대한 아집으로 꽉 차 있다. 하지만 진짜 욕심이 큰 항아리는 똑같은 양의 흙을 써도 세상을, 이웃을 품을 수 있도록 속이 텅 빈다. 처음엔 달항아리를 카피하려고 했다.근데 동양화에서 자연을 모사하는 방식은 그게 아닌 것 같더라. 사물을 똑같이 모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그리면 된다. 그걸 알게 되니까 달항아리의 껍데기를 그리는 게 아니라 달항아리의 마음을 그리는 게 중요하더라. 서로 이어주는 마음, 안고 품는 마음, 치료하는 마음, 텅 비어 있는 마음, 그리고 담백하지만 겸손한 마음… 그런 마음이 우리의 정신이고 한민족의 부분이다. 여기에 무슨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결이라는 맥락에서 작은 3인치짜리 그림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시리즈도 통한다.
요즘은 한글 작업도 하는데 모음과 자음이 만나서 하나의 소리로 발성하는 것도 같은 의미인 것 같다. 달항아리의 아래위가 하나를 이루고 불을 통과하듯이 한글도 모음과 자음이 만나서 하나의 소리를 이룬다.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건 결국 나의 위치 파악이지 않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돌아갈 사람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 지금 갈라져 있고, 이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한다. 그래서 달항아리나 아이들의 그림 같은 게 나에게는 화두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니까. 친구들은 쿨하지 않게 애들 그림을 왜 모으냐, 그런 건 현대미술의 커팅 에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이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거니까. 그림은 많이 모아서 병원이나 도서관에 기증하는데,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참여하고 서로 연결되는 것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 그림을 붙이면서 카메라를 달아 A 병동과 B 병동이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거다. 현대아산병원의 경우 암 병동에 있는 아이들은 10시 이후에 로비까지만 나올 수 있다. 병원 로비에서 자기 그림, 친구 그림을 보고 거기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충남대 병원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연결에 대한 인식이 강해졌지만, 그림으로도 그런 걸 할 수 있다.

당신의 작품을 보면 마치 디지털 시대의 픽셀 아트 같은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요즘은 픽셀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달라는 편지를 보내는데 예전에는 3X3인치라고 하면 이 작은 데다 어떻게 그리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도 불평을 안 한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익숙해진 거다. www.amazedworld.com에서 이 ‘희망의 벽’ 관련한 그림을 올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한 걸 볼 수도 있다.

한 어린이의 그림에 대한 스토리가 찡하더라.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라고 했더니, 3인치 캔버스를 온통 노란색으로 칠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안산의 월곡동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거기 교회에서 자라는 아이인데,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가고 싶은 장소, 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라고 했다. 베트남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인데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아빠는 가족을 떠났다. 그림을 받아 보니 작은 3인치 캔버스에다 노란색만 칠해놨더라. 그게 자기 아버지라고. 아버지를 보고 싶은데 얼굴이 기억 안 나는 거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시던 맥주 색을 그림에 그렸다. 그런 스토리가 많다.

작은 그림이 사람을 말해준다는 게 놀라웠다.
군부대나 청소년 보호감호소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누구나 어릴 때로 돌아가고, 아이 때 품었던 꿈을 생각한다. 그림에는 치유의 기능이 있다. 사회를 낫게 하고 세상을 연결하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이게 우리나라 적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미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구성하는 낱낱의 그림 자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려진 아이들의 아날로그 그림이지만, 그것이 모여서 모던한 전체를 이룬다는 점, 작업이 이루어지는 방식, 그리고 굉장히 현대적인 인터랙션을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처음에 그림 그릴 때는 그물을 짠다는 느낌을 가지고 했다. 세상에서 예술가가 해야 할 임무는 직관적으로 그물을 짜서 던지는 거 같다. 다음에 과학자는 그걸 끌어올리는 역할, 경제인은 끌어올린 고기를 잘 자르는 거. 정치인은 그걸 나눠 주는 거. 이 마지막 단계를 페어하지 않게 하면 사회가 망할 거다 (웃음). 예술가의 입장은 그물을 짜서 직관을 가지고 던지는 거다. 예술 정치 문화 경제가 하나의 사이클이라는 생각을 하며, 던지고 끌어올리고 자르고 나눠 주는 좋은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통일을 위해 다리를 놓겠다는 얘기를 하면, 그건 정치적인 거 아니냐고들 하지만, 나는 정치 없는 아트 없고 아트 없는 정치 없다고 생각든다. 태어나고 자라고 돌아갈 곳이기 때문에 한국의 분단 상황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게 어떤 철학보다 더 중요한 내 문제다.

그물을 ‘직관적’ 으로 짠다는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
큰 금융 회사 부회장인 친구 말이, 하루에 30가지 결정을 내리는데 이 중에 10개를 망치면 자기는 망한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직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음의 그릇에 물이 흔들리면 자기를 볼 수가 없고, 그래서 바른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고. 말하자면 불교의 평상심 같은 거다. 내가 나를 똑바로 봐야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까, 직관은 우선 내 마음이 맑아야 된다. 내가 올해 하려는 일 중 하나는마음의 그릇에 담긴 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직관을 사용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믿어야 가능한 것 같다.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위치 파악이다. 철학은 외우거나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도 안 나오고 시골에서 나무를 캐는 사람이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창문을 갖고 있으면 철학자가 된다. 내 창문으로 세상을 보는가, 내가 만든 플랫폼 위에 서 있는가는 문제다. 남이 만들어놓은 플랫폼은 곧 무너지니까. 창문의 크기는 상관없다. 작아도 세상이 이런 거구나 깨달으며 가는 거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뭘까? 이 작은 도구를 통해 세상을 깨닫는 거다. 권력을 잡기 위해 정치를 하거나 돈 벌기 위해 장사를 하는건 너무 슬픈 인생 같다. 그림이라는, 사업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과 인간의 질서를 바라보고 깨닫는 거다. 저마다의 삶에서 자신이 왜 톱질을 하는지, 농사를 짓는지, 그림을 그리는지 알아야 인생을 살아가지 않겠나.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그림이라면, 그 창을 가리거나 닫는 건 뭘까?
아티스트로서 경계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만일 생각의 연을 날린다면 그 연줄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작품을 하나 그린다면 배우가 배역의 연기에 몰입하는 거랑 똑같이 안에 들어간다. 들어가는 걸, 끝까지 철저하게 해야 한다. 가을이 돼서 나뭇잎을 본다면 바람에 흔들리는 거기까지가 아니라 떨어지는 것까지 지켜보는 거. 그게 작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남준 선생이랑 함께 초대전도 여러 번 열었고, 뉴욕에서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외모까지도 닮아서 좀 놀랐다.
백 선생님도 본인이 날 보고 놀라시고, 한국 갔더니 농담으로 전생에 아들이었다고 말씀도 하셨다. 물론 내 쪽에서는 존경하는 분이고위해주신 게 감사하지만, 매일 찾아가서 감히 방해할 정도로 가까운 분은 아니었다(웃음). 하지만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삶은 기차 여행 같다. 서로 여러 번 갈아타면서 자신만의 여행을 하는 데, 부모님도 끝까지 동행할 수는 없다. 나는 호남선, 부모님은 경부선이라면 대전에서 헤어져야 하는 거다. 이 여행에서는 누군가와 곁에 앉아서 창문을 바라보는 시간이 참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20년간 같은 차에 타 있어도 할 얘기가 없는가 하면 10분을 동행해도 서로 변화하는 만남이 있다. 백 선생님과 동행한 것도 말하자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창밖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다. 나하고 인연이 깊은 분 두분 가운데 한 분이다.

또 한 사람은 누구인가?
뉴욕에 처음 와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방향을 알려줄 누군가를 갈구했는데 두 분이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백남준 선생님, 그리고 김환기 선생님 사모님인 김향안 여사. 기회와 유혹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여사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회가 유혹인 줄 알고 멀리하거나 유혹이 기회인 줄 알고 잡아서 문제가 된다는 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에게 옳은 지, 자식에게 옳은지 보기 전에 민족과 역사와 세계에 옳은 지를 봐라. 그렇다면 밀고 나가라” 라고 하셨다. 사람은 좋은 선생을 만나야 하고, 나 역시 나중에 그런 후배, 제자를 만나고 싶다. 미국 영국 한국 아프리카… 어디서 온 사람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기회와 유혹을 분별하기 힘들 듯이, 이 사람이 나에게 스승인지 제자인지 혹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지 역시 알기 어려운 것 같다.
세상에는 도인들이 많다. 깨달은 사람 혹은 대가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은 우선 남들이 몰라야 하고, 두 번째로 본인이 몰라야 하며, 마지막으로 도 자체를 몰라야 한다. 절에 일부러 입산하는 순간 부처님의 뜻을 모르게 되는 거다. 형식을 따라가느라 내용을 놓치니까. 누구든 스승이 되고 또 제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