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치열한 탐구 정신이 빚어낸, 알알이 영근 가을 곡식처럼 풍요로운 2012년 가을/겨울 패션. 그 결과물 중 더블유의 시선으로 취사 선택한 세 가지 트렌드 이야기.

OPULENT LADY

과유불급의 경구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이들에게 절제의 미학은 거의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패션의 한 부분일 뿐이다. 더 화려하고, 더 럭셔리한 패션에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부류도 분명히 있다. 미니멀리즘의 반대말로 ‘맥시멀리즘’이라 불리는 이런 패션은 2012년 가을/겨울에 들어서면서 귀족적 코스튬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왕정과 귀족이 존재하던 시대에서 모티프를 찾은 것은 동일하지만 그 출처는 바로크, 르네상스, 고딕, 로코코, 에드워디언 등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또 이번 시즌 귀족적 터치의 맥시멀리즘 의상의 가장 큰 특징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룩이라는 것. 모자부터 코트, 드레스, 팬츠, 구두, 가방 등 모든 요소에 화려한 스톤 장식을 넣은 루이 비통이 이 무드의 대표 주자. 코인과 태피스트리 장식, 컬러 스톤으로 드레스를 화려하게 장식한 알투자라발맹, 베르사체 등은 모두 ‘성인 여성의 섹시함’을 주 무기로 삼는 브랜드답게 몸에 꼭 맞는 펜슬 스커트나 아찔한 미니 드레스 등에 장식주의적 요소를 대폭 집어넣었다. 바실리카 금빛 자수 장식을 넣은 돌체&가바나, 핏&플레어 실루엣을 살린 디올, 러시안 무드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프렌치 레이스를 고혹스러운 실루엣에 적용한 랑방 등도 하우스의 범주 안에서 맥시멀리즘을 풀어낸 대표 브랜드다. 한편 19세기의 귀족적 남성복이 미친 영향은 검정 가죽과 벨벳, 자카드 등의 고전적 소재와 만나 우아한 라이딩 룩으로 변형됐는데 구찌프란체스코 스코냐밀리오, 이브 생 로랑 등에서 이런 레트로 맨즈 웨어 룩을 찾을 수 있다.

MINIMAL OVERSIZE

다른 때는 몰라도 어쨌든 이번 시즌만큼은 큰 것이 아름답다. 일부러 큰 옷을 입는 트렌드는 대략 서너 시즌을 주기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출현하는 시기의 또 다른 주요 트렌드와 결합해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오버사이즈는 미니멀리즘과의 결합을 시도했다. 간결한 미니멀리즘은 확고하게 패션계의 안전지대로 자리 잡은 데다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버사이즈 트렌드의 대표 아이템은 바로 아우터. 테일러드 재킷이나 코트, 바이커 재킷 등을 간결한 이너웨어와 스타일링한 룩은 전 도시를 통해 골고루 선보이며, 이번 시즌의 메가트렌드임을 입증했다. 느슨하게 늘어진 어깨선의 테일러드 코트를 선보인 셀린을 비롯해, 퀼팅 패딩과 울을 믹스한 아우터를 선보인 클로에, 큼지막한 트위드 코트를 팬츠와 매치한 샤넬, 구조적 패널의 여밈 없는 코트를 퓨처리즘 무드에 섞은 발렌시아가, 밝은 파스텔 톤의 코쿤 실루엣 코트를 오프닝 룩으로 내보낸 질 샌더 등 주요 하우스들이 모두 오버사이즈 실루엣에 집중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뉴욕의 프로엔자 스쿨러, 런던의 아크네, 파리의 이자벨 마랑,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등 캐주얼에 강한 브랜드도 가죽을 사용한 박시한 아우터를 선보였으니, 스트리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버사이즈 스타일링을 제대로 즐기는 이번 시즌의 힌트는 깔끔한 실루엣의 스키니, 또는 시가렛 팬츠와 함께 매치해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말길.

RURAL CHIC

아무리 주요 컬렉션을 통해 메가트렌드로 부각되었다 해도 실질적으로 매장에서 사 들고, 매일 입는 옷은 따로 있는 법이다. ‘컨템퍼러리 룩’으로 불리는 패션을 이번 시즌에 대입해보면 전원에서 가져온 모티프의 ‘모던 컨트리사이드 스타일’만 한 것도 없다. 2012년을 맞아 자연에서 가져온 무드와 도시적 스타일링을 합친 것이 특징으로, 스트리트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렌디한 룩으로 변주되고 있다. 즉, 자유롭게 보이지만 사실 치밀하게 계산된 스타일링이 바탕이 된다는 것. 이번 시즌의 컨트리사이드 룩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헤링본 소재의 맥시 코트와 글렌 체크 무늬의 조퍼스 팬츠로 라이딩 무드를 만든 랄프 로렌이나 두툼한 니트 풀오버에 실크 스커트를 매치한 타미 힐피거처럼 클래식한 것이 기본형이라면, 또 하나는 체크 코트와 패딩 점퍼를 펜슬 스커트에 멀티 레이어링한 버버리 프로섬, 느슨한 스웨터에 파자마 팬츠를 매치한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 블랭킷 코트를 레깅스와 스타일링한 랙&본, 니트 카디건과 풍성한 스커트를 감각적으로 매치한 마이클 코어스로다테의 예처럼 전형적 ‘시골 스타일’의 아이템을 도회적 느낌의 아이템과 섞어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캐주얼 룩으로 변형한 것은 올 가을/겨울 모든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스타일이다. 컨트리사이드 룩의 키 아이템은 바로 니트 풀오버로, 로샤스에서 볼 수 있듯, 데님에서 펜슬 스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의를 통해 변화를 줄 수 있음을 기억할 것. 펜디처럼 퍼를 매칭한다든지 벨트로 프로포션에 변화를 주고, 스틸레토에서 부츠에 이르는 다양한 슈즈를 매치해보는 즐거움은 덤이다.